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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독한 스승 손웅정 ‘내 아들 손흥민 축구 홈스쿨링 비법은…’

by한겨레

‘손흥민 아버지’ 손웅정 인문학


④ 아이들은 내 소유 아닌 인격체


혹독한 훈련에 “아비 아냐” 소리도


평등 원칙으로 함께 뛰고, 함께 훈련


경기장 밖에선 늘 ‘포옹’ 마음 전달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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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냐 스승이냐?


손흥민을 세계적인 선수로 키운 아버지 손웅정씨는 두 개의 얼굴을 지녔다. 생물학적인 아버지의 모습이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호랑이 선생님보다 더 엄격한 스승의 이미지다.


프로 무대에서도 뛴 손웅정씨는 축구판에서 선수나 지도자로 온갖 어려움을 겪었다. 아들이 축구하고 싶다고 했을 때 선뜻 환영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하겠다면?


손웅정씨는 먼저 조건을 걸었다고 했다. “축구 어렵다. 그동안 공놀이했던 것과는 달라. 그래도 할래?” 이 말에 두 아들 흥윤과 흥민은 “한다”라고 했고, 이는 물릴 수 없는 계약이 됐다.


“아이들이 힘들다고, 하기 싫다고 투정을 부릴 때면 나는 이 훈련은 너희가 가르쳐달라고 했기 때문에 시작된 일임을 매번 새롭게 각인시켰다.” 손흥민은 아버지가 애초 약속을 받고 시작한 것을 두고 “신의 한 수”라고 말한 적이 있다.


꼼꼼한 아버지의 훈련 방식이 두 아들에게 재미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운동장 한 바퀴는 왼발, 한 바퀴는 오른발, 한 바퀴는 양발을 교차해 리프팅을 해야 한다. 볼을 골대에 차 넣는 것이 아니라 볼과 함께 걷고 볼과 함께 달리는 것이 중요하다. 볼을 놓치면 아무리 세 바퀴째 돌고 있다 하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켰다.” 아버지는 컨트롤이 어렵게 바람을 잔뜩 넣은 공을 준비했다.


보통의 경우 아이들이 힘들다고 투정하면 정에 끌린 아버지가 물러선다. 아주 독한 아버지라도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시종일관 유지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자식을 직접 가르치기는 쉽지 않고, 성공하기도 힘들다.


손웅정씨는 달랐다. “나는 아이들을 혹독하게 키웠다. 변명할 생각도 축소할 생각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깜냥 안에서 제대로 된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내용을 실천하는 것뿐이었다.” “낙숫물이 떨어져 바위를 뚫는 듯한 반복. 그곳에서 기본기가 시작된다. 아비가 무서우니 말은 못했겠지만 지루하고 지쳤을 테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가르치고 싶었다.”


엄격한 스승이지만, 아버지의 역할이 사라질 수는 없다. 아들에 바친 헌신이 그렇다.


손흥민도 유럽 생활 초기 어려움이 많았다. 2011~2012시즌 분데스리가 함부르크는 강등 위기에 처했지만, 시즌 중 부임한 감독은 손흥민을 잘 기용하지 않았다. 6개월간 벤치에 밀리는 일이 이어졌고, 손웅정씨는 위기를 느꼈다. “경기를 뛰는 선수와 달리 뛰지 못하는 선수는 3경기만 빠져도 감각을 잃는다.” 그는 아들에게 “불평불만을 쏟아낼 때가 아니다. 정신적으로 재무장하고 훈련량도 경기를 뛴 선수보다 1.5배로 더 늘려야 한다. 교체로 들어가면 호흡도 안 터지고 경기 속도에 맞추기 어렵다. 풀타임을 뛴 것처럼 호흡을 올려야 한다”며 미친 듯이 뛰며 호출에 대비했다. 손흥민은 막판 출전해 팀의 강등을 막는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국가대표팀에 소집됐다가 낭패를 본 적도 있다. 대표팀 훈련을 하면서 출전하지는 못한 채 동료들과 똑같이 먹어 체중이 4㎏이 불었다. 체중의 변화는 비상이다. 소속팀이나 팬들의 시선이 달라질 수 있다. 자칫 슬럼프에 빠지고, 출전이 불발되는 일이 많아지면, ‘왜 이러지?’ 하면서 정신까지 위축된다. 이 악순환을 막는 것 역시 훈련밖에 없다.


아버지로서 그는 즐거이 희생을 감수했다. 분데스리가 함부르크 정착 초기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올인했다. 50유로짜리 여관방에서 기거하며 아들의 팀 훈련을 펜스 밖에서 종일 지켜보며 개선점을 찾아냈다. “흥민이를 (팀 숙소에서) 쉬게 하고 여관방으로 돌아오면 방은 차디찼다. 너무 추워 한 시간 반 정도를 침대에서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체온으로 덥혀야 잠들 수 있었다. 춥고 배고팠던 생각밖에 안 나는 3년이었다.”


손웅정씨는 팔짱 끼고 지시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슈팅 훈련을 하다 보면 볼은 골대 맞고도 나가고 운동장 밖으로도 튀어나간다. 나는 흥민이를 세워두고 사방에 흩어진 공을 주어 모았다.” “운동장 땡볕에서 훈련할 때 흥민이는 나무 그늘에 세워두고, 나는 땡볕 아래서 공을 패스했다.”“아이들보다 몸을 적게 쓴 적이 없다. 아이들이 뛰는 만큼 뛰었고 아이들이 흘리는 땀만큼 흘렸다. 아니 더 뛰고 더 많은 땀을 흘렸다.”


네 식구의 단칸방 문이 얼어 몸으로 밀어 열어야 하는 형편에도 좋은 축구화를 사주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12년 된 120만원짜리 프라이드를 사 비와 추위를 피해 다니며 훈련할 때, 손흥민은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훈련했다.


손웅정씨는 “내가 낳았지만 아이들은 또 다른 인격체다. 내 소유물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늘 “큰 부모는 작게 될 자식도 크게 키울 수 있고, 작은 부모는 크게 될 자식도 작게 키운다. 나의 작은 그릇이 내 아이들을 작게 가두는 것이 아닐까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애초부터 손흥민을 슈퍼스타로 만들 욕심은 없었고, 대충대충 가르치기는 싫었다. 매일, 매일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 쌓이고 쌓여 손흥민이 완성됐다고 볼 수 있다.


손웅정씨는 2019년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토트넘과 리버풀의 대결에서 진 아들이 풀타임을 뛰고 관중석에 있는 자기에게 울면서 다가오자 꼭 껴안아 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잘했어. 너 안 다쳤잖아. 너 잘 뛰었잖아. 아빠는 이걸로 충분해.”


“사람들은 나를 보고 손가락질했다. 엄하게 혼낼 때는 저거 아비도 아니라며 욕을 했고, 다른 한편 저렇게 감싸고 돌면서 무슨 선수를 만들겠냐고 흉을 봤다. 누가 뭐라 하든 신경 쓰지 않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말하고 싶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축구 선수는 손흥민이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볼 보이라고. 내가 아들과 축구를 한 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시간이라고.”


스승 같은 아버지, 아버지 같은 스승으로 그를 규정할 수는 없다. 누구나 가진 잠재력을 폭발시키는 ‘스파크’. 선도 악도 아닌 그 스파크가 그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손웅정 시리즈 ① 책 속 명언에 그가 보인다


손웅정 시리즈 ② 일관된 삶 반영 3개의 키워드


손웅정 시리즈 ③ 삐딱하게 바라보며 창조적 파괴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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