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관찰 예능 ‘메리퀴어’…알고 보니 닮았네

[컬처]by 한겨레

8일 시작 1∙2회 방송…퀴어 커플 3쌍 일상 관찰

선정성 우려 딛고 성소수자 현실 차분히 보여줘

‘퀴어 초심자’ 시청층 눈높이 맞추려 노력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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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퀴어> 에 출연한 민준-보성 커플의 모습. 웨이브 제공

“안녕하세요. 저는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 게이입니다.” “저는 지금은 레즈비언(입니다).” “저는 여자에서 남자로 성별 정정을 준비 중인 에프티엠(FTM) 트랜스젠더입니다.”

그동안 숱한 관찰·연애 예능 프로그램이 존재했지만, 어느 출연자도 “저는 이성애자입니다”라는 자기소개를 하지 않았다. 이성애가 기본값처럼 여겨지는 사회,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는 자신이 이성애자임을 굳이 공개적으로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지난 8일 공개된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웨이브의 새 프로그램 <메리퀴어>(5주간 매주 금 방송) 출연진은, 자신의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을 시청자들한테 또렷하게 밝히면서 프로그램의 문을 연다. 스스로를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양성애자로 정체화하는 사람들, 즉 ‘퀴어’(다양한 성소수자를 통칭하는 말)들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웨이브는 <메리퀴어> 슬로건으로 ‘국내 최초 리얼 커밍아웃 로맨스’를 내걸었다. ‘커밍아웃’이란 성소수자가 자신의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을 스스로 타인에게 알리는 행위를 뜻한다.


<메리퀴어>는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에스비에스), <나 혼자 산다>(문화방송)처럼 출연자의 일상을 담은 관찰 예능이다. 동거 중인 퀴어 연인 3쌍이 출연한다. 김민준(27)-박보성(24), 임가람(26)-이승은(25), 유지해(23)-이민주(23) 커플이 그 주인공. 프로그램은 이들이 아침에 한 침대에서 눈을 뜬 순간부터, 친구들을 불러 집들이하고 함께 밥을 먹는 등 일상의 여러 장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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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퀴어> 에 출연한 가람-승은 커플의 모습. 웨이브 제공

국내 예능 최초로 성소수자들이 전면에 등장하는 만큼, <메리퀴어>는 공개 전부터 관심을 모았다. 방영 전까지는 자극적인 편집으로 화제성만 노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컸다. 8일 뚜껑을 열어보니 1회 ‘커밍아웃’편, 2회 ‘다름’편은 예능과 교양 사이를 가로지르는 ‘순한 맛’에 가까웠다. 성소수자들의 삶을 담담하게 보여주며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나온다. 무엇보다도, 퀴어가 ‘낯선’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맞추고자 한껏 노력한 모양새다. 이런 노력은 진행자 신동엽, 홍석천, 하니가 스튜디오에서 화면을 보며 나누는 대화에서 두드러진다. 남남 커플의 뽀뽀 등 달달한 애정 표현이 등장하자 신동엽은 “이십 대 초중반의 남자 두 명이 저러니까 (시청자가 보기에) 조금은 어색할 수 있는데, 저분들한텐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이라는 걸 보여주려는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다만, 1회 초반 ‘퀴어’의 사전적 의미를 설명하면서 ‘동성애자’만 내세운 건 옥에 티다. 퀴어는 동성애자, 양성애자, 무성애자, 트랜스젠더, 인터섹스 등을 아우르는 말이다.


<메리퀴어>는 “알고 보면 ‘다름’보다 ‘닮음’이 많은 이야기” 같은 자막으로 애써 ‘닮음’을 강조한다. 이는 역으로 ‘다름’에 대한 인식 혹은 무지가 차별로 이어지는 현실을 드러낸다. 출연자의 일상을 촘촘히 담는 관찰 예능의 형식으로 성소수자들이 겪는 일상의 차별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웨딩 플래너 상담을 예약하려고 전화하니, 동성 커플은 받지 않는다는 답을 듣는다. 수영장 입구에서 출연자가 트랜스젠더임을 밝히자, 남녀 두 개로만 나뉜 탈의실 어디도 이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입장을 거부당한다. 애인과 커플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걸 공개하자, 직장 상사에게 욕설을 듣는다. 출연자들이 겪는 차별을 함께 목도하는 진행자들은 “(이성애자에게) 당연한 게 (퀴어에겐) 당연한 게 아니구나”(하니)라며, 출연자의 아픔에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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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퀴어> 에 출연한 지해-민주 커플의 모습. 웨이브 제공

하지만 <메리퀴어>는 성소수자들이 처한 차별적 현실에만 초점을 맞추는 시사·교양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아니다. 연인 혹은 친구들이 함께 모여 꽁냥꽁냥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고마운 일, 속상한 일, 앞으로의 바람을 나누는 모습 등이 두루 담겼다. “알고 보면 닮았다”는 얘기는, 퀴어들도 웃고 울고 사랑하고 슬퍼하는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느낀다는 부분이다. 연인과 오래오래 안정적으로 사랑할 수 있기를, 각종 사회적 관계에서 이 사랑이 ‘없는 존재’처럼 지워지는 일이 없기를 갈망한다는 점이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지만, 이 당연한 이야기를 다큐나 뉴스가 아닌, 2022년에 처음 등장한 퀴어 관찰 예능 프로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많은 시청자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


<메리퀴어>는 또한, 변하지 않는 듯 조금씩 변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올해 3월부터 행정기관에서 동성커플의 혼인신고가 ‘접수’까지만 가능해졌다. 2회에서 민준-보성 커플이 함께 구청에 가서 혼인신고서를 접수하는데, 담당 공무원이 두 사람에게 제도의 변화와 한계를 함께 설명해준다. 일부 웨딩업체에서는 레즈비언 커플에게 플래너 연결을 아무렇지 않게 해준다. 지난 2000년 국내 최초로 커밍아웃한 연예인 홍석천이 <메리퀴어> 진행자로서 한국사회의 변화상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웨이브는 12일 낸 <메리퀴어> 관련 보도자료에서 “첫 회가 공개된 직후 웨이브 신규 가입자가 가장 먼저 시청한 콘텐츠 4위에 올랐다”고 밝혔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2022.07.1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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