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먼저 그림 속으로 들어가네”… 퇴계 이황의 청량산 가는 길

안동 예던길과 주변 여행지

한국일보

경북 안동 도산면 단천리의 예던길 전망대. 퇴계는 청량산을 오가며 강변으로 이어지는 이 길을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라 극찬했다. 아쉽게도 이곳부터 길은 강변이 아니라 산으로 연결된다.

“산봉우리 봉긋봉긋 물소리 졸졸, 새벽 여명 걷히고 해가 솟아오르네.

강가에서 기다리나 임은 오지 않아, 내 먼저 고삐 잡고 그림 속으로 들어가네.”

퇴계 이황(1501~1570)이 이웃하며 살던 친구이자 조선 중기의 문인 이문량(1498~1581)에게 썼다는 글이다. 요즘으로 치면 휴대전화 문자쯤 될 텐데, 동행하기로 한 길동무가 약속한 시간에 나타나지 않아 먼저 간다는 메모를 멋들어진 한시로 남겼다. 퇴계가 ‘그림 속’이라 표현한 곳은 그가 살던 경북 안동 도산면 온혜리에서 봉화 청량산으로 가는 길이다. 깎아지른 산줄기와 낙동강 물줄기가 어우러져 수묵담채화처럼 그윽한 곳이다.

한국일보

안동호 상류와 예던길 주변 여행 지도. 그래픽=김문중 선임기자

예던길 끊겨도 옛 정취는 그대로

퇴계는 13세 때 숙부인 이우를 따라 고향 집(온계종택)에서 청량산 기슭의 청량정사까지 낙동강변 50리 오솔길을 걸어 다녔다. 청량정사는 현재 청량사 사찰 내에 위치한 정자 겸 글방이다. 이우는 청량정사를 건립하고 조카인 이해와 이황, 사위인 조효연, 오언의 등을 가르쳤다. 그의 뒤를 이어 퇴계는 이곳을 수없이 오가며 성리학을 연구하고 김성일, 유성룡, 정구 등 많은 후학을 양성했다. 65세에 저술한 연시조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도 이 길에서 탄생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안동시는 퇴계가 오가던 강변 오솔길을 정비해 ‘예던길’이라 이름 붙였다.

한국일보

단천교 아래 시린 강물에서 주민들이 물고기를 잡고 있다.

한국일보

안동 예던길 위 산자락에 집 한 채가 외로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일보

예던길 전망대에서 본 청량산과 낙동강 물길. 퇴계는 친구에게 남긴 글에서 이 풍광을 '그림 속으로 들어가네'라고 읊었다.

'고인(古人)도 날 몯 보고 나도 고인 몯 뵈 / 고인을 몯 뵈도 녀던 길 알패 잇나니 / 녀던 길 알패 잇거든 아니 녀고 엇덜고.' 도산십이곡 중 아홉 번째 노래다. 현대어로 고쳐 쓰면 ‘옛 성현도 나를 보질 못했고 나도 옛 성현을 뵙지 못했네 / 고인을 뵙지 못했어도 그분들이 행하던 길이 내 앞에 있네 / 그 가던 길이 앞에 있으니 나 또한 아니 가고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 길은 풍광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퇴계가 옛 성현의 말씀을 되새기고 진리를 탐구하던 사색의 길이었다. 이를테면 철학자의 길이다. 예던길은 ‘가다’의 예스런 표현인 ‘예다’에서 따왔다. 도산십이곡의 ‘녀던 길’이다.


예던길은 안동호 상류 단천교에서 시작한다. 강 왼편으로 물길을 거슬러 오르며 포장도로가 이어진다. 그러나 약 1.5km 지점에서 도로는 끝이 나고 탐방로는 건지산(557m) 등산로로 연결된다. 퇴계가 걸었던 강변을 버리고 산으로 오른다. 일부 구간이 사유지여서 우회로를 텄는데 물길에서 멀어지니 옛 정취도 그만큼 퇴색된다. 키 큰 미루나무 아래에 억새와 갈대가 일렁거리는 강변길을 눈으로만 봐야 하니 아쉬움이 크다.


대신 도로가 끝나는 곳에 전망대가 세워져 있다. 정면으로 보면 양편 가파른 산자락 사이에 낙동강이 푸른 물을 머금고 흐른다. 바로 아래에 흐르는 물소리가 겨울바람처럼 청량하다. 천천히 고개를 들면 강줄기는 가뭇하게 사라지고 청량산 바위봉우리가 우람한 자태로 시야를 가로막고 있다.


청량산은 최고봉인 장인봉을 비롯해 선학봉 축융봉 금탑봉 연적봉 등 12개의 고봉이 절경을 이뤄 일찍이 소금강으로 불렸다. 퇴계의 청량정사뿐만 아니라 통일신라시대 서예가 김생이 머물렀다는 김생굴, 원효대사의 전설이 깃든 원효정(井), 최치원이 수도한 풍형대,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머무르며 쌓았다는 청량산성 등 수많은 유적을 품고 있다.


육중한 바위 군상이 기기묘묘하게 어우러진 청량산은 먼발치에서 봐도 멋스럽고 기품이 넘친다. 예던길 전망대에서 보면 우뚝 솟은 봉우리가 웅장하면서도 부드럽다. 가파르지만 모나지 않고, 높지만 위압적이지 않다. 황갈색 겨울 산과 시리도록 푸른 낙동강 물줄기가 선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퇴계가 ‘그림’이라 표현했던 모습 그대로다. 겨울이 이럴진대 꽃피는 봄과 여름이며 단풍으로 물든 가을날의 풍경이 얼마나 곱고 화려할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퇴계가 다니던 강변길이 막히자 안동시는 대안으로 강 맞은편 산기슭에 새로 덱 탐방로를 개설했다. ‘꿩 대신 닭’인 셈인데, 현장 안내판을 보고 갔지만 덱 탐방로는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지난여름 폭우 때 모두 유실됐기 때문이다. 돌아서기 아쉬우면 도로 끝에서 연결된 임도를 따라 걸어볼 수 있지만 그윽한 강 풍경을 즐기기는 어렵다.

예던길 상류 고산정과 농암종택

막히고 끊긴 예던길의 정취를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는 곳은 강 상류 농암종택과 고산정 부근이다. 예던길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면 단천교에서 농암종택까지 약 4km만 걸으면 되지만, 찻길로는 18km나 떨어져 있다. 퇴계가 태어난 곳, 태계태실(온계종택)이 있는 온혜리로 되돌아 나와 35번 국도로 봉화 쪽으로 올라가다 가송리로 빠지는 길로 에두르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예던길 가는 길목에 위치한 진성 이씨 퇴계종택.

한국일보

안동 도산면 원천리 이육사문학관에 그의 흉상이 전시돼 있다.

온계종택의 공식 명칭은 ‘안동 진성이씨 온혜파 종택’이다. 1454년 이황의 조부 이계양이 세운 건물로, 퇴계는 이 집 몸채 중앙에 돌출된 방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퇴계태실로 부르는 이유다. 단천교에서 온혜리로 돌아 나오는 길에는 퇴계 묘소와 퇴계종택도 이웃하고 있다. 원래 있던 종택은 1907년 일본군의 방화로 모두 타 버렸고, 퇴계의 13대손 이충호가 1929년에 다시 지었다.


퇴계 묘소에서 고갯마루 너머 원천리는 일제강점기 저항 시인 이육사의 고향이다. 마을 어귀에 이육사문학관이 있고, 그 앞으로 산골에서 보기 드문 넓은 벌판이 펼쳐진다. 그의 대표작 ‘광야’에서 흔히 독립운동의 주무대였던 만주벌판을 떠올리지만, 실제 '광야'는 원천리 들판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육사 역시 퇴계의 진성 이씨 후손이다.


가송리로 이동해 예던길을 되짚는다. 농암종택에서 물길을 따라 내려가며 희미해진 옛길 일부를 다듬어 놓았다. 강과 나란히 내려가는 약 1km 길이다. 도산의 시에 등장하는 학소대(鶴巢臺)와 경암(景巖)이 보인다. 학소대는 물길이 크게 휘어지는 바깥에 수직으로 솟은 암벽이다. 일대는 천연기념물 먹황새 서식지다. 가로 줄무늬 퇴적층이 선명한 절벽에 학까지 날아들었으니 ‘학소대’라는 이름과 꼭 어울린다. 경암은 위가 상처럼 네모지게 평평한 바위다. 바위보다 그 위에 앉아 바라보는 경치가 그만일 듯하다. 바위 주위로 옥색 강물이 흐른다. 물소리는 청량하게 여울지고, 수면에 떨어진 겨울 햇살이 눈부시게 반짝거린다.

한국일보

가송리 농암종택에서 물길을 따라 내려가며 예던길 일부를 정비해 놓았다.

한국일보

예던길에서 보는 낙동강. 물결 문양의 새 모래톱이 형성되고 있다.

한국일보

가송리 농암종택에서 물길을 따라 내려가며 예던길 일부를 정비해 놓았다.

호텔스 컴바인 배너 이미지1

길은 정자 하나 세워놓은 곳에서 가파른 계단을 따라 산으로 오른다. 바로 아래에 ‘공룡발자국’ 이정표가 있어 물가로 내려갔다. 반질반질하게 닳은 바위 표면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구멍이 무수히 이어진다. 모두가 공룡발자국이라면 국내에서 손꼽히는 규모일 텐데, 이정표 외에 더 이상의 설명이 없으니 진짜인지 비유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도산십이곡을 비롯해 퇴계의 글에 등장하는 지명을 일일이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래서일까 길이 끊어지는 예던길 전망대에 ‘백운동’ ‘경암’ ‘미천장담’ 세 수의 시비가 한꺼번에 세워져 있다. 미천장담(彌川長潭)은 퇴계가 어릴 적 낚시하던 곳을 30년이 지나 다시 방문한 소회를 읊었다. 옛 시내와 산 모습을 나는 알아볼 수 있는데, 자연은 늙은 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거라는 내용이다. 수백 년 세월에도 강줄기는 옛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듯한데, 복구한 예던길이 다시 사라졌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국일보

예던길 낙동강변의 공룡발자국. 팻말만 있고 설명이 없어 진짜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한국일보

가송리 농암종택 뒤로 학소대 절벽이 보인다.

한국일보

낙동강 물길이 농암종택을 감싸고 돌고 있다.

한국일보

농암종택 부근 강변에 갈대가 햇살을 가득 품고 있다.

한국일보

농암종택은 현재 고택민박으로 운영되고 있다.

농암종택은 조선 중종 때의 문신 이현보(1467~1555)가 나고 자란 집으로, 영천 이씨 안동입향조이자 그의 고조부 이헌이 처음 지었다. 애초 도산서원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수몰될 것을 후손들이 농암을 기리기 위해 세운 분강서원과 함께 이곳으로 옮겼다. 낙동강이 휘감는 여울 안쪽에 위치해 주변에 학소대를 비롯해 한속담(寒粟潭), 벽력암(霹靂巖) 등의 수직단애가 절경을 빚고 있다. 고르고 골라 이렇게 풍광이 뛰어난 곳으로 이전했으니 후손의 혜안 또한 남다르다. 현재 고택민박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일보

가송리 낙동강변 바위 절벽 옆에 자리 잡은 고산정. 요즘은 '미스터션샤인' 촬영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한국일보

고산정 소나무 가지 아래로 옥색 물이 흐르고 있다.

한국일보

여행객이 고산정 부근 갈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일보

고산정 부근 낙동강변에 갈대와 억새가 어우러져 있다.

단천교에서 시작한 예던길은 농암종택 상류 가송리의 고산정에서 끝이 난다. 고산정은 조선 전기 문신 금난수가 지은 정자로 물길이 좁아지는 수직단애 아래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았다. 건물 자체는 소박하지만 바로 아래에 옥색 강물이 잠시 머물렀다 흐르고, 맞은편에는 퇴적암층이 또 그림처럼 솟아 있다. 강가에는 새하얗게 피어난 갈대와 억새가 눈부시고, 마당에 뿌리 내린 소나무가 멋들어지게 개울로 가지를 드리우고 있다. 경치를 빌려온다는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정자다. 산골짜기에서 하릴없이 늙어가던 정자는 2018년 드라마 ‘미스터션샤인’ 배경으로 등장한 이후 찾는 이들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예던길 주변은 안동에서도 외진 산골이라 숙소와 식당이 많지 않다. 도산서원 인근 안동호반자연휴양림에 묵으면 예끼마을까지 호수 위로 이어진 ‘선성수상길’을 걸을 수 있다. 특히 해 질 녘 일몰 풍광이 일품이다. 수몰민들이 이주해 형성한 예끼마을에 식당이 다수 있다.

한국일보

안동호반자연휴양림에서 예끼마을까지 '선성수상길' 덱이 연결돼 있다. 안동호로 떨어지는 일몰이 아름다운 곳이다.

한국일보

안동호반 산자락에 자리 잡은 한국문화테마파크.

한국일보

한국문화테마파크 선비체험관 마당에 오색 천이 하늘거리고 있다.

한국일보

한국문화테마파크의 의병체험장. 전통 무기와 현대식 게임을 접목한 체험 시설이다.

휴양림 바로 옆에 한국문화테마파크가 있다. 전통복장을 대여해주는 선비숙녀변신방과 선비체험관, 임진왜란 전투를 게임 형식으로 즐기는 의병체험관, 야외 모험시설(어드벤처)과 저잣거리 등을 갖추고 있다. 전통문화를 두루 담고자 하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테마파크의 성격은 '한국문화'라는 명칭만큼이나 모호하다.


글·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호텔스 컴바인 배너 이미지2
2023.12.05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이런 분야는 어때요?
ESTaid footer image

© ESTaid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