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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입 떡 벌어지는 수박 가격…OO가 주범입니다

by한겨레

경매 통한 ‘복불복’ 공급, 같은 등급이어도 반값

계약재배 등 농산물 유통 방식 다양화할 필요

한겨레

2022년 6월20일 전북 고창군 무장면 선운산농협 농산물유통센터 직판장에 모인 ‘고창 황토배기 수박’을 노동자들이 서울 가락도매시장으로 가는 운송차량에 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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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을 키우는 농가에서는 수확기에 오후 시간이 가장 한가하다. 하루 중 가장 기온이 낮은 밤 9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수확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수박을 저장하는 적정 기간은 실온에서 5일 정도다. 기온이 높은 한낮에 수확하면 저장 기간이 1~2일 줄어든다. 고온에서는 당분을 양분 삼아 수박의 호흡이 활발해져 당도 등 품질도 크게 떨어진다.


2022년 6월20일 오후 찾아간 전북 고창군 무장면, 길게 늘어선 비닐하우스 안에는 수확을 기다리는 큼지막한 수박들이 무성한 잎 사이에 놓여 있었다. 수박을 살짝 두드려보니 통통 맑은 소리가 났다. 다 익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하지만 52년째 수박농사를 짓는 신건승(78)씨 생각은 달랐다. “이건 내일, 저건 모레 따면 된다.” 그는 눈대중만으로도 수박이 얼마나 익었는지 구별해냈다. 고창군은 전국 수박의 9.5%(2018년 기준)가 생산되는 국내 최대 수박 생산지 중 한 곳이다.

볏짚비용·인건비·운송비 치솟아

최근 수박 가격이 비싸졌다. 소비자가 대형마트에서 접하는 수박값은 2만원대다. ‘여름이니까 수박 한 통’이라고 생각하면서 대형마트에 갔다가 가격표를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이마트몰 6월 넷째 주 기준으로 7~9㎏ 수박 한 통의 소매가는 2만3840원이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농수산공사) 자료를 보면, 2022년 6월1∼20일 8㎏ 수박 평균 도맷값이 1만8059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1만5407원)보다 17.2% 올랐다.


수박값이 오른 만큼 수박을 키운 농민은 큰돈을 벌었을까. <한겨레21>은 고창군에서 수박농사를 짓는 신건승씨의 지출 내용을 바탕으로 수박 가격이 왜 이렇게 많이 올랐는지 분석해봤다. 서울 가락도매시장 관계자 등 수박 유통 단계에 관여하는 이들의 설명도 들었다.


신건승씨는 하우스 50동(약 1만 평)에서 수박농사를 짓는다. 2022년 2~3월 모종을 심어서 5~6월 생산한 수박은 하우스 1동(약 200평)마다 450~460통 정도다. 하우스 1동당 들어가는 비용은 2021년보다 크게 늘었다. 인건비, 모종값, 비료와 농약값 등 수박 재배 과정에서 드는 비용이 모두 증가했기 때문이다. 1명 인건비만 해도 월 200만~250만원을 줘야 한다. 2021년에는 월 160만원이면 충분했다. 원료를 수입에 의존하는 탓에 농약과 비료도 환율 상승 등의 영향을 받아 1년 새 20~30% 비싸졌다. 수박이 병들지 않도록 볏짚을 까는 비용(1동당 33만원), 주기적으로 교체해줘야 하는 하우스 비닐과 철재 비용 등을 고려하면 수박 1통을 생산하는 데 대략 1만1659원의 비용이 든다.


여기에다 기름값 등으로 운송비도 치솟았다. 고창군에서 가락시장까지 운송비는 차량 1대당 2021년보다 20만원이 올라 85만원을 줘야 한다. 차량 1대에는 8㎏짜리 수박 1300여 통이 실린다. 수박을 운송차량까지 실어나르는 인부를 고용하는 데 드는 비용도 차량 1대당 55만원으로 올랐다. 2021년에는 48만원이었다.

기상재해 변수 없어도 요동치는 가격

수박 포장도 도매시장이나 소매상이 아니라 산지에서 책임져야 한다. 상자 하나를 포장하는 데 상자 원가 1300원, 상자 하나당 포장 인건비 1천원이 추가로 들어간다. 생산비에다 운송비, 포장비 등을 더하면 수박 1통의 원가는 1만5113원이 된다.


신씨는 “지난해보다 인건비나 운송비가 20% 정도씩 올랐다. 도맷값이 1만7천~1만8천원은 돼야 겨우 생산비를 건질까 말까 한다. 수박 한 통에 2천원을 남긴다 해도, 쉰다섯 먹은 아들과 둘이 농사짓는데 두 사람 인건비조차 안 나올 때도 있다”고 말했다. 신씨와 아들은 석 달 동안 매일 밭에 나가 순을 따고, 비료를 주고, 약을 치면서 수박을 돌본다.


수박 1통을 길러내는 데 보통 3개월가량이 걸린다. 1년에 많아야 2기작을 해서, 5~6월에 한 차례, 7~8월에 한 차례 수확한다. “7~8월엔 집중호우나 태풍 피해도 있고, 탄저병과 흰가루병 등 연례행사처럼 돼버린 바이러스나 각종 병에 의한 피해도 농가에서 고스란히 떠안는 비용이다.” 이니세 농수산공사 강서지사장은 “유류비, 인건비 상승 등으로 경영비가 지난해보다 20∼30% 오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신씨의 손을 떠난 수박은 가락시장 같은 도매시장에 도착한다. 농가들은 도맷값의 5%(가락시장의 경우)를 법정 경매 수수료와 하역비 명목으로 경매회사에 내야 한다. 수박 가격은 단 하루 새 롤러코스터처럼 급변동하거나, 같은 품질이라도 경매회사(가락시장의 경우 6곳)에 따라 가격 차이가 ‘복불복’이라고 할 만큼 크다.


6월21일 가락시장에서 거래된 8㎏ 수박 중 가장 우수한 ‘특품’은 같은 날 거래됐음에도 1만9500원과 3만6천원으로 가격 차이가 두 배 가까이 났다. 같은 날 ‘하품’은 3천원과 1만400원으로 3배 이상 차이가 났다. 가락시장에서 ‘특품’은 그날 반입된 물량 중 상위 5%를, ‘상품’은 상위 6∼25%를 의미한다. 당도 등 품질이 같아도 경매 날짜에 따라 품질 구분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기상재해 등 별다른 변수가 없어도 가격은 경매 날짜에 따라 요동친다. 6㎏ 특품의 경우 6월20일 9033원에서 다음날 1만3291원으로 경매 가격이 47%나 급등했다.


최병천 가락시장 산지유통인연합회 비상대책위원장은 “같은 밭에서 작업한 수박이 (경매 날짜에 따라) 500원 차이도 아니고 5천원 차이가 난다면 지금 유통제도가 너무 엉성하다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경매에 의존하는 방식은 품질 구분마저 물량에 따라 결정돼 농업 경쟁력 향상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백혜숙 농수산공사 전문위원은 “(농산물의) 50%가 공영도매시장을 거치고 일부 물량이 적어 경매가 불가능한 10%가량을 제외한 나머지 물량이 경매로 가격이 결정된다. 특히 가락도매시장에서 경매로 결정된 도맷값은 대형마트나 산지 유통인이 농가에 대금을 지불하는 기준가격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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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 가격 불안정하고 유통단계 늘어나

도매시장을 떠난 수박(8㎏) 가격은 농민이 받는 경매 낙찰가의 20∼30%(백화점은 40% 이상)인 5천∼6천원을 덧붙여 소비자가격이 2만3천~2만4천원으로 정해진다. 이마트 관계자는 “보관비 등 물류비나 당도를 선별하는 비용, 인건비 등 운영비 등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수박은 무게나 부피가 크기 때문에 일반 과일보다 운송비 자체도 훨씬 더 많이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농가에서 가장 불만인 부분은 농산물값 결정 구조다. 거의 모든 농산물값이 수요와 공급의 논리만 적용되는 ‘경매’로 결정되기 때문에 생산비 등 원가가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6월 수박값이 비싸진 것도 출하량이 줄었거나 더운 날씨 탓에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2022년 5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산하 농업관측센터는 ‘6월 수박 가격’을 2021년보다 21~31% 상승한 1㎏당 2300∼2500원으로 전망했다. 8㎏ 수박 기준 1만8400∼2만원이니, 실제 판매가격을 거의 맞힌 셈이다. 하지만 이런 농산물 가격 전망에 생산비는 고려사항이 아니다. 출하 면적과 기온을 바탕으로 한 출하량만 고려한다.


고창군 무장면에서 3500평 규모로 수박농사를 짓는 김연호(65)씨는 “세상 물건 중 생산자가 배제되고 원가가 전혀 반영이 안 되는 건 농산물밖에 없다. 이달에 가격이 좋다가 다음달에 갑자기 폭락할지 아무도 모른다”며 “물가가 오르면 정부는 농산물 가격을 때려잡으려 하는데, 농산물값이 정말 비싼지 제대로 좀 원가를 들여다봤으면 한다. 정부에 바라는 건 딱 그거 하나다”라고 말했다.


수박 특성상 농가와 소비자의 직거래도 쉽지 않다. 6월17∼19일 고창군은 복분자·수박 축제를 열었는데, 이때 농가의 생산원가를 고려한 수박 직거래 가격은 8㎏ 기준 1만6천원이었다. 사흘간 7500여 통이 팔렸는데 온라인 판매는 하루 100∼200통에 그쳤다. 김연호씨는 “수박은 무겁고 잘 깨지기 때문에 8㎏ 기준 포장 상자값 4천원, 택배비 4천원이 든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2만4천원에 사는 건데, 여기서 주문해서 사나 대형마트에서 사나 가격에 큰 차이가 없게 된다”고 말했다.


최병옥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농산물값 형성에는) ‘5% 효과’라는 말이 있는데 출하량이나 수요가 5%만 변해도 가격이 몇 배씩 뛰었다가 절반으로 떨어졌다가 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경매제는 거래가 투명하다는 장점은 있지만 가격이 불안정하고 경매회사나 중간도매상을 거치면서 유통단계가 늘어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며 “일본, 유럽처럼 생산비는 물론 판로까지 고려해 농가와 중도매인이 6개월 전쯤 미리 가격을 협상해 계약재배하는 방식 등으로 농산물 유통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농업은 언제나 ‘영세농’

이혁우 배재대 행정학과 교수는 “농산물을 생산한 농민이 가격협상을 못하니 농산물 퀄리티(질)를 높여서 더 비싼 값을 받아보려 시도할 수 없다”며 “정부가 농업을 제대로 된 산업으로 키우기보다 농민을 ‘영세농’이라 지칭하면서 복지나 지원, 보호 대상으로만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건승씨는 적자를 보면서도 52년째 수박농사를 계속 짓고 있다. “처음 수박농사를 지은 50여 년 전에는 수박 열 덩이를 팔면 3천원 정도 벌었다. 그때 시세로 쌀 80㎏ 값이었다. 20년 전만 해도 같은 밭에서 수익이 2억원씩 나기도 했다. 지금은 요행을 바라는 심정이라고 해야 하나. 농민들이 힘도 없고 결집력도 없어서인지 농사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하지만 30년째 저 밭에서 수박을 키운다. 수박 키우던 사람은 수박을 제일 잘 키우니까 다른 건 잘 못한다.” 신씨는 “돈 잘 벌면 왜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겠냐”고 되물었다. 고창군을 찾아오는 ‘수박 박사’들은 그에게 묻곤 한다. ‘어떤 데이터로 비료를 주고 어떤 방식으로 가꿔야 맛있는 수박을 만들 수 있냐’고. 신씨는 그때마다 답한다. “같은 시기에 똑같은 방식으로 가꿔도 밭에 따라 맛이 다를 수 있다. 그렇게 좋은 농산물 만드는 일은 어려운 일”이라고.


고창=글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사진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