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밀며 힐링한다…코로나가 낳은 1인 목욕탕

[라이프]by 한겨레

점점 사라지는 대중목욕탕 빈자리 채우는 세신숍

“개운하고 힐링”…수술 자국 등 보일까 염려도 없어

도심에서 한나절 욕실 휴양 ‘배스케이션’ 공간도 생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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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신숍의 목욕관리사가 사용하는 다양한 때 타월. 색깔에 따라 때를 미는 강도가 다르다.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은은한 향기가 나고 클래식 음악이 흐른다. 복도 안쪽으로 들어가면 방 3개가 있다. 방문을 열면 13㎡(4평)짜리 욕실이 보인다. 욕조와 세신(때밀이) 침대가 있다. 여기, 뭐 하는 곳일까?


지난 2일에 찾은 서울 은평구 녹번동의 ‘1인 세신샵 술리스’. 때밀이 서비스를 받고 혼자 목욕을 할 수 있는 ‘1인 목욕탕’이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여러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 것을 주저하거나 꺼리는 이들이 늘면서 비대면 소비 트렌드에 맞춰 1인용 목욕 시설이 생긴 것. 점점 사라지는 대중목욕탕의 빈자리를 채우는 이곳은 코로나가 낳은 신종 목욕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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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서울 녹번동 ‘1인 세신샵 술리스’의 내부. 1인용 욕조와 세신 침대가 있다.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수도권을 중심으로 생기고 있는 세신숍은 새로운 형태의 목욕탕이지만 예로부터 대대로 내려온 한국 전통적인 세신 문화를 살렸다. ‘케이(K)-목욕’의 대표 특징인 때 밀기를 특화한 곳. 피부관리실처럼 관리에 따라 차등요금제로 운영된다. 기본관리는 보통 50분으로 세신 서비스와 세안, 샴푸, 헤어팩으로 이루어진다. 가격은 4만~5만원대. 마사지 등이 추가되면 요금이 1만~5만원씩 올라간다.


이날 세신숍을 방문한 박은영(39)씨는 세신을 받기 위해 집에서 1시간 거리의 이곳을 찾아왔단다.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 따라 목욕탕에 가서 때를 밀었어요. 어릴 때부터 때를 밀어서인지 안 하면 허전해요. 세신은 제겐 일상이었는데 코로나로 세신을 받으러 대중목욕탕에 자주 가지 못했어요. 집에서 때수건으로 밀어봤지만 개운한 느낌이 안 들었어요. 그런데 세신을 한번 받으면 피로가 풀리고 개운해요. 탈피하고 나온 것처럼 몸과 마음이 가벼워져요.”


세신숍 예약은 간편했다. 인터넷으로 자신이 원하는 시간과 관리 코스를 정해 예약하면 되기 때문이다. 예약한 시간에 오면 기다리지 않고 세신 서비스를 받으면 되고 독립된 공간에서 관리받으니 다른 사람들과 마주칠 일도 없다.


현재 여성 전용으로만 운영되는 세신숍을 찾는 이들은 20~40대가 가장 많다. ‘1인 세신샵 술리스’의 박다희 대표는 “어릴 때부터 세신을 받아온 이들이 주로 찾아오지만 호기심에 세신을 처음 받으러 온 이들도 있다”고 했다. 예약이 가장 많은 때는 주말이고, 평일에는 밤 시간대가 예약이 빨리 찬다. “지난 한달 예약이 600건이 넘었어요. 직장인들이 주로 예약을 하는데 밤에 퇴근하고 오시거나 출근 전 이른 오전 시간에 이용을 하는 분들도 있어요.”


세신숍을 찾는 이용자들은 이곳에서 동네 목욕탕의 추억을 떠올린다고 한다. 목욕의 장소는 달라졌지만 세신이 레트로 감성을 느끼게 하는 매개체 구실을 하는 것. 박 대표는 “세신을 받고 나오면 어릴 때 동네 목욕탕에서 먹던 바나나우유가 생각난다는 분들이 많다”며 “음료수 코너에 바나나우유를 꼭 채워 넣는데 가장 잘 팔린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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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신숍에 있는 음료수 코너. 바나나우유가 가장 인기다.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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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중심으로 생기고 있는 세신숍은 여성 전용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 화곡동의 ‘세신샵 결’ 내부 모습. 허윤희 기자

세신숍에서는 대중목욕탕처럼 목욕관리사가 세신을 담당한다. 대중목욕탕에서 20~30년 동안 일한 경력자들로 대부분 50~60대다. 정경순(61) 목욕관리사는 “30년 전에 세신을 시작해 연신내, 강남 등 서울 지역 목욕탕에서 일했다”고 한다. 대중목욕탕에서 세신숍으로 일터가 바뀌었지만 예전처럼 ‘작업 장비’인 이태리타월을 쓴다. 정씨는 “때 타올이 색깔별로 강도가 달라 고객들의 피부 상태에 따라 그중에서 골라 사용한다”고 한다.


정씨는 세신을 한번 받은 분들이 주기적으로 세신숍을 찾는다고 한다. “코로나 때문에 목욕탕에 몇년 동안 가지 못해 참다 참다 온 분들도 있어요. 한번도 때를 안 민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때를 민 사람은 없다고 하잖아요. 개운하고 시원한 느낌을 잊지 못해요. 은근히 중독성이 강해요. 저도 목욕탕에 가서 세신을 주기적으로 받아요.”


대중목욕탕에 가고 싶지만 남의 시선 때문에 가지 못한 이들도 세신숍의 주요 고객이다. 서울 화곡동에서 ‘세신샵 결’을 운영하는 이성숙 대표는 “알몸을 남들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워하거나 수술 자국이나 흉터가 있는 분들이 세신을 받으러 온다”고 말했다. 독립된 공간에서 혼자 목욕을 할 수 있다는 장점 덕분이다. 한 공간에서 목욕을 같이 하기 불편했던 친구나 직장 동료들이 함께 왔다가 따로 목욕하는 경우도 있다. 같은 시간대에 각자 다른 방에서 목욕하고 가기도 한단다.


세신숍을 찾는 이들에게 목욕은 단순히 씻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한 힐링의 한 방법이다. 코로나로 몸과 마음이 지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목욕은 ‘힐링 소비’의 한축으로 자리잡아갔다. 집에서 사용하는 목욕 관련 용품의 소비도 늘었다. 지(G)마켓의 목욕·홈스파 상품 판매량의 신장률을 보면 지난 한달(11월6일~12월6일) 동안 코로나 이전(2019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보디스크럽이 17%, 보디브러시 10%, 미니욕조가 23%가량 올랐다.


에세이 <온천 명인이 되었습니다>의 안소정 작가(목욕문화 기록자)는 코로나를 거치면서 목욕의 의미와 가치는 더욱 주목받았다고 말한다. “코로나로 인해 여러 사람과 관계 맺고 밖에서 활동하는 게 어려워지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어떻게 즐기느냐가 중요해졌어요. 그러면서 몸과 마음의 건강도 챙길 수 있는 게 뭔가 찾아보니 목욕이었던 거죠. 늘 해오던 목욕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기회도 됐어요. ‘우울은 수용성’이라는 말이 있듯 물로 씻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리셋의 기분을 느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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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후암동 주택가에 있는 욕실 휴식공간 ‘후암별채 이누스’. 후암별채 이누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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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암별채 이누스에 있는 편백욕조. 후암별채 이누스 제공

목욕을 특화한 휴식 공간도 생기고 있다.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있는 ‘후암별채 이누스’가 그곳. 후암동을 중심으로 도심 재생 프로젝트를 펼치는 ‘도시공감협동조합건축사사무소’와 욕실 전문 브랜드 이누스가 함께 마련한 욕실 휴양지다. ‘도심 속으로 떠나는 배스케이션(목욕과 휴가의 합성어)’이라는 콘셉트로 꾸몄다고 한다.


지난 6일 찾아간 후암별채 이누스는 후암동 주택가 안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올해 2월 문을 연 이곳은 하루에 한명만 이용할 수 있다. ‘나 홀로 목욕 힐링’을 하는 공간인 것. 1층 건물인 후암별채 이누스는 39㎡(12평)로 욕실 공간과 휴식 공간으로 나뉜다. 욕실에는 약 3.3㎡(1평) 크기의 편백욕조가 있다. 숙박하는 곳이 아니라 하루 6시간 이용만 가능하다. 입장료는 평일(월~목) 5만3000원, 주말(금~일요일) 6만원.


욕조에서 한나절 휴가를 즐기러 오는 이들은 누굴까. 후암별채 이누스에 따르면 이용한 고객(2~11월)은 30대(54%)가 가장 많고 그다음으로 20대(25%), 40대(16%) 차례로 나타났다. 후암별채 이누스 관계자는 “처음 열었을 때는 사람들이 얼마나 찾을까 했는데 매달 말일 예약을 열자마자 마감이 될 정도로 ‘오픈 런’을 이어가고 있다”며 “반차를 내고 한나절 쉬고 가는 직장인들이 많다”고 말했다.


후암별채 이누스의 방문록에는 이용자들의 ‘한나절의 행복’에 관한 느낌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편백욕조에 몸을 담그고 넷플릭스를 보고 후암동 골목을 산책했어요.’ ‘집에 욕조가 없어 반신욕을 못 했는데 여기에서 반신욕 즐기며 푹 쉬다 갑니다.’ ‘바쁜 일상에 지쳐 찾아왔어요. 짧고도 길었던 일상 속 휴식이었어요.’


2022년의 끝자락, 몸과 마음의 묵은 때를 벗겨내려, 온전한 휴식을 위해 목욕을 하러 가는 사람들.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씻으며 소소한 기쁨을 느낀다. 그들은 새해가 오기 전에 다시 한번 목욕재계할 결심을 한다. ‘개운한 행복’을 찾아 나설 결심이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2022.12.2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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