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단골 축가 '지금 이 순간' 사랑 노래가 아니에요

'뮤지컬 넘버' 내용 알고 부르나요

결혼식 단골 축가 '지금 이 순간'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대표 넘버 '지금 이 순간'은 결혼식 축가로 널리 불린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사랑을 결심하는 노래가 아니라 지킬 박사가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기로 마음 먹을 때 부르는 곡이다. 오디컴퍼니 제공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이 순간~ 나만의 꿈이~ 나만의 소원~ 이뤄질지 몰라 여기 바로 오늘…”

‘지금 이 순간’은 인기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대표 넘버다. 서정적인 선율로 시작해 격정적인 멜로디로 치닫는 이 곡은 뮤지컬 마니아가 아니어도 알 만한 노래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결혼식의 단골 축가로 불리고 있기도 하다. 주인공 지킬 박사가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은 마음을 담은 이 노래는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신혼부부에게 들려주기 좋은 노래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래를 더 듣다 보면 의구심이 든다. “날 묶어 왔던 사슬을 벗어 던진다” “남은 건 이제 승리 뿐”과 같은 가사가 결혼식과 어울리지 않아서다. 뮤지컬을 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낭만이 어린 듯한 ‘지금 이 순간’은 사랑 노래가 아니다. 과학기술에 기대 인간의 선과 악을 분리해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지킬 박사가 자기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겠다는 결심을 하며 부르는 노래다. ‘지금 이 순간’을 부른 후 지킬은 자신의 팔에 직접 주사를 놓는다. “당신(신으로 해석할 수 있다)이 나를 버리고 저주하여도” 나만의 길을 가겠다는 결심은 사실 이런 맥락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지킬은 실험 부작용으로 하이드라는 악당으로 변모하고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웅장한 멜로디와 극적인 가사로 결혼을 축하하는 축가로 자주 선택되는 뮤지컬 넘버들이 있다. 하지만 극중 맥락을 고려하면 결혼과는 무관한 경우가 많다. 사랑 노래라 할지라도 후에 비극으로 치달은 결말도 있다. 노래는 친숙해졌지만 뮤지컬 내용 자체는 아직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데서 나타난 현상이다.

결혼식 단골 축가 '지금 이 순간'

뮤지컬 '더 라스트 키스'의 '너 하나만'은 아름다운 선율과 가사로 축가로 인기가 많다. 하지만 연인인 황태자 루돌프와 마리배체는 불륜 관계인 데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삼각관계, 불륜… 이 노래 축가로는 좀…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에서 앙리 뒤프레가 부르는 ‘너의 꿈속에서’는 애절한 가사로 인기 축가 중 하나로 꼽힌다. “가슴이 두근거려 널 만난 그 순간 기적 같아 꿈꾸는 너의 두 눈동자에 난 눈을 뗄 수 없었어”라는 가사는 프로포즈용으로 손색 없다. 하지만 “너와 함께 꿈 꿀 수 있다면 죽는대도 괜찮아 행복해”라는 가사에는 실제로 앙리가 죽기 직전 부른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전쟁에서 죽지 않는 군인을 연구하던 과학자 빅터와 친구가 된 앙리는 체포 위기의 빅터를 대신해 자신이 벌을 받기로 한다. 친구이자 존경하는 과학자인 빅터가 연구를 계속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너의 꿈속에서’가 끝나갈 즈음 앙리는 단두대 앞에 선다. 빅터는 이후 자신의 연구를 앙리를 통해 계속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프랑켄슈타인이 탄생하게 되는 계기다.


사랑을 노래하는 넘버일지라도 뮤지컬의 전체 맥락을 살펴 보면 결혼 축가로는 어울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 라울과 크리스틴이 함께 부르는 ‘올 아이 애스크 오브 유’는 “나와 평생 사랑을 함께 할 거라고 말해준다면, 당신을 따라가겠다”는 아름다운 사랑 노래로 들리지만 알고 보면 ‘삼각관계’ 속에서 부르는 노래다.

결혼식 단골 축가 '지금 이 순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속 사랑 넘버인 '올 아이 애스크 오브 유'도 친숙한 선율로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알고 보면 삼각관계에서 부르는 넘버다.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기념 내한공연 스틸

뮤지컬 ‘더 라스트 키스’의 ‘너 하나만’은 더 극적이다. 황태자 루돌프 요제프와 연인 마리배체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부르는 넘버로 아름다운 가사와 선율로 인기 축가가 됐다. 하지만 유부남이었던 황태자의 불륜이라는 점은 물론, 이후 정치적 스캔들에 휘말려 설 자리를 잃은 두 사람이 자살하기 직전 부르는 노래라는 점을 알게 된다면 축가로 선택하기 망설여질 것이다.


뮤지컬 ‘드라큘라’에서 드라큘라 백작이 400년 전 연인인 엘리자베스의 모습을 똑 닮은 미나를 만나 함께 부르는 노래 ‘러빙 유 킵스 미 얼라이브’ 역시 간절한 마음이 표현돼 있지만, 미나는 이미 약혼자가 있는 데다 두 사람의 슬픈 운명을 예고하는 넘버다.


공연평론가인 지혜원 경희대 교수는 “대중적으로 알려진 넘버는 대부분 대극장 뮤지컬인데, 마냥 행복한 극이 많지는 않다”며 “감정을 극대화 한 넘버 중에서도 하객들이 잘 알고 있는 노래를 선곡하다 보니 뮤지컬의 맥락이 무시된 채 결정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봤다. 그는 “굳이 필요하다면, 외국 곡을 번안한 경우가 많으니 개사라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결혼식 단골 축가 '지금 이 순간'

뮤지컬 '모차르트'의 '사랑하면 서로를 알 수 있어'는 축가로 부를 만하다는 평이다.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사랑의 마음, 이 노래는 어떠신가요?

대중에 덜 알려졌지만, 아름다운 음악과 더불어 진정한 의미의 사랑을 맹세하는 넘버는 무엇이 있을까?


뮤지컬 ‘모차르트!’의 ‘사랑하면 서로를 알 수 있어’는 모차르트와 그의 연인 콘스탄체가 부르는 넘버다. 힘든 상황에서 힘이 되어준 서로에게 사랑을 확인하면서 부르는 넘버로 축가로 쓸 만하다.


‘지킬앤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보다는 ‘썸원 라이크 유’가 추천 목록에 올랐다. 지킬을 향한 루시의 마음을 담은 넘버다. 비록 두 사람이 이뤄지진 않지만, 애틋하고 설레는 마음이 담겨 있어 사랑 노래로 더 적합하다는 평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소극장 뮤지컬의 넘버를 부르는 것도 추천한다. ‘김종욱 찾기’의 ‘데스티니’, ‘빨래’의 ‘참 예뻐요’는 분위기가 밝은 노래일 뿐만 아니라 뮤지컬도 해피엔딩을 맞는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2018.12.0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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