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몸살' 구례... 섬진강 거슬러 산사로 오르는 봄
<149> 구례 섬진강과 산수유마을
오산 정상 부근의 사성암에 오르면 구례 일대가 한눈에 조망된다. 섬진강과 지리산의 품이 넉넉하고 푸근하다. |
전남 구례에서 경남 하동으로 이어지는 19번 국도는 3월과 4월 주말마다 ‘꽃몸살’을 앓는다. 광양 매화마을에서 시작한 봄이 섬진강을 따라 북상한다. 강 양쪽 도로변에는 화사한 벚꽃이 흩날리고, 지리산 만복대 산자락에는 유채꽃이 만발한다. 봄나들이 나섰다가 자칫 교통지옥에 갇힐 수도 있지만, 차창 밖이 꿈결이니 그런대로 견딜 만하다. 강을 거슬러 오른 봄은 다시 산자락으로 번진다. 구례 지리산 골짜기에 각기 특색 있는 4개의 사찰이 있다. 봄나들이 인파를 피할 수는 없겠지만, 그나마 그윽하게 봄을 만끽할 수 있는 ‘천년 고찰’이다.
아픔의 역사 간직한 피아골 연곡사
하동에서 구례로 들어서면 오른편 산자락으로 깊은 계곡이 이어진다. 피아골이다. 구불구불한 도로는 연곡사를 지나 직전마을까지 연결된다. 해발 고도가 높지 않음에도 주변 산세가 가팔라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깊은 산중이다. 계곡 양편에 드문드문 마을이 자리 잡았고, 매화밭과 녹차밭이 산허리까지 이어져 선경으로 빠져드는 듯하다. 천천히 드라이브하는 것만으로 산중의 봄을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피아골은 ‘피밭골’에서 유래한 지명이라고 한다. 도로 끝 직전(稷田)마을은 식량이 부족하던 시절 피(기장)를 심어 굶주림을 면했다고 해서 붙은 지명이다. 그럼에도 어감에서 ‘핏빛’이 연상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조정래는 소설 ‘태백산맥’에서 "피아골의 단풍이 그리도 핏빛으로 고운 것은 먼 옛날부터 그 골짜기에서 수없이 죽어간 사람들의 원혼이 그렇게 피어나는 것"이라 풀이했다.
피아골 연곡사. 전란의 고비마다 소실돼 지금 건물은 모두 1980년 이후에 지은 것이다. |
연곡사 경내에 들어서면 '피아골순국위령비'가 유난히 도드라져 보인다. |
직전마을 바로 아래 연곡사는 바로 그런 절이다. 산문으로 들어서면 절 마당에 ‘피아골순국위령비’가 보인다. 정유재란(1597) 때는 수많은 백성과 승군이 왜군에 맞서 계곡이 핏물을 이룰 정도로 처절하게 싸웠고, 구한말에는 수백 명의 의병이 끝까지 무장투쟁을 벌이다 장렬히 전사했다. 대적광전 옆에 당시 의병장 고광순을 기리는 순절비가 세워져 있다. 또 6·25전쟁 때는 군인과 민간인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다 무수히 죽어간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런 난리통에 절간이 온전할 리 없다. 통일신라시대에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이라는 자랑에도 불구하고, 연곡사의 전각은 모두 1980년대 이후에 지은 건물이다. 그러나 석조물은 그대로 남아 천년 고찰을 증거하고 있다.
대적광전 뒤편으로 나가면 가파른 언덕을 한 바퀴 돌아오는 ‘연곡사 국보 순례길’이 있다. 국보로 지정된 동승탑과 북승탑, 보물로 지정된 소요대사탑, 삼층석탑, 현각선사비를 연결한 약 600m 산책로다. 동승탑은 일제강점기 때 도쿄대학으로 옮기기 위해 수개월 연구했지만 길이 험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절간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사천왕문 앞에 서면 백매화와 홍매화가 화사하게 피었다. 하늘거리는 꽃잎 너머로 아직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노고단 산줄기가 손에 잡힐 듯하다.
연곡사의 의병장 고광순 순절비. 국가보훈처가 지정한 현충시설이다. |
국보로 지정된 연곡사 동승탑. 절의 오래된 역사는 석조물로만 남아 있다. |
연곡사 마당에 핀 매화꽃 너머로 구름에 싸인 지리산 능선이 보인다. |
연곡사에서 다시 섬진강으로 내려와 구례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석주관성이 있다. 강변에 흐드러진 봄 향기에 취해 눈여겨보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사당 앞에 작은 주차장이 있어서 쉬어가기 좋다.
석주관성은 하동에서 구례로 들어서는 관문성이다. 고려 말에 섬진강을 통해 내륙으로 침범하는 적을 막기 위해 축조했다. 조선시대 때는 구례 의병이 전라도로 침입하는 왜적과 싸우다 순절한 역사적 현장이다. 정유재란 당시 수만 명의 왜병이 들이닥치자 구례의 선비 왕득인이 의병을 모아 대적했으나 전사했다. 아들 왕의성을 비롯해 이정익·한호성·양응록·고정철·오종 등이 다시 의병을 모으고 화엄사 승병과 함께 길목을 차단하고 혈전을 벌였지만 모두 전사하고 말았다. 조정에서는 1805년(순조 5) 당시 구례현감 이원춘과 7인의 의사에게 관직을 추증했다. 칠의각과 영모정 맞은편 산자락에 이들의 묘소와 추념비가 세워져 있다. 묘소에서 내려다보는 섬진강은 변함이 없는데, 봄나들이 차량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구례의 일곱 의병장의 뜻을 기리기 위한 석주관성 칠의각. |
하동에서 구례로 올라오는 길목의 석주관성. 대부분 존재를 모르고 지나친다. |
섬진강과 지리산을 한눈에 품은 사성암
여기서 섬진강을 거슬러올라 문척면에 닿으면 오산(530m) 정상 부근에 사성암이 있다. 2020년 8월 섬진강 범람으로 구례 일대가 물에 잠겼을 때 산 아래 우사를 탈출한 소들이 피신한 곳으로 알려진 이후, 최근에는 전망 좋은 사찰로 더 유명해졌다.
백제 성왕 22년(544)에 창건했다니 의외로 역사가 깊다. 산 이름과 같은 ‘오산암’이었다가 의상·원효·도선·진각 스님이 수도한 곳이라 해서 사성암(四聖巖)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지역에서는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주는 사찰로 대접받는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국가고시에 합격한 구례의 인재들이 꼭 이 절에 들러 감사를 표했고, 신임 군수도 초심을 잃지 않겠노라 다짐을 했다고 한다.
사성암에서는 구례 일대가 한눈에 조망된다. |
바위 절벽에 매달아 놓은 듯한 사성암 약사전. |
사성암 약사전 안에 들어가면 불전에 마애여래입상이 위치하고 있다. |
사성암의 전각들은 험준한 바위에 매달리거나 숨바꼭질하듯 들어앉았다. 특히 20m 암벽 중턱의 약사전이 눈에 띈다. 지그재그로 계단을 올라 법당으로 들어서면 정면 유리벽 너머로 마애여래입상이 선명하다. 바위에 새긴 불상 높이에 맞춰 법당을 세웠다. 바위 틈에 세운 다른 전각들도 계단과 미로로 연결돼 있어 독특하지만, 시선은 자연스럽게 바깥으로 향한다. 발아래로 섬진강이 휘감아 돌고, 주변의 넓은 들판을 지리산 줄기가 장엄하게 감싸고 있다. 거대한 항아리를 세로로 절단해 뉘어 놓은 것처럼 웅장하면서도 푸근하다. 오산 정상에 오르면 지리산 넓은 품에 풍덩 빠질 듯하다. 사찰 뒤편으로 난 가파른 길을 따라 조금만 오르면 된다.
사성암에서 본 구례 풍광. 정면 산자락 아래에 산수유마을이 있다. |
사성암 뒤편 오산 정상에 오르면 하동 방향으로 흐르는 섬진강과 지리산 능선이 웅장하게 펼쳐진다. |
사성암 턱밑까지 차로 갈 수 있지만 주차장이 넓지 않다. 관광객이 붐비는 철에는 산 아래 강변에 있는 무료 주차장에서 수시 운행하는 셔틀버스(왕복 3,400원)를 이용하는 것이 낫다.
홍매화 향기 화엄사, 수수한 마음 쉼터 천은사
구례의 대표 사찰은 누가 뭐래도 화엄사다. 대한불교조계종 19교구 본사로, 구례뿐만 아니라 인근 남원 곡성 순천을 비롯한 전국 47개 사찰과 암자를 말사로 거느린 대찰이다. 연중 불자와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지만, 특히 3월에는 전국에서 사진작가들이 몰려든다. 주변은 무채색인데 홀로 붉은 꽃송이를 피워내는 홍매화 한 그루 때문이다.
주차장에서 불이문을 거쳐 금강문과 천왕문에 이르기까지 일직선 대로는 조금 당혹스럽다. 거대한 화강석으로 짜맞춘 바닥이며 석물에서 천년 고찰의 그윽함보다는 돈 많은 사찰의 위세가 느껴진다.
이른 봄 홍매화 한 그루가 여행객을 화엄사로 불러들인다. 18일 모습으로 가지 끝부터 꽃이 피고 있다. |
화엄사 각황전 옆 홍매화. 18일 모습으로 가지 끝부터 꽃이 피고 있다. |
보제루를 통과하면 그제야 국보 5점과 보물 8점을 보유한 고찰의 품위가 보인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물은 각황전이다. 조선 숙종 25년(1699)부터 약 4년에 걸쳐 지은 건물이다. 정면 7칸, 측면 5칸의 2층 팔작지붕 건물이 단청이 없어도 화려하고 웅장하다.
바로 옆에 각황전 중건 때 심은 홍매화가 있다. 각황전의 옛 이름을 따 장육매라고도 부른다. 휘어진 줄기, 늘어진 가지가 한 폭의 동양화다. 고매한 수형에 붉은 꽃송이가 곱고도 기품이 넘친다. 관람객마다 휴대폰 카메라를 켜고 사진 찍기에 바쁘다. 사찰에서는 아예 사진이 가장 잘 나오는 각황전 뒤편에 촬영대를 설치했다. 수많은 사진공모전에서 화엄사 홍매화가 빠지지 않는 이유다.
꽃 구경이 주된 목적이라도 문화재 관람료 4,000원을 냈으니, 각황전 뒤편 ‘사사자 삼층석탑’은 꼭 보길 권한다. 7년의 보수 끝에 지난해 9월 다시 공개된 국보다. 3층 기단에 사자 네 마리가 탑신을 떠받치고 있고, 가운데에 합장하고 선 인물이 조각돼 있다. 바로 앞에는 무릎을 꿇은 스님상이 조각된 석등이 마주보고 있다. 2개 석물이 쌍을 이루는 구조다. 석등 앞뒤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가지를 늘어뜨려 운치를 더한다. 바로 아래 각황전 지붕이 더욱 웅장하게 보인다.
7년의 보수 끝에 지난해 공개한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각황전 바로 위편 언덕에 있다. |
천은사 앞 저수지에 구름 낀 지리산 자락이 비치고 있다. 저수지 주변으로 탐방로가 잘 정비돼 있다. |
인근 천은사는 화엄사나 사성암에 비하면 한결 고즈넉하다. 솔숲이 호위하는 일주문을 지나면 물소리 청아한 계곡을 따라 전각이 층층이 자리 잡고 있다. 계곡물은 사찰 바로 아래 저수지에 고여 지리산 능선을 고스란히 담는다. 저수지 주변으로 탐방로가 잘 다듬어져 있어 가볍게 산책하기 좋다. 천은사는 한때 성삼재로 가는 도로에 매표소를 설치해 통행료 징수 아니냐는 비난을 샀지만 지금은 매표소도 사라지고 입장료도 받지 않는다.
18일 구례 산동면 산수유마을 꼭대기 상위마을이 노랗게 물들어 있다. |
18일 상위마을 돌담길에 산수유가 화사하게 피었다. |
구례 산수유마을의 반곡마을엔 계곡을 따라 산책로를 조성해 놓았다. |
반곡마을 산수유 뒤로 지리산 만복대 능선이 겹쳐진다. |
계척마을 산수유시목지. 약 1,000년 전 중국 산둥성에서 시집 온 여인이 심었다고 한다. |
저수지를 끼고 있는 현천마을. 비교적 조용하게 꽃 구경을 즐길 수 있다. |
구례 여행 지도. 그래픽=강준구 기자 |
천은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산동면 산수유마을이 있다. 암반 위로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반곡마을, 산수유와 돌담길이 어우러진 상위마을과 하위마을이 중심이다. 지난 주말 절정이었으니 색깔이 조금씩 연해지겠지만 이번 주말까지는 샛노란 봄 정취를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한철 꽃구경이니 차량 정체는 각오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덜 붐비는 곳을 찾는다면 계척마을 산수유시목지나 저수지 반영이 아름다운 현천마을을 권한다.
구례=글·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