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생선장사 밤엔 영화공부... 한국형 판타지 새 역사 쓰다

[컬처]by 한국일보

특수효과 기술까지 발전시킨 흥행 감독 김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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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화 감독은 충무로의 대표적인 흥행사인 동시에 국내 특수효과 분야의 선두주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유년 시절의 김용화 감독은 스포츠 소년이었다. 중풍으로 다리를 절면서도 극장을 즐겨 찾던 아버지를 따라 춘천의 신도극장, 육림극장을 드나들면서 ‘벤허’(1959), ‘셰인’(1953),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 ‘무기여 잘 있거라’(1957) 등을 접했지만, 초등학생 때 삼미 슈퍼스타즈의 어린이 회원이자 두산 베어스의 팬이었고, 중학교 시절에는 태권도 선수로 제15회 전국소년체전에 강원도 대표로 나가 은메달을 획득할 정도의 실력자였다. 영화와 스포츠라는 성장기의 관심사는 훗날 영화감독으로서 ‘국가대표’(2009)와 ‘미스터 고’(2013)의 메가폰을 쥐는 걸로 이어진다. ‘국가대표’에서 칠구(김지석)가 봉구(이재응)의 뺨을 때리는 장면은 전국체전 결승전에서 상대 선수에게 한 대 맞고 들어오자 코치에게 다짜고짜 뺨을 맞았던 기억을 투영한 장면이었다고 한다.

인생을 바꾼 한 장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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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화 감독의 데뷔작 '오! 브라더스'. 조로증에 걸린 동생과 배다른 형의 사연을 코믹하게 그려냈다. 쇼박스 제공

태릉선수촌 입촌을 꿈꾸던 유망주였지만 점점 “시합 나가서 몇 분 만에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하는 운동이 벅찼고 허무”(씨네 21 2003년 2월 14일자)해졌던 그는 춘천고에 진학해서는 스포츠에 흥미를 잃었다. 인근 미군기지에서 흘러나온 도색잡지 뭉치를 뒤져보는 걸로 친구들과 소일하던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영화가 다시 찾아왔다.


영화잡지의 표지에는 수염투성이의 덩치 큰 남자가 헬리콥터에 탄 채 카메라 뷰파인더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지옥의 묵시록’(1979)을 촬영 중이던 거장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모습이었다. “흰 수염이 덥수룩한데 무척 멋있는 거예요. 그 나이에 에너지 넘치게 살며 대우도 받는 직업으론 감독이 딱이겠다 싶었죠.”(한겨례신문 2006년 12월 11일자) 막연히 '슈퍼마켓 주인으로 살면 행복하겠다' 생각했던 그가 영화를 지망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꼴찌를 면치 못하던 성적을 각고의 노력 끝에 전교 5등까지 끌어올린 김 감독은 서울대 체대를 넣어보라는 학교의 기대를 등지고 1991년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한다. ‘내부자들’(2015)의 우민호 감독이 입학 동기였다고 한다. 학교 분위기에 융화되지 못한 그는 보컬그룹에 들어가 공연활동에 열중했는데, 영화 대신 콘서트 감독으로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품었던 이때의 경험이 나중에 ‘미녀는 괴로워’(2006)에 부분적으로 반영된다.


그러나 부모님의 병환과 빚을 떠안게 된 형편에 꿈을 고집할 수 없었던 그는 1년만에 휴학계를 내고 생업 전선에 뛰어든다. 1년 일해서 번 돈으로 생활비와 치료비를 충당하고, 1년 복학했다가 다시 휴학하길 반복하는 세월이 28세 때까지 계속되었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서 영화 만드는 법을 그때 터득한 것 같다”고 김 감독은 술회한다.

어려운 집안 형편… 생선 장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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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화 감독은 영화 '미녀는 괴로워'을 연출할 때 김아중(오른쪽)을 실제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꾸는 특수효과 기술을 접하며 이 부분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된다. 쇼박스 제공

“그때 인생 공부와 영화 공부를 가장 많이 하지 않았나 싶어요. 낮엔 생선장사하고 밤엔 비디오를 빌려 보면서 혼자 엄청난 양의 영화를 봤죠. 생선 장사라는 게 앞으로 남아도 뒤로 밑지는데, 하루에 30만원어치를 팔아도 생선이 남으면 그 돈이 다 까이는 거예요. 그때는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재미있기도 했어요. 사기꾼이란 사기꾼은 다 만났고 정말 거칠고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났어요. 삶의 치열한 현장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며 세상에 대한 이해와 인간에 대한 이해가 생겼어요.”(조선일보 2013년 8월 16일자)


목욕탕에 면도기를 팔고 고등어 500마리의 배를 가르는가 하면, 생선 트럭을 몰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틈틈이 중환자실에 투병 중인 어머니를 간병하는 나날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실에서 곁을 지키던 그에게 어머니는 말했다. “산소호흡기를 떼달라.” 무너질 것 같은 마음을 애써 추스르고 불운과 악재를 이 악물고 버텨내야 했던 고난의 전반생은 이후 과도한 신파성을 지적받는 그의 영화 세계 이면에 깊숙이 배어들게 된다.


‘국가대표’에서 형 칠구의 군 입대를 막기 위해 봉구가 병무청에 편지를 쓰는 대목은 태권도 선수 경력 탓에 특수부대에 차출될 뻔 한 상황에서 어머니 간병을 위해 병무청에 편지를 써야 했던 본인의 실화였고, ‘신과 함께 – 죄와 벌’(2017)의 주인공 김자홍(차태현) 역시 감독의 가족사와 접목해 각색된 캐릭터였다.


1998년 김 감독은 생선가게 도매상을 접고 영화학과에 복학한다. 그의 첫 연출작은 수산시장 고등어 도매상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어머니의 병원비를 구하느라 애쓰는 청춘을 그린 자전적 단편영화 ‘자반고등어’(1999)였다. 제작비를 구할 방도가 막막했지만, 그의 사연이 강원일보를 통해 알려지면서 고향 동문회에서 모금한 지원금을 받아 완성하게 된다.


‘자반고등어’는 2000년 제42회 로체스터 국제영화제 대상에 제1회 대한민국영상대전 우수상, 제33회 휴스턴국제영화제 동상 등을 수상하며 각광 받았고, 김 감독 또한 주목할 만한 신인으로 영화계의 이목을 끌게 된다. 긴 터널을 통과한 그의 인생에 서광이 비치고 있었다.


‘아름다운 시절’(1998)의 감독이자 영화사 백두대간의 대표였던 이광모 감독에게 발탁된 김용화는 상업영화 데뷔작으로 ‘오르페우스’를 준비한다. ‘트루 로맨스’(1993)와 ‘세븐’(1995)의 영향을 받은 스릴러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이었지만 나서는 배우가 없어 엎어졌고, 데뷔작은 밝고 따뜻한 영화가 좋다는 김용운 매쉬필름 대표의 조언에 따라 방향을 틀게 되었다.


코폴라 감독의 ‘잭’(1996)에서 조로증의 모티브를 얻은 그는 흥신소 직원인 형과 신체가 빨리 늙는 조로증 환자인 동생의 형제애를 그린 휴먼 코미디를 구상했다. ‘빌리브’라는 가제로 출발한 영화는 일반관객 모니터링을 거친 끝에 ‘오! 브라더스’(2003)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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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는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의 고군분투를 다룬 영화로 컴퓨터그래픽 기술을 통해 스키점프의 쾌감을 빚어냈다. 쇼박스 제공

320만의 준수한 흥행으로 화려한 출발을 알린 김 감독은 여세를 몰아 ‘오! 브라더스’ 이전부터 각본을 준비했던 ‘미녀는 괴로워’에 착수한다. 일본 만화가 스즈키 유미코의 동명 만화에서 뚱뚱한 여성이 성형수술을 통해 미녀로 바뀐다는 설정만 취했을 뿐, 내용은 여자 가수지망생의 실화를 토대로 완전히 뜯어고쳤고, 드라마 ‘별난 여자 별난 남자’를 보면서 주목했던 신인 김아중을 주연으로 낙점했다.


본래 가수 데뷔를 준비하다가 연기자로 진로를 틀었던 김아중은 노래 실력까지 요구되는 한나 역을 훌륭히 소화했고, ‘미녀는 괴로워’는 로맨틱 코미디물로서는 역대급인 흥행 성적(660만명)을 거둔다.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이 겪은 실화에 ‘쿨 러닝’(1993)의 구성을 엮은 ‘국가대표’ 또한 803만명의 성적을 내면서 흥행사 김 감독의 입지는 확고해진다.

특수효과의 개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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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스터 고릴라'는 고릴라의 털 한올까지 세부 묘사하는 빼어난 기술력을 보이지만 김용화 감독에게 첫 흥행 실패라는 쓰라린 경험을 안긴다.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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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신과 함께: 죄와 벌'은 상상 속 지옥의 여러 풍경을 국내 VFX기술을 통해 구현해낸다. 롯데컬처웍스 제공

‘미녀는 괴로워’에서 성형 이전 한나 역의 분장을 위해 ‘스파이더맨’(2002), ‘엑스맨 – 최후의 전쟁’(2006)의 특수분장 담당자 크리스 콥지나의 팀을 기용하는 등 특수효과에 공을 들인 김용화는 이후 이 분야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국가대표’에서의 시합 장면은 독일의 오버스트도르프 스키점프 월드컵 대회를 촬영한 영상에 배우의 연기를 합성하고, 3D 렌더링으로 눈을 비롯한 날씨효과를 덧입혀서 완성했는데,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서 개발한 국산 기술을 활용한 결과였다. ‘미스터 고’의 컴퓨터 그래픽을 위해 할리우드를 찾은 김 감독은 디지털 고릴라를 만드는 데만 500억~800억원이 필요하다는 업체의 요구에 마음을 돌려 국산 자체 기술의 개발을 추진한다.


사재를 털어 2011년 덱스터 디지털(덱스터 스튜디오의 전신)을 설립한 그는 봉준호의 ‘괴물’(2006)에서 시각효과를 맡았던 전문가 정성진을 비롯, 한국의 1세대 시각특수효과(VFX) 슈퍼바이저들을 끌어들여 125억원에 디지털 고릴라를 구현하는데 성공한다.


조지 루카스의 ILM, 피터 잭슨의 웨타 디지털, 제임스 카메론의 디지털 도메인에 버금가는 회사를 만들자는 야심찬 행보였다. 순제작비만 225억원을 쏟아 부은 ‘미스터 고’는 손익분기점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흥행참패로 오점을 남겼지만, 이 값비싼 실험은 전화위복이 되었다.


덱스터 스튜디오는 중국영화계의 투자를 받으며 컴퓨터그래픽(CG) 노하우를 다져나갔다. 덱스터 스튜디오가 가상세계를 구현하기에 충분한 수준의 기술에 도달했다 판단한 김 감독은 한국 영화사상 유례없는 VFX 판타지 영화의 제작에 들어간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2부작 ‘신과 함께 – 죄와 벌’과 ’신과 함께 – 인과 연’(2018)은 모두 1,000만 관객을 넘기는 불후의 흥행 신화를 쓰게 되었다.


조재휘 영화평론가

2020.05.1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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