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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손석희 “950번 앵커브리핑, 그걸 어떻게 했나 싶어”

by한겨레

<…의 앵커브리핑> 펴낸 손석희

한겨레

2019년 12월31일 마지막 앵커브리핑 모습. 김현정 작가 제공

<제이티비시>(JTBC) 순회특파원으로 지난해 11월 한국을 떠난 뒤에도 손석희 전 앵커(이하 손석희)는 20대 대선 선거보도 과정에서 여러번 이름이 불려나왔다. 어떤 이들은 대선 주자들에 대한 언론의 날카로운 검증과 질문이 좀체 보이지 않는다며 손석희의 ‘압박면접’식 인터뷰를 떠올렸다. 그의 ‘편향성’을 이유로 대며 황상무 국민의힘 당시 언론전략기획단장이 기자협회와 제이티비시가 주최하는 대선 토론회를 거부한 일도 있었다. 정치권의 연락이 끊이지 않는다는 말도 들려온다. 어느 쪽이든 언론인 손석희는 여전히 소환되는 중이다. 정작 손석희는 대선 당시 논란에 대해 “처음엔 당혹스러웠지만 그냥 팔자라고 생각한다. 쉽게 말하면 동네북이다. 각자 편할 대로 해석해서 유리하게 쓰니까”라고 담담히 답했다.


<풀종다리의 노래>(1993) 이후 28년 만에 지난해 11월 <장면들>(창비)을 낸 데 이어 최근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1, 2권(역사비평사)을 내놓은 그를 서면과 에스엔에스로 만났다. 민감한 언론계 이슈나 전 직장과 관련한 질문들에 대해선 웃음 이모티콘으로 ‘패스’하고 전화통화를 사양하는 모습에서 스스로 정제한 ‘글’이 아닌 ‘말’이 다르게 해석되는 데 대한 조심스러움이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언론인들의 정치권 진출에 대한 생각이나 언론인으로서 삶을 계속 지켜나가겠다는 뜻은 비교적 분명히 밝혔다.


‘앵커브리핑’은 그날의 이슈를 주제로 잡고 문학과 철학, 역사를 넘나들며 시청자들과 공감했던, 한국 뉴스에서 처음 시도된 방송 에디토리얼이었다. 이번 책은 2014년 9월부터 2019년 12월31일까지 <뉴스룸>을 진행하면서 김현정 작가와 작업했던 950편 가운데 284편을 골라 주제별로 묶은 것이다. 주제별로 들어가는 글을 새로 쓰고, 지금의 시점에서 생각해볼 문제나 뒷이야기를 전하는 ‘추고’를 원고별로 붙였다. 950편을 몇번씩 읽느라 “없던 거북목까지 생겼다”고 그는 말했다.


―미국에 있다는 말도 돌았는데 일본에 머물고 있다.


“나중엔 미국에도 갈 계획인데 처음부터 일본과 미국을 염두에 뒀다. 두 나라는 여전히 우리에겐 가장 중요한 나라들이고 가능하면 기존 특파원들이 없는 지역을 택하다 보니 지난해 11월 오사카 쪽에 오게 됐다. 사실 장기 프로젝트를 만들어 가야 하므로 지역이 중요한 건 아니다. 코로나 때문에 여기저기 막혀 기획을 하는 데 제한이 많았는데 앞으론 좀 풀릴 거라 기대한다. 한국엔 순회특파원 임기가 만료되는 내년 말쯤 들어간다.”


―앵커브리핑을 보며 늘 작가와 어떤 식으로 작업하나 궁금했다.


“소재는 그날그날 논의했다. 원고는 내가 쓰기도 하고 김현정 작가가 초안을 보내오기도 하고, 초안 그대로 내기도 하고 다 뒤집기도 하고 그랬다. 책 서문에 ‘매일매일이 전투였다’고 좀 격하게 쓰긴 했지만, 실제로 머릿속은 늘 그랬다. 텍스트뿐 아니라 관련 그림도 찾고 그래픽도 넣고 스튜디오 연출도 했어야 하니 방송 몇시간 전엔 원고가 완성돼야 했다. 뉴스 전체를 봐야 하고 취재나 편집에 대한 판단도 하고 마지막엔 그날의 엔딩곡도 고르고(손석희는 <뉴스룸>의 엔딩곡을 모두 스스로 골랐다). 보통 3분, 길면 4분을 넘기기도 했는데 ‘생방’으로 해서 아주 가끔은 예상보다 길어지기도 했다.”(답변을 읽다가 2019년 4월 어느 날 앵커브리핑이 떠올랐다. 고 노회찬 의원이 떠난 지 몇개월이 지나 한 정치인이 “돈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의 정신을 이어받아서야…”라고 말한 데 대해 “그가 가졌던 부끄러움은 존중해줄 수 있다는 것이 자신의 결론이었다”고 앵커브리핑을 하던 손석희는 평소 좀체 냉정을 잃지 않던 모습과 달리 “저의 동갑내기…”까지 말하곤 20초간 말을 잇지 못했다.)


한겨레

손석희 앵커는 지난해 <장면들> 에 이어 최근 <…의 앵커브리핑>을 펴낸 데 대해 “나만의 방식으로 내가 생각해온 저널리즘을 실제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정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손석희 제공

언론의 존재 이유는 민주주의와 인본주의

그 기준이라면 시대 변해도 후회할 글 없을 것

―<문화방송>의 ‘100분 토론’과 ‘시선집중’을 오래 진행해온 손석희는 공정성, 중립성을 바탕으로 한 ‘냉철한 진행자’ 이미지였다. 반면 앵커브리핑은 손석희가 추구하는 저널리즘 방향을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의도했던 건가.


“앵커의 생각이나 의견을 반영하는 데에는 익숙지도 않고 필요하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처음엔 단순히 뉴스 아이템에 좀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을 앵커가 직접 해본다는 의도 정도였다. 하지만 형식이 내용을 규정해간 측면이 있다. 시작하고 나니 곧바로 에디토리얼의 성격을 띠더라. 다만 나만의 생각을 표출하는 게 아니라 시청자들이 공감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고, 그 접점을 끊임없이 찾아가려 했다. 문학과 철학·예술 등을 끌어들인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흔히 수사학에서 말하는 로고스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파토스가 없으면 사람들은 쉽게 공감하지 않는다는 데 동의한다. 난 뉴스나 시사만이 저널리즘의 영역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뉴스나 토론뿐 아니라 교양이나 음악을 담당했던 내 방송 경험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그렇다고 논리의 가치를 잃을 수는 없기 때문에 결론은 늘 문제를 제기했던 원점에서 찾으려고 노력했다. 앵커브리핑이 대부분 수미상관법을 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언론을 둘러싼 환경의 급변과 언론 정파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과거 했던 말이나 글이 종종 불려나오기 때문일까. 칼럼 쓰기 어려운 시대라고 흔히들 말한다. 후회하거나 아쉬운 글은 없었나.


“언론의 기본적인 존재 이유는 민주주의와 인본주의라고 생각한다. 그 두가지를 기반으로 써나갔다면 특별히 후회할 것은 없지 않을까.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그 두 가치가 변하진 않지 않나. 진영이 달라도 모두 그 두가지를 추구할 테니 시비 걸 사람도 없을 테고. 물론 설득력이 모자랐거나 억지가 들어갔다면 그건 글을 쓰는 수준의 문제니까 나도 더 공부해야 할 문제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쓰다 보니 마치 내가 좋은 에디토리얼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 같은데 난 그냥 방송쟁이고 방송에 맞는 글을 쓰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언론의 진영논리 보도, 수익은 돼도 정론일순 없어

진영 넘어 꾸준히 보도, 합리적 시민사회 인정할 것

평소 그가 강조했던 뉴스의 기준, 즉 ‘팩트, 공정, 균형, 품위’는 지금 여전히 한국 언론이 구현해야 할 과제임을 부정하는 이들은 드물 것이다. 그는 <장면들>에서 2016년 당시와 이른바 조국 정국 이후 달라진 <뉴스룸>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을 서술하며 언론은 ‘담장 위를 걷는 존재들일지 모른다’고 썼다.


―토론과 인터뷰가 ‘선거저널리즘의 좋은 방법론’이라고 말해왔다. 실제 지난 19대 대선 때 대선 주자들과 ‘압박면접’식 인터뷰를 보여주기도 했다. 반면 이번 선거에선 ‘삼프로 현상’이 화제가 되고 정책검증 기사는 5.5%에 불과했다는 분석도 있다. 어떻게 보나.


“우선 선거보도를 그리 자세히 보지 못했다. 내가 무슨 압박면접 볼 위치는 아니었고, 그냥 궁금한 것을 물어봤을 뿐이다. 그런데 사실 궁금한 것을 물어보려면, 우선 궁금해야 하고, 시간과 상황이라는 조건에 되도록 구애받지 않고 물어봐야 하는 거다. 그런데 방송이든 신문이든 워낙 제약조건이 많으니 늘 한계가 있다. 다만 제한된 시공간을 굳이 다루지 않아도 될 문제들에 대부분 할애한다면 반성해야 할 텐데, 언론들이 시청률이나 포털 조회수에 매달리다 보니 점점 그리되는 것 같다. 정책을 다루면 재미없다 생각하고. 내가 과거 인터뷰했던 알랭 드 보통이 한 말이기도 한데, 그러니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재미없는 걸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만드느냐일 게다. 난 그 방법론을 인터뷰와 토론으로 택했던 것이다.”


―미국 언론학자를 인용해 ‘경비견’과 ‘감시견’ 모델을 이야기한 적 있다. 결국 이 또한 정파성의 문제겠지만, 적잖은 언론인들이 자신들은 ‘감시견’의 역할을 하는데 독자들이 ‘경비견’이나 심지어 ‘애완견’으로 오해한다고 말한다.


“국정농단 국면에서의 보수언론의 보도에 대해 그렇게 해석하는 게 가능한데, 경비견 모델은 쉽게 말해 언론이 스스로 속해 있는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그 체제 내의 집권세력과 불화를 빚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 언론은 대부분 시장으로 대표되는 체제 속에 들어와 있고, 체제 밖의 언론은 거의 없다. 거기서 감시견의 역할을 지속하려면 일단 시장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감시견으로서의 수익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미 진영화돼 있는 측면이 강하고, 진영논리로 보도하면 기본적인 수익모델은 되는데 그것이 ‘정론’이라 할 수는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장면들>에선 이른바 합리적 시민사회에 기대를 건다고 말했는데, 많은 이들이 그들은 적극적인 미디어 수용층이 아니라서 당장의 수익모델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난 생각이 다르다. 언론이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이 변화로 이어지면 합리적 시민사회, 즉 지나친 진영논리에 빠지지 않은 시민사회는 인정해줄 것이라고 본다. 그렇게 점차 ‘우군’을 늘려나가면 된다.”

정치는 나와 맞지않는 운동장, 언론 상위도 아냐

언론인 정치직행 최소한 ‘우리끼리 룰’ 지켰으면

뉴스앵커에서 물러난 지 1년이 훨씬 지난 지난해 9월 <시사인(IN)>의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 조사에서도 그는 2007년 조사 시작 이래 계속 1위를 유지했다. 방송인 유재석씨가 2위라는 점과 함께 현재의 언론계 상황을 상징하는 조사라는 말이 나왔다.


―과거 몇번 방송에서 정치권에 안 나간다고 밝힌 적 있다.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은 뒤에도 많은 제안이 있던 걸로 안다.


“그런 제안은 그냥 날 이용하려는 것뿐인데, 내가 그걸 모르면 바보다. 난 정치가 언론보다 상위에 있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그냥 다른 운동장인데 나하곤 애초 맞지도 않는 운동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겨레>도 예외는 아니지만 언론인의 정계 직행에 대한 비판이 더 커지고 있다. 실제 이동하는 이들은 보직 고참들인데 비판은 현장의 젊은 후배들이 받고 언론사에 대한 불신을 더 강화한다는 지적들이 나오는데, 어떻게 보나.


“난 개인의 선택이라 생각해왔다. 요즘처럼 언론과 정치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언론을 하고 있는 건지 정치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선택으로 치부해야 한다면, 그냥 최소한 우리끼리의 룰이라도 지켰으면 좋겠다. 어제까지 여기 일하다가 내일 갑자기 정치로 가는 건 도의의 문제 아닌가 한다.”

한겨레

―서지현 검사와 김지은씨 인터뷰를 하던 순간을 많은 이들이 잊지 못한다. 다시 그 순간이 와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할 건가? 요즘 한국 사회는 백래시가 더 심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앵커브리핑에서도 젠더 문제는 주요 주제였다. 그런데 읽어보면 알겠지만 분명한 방향성이 있었다. 수없이 많은 비판을 받았고, 그래서 힘들기도 했지만 다시 그런 상황이 와도 달리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대단한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그렇게 투철한 철학을 세우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정치인들처럼 정치적으로 접근한 적도 없다. 내가 아는 상식선에서 임했을 뿐이다.”


―어떤 언론인으로 기억되고 싶나.


“기억이라…. 되묻고 싶은 질문이다. 내가 얼마나 기억될까?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학교에서 수업할 때 차인태 선배 얘기가 나와서 학생들에게 물어봤더니 아무도 모르더라. 나보다 불과 12년 앞섰고 대표적인 방송인이었다. 기억되고 싶다는 건 부질없는 욕심이다. 향후 계획은 글쎄, 예전에 레드 제플린의 보컬리스트였던 로버트 플랜트가 팀이 해체된 뒤에 어느 자그마한 동네 바에서 노래한 적이 있다. 그게 뭐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하는 게 마음 편해서였지 않았을까. 지금 머릿속에 있는 건 그런 게 전부다. 노래를 하겠다는 얘기는 아니다. ^^”


―잇따라 책을 냈는데 또 낼 계획이 있나?


“아마 또 쓴다면 문화방송 시절부터 내가 방송에서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얘기가 될 것 같다. 그런데 그 작업은 아마 완전히 은퇴한 다음이 될 것 같다.”


“바람은 언제나 당신의 등 뒤에서 불고, 당신의 얼굴에는 항상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길….” 2019년 12월31일 마지막 앵커브리핑에서 인용했던 아일랜드의 격언이자 이번 책의 부제이기도 하다. 손석희는 “우리가 살아낸 그 시간들이 매우 역동적이었고, 그때 느낀 문제의식들이 결국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맞닥뜨리게 될 문제들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이나 미래에나 앵커브리핑이 제시했던 ‘사고의 길’들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했다. 타인을 위한 기도문에 감동하는 사회, 지금 더 절실하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