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봉화, 공기만 신선한 줄 알았더니

[여행]by 한겨레

천혜의 자연 물려받은 경북 봉화 여행


한적해서 음미할 수 있는 그 신선한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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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는 타고났다. 천혜의 환경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이 봉화를 지난다. 태백산(남쪽), 구룡산, 옥석산이 봉화에 있다. 태백 황지에서 발원한 낙동강은 봉화로 흐른다. 하지만 빼어난 자연환경에도 사람 발길은 드물다. 강원도 산간지역, 지리산 일대에 견줘 여행지로서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 탓에 교통과 숙박 등 시설은 부족하지만, 그 덕에 청정 자연은 풍부하다. 지난 8일 춘양면 우구치리를 걷다가 깊은 생각에 빠졌다. ‘이 신선한 공기를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봉화엔 그 공기만큼이나 꽤 신선한 여행지들이 있다. ‘아기 소나무 숲’, ‘공부하는 절’, ‘백두대간 전망 카페’, ’공기 좋은 옛 금광 촌’, ‘전망 좋은 장수마을’ 등이다. 가는 곳마다 충분히 한적했기에 신선함을 음미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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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조용한 곳을 찾는다면 ‘각화사’


‘출입금지. 입산 금지. 채취금지. 묵언 수행 중. 수행 정진 중. 정숙.’ 들머리부터 경내까지 적힌 안내문 요지들을 모으면 이렇다. 조심하고 조용해야 하는 곳이다. 깊은 산 맑은 공기가 주의력을 깨운다. 각화산(해발 1202m) 각화사(봉화군 춘양면 석현리)는 작고 고즈넉한 절이다. 일주문 현판엔 ‘태백산 각화사’라 쓰여 있다. 예로부터 봉화 쪽 태백산, 각화산 일대를 ‘봉화 태백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은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태백산 사고지’(5대 사고지 중 하나)를 각화사 근처에 두었다. 과거 스님 800명이 수도하는 절로, 국내 3대 사찰 중 하나였다고 전해진다. 그 전통 때문일까. 여전히 절은 ‘공부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김정순(56) 봉화군 문화관광해설사는 “각화사는 주로 공부하는 스님들이 있고 평소에도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가 없어 엄청 조용하다”고 설명했다. 바깥 화장실은 재래식이다. 화장실에 개수대도 딸려있지 않다. 앞마당 낮은 수도꼭지만 달랑 하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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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컥할 만한 우구치리 공기


우구치 마을(춘양면 우구치리)은 경북 최북단이다. 강원 영월 김삿갓면과 접해 있다. 마을을 둘러보다가 어느 임도를 걸었다. 옆 마을 서벽리까지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이다. 길을 드나드는 차량은 거의 없다. 두 마을 사이엔 보다 크고 편한 길(지방도 88호선·춘양로)이 있다. 길가엔 금강송과 낙엽송(일본잎갈나무)이 쭉쭉 뻗어 있고, 간벌해 쌓아 둔 목재 더미만 동그라미를 그린다. 나비들은 사람 오는 줄 모르고 길바닥을 놀이터 삼는다. 임도에 접어든 지 15분 만에 스마트폰은 전파를 잡지 못해 먹통이 됐다. 여기선 공기를 느낀다. 호흡의 여운이 남달랐다. 여느 산속보다 몸속 깊이 박힌다고 해야 할까. ‘숨 쉬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다. 봉화엔 해발 1000m 넘는 산들이 10개 이상 있는데, 그중 우구치리에만 옥석산(해발 1244m), 구룡산(해발 1345.7m), 삼동산(해발 1179.8m)이 있다. 고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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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은 쇠락한 금광 촌이다. 일제강점기부터 마을 금광은 수탈의 대상이었다. 마을은 금정 마을이라고도 불렸다. ‘금 우물’이란 뜻이다. 금이 있는 마을엔 한때 수천명이 모여들어 불야성을 이뤘다고 전해진다. 1930년대 한 종합일간지는 ‘우구치 금괴 절도 사건’을 보도하기도 했다. 현재도 옛 금광 터가 마을 들머리에서 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남아 있다고 한다. 우구치리에서 서벽리로 가는 도래기재 근처에선 ‘금정수도’란 이름의 터널 입구를 볼 수 있다. 철창으로 폐쇄된 터널은 1920~30년 일본인들이 우구치리 광물 수송용으로 뚫었다고 한다. 터널 입구 10m 앞에서도 한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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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카페, ‘백두대간 뷰’라고?


우구치리 옆 아시아 최대 규모(5179만㎡) 수목원이 있다. 2018년 5월께 문 연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이다. 전체 규모는 구룡산, 옥석산 등을 포함한 것으로, 중점적으로 가꾼 공간은 206만㎡(62만3150평)이다. 수목원은 고산지대 식물을 전시하고 보전한 암석원, 만병초원, 알파인 하우스 등 주제별 30여개 공간을 꾸몄다. 단연 인기 있는 곳은 한국호랑이(백두산호랑이) 한청과 우리가 있는 호랑이 숲이다. 한여름엔 나무가 우거진 숲길이 시원하다. 진입 광장부터 호랑이 숲까지 약 2㎞ 흙길로 이어진다. 숲길과 주제별 정원들을 구석구석 돌아보는 데는 편도 약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수목원은 트램도 운영한다. 트램을 타고 종점에서 돌아오는 길 풍경이 장관이다. 문수산 장엄한 산세를 배경으로 수십미터 위로 뻗은 금강송이 눈부시다. 수목원 방문자센터 2층 카페도 ‘전망 맛집’이다. 테라스로 나가면 옥석산~주실령~문수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 자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은 지난 18, 19일(주말) 하루 평균 697명이 방문했다고 밝혔다. 206만㎡(62만여평) 수목원에 한 시간 평균 77명가량이 입장한 셈이다.(1일 관람 시간 총 9시간) 주말에도 광활한 자연을 한적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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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좋은 ‘장수마을’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에서 보이는 문수산 너머에 축서사가 있다. 신라 의상조사가 673년 창건했다고 알려진 축서사는 해넘이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다. 갈까 말까 망설였다. 수목원에서 직선거리는 약 4㎞, 실제 이동 거리는 20㎞가량이다. 문수산을 돌아들어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길은 꽤 신선한 드라이브 코스였다. 주실령을 지나 물야 저수지까지 한 번 감탄했다. 벚꽃이 없어도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였다. 물야면을 가로질러 개단리로 접어들면서 두 번 놀랐다. 길은 오로지 레드카펫처럼 문수산을 향해 뻗어 있다. 여기서 바라본 문수산은 수목원에서 본 문수산의 뒷면이다. 차를 타고 개단2리 ‘장수마을’ 비석을 지나며 ‘이 마을 어르신들은 매일 아침 집에서 문수산 해돋이를 보시겠구나’ 생각했다. 그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풍경이 끝날 즈음, 붉은 수피가 우람한 금강송 군락지가 축서사에 당도했음을 알렸다. 해넘이가 가까워져 오자 축서사 범종각에 앉아 있는 이들 넘어 멀리 소백산 자락은 짙어졌고, 대웅전과 아미타 삼존불을 에워싼 금강송들은 점점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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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시작’, 양묘 사업소


“모든 숲은 양묘 사업소에서 시작합니다.” 춘양 양묘 사업소(이하 ‘사업소’) 김선경(49) 소장이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 말엔 한국전쟁 이후 녹화사업 전진기지로서 ‘양묘 사업소’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 있다. 사업소(춘양면 의양리)는 남부지방산림청 관할 숲에 심을 묘목을 생산한다. 사업소 앞마당은 드넓은 논처럼 보인다. 가지런하게 심어 있는 식물은 금강송과 낙엽송 묘목이다. 씨앗 뿌린 지 1년6개월 된 ‘아기 나무’들이다. 노지 약 5만5002㎡(1만6638평)에 금강송 49만3100그루, 낙엽송 52만5000그루를 심었다. 아기 나무들은 한 번의 겨울을 더 이겨내고 두 돌이 되는 내년 3월 ‘어른들의 숲’으로 간다. 물론 나무들의 생존도 엄혹하다. 금강송은 키 16㎝ 이상(직경 2㎜ 이상), 낙엽송은 키 35㎝ 이상(직경 6㎜ 이상) 정도 되어야 숲으로 갈 수 있다. 김 소장은 “보통 이렇게 묘목을 키워 큰 나무가 되는 걸 모르고 숲에 씨앗을 뿌리는 줄 안다”며 “여기 견학 온 사람들은 다들 신기해한다”고 말했다. 봉화 춘양면에 가면 사업소 주차장이나 갓길에 차를 세우고 ‘아기 금강소나무 숲’과 ‘아기 낙엽송 숲’을 볼 수 있다. 이 또한 신선한 경험이 될 것이다.


봉화(경북)/글·사진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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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에서 옥수수 술 한 잔?

경북 봉화에 찰옥수수로 술을 빚는 양조장이 있다. 소천면 현동리에 있는 ‘소천 양조장’이다. 소규모 단층 건물 자택에서 아궁이에 불을 때어 술을 달이고 창고에서 발효한다. 옥수수 약주인 ‘찰옥수수 엿술’과 함께 쌀 막걸리 ‘소천 장생 탁주’도 생산한다. 찰옥수수 엿술은 보리차처럼 노랗고 맑다. 달착지근한 맛을 톡 쏘는 탄산이 잡는다. 지난 1998년부터 22년 동안 옥수수 술을 빚어 온 정창덕(77) 대표에게 술 이야기를 들었다.


—옥수수 술 빚게 된 계기는?


“찰옥수수 엿술은 봉화 지역 토속주다. 산골이라 옥수수를 많이 심어서 남는 옥수수로 술을 빚어 먹었다. 쌀은 비싸서 쌀 대신 옥수수로 담가 먹은 거다. 이 집은 주인은 계속 바뀌었지만 80~90년간 계속 양조장이었다. 내가 1998년 양조장을 인수하기 4~5년 전 즈음 양조장 주인이 찰옥수수 엿술 생산 허가를 받았다. 그분한테 제조법을 배웠다.”


—옥수수는 어디서 조달하나?


“소천면에서 마을 사람들이 옥수수를 재배해 팔고 남은 걸 사들인다. 한 번 술 담글 때 옥수수 700㎏을 쓴다. 그러면 32ℓ 스테인리스 통으로 10통 나온다.


—제조 순서는?


“먼저 기계로 옥수수 알갱이를 턴다. 반나절 물에 불리고 빻아서 끓이고 식힌다. 맑은 술만 다시 달여서 단지에 넣는다. 달여서 졸아버린 옥수수 엿물이 거의 조청처럼 된다. 거기에 찐 찹쌀과 누룩을 섞어 담은 자루를 넣어 발효한다. 그렇게 보름 정도 발효한다.”


—전체 공정 기간은 얼마나 걸리나?


“한 달 정도 걸린다.”


—동네 사람들에게 인기 있나?


“동네 사람들에겐 익숙한 술이다. 예전 집에서 담가 먹던 엿술은 30도가 넘었다. 주민들은 예전같이 안 독하다고 별로 안 먹는다. 오히려 피서 와서 맛본 외지인들이 한 번 맛보고 찾는다.”


—어떤 맛이 매력인가?


“엿물 때문에 발효가 다 돼도 달착지근하면서 깔끔하다.”


김선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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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여행 수첩

찾아가는 법 우구치리 숲길은 주소 ‘상금정길 219’ 앞 샛길로 빠지면 된다. 금정수도(터널)는 도래기재에서 서벽리로 내려오는 도로 왼쪽 정자를 찾으면 된다. 정자 옆에 철창으로 막아놓은 터널이 있다.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춘양면 춘양로 1501/054-679-1000)은 매주 화요일~일요일 운영한다. 하절기 입장시간은 오전 9시~오후 5시. 성인 입장료 5000원, 트램 편도 이용료 1500원. 각화사는 춘양면 각화산길 251. 축서사는 물야면 월계길 739.


‘닭실마을’(봉화읍 충재길 44)은 지난 500년간 안동 권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전통 마을이다. 마을 앞으로 논이 드넓다. 들머리에서 논 따라 약 400m 들어가면 ‘충재 박물관’과 정자 ‘청암정’이 있다. 마을에서 논을 가로질러 돌다리를 건너면 ‘석천정사’로 가는 약 500m 길이 있다. 금강송이 우거져 한여름에도 산책하기 좋다. 석천청사 앞 계곡까지 이어진다.


춘양 양묘 사업소(춘양면 의양로5길 23) 근처에 ‘억지 춘향 시장’이 있다. 시장 안팎에 농협 하나로 마트와 식당들이 있다. 소천 양조장 ‘찰옥수수 엿술’은 훈이 마트(소천면 소천로 1276/054-672-7603)에서 판매한다.


숙소 국립 청옥산 자연휴양림과 문수산 자연휴양림에 캠핑장과 실내 숙박시설이 있다. 전국 자연휴양림 통합 예약 사이트 ‘숲나들이’(foresttrip.go.kr)에서 예약할 수 있다. 만회고택(봉화읍 바래미1길 51/054-673-7939)과 만산고택(춘양면 서동길 21-19/054-672-3206)은 한옥 객실에 머물 수 있는 곳이다.


김선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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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경북)/글·사진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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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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