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수 “연기의 의미 대체 뭔가... 답 찾는 데 실패해 여기까지 왔다"

[김지은의 ‘삶도’ 시즌2 : 실패연대기] <17>배우 김혜수

“어릴 때 데뷔… 시간은 내 것이 아니었다”

“난 20%쯤 부족한 배우, 이것이 내 고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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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혜수씨를 8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강영호 사진작가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스튜디오엔 브람스의 교향곡 3번 3악장이 흐르고 있었다. 다양한 표정을 지으며 촬영하던 그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떨어졌다. 어떤 경험과 음악이 뒤섞여 그랬을 테다. 사진 속 눈동자가 촉촉한 이유다. ⓒ강영호 사진작가

“매우 위험하네요.”


누구도 아닌 자신의 이력을 두고 그는 이렇게 단언했다. 짐짓, 심각한 표정을 하고서다. “스스로 대단하다고 착각할 법하다”는 거다. 그 ‘위험한 이력’이란 뭔가.


38년째 주연. 1986년, 열여섯 살에 영화 ‘깜보’로 데뷔한 이래 출연한 영화 35편. 그의 영화를 본 관객 수를 모두 합치면 5,530만 명. 드라마는 특별출연을 제외하고도 47편. 수상 경력은 또 어떤가. 스물세 살에 영화 ‘첫사랑’으로 청룡영화상 최연소 여우주연상 수상(깨지지 않은 기록이다), 이를 포함해 한국 3대 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 5회 수상, 드라마로 지상파 채널 연기대상 3회 수상.


이름 자체가 상징인 배우, 김혜수(53)의 발자취다. 그런데 그에게 중요한 건 숫자나 트로피가 아니었다. 외려 이력을 한 문장씩 읊어줄 때마다 그는 남의 얘기 듣듯 했다.


“스물세 살 때였다고요?” “최연소 기록이 아직도 안 깨졌어요?” “제가 여우주연상을 다섯 번 받았어요?” “연기대상도 3회나?” 그러더니 거듭 반문했다. “이게 제 얘기라는 거죠?”


반응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는 자신이 받은 상조차 되새겨본 적이 없다. “상 받은 그 순간을 충분히, 진실하게 느꼈으면 된 거라고 생각해요.” 찰나의 기쁨을 영원의 도취로 확장시키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들렸다.


그렇다면, 그가 지금까지 연기를 이어온 동력은 무엇인가. “내 청춘의 대부분을 바친 이 시간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는 과연 어떤 배우인지 그 답을 찾는 게 참 중요했어요. 그에 실패해 여기에 도달한 건지도 몰라요.”


‘그래, 연기는 저런 분들이 하는 거지. 나 그동안 참 수고했다. 이만하면 충분해’라며 깔끔하게 돌아서려던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간마저 딛고 그는 여전히 우리 앞에 서 있다.


과정에서 느끼는 희열, 이를 동력 삼아 성장해온 김혜수의 시간, 이 인터뷰는 그에 관한 것이다. 김혜수라는 자격을 만든 시간의 연대기 말이다. “인생의 목표는 성공이 아닌 성장, 중요한 건 실패가 아닌 시도”라는 삶의 태도가 그의 이름 석 자가 지닌 무게를 만들었다.


정작 그는 “몸이 무겁지, 이름은 가벼워요”라며 호쾌하게 웃었다.

◇그의 이력은 성공적인가, 실패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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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정리하거나 기억을 떠올릴 때를 제외하면, 그는 인터뷰어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강영호 사진작가

하루 전날부터 그는 “인터뷰가 기대돼 즐거우면서도 떨린다”고 했다. 작품이 아닌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인터뷰를 하는 건 적어도 최근 20년 동안은 없던 일. 그는 “작품 홍보의 일환이 아닌 인터뷰는 얼마 만인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만”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37년을 전 국민이 다 아는 배우로 살아온 관록의 톱스타인데, 아직도 마음의 설렘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8일 그를 만났다. 인터뷰는 그의 오랜 친구인 강영호 사진작가의 서울 마포구 작업실에서 했다. 사진 촬영을 포함해 6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떨린다니 의외였어요.


“너무 애 같죠, 내가. 그런데 이 인터뷰는 떨리더라고. 난 소통을 참 좋아하거든요. 내가 원하는 소통.”


-38년째 ‘주연’ 자리를 지켜온 족적 자체도 대단하지만 그간 쌓아 올린 이력도 대단해요. 게다가 무명 시절도 없죠. 돌이켜보면 이런 이력이 성공적인가요, 실패적인가요.


“매우 위험한 이력이죠. 너무 위험한 이력이야. 액면 그대로만 보면, 거의 주연만 했고, 깨지기 어려운 최연소 기록도 갖고 있잖아요. 실패가 없을 것 같은 이력, 그 자체가 얼마나 위험해요? 착각하기 쉬운 이력, 허상에 휩싸이기 쉬운 이력이잖아요.”


-그런데 수상 이력을 잘 모르네요. 세어 본 적이 없나요.


“내 것을 남기는 데 관심이 없어요. 트로피도 집에 없고 회사에 있죠. 상을 받는 순간에는 정말 감사하게 받아요. 그 순간은 진심이죠. 그러나 그게 다예요. 그 순간을 충분히 진실하게 느꼈으면 된 거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지나간 것엔 의미를 두지 않아요.”


그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은 ‘지금 이 순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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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이었던 소녀 김혜수. 데뷔작인 영화 ‘깜보’ 개봉(1986)을 앞둔 1985년, 공동 주연인 배우 박중훈씨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37년간 영화와 드라마를 합쳐 80편 넘게 했어요. 쉴 새 없이 연기를 한 것 아닌가요.


“예전엔 1년에 여러 작품을 하기도 했으니까. 당연한 게 아닌데 당연한 듯 말이에요. 물론 내가 설계한 건 아니죠. 내 의지가 차단됐다고 해야 하나. 내 의지가 중요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죠.”


-시간의 주인이 내가 아니었던 거네요.


“너무 어릴 때 데뷔했으니까. 내 의지가 무참하게 없어지면 내가 없는 거나 똑같더라고요. 그런 시기를 꽤 길게 보냈죠.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제일 속상하고 아까운 게, 친구들의 시간과 내 시간이 다른 거였어요. 물론 그래서 우쭐한 면도 있었지만, 아깝고 불안하기도 했죠. (그러면 안 되겠다고 깨달은) 이후에는 모든 순간을 다 내 의지로 해요.”


-그 시절 덕에 시간의 소중함을 알게 된 건가요.


“너무나, 절실하게.”


그는 한때 원하지 않은 영화를 찍은 적도, 그래서 지금으로는 상상이 안 되는 태도로 촬영에 임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로 인해 흘린 눈물을 아직도 기억한다. 내 시간의 결정권을 상실해 얻은 실패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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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도 그의 표정이 담겼다. 생각을 고르는 순간을 강영호 작가가 놓치지 않았다. ⓒ강영호 사진작가

-너무 어릴 때부터 연예인이었으니 개인 시간이라는 것도 거의 없었겠어요.


“잠도 그래서 줄였어요. 연예인으로 사니까 내 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쓸 수가 없잖아요. 어릴 때는 특히. 그러니 잠이라도 줄이지 않으면 그나마 내 시간이 정말 없는 거예요. 그래서 내겐 시간이 엄청나게 중요해요. 나는 사람을 만날 때도 ‘내 시간을 얼마나 줄 수 있는 사람인가, 내가 얼마나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인가’ 생각해요. 물론 일에 쏟아붓는 시간은 별개의 문제고요.”


-잠을 줄였다니, 언제부터인가요.


“아마 고등학교 2학년 말부터 그랬을 거예요. 대입 준비를 해야 하는데 공부할 시간이 없으니까. 통에 든 인스턴트 가루 커피를 밥 숟가락에 반 정도 퍼서 입에 털어 넣으면 밤을 새울 수 있더라고요. 카페인에 예민하다는 걸 그때 알았죠. 잠을 안 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참 신났어요. 공부도 하고 책도 봤지만, 딱히 할 일이 없어도 혼자서 깨어 있는 게 참 좋더라고요. ‘내 시간’으로 느껴진 거죠.”


세상이 잠든 밤, 혼자 깨어 자기 시간을 누렸을 소녀 혜수가 그려졌다. 소박한 행복이다.


-작품으로 따지면, 언제 내 시간의 주인이 됐나요.


“영화 ‘닥터 K’(1999)예요. 내 의지로 처음 선택한 작품이에요. 20대 후반이니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자의식으로 무언가를 해나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모든 게 참 느렸어요. 그래도 그때라도 시작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후회하지도 않죠. 그것도 굉장히 오래 생각하고, 망설이고, 큰 용기를 내서 한 거니까.”


사진 촬영을 하던 강영호 작가가 옆에서 거들었다. “그때 영화 포스터를 찍으면서 우리 처음 만났잖아요.” 강 작가의 말에 그는 눈이 동그래졌다. “어머, 정말?” 그와 강 작가는 지기(知己) 사이다.


-시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과거 인터뷰에서 ‘만약 배우를 그만둔다면 조용히 사라지고 싶다’는 취지로 말을 한 적이 있던데 왜 그런가요.


“내 인생은 뜻하지 않게 좋은 순간이건, 나쁜 순간이건 좀 요란했어요. 복에 겨운 소리일 수도 있는데 ‘나만의 시간’이란 게 언제부터인지 없어졌죠. 물론 주책스럽게 나 스스로 공개할 때도 있지만. 어떤 땐 정말 공유돼선 안 되는 일조차 강제로 알려지기도 했죠. 이기적이거나 얌체 같은 생각일 수도 있어요. 필요에 따라 이런 건 공유하고, 어떤 건 나만의 것이고 싶다는 게. 그럼에도 이 일을 하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것 정도는 꿈꿔볼 수 있지 않을까.”

◇실패를 흘려 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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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는 강영호 작가의 작업실 내 ‘살롱99’에서 했다. 강의나 모임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배우 김혜수씨에게도 친숙한 곳이다. ⓒ강영호 사진작가

-대중은 ‘배우 김혜수’를 강한 이미지로 여기는 듯해요. 하지만, 살다 보면 힘든 일이 없을 수는 없죠. 일의 실패든, 인연의 실패든. 그런 때는 어떻게 견디나요.


“(영화 ‘밀수’ 촬영 때 생긴 이마의 흉터를 가리키며) 어느 날 상처가 생기고 봉합하고 아물어도 이렇게 흉터가 남잖아요. 흉터를 보면 다친 날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걸 잊으려고 하기도 하죠. 삶을 지나오면서 그걸 깨달았어요. 이겨내거나 견디려 한다고 해서 가능한 게 아니라는 것. 그러니 상처를 굳이 잊으려고 애를 쓰지 말자고. 그래서 난 그냥 흘려보냈어요. 그렇다고 괜찮은 척하지도 않아요. 가장 중요한 순간에 난 ‘나부터’예요. 힘들면 웅크리고 있기도 하고요. 내가 아파 죽겠는데 왜 씩씩한 척해. 그리고 난 이런 구분을 하는 지각은 있어요. 자책해야 할 때와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를 구분하는 지각. 다행이죠.”


-인생의 고비들이 자신한테 준 건 뭘까요.


“사람을 잃고, 사람을 얻죠. 시간과 더불어 중요하게 여기는 존재가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런 고비들로) 나를 좀 더 뚜렷하게 알게 되더라고요. 사람은 자신이 가장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 그리고 내가 꿈꾼 것 이상으로 빛나는 순간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깨달아요.”


-영화 ‘내가 죽던 날’에 “내 곁에 아무도 남지 않았다” “네가 남았다”라는 대사가 나와요. 구원의 메시지인데, 작품이 구원이 된 적도 있나요.


“참 재미있는 게 사적으로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책(대본이나 시나리오)도 안 봐야 하는데, 난 그렇지를 못한 거예요. 시나리오든, 대본이든 들어오면 빨리 보고 답을 주는 게 습관처럼 돼서. 그때 본 책 중 하나가 드라마 ‘직장의 신’이었어요. 대본이 진짜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한다고 한 거예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참 다행이었어요. 왜냐하면 우리 일은 시작하면 그것 말고 다른 건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힘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난 그 드라마를 찍으면서 살아남은 거예요. 심지어 ‘직장의 신’은 코미디였잖아요.”


그는 ‘직장의 신’으로 2013년 연말 ‘K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일이 살린 거네요.


“맞아요. 사람마다 다 운명의 순간이란 게 있나 봐요. 이 나이에 이런 얘기 하는 게 건방지지만, 누구나 삶에 고비가 오잖아요. 그게 한 번도 아니죠. 그런데 그 운명에서 살아남을 기회도 함께 오는 것 같아요.”


-일에는 신비한 힘이 있어요.


“맞아요. 그리고 내가 그렇게 단순하기도 하고요. (웃음)”


-그런가 하면 ‘연기가 내 길이 아닌가’ 의심한 적은 없었나요.


“음, 아마 90년대 중반 즈음까진 연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땐 하도 연기를 못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가지고.”


-그런 때도 있었나요.


“그럼요. (웃음) 나 스스로도 연기가 안 맞는다는 생각도 들고요. 아니,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늘지도 않는 것 같고, 거기다 못한다고까지 하니까. 그런데 시나브로 과정이 재미있어지더라고요. 지금도 물론 아주 열심히 하죠. 그건 자신 있을 정도로. 아마 나만큼 열심히 노력하는 배우는 없을 거예요.”


-작품 할 때는 못 먹고, 못 잔다면서요.


“먹는 거야 어쩔 수 없이 조절하는 거고요. 잠은 안 잤죠.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해요. 잠이 건강에 아주 중요하다는 걸 그간엔 몰랐어요.”


-얼마나 몰입해 준비하는지 관객이나 시청자는 알지 못하죠.


“알 필요가 없죠. 관객이나 시청자는 결과를 보는 거니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실은 제가 이만큼 노력했는데요’라거나 ‘이런 사정이 있었거든요, 알아주실래요’라고 할 수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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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배우 김혜수. 왼쪽부터 ‘스타일’의 박 기자, ‘하이에나’의 정금자, ‘슈룹’의 임화령. 한국일보 자료사진

-사람들이 이런 말도 많이 하죠. ‘김혜수는 칭찬 장인’이라는.


“난 좋은 건 많이 나누자는 쪽이에요. 정보건 지식이건. 좋은 걸 나눠서 손해 볼 일 없잖아요? 좋은 말도 마찬가지예요. 난 말의 힘을 믿거든요. 온기 있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내적인 힘이 되는데. 그리고 상대에게 얼마나 큰 동기부여가 되는데. 꾹 참는다고 저축되는 것도 아니고요. 나도 여러 번 경험했어요.”


-본인에게도 그런 한마디가 있나요.


“20대부터 친하게 지내온 언니가 있어요. 올해 생일에도 만났죠. 언니가 제게 그렇게 말하거든요. ‘혜수야, 나는 너한테 사랑을 배웠어.’ 언니는 아낌없이 그런 얘기를 해요. 제겐 언니가 ‘마음의 고향’ 같죠. 묵직한 느낌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특별한 일이 있는 경우를 빼고 서로의 생일마다 만나 그런 얘기를 나눴을 거예요. 같은 말이지만 언니가 매번 진심인 걸 알아요. 그런 말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게 참 좋아요.”


그를 향한 후배 여성 배우들의 마음은 각별하다. 손예진은 “김혜수 선배는 30년 넘게 배우를 하면서 한 번도 대중의 눈 밖에 난 적이 없다. 그건 어디서 나온 힘일까,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한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를 가리켜 한지민은 “제게 늘 좋은 본보기가 돼주는 선배”, 천우희는 “늘 힘을 주는 선배이자 함께 연기하고 싶은 배우”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존재 자체로 의미가 됐다. 역사이기도, 증명이기도, 위로이기도, 응원이기도, 이상향이기도 한.


지금의 ‘김혜수’라는 상징에 이르기까지, 그의 연료는 무엇이었을까.

◇‘나 같은 배우도 필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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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작품은 결국 그걸 시작할 때 생각한 의미가 전부”라며 “꼭 상을 받아야, 흥행을 해야 의미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강영호 사진작가

그가 2017년 영화 ‘미옥’을 끝냈을 때다. 집에 초대한 친구들이 돌아간 새벽, 누군가 틀어놨던 TV에서 영화 ‘밀양’(2007)이 재방영되고 있었다. 한 번 봤던 작품인데도 빨려 들어갔다. 10년 전 처음 봤을 때와는 또 다른 감정이 올라왔다.


자막이 올라가는 걸 본 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베란다로 나갔다. 한겨울의 새벽이었다. 영화의 울림과 차디찬 공기가 뒤섞여 그의 뇌를 깨웠다.


“그래, 연기는 저런 분들이 하는 거지. 너 그동안 완전 애썼다.”


스스로 머리도 쓰다듬었다. “정말 충분히 수고했어.”


-그건 어떤 감정이었나요.


“연기는 저런 놀라운 분들이 하시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경이로웠어요. 비아냥거리는 게 아니라 진짜로. 그런 일을 지금까지 내가 해온 게 용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나는 알잖아요, 내가 얼마나 애썼는지. ‘이 정도면 너 정말 애썼다. 저런 분들이 연기하는 속에서 새우등 터지지 않고, 남한테 티도 안 내고 꿋꿋하게 해낸 게 어디야. 대견해.’ 그런 생각이 들었죠.”


-스스로 안쓰러웠던 건가요.


“비애나 자조 같은 감정은 아니었어요. 개운하고 산뜻했어요. 그런 감정이 드는 날이 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기분이 좋더라고요. ‘나 그간 충분히 최선을 다했다. 그거면 됐지 꼭 1등을 해야 하나. 꼭 무슨 의미를 찾아야 하나. 그걸로 충분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죠.”


영화 ‘국가부도의 날’(2018) 시나리오가 그의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그의 필모그래피는 거기서 끝났을지도 모를 일. 그는 “시나리오를 보고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감정이 든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영화 ‘밀양’, 그리고 ‘국가부도의 날’이 그에게 준 자극은 곧 그가 ‘연기하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자신에게 연기의 의미는 뭔가요.


“연기는 내가 정말 많은 시간을 할애한 일이자, 내 인생을 구성하는 굉장히 큰 요소예요. ‘원하건, 원치 않건’이란 수식어를 붙이는 게 의미 없을 정도로. 지금의 나에 도달하는 결정적인 과정이었죠. 연기로 성장했어요, 나는. 배우로서의 시간, 개인적인 시간 그걸 구분할 필요도 없죠.”


-지금까지 연기를 해온 이유, 또 그렇게 만든 힘은 뭘까요.


“나 스스로 명분을 찾고 싶었어요. 그 명분이란 나한텐 의미죠. 내 시간을 규정하는 의미.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내 시간의 결정권이 없이 살았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내겐 시간이 아주아주 중요해요. ‘10대는 차치하고라도 내 청춘의 대부분을 연기에 바쳤는데, 그럼 그 시간의 의미가 뭐지?’ 그 의미를 찾으려고 이 시간을 연장해온 거예요. 40대까지는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찾았나요.


“그 의미를 찾는 데 실패해서 여기까지 왔죠. 나 스스로를 바라보는 눈이 생긴 것일 수도 있고요. 연기에 쏟아부은 시간 동안 내가 어떤 배우인지를 알고 싶었거든요. ‘남들이 규정하는 나’가 아니라 ‘내가 규정하는 나’. 그것만 알았다면 당장이라도 그만뒀을지 몰라요. 배우들이 흔히 하는 말 있잖아요. ‘배우란 일이 참 힘들고 고통스럽죠. 그렇지만 한순간의 희열이 여기까지 오게 했어요. 그걸로 만족해요.’ 그런데 나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걸 못 느끼는 거예요.”


못내 아쉽고 애달픈 감정이 그의 눈과 표정에 고스란했다.


-그런 말 많이 들었겠지만, 자기 자신을 너무나 냉철하게 봐서 그런 것 아닐까요.


“다른 사람들이 ‘왜 그렇게 겸손해요, 왜 그렇게 자신한테 야박해요’라고 하는데 난 아니거든요. 정말 모르겠어요. 닿지를 않는 거예요. 나는 (연기의 희열, 의미를) 정말 느끼고 싶은데, 너무나 절실한데 말이에요. 그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는데 너무 짧았어요. 너무 찰나여서 ‘이건가, 이게 맞나, 아닌가’ 싶고.”


-의미를 찾는 데는 결국 실패한 건가요.


“그렇죠. 그런데 그러다 이런 생각에 이르렀어요. 현장에서 (연기한 장면을) 모니터로 볼 때는 참 시니컬해지거든요. 어느 순간 모니터링을 하다가 그런 걸 느꼈어요. ‘아, 나는 이런 배우구나. 한 20%쯤 부족하구나. 그래, 이런 배우도 있어야지. 이게 나의 고유성인데.’ 그렇게 나를 인정하게 된 거죠.”


-그러고 나니 달라지는 게 있던가요.


“좀 편해진 것 같아요. 이러다가도 ‘왜 죽어도 안 되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나한테 너무 섭섭하기도 하고, 내가 너무 싫어지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하는 게 아니라 ‘나는 이런 배우지’라고 인정해요. 나를 인정하는 훈련이라고 해야 하나, 나를 새롭게 하는 과정이라고 해야 하나. 그 단계에 진입한 지 몇 년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것도 꽤 괜찮아요. 나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느낌이죠.”

◇결과로 성패 재단? 과정이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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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말의 힘’을 믿는 사람이다. 답을 할 때도 최대한 적확한 표현을 찾으려 고심했다. ⓒ강영호 사진작가

-예전에 “배우나 연기가 내 전부일수도 없고, 실제 그렇지도 않다”고 한 적이 있어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말 그대로 배우가 자신의 전부가 될 수는 없지 않나요. 배우로 쌓아온 이력이나 받은 트로피 같은 것만으로 자신이 대단하다고 느끼면 위험하죠. 배우는 그저 직업이에요. 다만 남들이 얼굴을 아는 직업. 배우를 ‘아티스트’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난 연기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고 아트도 좋아하지만, 연기하면서 예술을 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그저 내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해온 거지. 심지어 체력도 좋아서 아마 나보다 더 성실하긴 힘들 거예요. 하하. 타고난 재능이 별로 없어서 난 성실해야 해요. 뒤늦게라도 그걸 깨달아서 다행이에요. 성실한 데에 재미를 붙인 거죠.”


성실 없는 성장은 없다. “20%쯤 부족한 배우”라거나 “타고난 재능이 없다”는 박하고 박한 그의 자기 평가를 존중한다 쳐도, 그가 ‘성장하는 배우’라는 데에 이견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것도 정상의 자리에 있는 배우가 성장하기 쉬운가. 성장이란, 본디 높은 수준에서 출발할수록 그에 따르는 노력도 훨씬 커져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이 배우는 그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치열했을 것인가.


-영화나 드라마는 팀 플레이죠.


“맞아요. ‘함께하는 과정’이 전부예요. 작게는 나와 나의 팀, 크게는 작품을 함께 하는 전체. 시작과 동시에 우리는 함께 가죠. 그러려면 각자 제 몫을 잘해야 해요. 주인공이라고 해서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다? 그럴 짬이 없어요. 사실 내 거 하기 바빠요. 팀에 누가 되지 않으려면 그래야 하죠. 그 팀 안에서 누군가 자기 몫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균열이 가는 것이고, 그럼 그 ‘함께’가 안 되는 거예요. 주연이든, 조연이든, 단역이든 우리는 그냥 다 배우예요. ‘우리’가 ‘함께’ 가는 게 저에겐 정말 중요해요.”


-평생 거의 주연만 했어요. 그래서 보지 못하는 면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늘 이런 생각을 하려고 해요. ‘정말 내가 보는 게 다인가.’ 어쨌든 나는 ‘김혜수’이기 때문에 나한테는 다 잘해요. 나와 함께 출연한 조연이나 단역한테는 대하는 태도가 다를 수 있죠. 그래서 나는 나를 대하는 태도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아요. 어떻게 보면 작업 과정에서도 나는 좋은 것만 보는 사람 중 하나예요. (주변의 어려움을) 보지 못하거나 망각하기 쉬운 사람인 거죠. 그렇다고 섣불리 조연이나 단역의 어려움을 운운하기엔 주제 넘은 일일지도 몰라요. ‘이제 와서 고작 이거 조금 봤다고, 네가 뭘 안다고’ 싶을 수 있으니까.”


‘주연 콤플렉스’, 그런 단어가 있다면 그는 적어도 그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하는 배우다.


-작품을 선택하고 나서 ‘아, 이건 잘못 택했다’ 싶은 경우도 있나요.


“아우, 많죠. 그런데 결과적으로 작품의 성패는 내가 결정하는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수익이나, 평론가의 비평, 대중의 시각 같은 기준에 따라 다 다를 수도 있고요. 그런데 난 남들이 성공이라고 하건, 실패라고 하건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성공이라고 해서 너무 좋지도, 실패라고 해서 가슴이 무너지지도 않죠. 만약 작품을 할 때 내가 최선을 다하지 못했거나, 그랬음에도 뭔가 극복하지 못했다면 그에 대한 성찰이 남을 수는 있겠죠. 내겐 과정이 중요해요. 과정이 전부지, 결과는 내 것이 아니에요.”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뭔가요. 변해왔나요.


“매번 달라요. 물론 다 생각나지도 않지만. 옛날에는 유명한 감독 작품을 해야 할 것 같고, 유명한 배우와 해야 내가 더 발전할 것 같기도 했거든요. 배역에 변화를 줘야 연기의 폭이 느는 줄 알기도 했고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가장 중요한 건 ‘지금 내 마음’이에요. 그때 감정이나, 컨디션, 주변 사정 그 모든 걸 합해서. 그래서 난 늘 그 순간에 충실해요.”


-시간과 더불어 사람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죠. 인간관계나 인연의 실패도 있었을 거예요.


“그걸 배웠어요. 사랑하는 존재와 경계를 허무는 걸 조심하자. 나를 위해서도 그래요. 사랑하는 사람을 오래 보려면 경계를 분명히 지켜야 하더라고요. 세상에 거저 되는 건 없어요. 소중하면, 소중한 만큼 노력해야 해요.”


그는 자기 생각을 얘기하다가도 “이기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이 나이에 건방진 말이지만” “양심 없는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같은 말을 곧잘 붙였다. 그것이 성찰의 찰나로 느껴졌다.


하긴 그는 자문과 자각이 몸에 밴 사람. 공적이든, 사적이든 어떤 자리에 나가기 전 스스로 꼭 하는 물음이 있다고 했다. 그것이 오늘의 김혜수를 만든 것 아닐까.

◇성장은 내 존재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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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영화 ‘밀수', 드라마 ‘슈룹’을 끝낸 뒤 상반기는 쉼의 시간으로 보냈다. “연초에 생겼던 ‘번아웃’도 어느 정도 해소됐다”고 말했다. ⓒ강영호 사진작가

포털 사이트에서 ‘김혜수’를 치면 따라 붙는 수식어가 있다. ‘당당함’이다. “당당함의 아이콘” “당당함이 매력” “당당함이 아름다운 배우”….


많은 여성에겐 롤모델이다. 수십 년간 여성이 메인MC 자리를 지키고, 남성이 서브MC인 행사는 그가 서는 ‘청룡영화상’뿐이다. 그는 어디서나 독보적이다.


그의 ‘당당한 태도’는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대중은 ‘김혜수’ 하면 가장 먼저 당당함을 떠올릴 거예요. 그 태도는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요.


“그 말이 어릴 때부터 나를 따라다녔어요. 만든 건 아니죠. 만든다고 당당해질 수도 없는 거고. 내가 당당하지 않아야 할 이유도 없지만, 시종일관 당당할 필요도 없었거든요. 그리고 뭐, 매번 내가 당당하겠어요? (웃음) 그런데 난 이게 정말 중요해요. 공적이든, 사적이든 그 자리에 내가 나갈 자격이 있는가, 준비가 돼 있는가. 이걸 항상 생각해요. 나를 움직이는 중요한 동력이죠. 일을 마치고 돌아갈 때도 ‘자격을 갖추고 했나’ 되짚어 봐요.”


-100회까지 이어진 인터뷰 쇼, ‘김혜수의 플러스 유’ 때부터 이미 당당했죠. 그때 불과 스물여덟 살이었어요.


“그랬더라고요. 그 프로그램에서 사람들 얘기 듣는 게 참 좋았어요. 말하자면, 나와서 얘기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의 말을 듣는 자리잖아요. 큰 행운이었죠. 그것도 매주 한 명 이상을. 그때 내가 일지를 썼더라고요.”


-일지요?


“이사하면서 발견했어요. 누가 나와서 어떤 말을 했다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그 말에 내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를 썼더라고요. 무언가 자격을 갖춘 사람의 말을 통해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던 거죠. 그런 게 정말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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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시간과 사람이다. ⓒ강영호 사진작가

그를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부각된 짧은 영상이 그것이다. 10대의 그가 수영장에서 수영복을 입고 또래의 배우 하희라와 나란히 앉아 인터뷰하는 장면이다. 목소리만 등장하는 남성 인터뷰어는 이렇게 물었다. “사이즈 좀 공개할 수 있어요? 신발 사이즈 말고.” 명백한 성희롱이다.


소녀 김혜수가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잠시 입가의 미소를 지우곤 남성 인터뷰어를 주시했다. 이내 그는 웃으며 “몰라요”라고 답했다. 카메라까지 돌아가는 상황에서 그 이상의 대처가 있었을까. 영상엔 “미개한 질문” “화가 치미는 성희롱”이란 비판 댓글과 함께 “무례한 사람 앞에서도 어릴 때부터 현명한 혜수 언니” “눈빛으로 제압부터”란 감탄이 이어졌다.


-그 영상을 본 적 있나요.


“친구가 보내줘서 봤어요. 그때는 그런 게(성희롱 발언) 만연할 때죠. 우리 나이의 자녀가 있을 법한 사람이 그런 질문을 하잖아요? 그때는 웃으면서 말했지만, 폭력적인 질문이었죠. 그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문제예요. 그 1초 남짓 째려보는 김혜수가 대단한 게 아니라 그 시대를 보여주는 영상인 거죠.”


-평소 공부 모임도 한다고 들었어요.


“토론 모임을 두 개 했어요. 주로 사회 이슈나 환경 문제를 두고 토론하는 모임이었어요. 읽어보고 좋았던 도서를 서로 추천하기도 했고요. 클래식 음악 강의를 10년 정도, 대중음악 강의도 5년쯤 들었어요. 인문학이나 대중문화 강의도 지속적으로 들어왔죠.”


-바쁜 일정 중에 강의까지 듣다니 대단해요.


“강의는 작품 촬영이 없을 때 꾸준히 듣는 편이에요. 아니, 촬영 기간이라 하더라도 마치 혈당 떨어지듯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강의를 듣고 와야 해요. 좋은 강의 정보에 늘 귀가 열려 있어요. (미소)”


-아침에 눈 뜨면 정치ㆍ사회 기사부터 본다고도 했죠.


“과거엔 종이 신문을,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죠.”


-토론 모임에, 강의에, 뉴스까지… 눈과 귀를 열어놓으며 사는 이유는요?


“좋아요, 재미있어요.”


그에게 성장 욕구는 본능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그 모든 것이 ‘배우 김혜수’를 만들었을 테다.

◇실패의 가치, 삶의 원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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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순간 나도 모르는 나를 만날 때가 있다. 나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가 말하는 연기의 오묘한 매력이다. ⓒ강영호 사진작가

그와 함께 작업해본 감독들의 공통점이 있다. 이 배우의 성실함에 혀를 내두른다. 영화 ‘차이나타운’(2015)으로 데뷔한 한준희 감독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배우 김혜수씨는) 영화에 어울리는 의상 콘셉트를 정할 때도 하루에 사진을 100장씩 보내면서 함께 상의하고 고민했죠. 그러면서 우리가 동의에 이른 게 ‘중요한 건 멋있지 않았으면 좋겠다’였어요.”


-매 작품 그렇게 시간과 노력을 쏟으면 후회도, 미련도 남지 않을 것 같아요.


“그렇진 않아요. 그러면 행복할 수도 있지. 그 정도는 아니지만, 비슷하다고는 할 수 있을까요? 그 (후회도, 미련도 없을 정도로 다 쏟아부은 수준) 비슷하다고 하기에도 양심이 없는 거지만, 그 순간에는 다 쏟아붓긴 하죠. 정말 최선을 다해요. 그런데 본인의 한계를 본인이 알 수는 없잖아요. 내 한계를 현실적으로 정확히 맞닥뜨리는 순간이 있을 수 있겠죠. 어떤 면에선 그것도 축복이에요.”


그는 작품을 준비할 때마다, 혹은 작품과 상관이 없더라도 관심 있는 자료를 모아둔다. 이사하면서 외장 하드가 손상되긴 했지만, 축적한 데이터 양이 테라바이트 단위였다.


-수집한 자료의 양이 엄청나네요.


“시대별로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1920년대, 50년대, 70년대 자료가 많은 편이에요. 작가, 화가, 건축가, 정치가까지 분야별로 영향력이 있거나 제가 관심 있는 인물들 위주로 자료를 모았죠. 음악, 미술, 건축, 가구, 조명, 인테리어, 패션, 사건, 사고… 뭘 위해서가 아니라 관심 있는 자료를 모으고 보는 걸 아주 좋아해요. 오래된 취미죠.”


-평소에도 꾸준히 공부를 하고 작품을 할 때는 더 열정적으로 자료를 찾으며 몰두하는데, 지치진 않나요.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 못해먹겠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어요?


“아우, 나는 그런 태도로 사는 건 생각하지 못해요. 일이든, 아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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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배우 김혜수. 왼쪽부터 ‘타짜’의 정 마담, ‘도둑들’의 팹시, ‘밀수’의 조춘자. 한국일보 자료사진

-특별히 잊지 못하는 작품은 뭔가요.


“최근 작들은 다 잊지 못해요. 옛날 작품은 옛날이라 기억이 안 날 뿐. 최근 몇 년 사이 작품 중에선 ‘시그널’이에요. 김원석 감독님한테 크게 배워서죠. 나는 ‘시그널’ 전에도 열심히 했고 그때도 최선을 다했어요. 그런데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란 걸 알았어요. 최선이라는 건 내가 선을 정해놓고 거기까지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 이후로 스스로 최선을 갱신하는 내적 재미가 생기기 시작했죠.”


-김원석 감독의 무얼 보고 배운 건가요.


“아주 여러 가지예요. 예를 들면, 연출자가 작품 전체를 총괄해야 하는 건 맞아요. 그렇지만 그렇다고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예를 들면, 음악, 음향, 편집, 녹음, 자료 같은 정말 많은 부분이 있으니까. 그런데 이분은 다 관여해요. 모르면 배우고요. 나는 보통 작품 할 때 감독한테 ‘생각나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바로 문자 메시지로 보내도 되나요. 너무 시간이 늦거나 이를 땐 주무실 수 있으니까 답 안 주셔도 돼요. 혹시 나중에 잊어버릴까 봐 보내려는 거예요’ 하고 물어요. 그럼 감독들이 대부분 좋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김원석 감독은 새벽 3시건, 4시건 문자를 보낼 때마다 늘 즉각 답을 하더라고요. 유일했죠. 그건 안 잔다는 거잖아요. 거기다 편집이건 음악이건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라고 의견을 내면 ‘아, 그건 이래서 이렇게 한 거예요’ 해요. 다 알고 있다는 거죠. 그걸 보면서 ‘아, 이런 게 최선이구나’ 깨달았죠. 김원석 감독에겐 그게 당연한 거였어요. 그때 각성했어요. 그러면서 또 한 번 (작품 임하는 태도가) 달라졌죠. 그래 봤자 기본을 하는 거지만.”


-기본의 수준이 너무 높은 것 아니에요?


“사람이 그렇잖아요. 연기를 하면 주인공을 하고 싶어 하고, 기자도 이왕이면 메인 기사를 쓰고 싶어 할 테고요. 그런데 그러려면 감당해야 하는 거죠. 그럴 수 있는 자산이 적으면 메워야 하고요. 그걸 하지 않고 돈도 받고, 사랑도 받고, 칭찬도 받고… 그런 직업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말이 안 되잖아. 운이 좋아 잠깐 그럴 수는 있겠죠. 40년 가까이 그럴 수는 없어요. 그러니 내게는 그게 기본이에요. 저보다 훨씬 역량이 좋은 배우가 많은데도 이렇게 오래 연기를 할 수 있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죠. 이렇게 느리게 성장하는 배우임에도, 이렇게 긴 시간 연기를 할 수 있어서.”


-속도가 중요한 건 아니죠, 성장한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난, 성장하지 않으면 죽을걸요. 성장이 가장 중요해요. 무언가 긍정적인 자극과 영향을 받아야 살 수 있는 사람이에요. 0.1㎜라도 성장해야 살아있다고 느껴요. 정체돼 있으면 죽어있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인생에서 중요한 게 ‘행복이냐, 불행이냐’가 아니라 ‘재미있느냐, 아니냐’예요.”


-실패란 뭘까요. 김혜수만의 경험과 언어로 정의해본다면.


“실패했다는 건 최소한 ‘했다’는 뜻이잖아요. 그게 중요해요. 머릿속에 있는 거? 말로만 하는 거? 중요하지 않아요. 해야죠. 실패해도 돼요. 실패가 없는 사람보다 실패한 사람이 훨씬 낫죠. 실패는 가능성이니까. 실수하고 실패하더라도 결국은 그게 삶의 원동력이 돼요. 나는 성공이 아니라 성장이 목표인 사람이에요. 거기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고.”


그는 한때 “배역보다 김혜수가 더 보인다”는 비판도 들었다고 했다. 그게 나쁜 말일까. 곱씹어 봤다. 어쩌면 대중은 ‘김혜수가 보이는 배역’이라서 그를 사랑하는 게 아니냔 말이다.


이날 인터뷰 사진을 찍은 강영호 작가는 그와 14년 된 친구다. 1999년 처음 만났지만 2009년 그가 강 작가의 개인전을 찾으면서 친구가 됐다. 강 작가의 결혼식 사회를 자처하고, 강의를 듣는 모임도 함께한다.


강 작가는 말했다. “사진 작업을 하면서 연예계 인물과 일을 많이 했지만,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진 건 김혜수씨가 유일하다”고.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바로 답했다. “보통 연예인들은 일이 끝나면 관계도 끝나요. 혜수씨는 그렇지 않았어요. 먼저 연락했고, 먼저 챙겼죠. 비즈니스가 아닌 인간으로 날 대한 거예요. 필요에 의해 사람을 만나는 사람이 아니에요, 혜수씨는.”


이 인터뷰를 하게 된 것 역시 혜수씨 덕분이다. 그는 ‘실패연대기’를 두고 “댓글까지 다 읽을 정도로 좋아하는 인터뷰 연재”라고 했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도 주제와 시기, 장소, 사진을 두고 여러 달에 걸쳐 상의하고 아이디어를 주고받았다. 오랜만에 그런 과정의 즐거움을 누린 건 온전히 그의 공이다. 그런데도 그는 “인터뷰하러 나오기 직전까지도 ‘이 코너에 나갈 만한 자격이 되는가’ 고민이 됐다”고 했다.


그는 ‘과연 난 어떤 연기자인가. 연기에 쏟아부은 이 시간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자문에 답을 찾는 데 실패했다고 했지만, 그 답은 이 인터뷰에 알알이 각인돼있을 듯하다. ‘배우 김혜수’의 의미는, ‘사람 김혜수’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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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말했다. “만약 배우를 하지 않았어도 난 재미있게 살았을 거예요. 좋은 사람들을 ‘gather together’(함께 모으다)하면서.” ⓒ강영호 사진작가

김지은 선임기자 luna@hankookilbo.com

2023.10.0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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