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워서 심었지”…‘매화 반, 사람 반’ 찬란한 광양의 봄날로

[여행]by 한겨레

섬진강변 광양시 다압면

봄 알리는 꽃 매화 물결

옥룡사지엔 동백꽃 개화

원도심 예술공간 가볼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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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매화가 활짝 핀 매화마을의 풍경. 허윤희 기자

“마스크 안 쓰고 꽃구경하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요.”


지난 9일 오전, 전라남도 광양시 다압면의 매화마을. 서울에서 온 김미진(55)씨는 마을 곳곳에 핀 매화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올해 첫 봄나들이를 왔다는 그는 활짝 핀 홍매화 앞에서 함께 온 친구들과 사진을 찍었다. 그의 뒤에 사진을 찍으려는 줄이 길게 이어졌다.


섬진강변에 자리한 매화마을은 0.33㎢(약 10만평)의 매화 군락지가 있는 섬진, 도사, 소학정마을 세 곳을 부르는 이름이다. 각 마을의 인구를 다 합치면 348명. 한적한 시골 마을인 이곳에 매화가 피는 3월 한달간 찾는 방문객은 해마다 약 200만명에 달한다. 3월은 그야말로 ‘매화 반 사람 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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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가 핀 광양시 다압면의 매화마을.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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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마을의 청매실농원 뒤에는 대나무숲이 있다. 허윤희 기자

매화마을에 매화가 피기 시작한 건 90여 년 전이다. 당시 율산 김오천 옹이 일본에서 광부로 일하며 번 돈으로 산 매화나무를 이곳에 심었다. 그를 이어 며느리인 청매실농원의 홍쌍리(81) 명인이 50여 년 동안 매화나무 10만 그루를 심고 가꿨다. 매화나무의 열매인 매실을 활용한 먹거리 연구도 했다. 1997년에는 전통식품명인 제14호에 지정돼 ‘매실 명인’이라는 이름까지 얻었다. 그에게 “매화는 딸이고 매실은 아들”이다.


“스물네 살 산에서 일하다 외로운 산비탈에 홀로 핀 흰 백합꽃같이 살기 싫어서, 사람이 보고 싶고 그리워서, 매화를 심었당께. 여기가 비탈 천국이라 새끼줄 묶은 고무신 신고 일하러 다녔는데. 5년이면 꽃이 피겠지, 10년이면 소득이 있겠지, 20년이면 세상 사람 내 품에 다 오겠지, 그렇게 살았제.” 홍쌍리 명인이 말했다.


홍 명인 일가가 오랜 세월 일군 매화나무는 해마다 2월 말에서 3월초 즈음에 꽃망울을 틔우기 시작한다. 추위를 뚫고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봄꽃인 매화중에서 홍매화가 가장 먼저 핀다. 매화는 3월 중순께 절정을 이룬다.


매화마을에는 매화를 보며 걸을 수 있는 사랑으로, 우정으로, 추억으로 등 5개의 길이 있다. 마을 내부를 도는 코스(30분)거나 외곽을 도는 코스(60분)로 나뉜다. 어디를 걸어도 매화를 볼 수 있는데 마을이 산자락에 있어 경사진 길을 올라야 한다. 운동화를 신고 가는 게 걷기 편하다. 오르는 길이 가팔라 힘이 들지만 길 곳곳 백매화, 홍매화, 청매화 등 다양한 매화가 피어 있어 보는 즐거움이 크다. 마을 안쪽에는 2000여 개의 전통옹기가 있는 청매실농원, 정자 전망대, 대나무숲, 초가집, 매화교 등 사진 명소도 많다. 마을을 돌다 보면 영화 〈취화선〉, 드라마 〈다모〉 등 촬영지도 만날 수 있다. 특히 정자 전망대에서는 매화마을과 섬진강, 강 건너에 있는 경남 하동 마을의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새벽에 오면 해돋이를 감상할 수 있는 ‘풍경 맛집’이 되기도 한다. 등산을 즐긴다면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쫓비산(538m)을 오를 만하다. 소요시간은 4~5시간 정도 걸린다.


매화마을 안에 있는 매화와 매실에 관한 전시관인 광양매화문화관도 가볼 만하다. 내부에는 매실판매장과 휴게공간과 매실주 숙성실이 있다. 특히 매화문화전시실에서는 한국과 세계의 매화, 매실의 품종과 매실의 전파 경로, 매실의 생장 과정, 세계의 매실 음식 등 매화와 매실에 관한 정보를 담은 사진과 영상을 볼 수 있다. 이용요금은 무료다.


매화마을에서는 마을 특산물인 매실로 만든 먹거리도 맛볼 수 있다. 매실 막걸리, 매실 아이스크림, 매실차, 매실 사탕과 젤리 등을 좌판이나 가게에서 판매한다. 청매실농원이 운영하는 식당에서는 부침개와 잔치국수를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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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년 동안 매화나무를 가꾼 청매실농원의 홍쌍리 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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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룡사 동백나무 숲의 동백꽃. 허윤희 기자

광양에 피는 봄꽃이 매화뿐이랴. 봄에 피는 동백인 춘백도 볼 수 있다. 매화마을에서 차로 5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광양시 옥룡면의 옥룡사 동백나무 숲. 수령 100년이 넘은 동백나무 7천여 그루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남부지방 사찰 숲의 원형이라는 가치와 아름다운 경관 등을 두루 인정받아 천연기념물(제489호)로 지정된 곳이다. 


선각국사 도선이 35년간(864~898년) 머물면서 제자를 양성하고 입적한 곳으로 절을 세울 때 땅의 기운이 약한 것을 보완하려고 동백나무 숲을 조성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당시에는 동백잎에 수분이 많아 불길을 막는 방화수 역할을 하여 사찰 주변에 많이 심었다고 한다.


동백나무 숲이 있는 이곳은 통일신라 말기에 세워진 옥룡사가 있던 자리다. 1878년 화재로 타 버린 옥룡사는 남아있지 않지만 다섯 차례 발굴조사를 거쳐 건물터, 비석 조각, 기와, 석관 등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제 막 동백꽃을 피우기 시작한 동백나무 숲. 반짝이는 녹색 잎들 사이로 간간이 붉은 동백꽃이 보인다. 땅에 송이째 툭 떨어진 동백꽃 몇 송이가 길가에 있다. 그 옆에는 누군가가 하트 모양으로 만든 동백꽃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동백나무 숲 입구에서 15분 정도 올라가면 너른 초원에 옥룡사 절터의 축대를 볼 수 있다. 발굴조사에 관한 내용을 담은 표지판도 세워져 있다. 그곳을 빙 둘러 동백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한쪽에 의자가 있어 ‘숲멍’을 하며 쉴 수 있다. 그곳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운암사로 향하는 길이 나타나고 위쪽으로 올라가면 백계산 선각국사 참선 둘레길로 이어진다. 참선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백계산(505.8m) 정상도 만날 수 있다. 운암사로 향하는 오솔길은 동백나무가 만든 터널 아래 펼쳐져 있다. 이곳에서 가장 경치좋은 길로 손꼽힌다. 그 길을 10여 분 정도 걸으면 40m 높이의 청동약사여래불이 있는 운암사에 닿는다.


김영심 광양문화관광해설사는 “옥룡사지 동백은 3월초에 꽃을 피우기 시작해 3월말과 4월초에 만개한다”라며 “동백꽃이 절정일 그 시기에는 하동 쌍계사 벚꽃이 필 때라 같이 구경하기에 좋다”라고 귀띔했다.


해마다 3월말이나 4월초에는 이곳에서 ‘광양 천년 동백 축제’가 열린다. 올해에는 오는 25일과 26일 이틀간 축제가 진행된다. 축제 기간에 광양 동백 사진 촬영대회, 동백가요제, 스토리텔링 만화전, 선각국사 도선 참선길 걷기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펼쳐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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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룡사 동백나무 숲에서 보이는 운암사의 불상.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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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나무 숲 안에 있는 옥룡사 절터가 있던 자리. 허윤희 기자

광양에 봄꽃 여행지만 있는 게 아니다. 광양의 원도심인 광양읍으로 가면 문화예술의 공간을 둘러볼 수 있다. 옛 광양역 자리에는 전남도립미술관과 광양예술창고가 있다. 전남도립미술관은 문학과 현대 미술의 만남을 보여주는 ‘시의 정원’(6월4일까지)전을 선보이고 있다.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정지아 작가와 대만 작가 리밍웨이의 공동 창작 작품 등을 전시한다. 전남지역 출신의 작가들과 전남의 풍경을 담은 작품들을 전시하는 신소장품전(3월26일까지)도 열린다. 미술관 입장료는 1000원(성인). 폐창고를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든 광양예술창고에는 미디어영상실, 전시실, 문화쉼터, 동화책이 있는 어린이 다락방 등이 있다. 전시실에는 광양 출신의 이경모 사진가의 근현대 기록사진과 카메라를 전시하고 있다.


광양의 ‘핫플’(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인서리공원도 함께 가볼 만하다. 지난해 12월에 광양읍 읍내리·인서리에 있는 한옥 14채를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민 곳이다. 판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과 아트 프린트 작품을 구매할 수 있는 ‘아트앤에디션’, 고풍스러운 카페, 한옥스테이 등이 들어서 있다. 특히 낡은 창고를 개조한 예술전시공간 ‘반창고’에서는 황란 작가의 ‘매화, 소멸하는 아름다움’ 전시가 5월 31일까지 이어진다. 단추, 실, 핀을 활용한 설치작품으로 탄생한 매화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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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예술창고의 미디어영상실.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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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창고를 고쳐 만든 복합문화공간 광양예술창고. 허윤희 기자

‘천하일미’ 불고기에 개운한 재첩국

식당 언양 숯불구이, 한양(서울) 불고기와 함께 전국 3대 불고기로 꼽히는 광양 불고기는 광양의 대표 음식이다. 청동화로에 참숯을 피워 석쇠에 구워낸 광양 불고기는 예부터 ‘천하일미 마로화적’(天下一味 馬老火炙·마로의 불고기가 세상 최고의 맛)으로 불릴 정도로 유명하다. 마로는 광양의 옛 지명이다. 광양읍 칠성리에 있는 불고기 특화거리에 가면 전통 광양 불고기를 맛볼 수 있다. 불고기 전문 식당 20여 곳이 영업하고 있는데 삼대광양불고기집(광양시 광양읍 서천1길 52/061-763-9250), 시내식당(광양읍 서천1길 38/061-763-0360) 등이 맛집으로 손꼽힌다. 불고기 가격은 원산지에 따라 달라지는데 1인분 기준 한우 불고기는 2만5000원, 호주산은 1만9000원이다. 2인분부터 주문이 가능하다.


섬진강에서 나는 재첩(민물조개)으로 끓인 재첩국도 광양의 별미. 재첩국은 재첩과 부추를 넣고 소금 간만 하는데도, 국물 맛이 개운하고 깊다. 섬진강 줄기가 바다와 만나는 망덕포구 주변에 재첩을 전문으로 요리하는 식당들이 많다.


숙박 광양시 중동에 호텔 락희광양(항만9로 97/061-913-5000), 해비치호텔(항만9로 113/061-795-1111) 등 숙박시설이 몰려 있다. 광양시외버스터미널 주변에도 모텔들이 있다. 자연 속에서 쉴 수 있는 백운산 자연휴양림(옥룡면 백계로 405/061-797-2655)과 느랭이골 글램핑 캠핑장(다압면 토끼재길 119-32/1588-2704)도 있다. 백운산 자연휴양림에는 숲속의 집, 카라반, 캐빈하우스 등 숙박시설뿐 아니라 황톳길, 식물생태숲, 생태 연못 등이 있다. 숲속의 집 이용요금은 4만~10만원, 카라반은 10만~14만원.


글·사진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2023.03.2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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