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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무결해야만 피해자?…‘신성한, 이혼’ 여성편견 향해 신선한, 도발

by한겨레

[황진미의 TV 새로고침] JTBC ‘신성한,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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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티비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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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이혼>(제이티비시∙JTBC)이라니, 제목부터 발칙하다. 분명 ‘신성한 결혼’을 염두에 두고 비트는 작명이리라. 물론 신성한은 주인공 이름이다. 이혼 전문 변호사, 신성한(조승우). 원작은 2019년부터 연재된 동명의 웹툰이다. 강태경 작가가 법조인의 자문을 받아 그린 웹툰으로, 에피소드가 사실적이다. 드라마는 원작의 에피소드를 살리면서 분위기를 한층 밝게 그린다. 캐릭터가 풍부해지고, 문제의식이 뾰족해졌다.


드라마에 유쾌함을 잔뜩 불어넣는 신성한의 두 친구는 원작에 전혀 없던 인물이다. 조승우, 김성균, 정문성 세 배우의 연기력과 티키타카가 워낙 좋아서 별다른 상황 없이도 시트콤을 보는 듯한 장면이 쉽게 만들어진다. 장형근(김성균)이 서류상으로만 남아 있는 결혼을 정리하지 못하는 이유가 이후 등장할 의뢰인의 사연과 조응할 예정이다.


신성한의 캐릭터도 원작과 사뭇 다르다. 늦깎이로 고시 막차를 탄 미혼의 이혼 전문 변호사라는 큰 줄기는 같지만, 장발에 캐주얼한 패션도 다르거니와 능청스러운 성격이나 “테스 형~”을 부르짖는 모습은 원작과 딴판이다. 심지어 음대 교수이자 피아니스트였다는 신비로운 과거는 드라마만의 것인데, 이런 특별한 설정을 어떻게 활용할지 기대된다. 변호사가 된 이유도 다르다. 원작에선 자신을 버린 어머니에게 복수하기 위함이지만, 드라마에선 억울하게 이혼당하고 죽은 여동생의 복수를 위해서다. 지금껏 신성한이 맡은 사건들이 지닌 여성주의적 문제의식을 보건대, 드라마의 설정이 더 어울린다.


그동안 이혼이나 이혼 소송 등을 다룬 드라마들은 많았다. <신성한, 이혼>의 차별점은 ‘흠결 있는 여성 의뢰인’의 편에서 이혼을 다루는 것이다. 지금껏 드라마들은 주로 ‘무고한 여성 의뢰인’의 편에서 그들의 억울함을 들어주었다. 반면 <신성한, 이혼>이 보여준 의뢰인들은 기존의 잣대로는 도덕적 비난을 받을 만하며, 법적인 방어도 어려워 보이는 여성들이다. 어찌 보면 가해자라고도 볼 수 있으나, ‘그럼에도’ 신성한은 의뢰인이 행한 잘못과 부당하게 받는 과잉의 비난을 구분해내고, 그들이 파탄적 행위에 이른 과정에 대해서도 이해의 눈길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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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티비시 제공

첫번째 의뢰인은 불륜을 저질렀고 상간남과의 성관계 동영상이 유출되어 이혼을 당하게 된 유명 방송인 이서진이다. 그가 아들의 양육권을 갖겠다고 신성한을 찾아온다. 남편 측 변호인은 ‘아이의 존엄’을 운운하며, 불륜 동영상의 주인공이 된 이서진은 엄마로서 자격이 없다며 몰아세운다. 신성한은 이서진이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과 동영상 유출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혼동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또한 변호인의 주장이 디지털 성폭력의 2차 가해임을 분명하게 짚는다. 그는 불륜을 저질러 이혼당하는 부모도 양육권을 갖는 사례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하이라이트는 이서진의 남편이 결혼 생활 내내 집착과 의심을 일삼았으며, 어린 아들에게 이서진의 유출된 동영상을 보여줄 정도로 파괴적인 인물임을 폭로하는 장면이다. 이서진은 양육권에 재산분할까지 얻게 되는데, 어머니의 불륜보다 아버지의 정서적 학대가 아이에게 유해하다는 법원의 판단이 극을 통해 납득된다. 하지만 불륜을 저지른 여성이 승리하는 서사를 받아들이기 힘든 시청자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들의 반감이 이서진 캐릭터와 한혜진 연기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진다. 이서진 캐릭터가 원작보다 화려하고 당당해진 것도 반감을 키운 요소이다. 이서진은 이후 신성한의 사무실에 계속 출근할 예정인데, 극 전체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호감을 쌓는 데 성공한다면 여성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감수성 개선에 진일보하는 셈이다.


두번째 의뢰인은 시어머니를 폭행한 며느리다. 그가 시어머니 명의로 된 건물의 재산분할을 요구하며 신성한을 찾는다. 결말에 대해선 호오가 엇갈린다. 아들의 말 한마디에 시어머니의 캐릭터가 붕괴되는 듯한 화해가 느닷없지만, 고부갈등에서 남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실제로는 가족을 먹여 살리지만, 노동자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중년 여성의 삶을 조명하고, 자신이 천대받는 것은 참아도 딸들이 천대받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엄마의 심정을 그린 점은 매우 가치 있다. 거짓말하는 상대를 거짓말로 응수해 진심을 끌어내는 묘법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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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명심할 점이 있다. ‘무결하고 무고한 피해자’라는 도그마에 빠져선 안 된다. 피해자에게 조금의 흠이라도 발견되면 그를 변호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정작 싸움이 벌어졌을 때 부당한 비난 속에 버려두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결벽의 도그마에 빠지지 않고, 진흙탕 속에서 싸움의 본질을 짚어내는 신성한의 혜안은 얼마나 신성한가!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