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살리라고 후원했는데, 죽였다
[애니북스토리]
지난 주말은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동물을 살리라고 후원을 했는데 죽이다니. 참담함, 배신감, 떠난 동물에 대한 미안함이 뒤섞였다. 국내 3대 동물단체 중 하나인 케어의 대표가 단체에서 운영하는 보호소의 개들을 살처분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4년 동안 230여 마리. 이 단체는 지자체 보호소의 살처분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했고, 단체 보호소에서 살처분은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몇 년 전 출판사 이벤트로 모은 사료를 이 단체 보호소에 전달했다. 관심이 없는 아이들 위주로 살처분을 했다는데 그때 만난 환한 미소의 믹스견 아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개들을 살처분했다는 의혹을 받는 케어 박소연 대표. 연합뉴스 |
동물단체에서 활동했거나 활동 중인 활동가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단체 운영에 대한 우려가 컸다. 대표 개인의 독단적인 단체 운영과 개별 활동가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비민주적인 의사 결정 구조, 투명하지 못한 재정 흐름 등 문제점은 한둘이 아니었다. 문제를 제기해도 시정이 되지 않으니 역량 있는 활동가들이 단체를 나오고 악순환은 반복됐다. 그래서 터질 게 터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용이 보호소 아이들의 살처분이라니. 돈 문제라면 이렇게 참담하지 않을 것이다.
2000년대 초반에 태동한 동물단체들은 반려인구가 늘고 동물 문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짧은 기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다른 분야 시민단체 활동가를 만났을 때 동물보호 운동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후원이 부럽다고 했을 정도다. 늘어난 관심만큼 회원과 후원금이 늘어서 예산도 증가했다.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조직 운영을 하고 있지 못하다. 이번 사건만 해도 단체 정체성에 반하는 행위가 조직원은 모른 채 몇몇 사람들의 ‘깜깜이 결정’으로 가능했다.
공간을 만들기 위해 멀쩡한 동물을 죽인 건 살처분과 다름없다. 픽스허 |
먼저 성장했던 다른 분야의 시민단체들이 대표의 공금 횡령, 조직 내 폭력 등으로 길을 잃었는데 그 뒤를 이을 셈인가. 일이 불거지자 케어는 안락사 사실을 시인하며 안락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제안했다. 찬성이다. 보호소의 안락사 논의는 필요하다.
하지만 케어가 한 것은 안락사가 아니라 살처분이다. 죽음보다 더 힘든 고통을 끊기 위한 안락사가 아니라 공간을 만들기 위해 멀쩡하게 살아있는 생명을 죽인 살처분. 2017년 지자체가 운영하는 보호소 통계를 보면 살처분 20.2%, 자연사 27.1%이다. 매년 10만 마리 정도의 유기견이 발생하는데 반은 보호소에서 죽는다는 의미다. 하지만 살처분 비율이 부담스러운 보호소가 치료하지 않은 채 고통스럽게 죽도록 두는 게 자연사라면 자연사는 살처분보다 더 나쁜 죽음이다. 그래서 보호소 안락사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는 필요하다.
나는 어떤 일에도 자격을 따지는 걸 싫어하지만 이 순간 케어가 이 논의를 제안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염치가 없다.
인간 동물학에 관한 책 <동물은 인간에게 무엇인가>에 보면 보호소 종사자들에 대한 분석이 나온다. 보호소 종사자들은 자신이 사회의 다른 사람들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고, 문제를 만드는 것은 사회지만 자신들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용기 있는 소수의 집단이라고 인식한다고. 이런 생각으로 임해야 강아지 공장, 식용견 농장 등 지옥 같은 현장에서 스스로를 다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주둥이 염색 운운하며 안락사 후 조작, 은폐를 도모하는 내용 중 어디에도 일말의 도덕성을 찾을 수 없다.
이 일이 한 사람을 악마화하는 걸로 끝나서는 안 된다. 케어 대표의 감성 마케팅을 거론하는데 이걸 가능하게 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너무나 감성적으로 동물 문제를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한국의 동물판에서 독일의 티어하임은 단어 자체로 이미 완결성을 부여 받았는데 그걸 가능케 하는 게 보호소 종사자들의 도덕성인가? 개도 고양이도 웃을 일이다.
단체가 정비되는 동안에도 보호소의 아이들을 먹이고 돌봐야 할 테니. 후원은 계속하겠습니다. 연합뉴스 |
정부는 반려동물에 대한 전수 조사 자료가 없고, 반려동물 등록제는 있으나마나다. 측정되지 않았는데 무슨 제도를 만들까. 지금도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은 누군가의 집에서는 개, 고양이가 태어나고,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서도 개, 고양이가 팔리고, 강아지 공장에서는 시체처럼 누운 모견이 새끼를 생산해 내고, 개 농장의 개들은 짬밥만 먹어서 물 먹는 법도 모른 채 산다. 반려동물 전수 조사, 강력한 생산·판매 규제, 중성화 수술에 대한 인식 확산, 유기동물 입양 활성화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지 않는 한 이번과 같은 일은 되풀이될 것이다. 불행하게 사는 동물이 천지인데 정부가 손을 놓고 있으니 누군가 그들을 데려다가 (간혹 살처분한다는 말은 하지 않겠지만) 목숨만은 살리겠다고 하면, 죽음을 면했으니 다행이라고 사람들은 또 후원할 테니까. 나는 케어의 후원을 끊지 않았다. 단체가 정비되는 동안에도 보호소의 아이들을 먹이고 돌봐야 할 테니.
김보경 책공장 더불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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