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뜬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뜬 사람은 없다”…뜨개구리 무엇?

[라이프]by 한겨레

[ESC] 기다란 다리에 배 볼록, 뜨개 인형 ‘뜨개구리’ 바이럴 영상 타고 인기

단순 장식품 넘어 뜨개구리 살림 만들고 스토리텔링하며 세계관 확장하기도

솜인형 인장처럼 활용하는 10대 문화와도 닮아… 올가을 취미 삼아 떠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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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망토를 차려입은 뜨개구리.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모든 걸 삼켜버릴 블 랙 맘 바.” 또랑또랑한 눈과 야무진 입매. ‘뱀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개구리’가 케이팝 그룹 ‘에스파’의 다리 찢기 안무를 선보이니 그야말로 빵 터진다. 트위터 이용자 ‘와제’가 지난 6월28일 등록한 이 게시물은 3만7천회가 넘게 리트위트되었다.


앞서 5월26일, 대바늘 손뜨개로 만든 개구리의 일상을 담은 뜨개 동영상 제작자 인디아 로즈 크로퍼드의 46초짜리 틱톡 영상이 불을 댕겨 5월 말부터 곳곳에 출현하기 시작한 털실 개구리들은 이름하여 ‘뜨개구리’(뜨개+개구리)라 한다. 전통적인 수공예인 뜨개가 바이럴 영상을 타고 폭발적인 호응을 얻은 것. 그리고 기존 니터들 외에 바늘을 처음 잡는 초보들까지 뜨개구리에 쉽게 도전하도록 판 벌인 이들이 있으니, 트위터 안의 커뮤니티 ‘뜨개구리 클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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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짚모자와 가방을 챙겨 산책 나온 뜨개구리.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초보에게 상냥한 뜨개구리 클럽

“뜨개인으로 이건 놓칠 수 없는 ‘영업’ 기회다!” 트위터에서 영업이란 자신의 취미나 관심 분야를 대가 없이 주변에 권하는 것을 말한다. 네덜란드에 거주하는 안단비(31)씨와 이메일로 연락하며 뜨개구리가 국내에서 흥한 시작점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틱톡 영상의 개구리가 니트 디자이너 클레어 갈런드의 도안으로 만들어진 것을 알아본 단비씨는 곧바로 뜨개 도안 구매 링크를 트위터에 올렸다. 반응이 심상치 않자, 뜨개구리 제작에 필요한 기법들을 동영상으로 찍어 타래글로 엮고 원작 작가에게 공식 한글 번역본을 제안했다. “뜨개를 시작하는 이들에겐 주로 영어인 유튜브 기법 영상이 어렵기도 하고, 중간 광고 등이 있어 접근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트위터에서 영상을 바로 볼 수 있게 했다. 번역은 번역료를 받지 않으면 전문 번역가들에게 실례가 되기 때문에 일회성으로 소액만 받았다.” 영문 도안 번역까지 만만찮은 수고가 드는 일이다. 단비씨는 한 사람이라도 더 뜨개인이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단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유행 따라 뜨개구리를 떴다는 ‘인증’글은 트위터를 넘어 포털 사이트,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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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같은 뜨개구리는 없다. 다양한 크기와 색깔로 각자의 개성을 뽐내는 뜨개구리들.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지난 12일 <한겨레> 본사 옥상 테라스에서 트위터 뜨개인 5명을 만났다. 뜨개구리 클럽을 개설한 송하율(28)씨는 뜨개 입문 시절 막막하던 경험을 전했다. “캐나다에서 살다 와서 영어를 할 수 있는데도 뜨개 영문 도안은 낯설었다. ‘케이’(K, 겉뜨기의 약자)가 뭐지? 킬(kill)인가!” 곳곳에서 그럴 수 있다며 맞장구치는 웃음이 터졌다.


뜨개구리 클럽은 5월30일 개설 하루 만에 멤버 수 1300명을 넘겨 9월17일 현재 4147명에 이른다. 초기에는 하율씨와 단비씨를 비롯한 클럽 관리자들이 앞장서서 뜨는 방법을 묻는 글에 답글을 달았다. 그리고 곧 그들이 질문을 확인하기도 전에 답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클럽 분들 사이에서 ‘내가 도움을 받았으니까 나도 도와줄 거야’라는 마음이 연결되는 거였다. 그게 무척 행복한 일이었다.”


의류를 주로 뜨던 2년차 니터인 기자도 뜨개구리에 도전했다. 스웨터 목둘레를 뜬다고 애틋한 마음이 들진 않는다. 한데, 개구리는 다르다. 몇 단을 뜨다가 개구리 엉덩이가 봉긋하게 솟아오르면 그때부터 두근거린다. 뱃가죽과 등가죽을 꿰맬 때는 ‘위대한 생명 창조의 역사가 시작’(뮤지컬 <프랑켄슈타인>)되는 것 같다. 사실 뜨개구리 도안은 초보가 다루기엔 만만찮은 난도다. 뜨개구리계의 셀럽 ‘북북이’ 엄마 임수현(32)씨의 의견도 같다. “어지간한 기법이 다 들어 있다. 오히려 옷만 뜨던 사람들이 당황하기도 한다. 그래도 작은 인형이라 완성이 빠르다. 초보라고 해도 평균 4일 정도면 다들 완성한다. 의류 뜨기보다 결과물이 빨리 나와서 옷 뜨던 사람들이 옷을 안 뜨는 부작용이 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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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뜨개구리라는 키워드 하나로 모인 양지연(왼쪽부터), 임수현, 송하율, 이지유, 홍승현씨.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반려 실뭉치’로 확장하는 세계

용감하고 창의적인 초보 뜨개인들은 가느다란 대바늘이 마땅치 않으면 근처 생활용품점에서 산적 꼬치 막대를 사다 뜨기도 한다. 경사 뜨기나 아이코드(줄을 뜨는 기법) 등의 어려운 기법을 해내는 한편, 겉뜨기와 안뜨기를 반대로 뜨는 초보다운 실수도 겪는다. 해서, 도안대로 뜨면 매끈해야 할 개구리 뱃가죽에 벨트나 주머니 같은 무늬가 생기기도 한다. 뜨개 고수도 초보도 첫 개구리의 사랑스러움과 뿌듯함을 알아서 누구도 틀렸다고 면박 주지 않고 아무도 실수에 주눅 들지 않는다. 뜨개구리 출생증명서를 만들어 배포한 이지유(27)씨도 그 마음을 안다. “출생증명서에 ‘위 개구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만든 이의 노력과 정성 그리고 사랑이 들어 있으므로 이에 따라 출생증명서를 발급합니다’라는 문구가 있다. 개구리를 위해서가 아니고 만든 사람을 위해서였다. 잘 만드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하는 뜻으로 상장처럼 만들었다.” 지유씨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뜨개구리계에는 ‘한번도 안 뜬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뜨고 마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다. 만드는 사람마다 개구리의 인상이 다르고, 실에 따라 개구리마다 개성이 뚜렷하다. 첫 의류 도안을 준비 중인 예비 니트 디자이너 홍승현(35)씨도 선물용 뜨개구리를 여럿 떴다. “뜨개 의류는 취향을 많이 타서 선물로 주고받기엔 부담이 있다. 뜨개구리는 누구든 귀여워한다. 기타를 치는 친구에게는 기타 미니어처와 함께, 사진을 찍는 친구에게는 작은 카메라를 함께 전했다. 받은 사람들이 기뻐하는 얼굴이 눈에 선하니까 자꾸 뜨게 된다.”


뜨개구리 해시태그 중에 ‘#반려 실뭉치’가 있다. 개구리 사이즈에 맞는 살림을 장만하고 옷도 떠서 입히며 사진으로 기록한다. 요즘 10~20대들이 ‘솜깅이’로 불리는 손바닥 크기 솜인형 덕질을 즐기거나, 어딘가에 갔을 때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포토카드로 인증샷을 찍는 문화와도 닮았다. 기성세대가 좋은 곳에 가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자기 모습이 나오도록 찍어서 경험을 남긴다면, 10대들은 인형이나 포토카드를 자신을 대리하는 인장처럼 사용한다. 수공예 뜨개구리 역시 만든 사람의 인장이 되어 어디든 따라다닌다. 완성하고 장식용으로 끝나지 않는 뜨개구리의 쓸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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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한 뜨개구리와 재료 대바늘과 실.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세드나 니팅’을 운영하는 니트 디자이너 양지연(41)씨는 개구리에게 입힐 작은 옷과 소품 도안을 만든다. 사람용으로 출시했던 벌집무늬 스웨터와 똑같은 무늬의 개구리 스웨터, 연잎과 깜찍한 우비들이 그의 작품이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여러 뜨개구리들이 그가 디자인한 옷을 입고 있었다. “뜨개 유행 흐름을 쭉 지켜보면 뜨개방, 포털 사이트 뜨개 카페, 인스타그램, 트위터의 유행이 시기마다 각각 다 달랐다. 뜨개구리처럼 모두가 동시에 알고 있는 유행이 이전에 있었던가 싶다. 또 인터넷상의 유행이 길지 않은데, 벌써 석달이 넘게 꾸준히 이어지는 점도 특별하다.” 지연씨의 말을 주변에서 받았다. 열기가 식을 만하면 새 옷 도안이 나오니까, 나는 헐벗어도 우리 개구리는 입혀야 한단다. 양지연씨가 여름 해변 분위기의 튜브(물론 털실이다)를 내놓으면, 누군가는 이를 냉큼 떠서 성수기 바닷가에서 튜브를 10분에 2천원을 받고 대여하는 뜨개구리 이야기를 지어낸다. 이렇게 재치 넘치는 창작물들이 뜨개구리의 세계를 넓혀간다. 트위터 이용자 ‘치팡’은 방송사 로고와 뉴스의 하단 자막형식을 따와 ‘뜨개구리 뜨는 뜨개구리의 설움’을 만들었다. 하청에 재하청을 거듭하며 임금이 깎이는 현실을 뜨개구리로 풍자한 걸작이다.


한편, 뜨개구리를 갖고 싶지만 도무지 직접 만들 수 없거나 특정 제작자의 개구리를 원하는 이들은 요청사항을 담아 제작의뢰를 하는데 이를 ‘커미션’이라 부른다. 글이나 그림의 아마추어 창작자들 사이에서 흔한 방식이고, 뜨개는 뜨개구리처럼 원작 작가가 도안을 이용한 판매를 허락한 때만 가능하다. “사실, 만들어서 보내고 받으면 끝이다. 그런데도 정말로 반려동물 입양하고 안부를 전하듯이, 잘 지내고 있다고 함께 하는 일상을 정성스럽게 사진을 찍어 보내시는 거다.” 임수현씨는 커미션으로 만들어 보낸 개구리를 아껴주는 마음에 종종 눈물이 솟았다고 한다.

실수하면 풀고 다시 뜨면 되지

수공예에 드는 시간과 노력의 가치를 이해하는 뜨개인들은 배움을 나누며 교류하고 완성까지 서로 격려한다. 이들이 손에서 실과 바늘을 놓지 않은 이유 중에는 뜨개에서 얻는 위안도 있다.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하는 안단비씨는 혹여나 자신이 실수를 해서 학계나 맡은 프로젝트에 영향을 끼칠까 늘 염려하는 편이다. “뜨개는 맘껏 실수해도 괜찮은 안전공간이다. 실수하면 풀고 다시 뜨듯이, 일상에서도 실수를 만회하면 된다는 걸 스스로 상기하려고 한다.”


개설 후 100일이 훌쩍 지난 뜨개구리 클럽은 이제 개구리 외에도 다양한 동물을 뜨고 사람용 의류나 스카프 등으로 넘어가는 이들도 숱하다. 5명이 웅성거리며 ‘바라는 바였다!’ ‘계획대로다!’라고 끄덕인다. 이들이 바쁜 ‘뜨케줄’(뜨개 스케줄)을 쪼개 모인 것도 뜨개 영업을 위해서다. 뜨개구리로 시작해 우리 모두 함께 80살까지 뜨자고.

초보 ‘대바늘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 모든 취미 분야에는 내부 사람들이 즐겨 쓰는 암호 같은 말들이 있다. 입문자는 아리송하던 말을 해독하면서 해당 취미의 세계가 한층 친근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뜨개로 교류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줄임말이나 용어 만들기가 성행한다. ‘뜨 두 리스트’는 해야 할 것의 목록을 뜻하는 투 두 리스트의 변형. 즉, 떠야 할 것의 목록이다. 이는 ‘문어발’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손은 두개인데, 마치 문어인 양 여러 프로젝트(한 작품의 작업 단위)를 벌이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마음껏 문어발을 늘릴 수 있는 것도 뜨개의 자유”(안단비), 모든 것은 ‘뜨물주’(뜨개+조물주)의 마음이다.


뜨개구리에서 눈치챘을 것이다. 뜨개인들은 ‘뜨’를 활용하기를 즐긴다. 다만 하나 예외가 있다. ‘뜨린이’다. 어린이에서 따온 ‘~린이’를 미숙하고 서툰 초보의 의미로 쓰는 것을 염려하는 몇몇 뜨개인은 ‘뜨내기’(뜨개 새내기)라는 용어를 대안으로 쓰기 시작했다. 사전의 뜻은 ‘일정한 거처가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이지만, 뜨개인들은 ‘뜨내기’를 발견하면 떠나지 못하도록 꽉 붙들 것이다.


▶ 이 취미가 내 취미가 될 것인지 아직 확신이 없을 땐 어느 정도의 초기 비용을 들일 것인지 망설임이 있다. 여기에 근사한 바늘 세트, 황홀한 색감의 손 염색 타래실이 눈에 들어오면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무릇 취미는 도구와 재료 덕질하는 맛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홍승현씨는 말한다. “처음에 절대 바늘 세트를 구매하지 말라.” 바늘 세트에 포함된 12밀리 굵은 바늘로 뜨는 도안은 찾아보기도 어렵단다. 처음엔 금속 바늘보다 미끄러짐이 적은 나무 바늘을 권한다. “처음 뜨개 연습할 때 싼 실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은데 무조건 뜨기 좋은 실을 쓰는 것이 좋다. 실에 보풀이 생기거나 실이 갈라지면 한 코 뜨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워 흥미를 잃기 쉽다.” 승현씨는 아크릴과 울이 적절히 섞인(아크릴이 전체 비율에서 30% 이상) 실이 떴다 풀기를 반복해도 내구성이 좋다며 추천한다.


▶ 다양한 경력의 뜨개인들에게 니터들의 핫 플레이스를 물었다. ‘김말임 손뜨개 스튜디오’(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길 59)는 빼곡한 뜨개실과 뜨개도서관급의 서적을 갖춘 니터들의 보물창고 같은 곳이다. 1976년부터 니트 전문점을 운영한 김말임 작가는 우리나라 손뜨개 지도자 1세대로 지금까지도 직접 해외 연수를 다니며 최신 니팅 기술을 전파한다.


실을 직접 보고 구매하고 싶다면 ‘누가바 닛츠’(서울특별시 중랑구 사가정로43길 41)와 ‘니트하임’(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느티로69번길 20 101호)은 주로 유럽 쪽의 고급 실을 취급한다. 일본 쪽 뜨개실과 뜨개 도구들이 궁금하다면 ‘코와코이로이로’(서울특별시 마포구 와우산로 177-3 암곡빌딩 1층)를 추천한다. 뜨개실은 둥근 볼이나 꽈배기 타래실 외에 100g 단위로 지관에 감아 파는 콘사도 있다. 주로 온라인 숍으로 유통되어서 실물을 보고 사기 어려운 것이 단점. ‘솜솜뜨개’(서울특별시 마포구 포은로 134-1 1층) 쇼룸은 젊은층이 좋아할 만한 색감의 콘사를 다양하게 전시하고 이를 이용한 뜨개 작품도 볼 수 있다.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2022.09.2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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