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언제 가도 설레는, 오래된 맛집 같은 소백산
소백산 그림과 산 풍경. 사진 김강은 제공 |
- 높이:1439m
- 코스: 소백산 삼가야영장-비로사-달밭골-비로봉
- 거리: 7㎞/5시간
- 소요시간/실제이동시간: 5시간/3시간 30분
- 난이도: ★★★☆
이미 알던 맛집을 가는 것 보다 새로운 맛집을 찾아 나서는 것에 더 설레는 편이다. 산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산을 찾아 떠나는 건, 두근거리는 여행이자 예측 불허한 모험과도 같으니!
그러나 몇 번이나 다녀 왔어도 계속 다시 찾게 되는 산이 있다. 가깝거나, 계절마다 매력이 다르거나, 혹은 특별한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곳들이다. 내게 세 가지 모두 해당하는 산이 있다. 바로 충북 단양의 지붕이자 백두대간의 중심축 소백산 국립공원이다. 서울에서 당일 산행도 가능하며 겨울엔 눈꽃 산행으로, 5월엔 철쭉이 만발한 풍경으로 인기가 많은 산행지다.
소백산에 오른 김강은씨. 사진 김강은 제공 |
첫인상은 강렬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의욕만 넘치던 산행 새내기(?) 시절이었다. 나보다 더 산행 초보자인 친구들을 데리고 처음으로 ‘원정 산행’이라는 걸 기획했다. 기차를 타고 약 2시간 30분을 달려 희방사역(지금은 폐역이 되었다)에 도착해 소백산에 들렀다. 무척 뜨거운 한 여름날이어서, 깔딱 고개에 숨도 깔딱깔딱 넘어갈 것 같았다.
그러다 불현듯 한 장면이 훅 다가왔다. 발밑에서부터 저 멀리 시선의 끝에 자리한 봉우리까지 완만한 곡선으로 이어진 길이 아득히 펼쳐졌다. 집 근처에 자주 다녔던 돌산들과는 확연히 다른 ‘흙산’의 풍경, 그것을 ‘능선’이라고 부른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소백 능선은 푸른 녹음으로 꽉 차 있었고, 길 양옆으로는 철쭉 군락이 꽃다발처럼 뭉텅뭉텅 피어있어 커다란 화원 같았다. 능선의 아름다움을 처음으로 알게 해 준 산이었다.
그 후로 종종 소백산을 찾았고, 방문할 때마다 늘 새롭고 짜릿했다. 때로는 새하얀 상고대의 세상으로, 때로는 정상에서의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의 세계로, 때로는 분홍빛 철쭉의 향연으로 초대하는 소백이었다.
5월의 첫 주, 간만에 다시 그곳을 찾았다. 홀로 오르기는 처음이다. 서울에서도 가깝고 난이도도 적절한 어의곡 코스와 천동 코스, 가장 가파르지만 연화봉에서 비로봉까지 종주하며 능선의 맛을 가장 제대로 느낄 수 있는 희방사 코스, 대피소 산행 때 주로 이용하는 죽령 코스 등 다양한 코스들이 있지만 이번엔 풍기읍에서 시작하는 가장 짧은 코스, 삼가동 코스로 택했다.
산 입구부터 빽빽한 잣나무 숲이 뿜어내는 꽉 찬 피톤치드를 들이켰다. 철쭉이 피기엔 아직 이른 시기였지만, 종종 철부지 같은 철쭉들이 먼저 고개를 내밀었다. 흙산의 면모를 만끽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는 길은 그야말로 치유의 길이었다.
정상까지는 약 1시간 30분. 비로봉에는 평화로이 풍경을 감상하고 있는 한 가족과 저 멀리 국망봉에 보이는 산객이 전부였다. 상고대도 철쭉도 없는 5월의 황금빛 소백 평전이었지만, 깨끗하게 펼쳐진 시야에 그간의 스트레스가 단숨에 날아가는 듯 짜릿했다. 곧 피어날 철쭉 군락들을 상상으로 그려보며 내 마음속에도 연분홍빛 봄꽃을 피웠다.
김강은(하이킹 아티스트·벽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