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시피보다 중요한건 바로 ‘온도’… 숫자로 하는 요리

[이용재의 세심한 맛]

한국일보

스테이크를 구울 때 한 면을 굽고 뒤집은 다음 1분 적게 구우면 균형이 잘 맞는다. 게티이미지뱅크

연재 70회를 맞아 실용적인 특집을 준비했다. 가장 기본적인 요리와 얽힌 수치를 정리한 ‘숫자로 보는 요리’이다. 모르는 요리를 익히는 데에는 재료의 양과 조리의 순서 및 시간 등의 정보를 한데 담은 레시피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레시피 자체에 익숙해지는 데에도 나름의 시간이 걸리므로 그 전 단계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정보를 모았다. 지면을 냉장고에 자석으로 붙여 두면 가장 요긴할 때 가장 편하게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18


냉동고의 적정 온도. 냉장실은 4℃다.


-1


스테이크굽는 요령을 단 하나의 숫자로 압축한다면 -1이다. 부위와 크기, 두께에 따라 스테이크를 굽는 시간이 달라지겠지만 어떤 경우든 한 면을 굽고 뒤집은 다음에는 그보다 1분 적게 구워야 양면은 물론 속까지 균형이 잘 맞는다.


0


파프리카의 스코빌 척도값(Scoville Scale). 한마디로 무해한 고추다. 참고로 청양고추는 2,500~8,000 또는 4,000~12,000 스코빌 매움 단위(SHU)로 서양에서 본격적으로 칼칼한 매운맛을 낼 때 쓰는 할라피뇨와 같은 급이다


1:1


시럽의 물과 설탕 비율이다. 무게 대비 같은 양을 냄비에 담아 설탕이 다 녹을 때까지만 보글보글 끓였다가 식혀 병에 담는다. 아이스커피나 티처럼 차가운 음료에 단맛을 더하거나 집에서 간단한 칵테일을 만들 때 가루 설탕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3:1


비네그레트의 기름 대 산의 비율이다. 소금과 후추, 마늘 등으로 맛을 내지만 일단 이 비율만 맞춰 준다면 드레싱의 농도가 맞지 않아 샐러드를 망치지는 않는다. 산(식초, 레몬즙 등)과 소금, 후추, 마늘 등을 넉넉한 크기의 대접에 담고 기름을 조금씩 부으며 거품기로 휘저어 올려 유화를 시킨다. 유화가 잘 된 드레싱은 반투명하고 걸쭉하다.


3.5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오이 발효 피클의 물과 소금 비율이다. 오이를 원하는대로 썰어 유리병이나 플라스틱 밀폐 용기에 담고 끓는 물 1,000mL에 소금 35g을 타서 붓는다. 뚜껑을 덮어 상온에 하루 이틀 두면 국물이 탁해지기 시작하니 냉장 보관한다. 단맛 없는 발효 채소이므로 급할 때에는 김치의 자리를 대신 맡을 수도 있다. 마늘 몇 쪽을 칼등으로 눌러 으깨어 함께 넣어도 좋다. 시원한 국물은 육수나 물로 짠맛을 조절해 국수를 말아 먹으면 맛있다.


5~10


구운 스테이크를 ‘레스팅’하는 시간(분). 고기가 식지 않을까? 괜찮다. 생각보다 오래 따스함을 유지한다. 게다가 잘 구운 고기는 차갑게 먹어도 맛있다. 식은 고기라면 최대한 얇게 저며 뜨거운 밥을 싸먹자. 온도의 대조가 사뭇 극적인 효과를 불러 일으킨다.

한국일보

노른자가 살짝 무른 반숙으로 익히려면 물이 끓고 6분30초 뒤 건져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6.30


흰자는 완전히 익고 노른자는 가운데가 살짝 무른 정도로 계란을 삶을 수 있는 시간. 냄비에 계란을 담고 찬물을 잠기도록 부어 불에 올린 뒤 끓기 시작하면 끄고 그대로 둔다. 6분 30초 뒤 건져 찬물에 담갔다가 껍데기를 깐다.


7~9 / 9~10 / 11~13.5


박력/중력/강력분의 단백질 함유량(%). 높아질수록 반죽이 질겨진다. 중력분 한 가지만 갖추고 있어도 쿠키부터 수제비, 빵까지 두루 만들 수 있다.


10


가지를 전자레인지에 익히는 시간. 가지의 조직은 스폰지와 흡사해서 수분과 기름을 흡수하므로 날것을 그대로 조리하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아주 높아진다. 가지를 원하는 두께로 썬 뒤 키친 타월로 싸서 접시에 담은 뒤 또 다른 접시나 대접 등 무거운 것으로 눌러 전자레인지에 10분 돌린다. 수분과 공기가 적절히 빠진 가지는 그냥 무치거나 샐러드를 만들어도, 지지거나 빵가루를 입혀 튀겨도 맛있다.


10~20


시판 레몬은 거의 대부분 변질을 막기 위해 표면이 왁스로 코팅되어 있다. 벗겨 내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전자레인지를 쓰는 게 가장 간편하다. 레몬을 넣고 10~20초 넣어 돌린 뒤 물로 닦아 낸다.


10-100-1000


파스타 조리의 황금률이다. 파스타 1인분 100g을 소금 10g을 더한 끓는물 1L에 삶는다. 절대 잊지 않을 숫자의 조합이다.


11~13.5


화이트와인의 도수. 레드와인에 비해 적은 양의 당이 발효에 관여하므로 도수가 낮으니 부담도 적다.


11.5~16


레드와인의 도수. 더운 지방에서 자란 포도로 만든 레드와인일수록 도수가 높아져서 16도를 넘기는 경우도 있다.


21~25


새우 크기를 가늠하는 척도. 1파운드 (453g)를 이루는 마릿수를 의미한다. 포장지에 크게 쓰여 있으니 확인이 쉬운데, 새우를 한 마리씩 살려 조리하고 싶다면 21~25가 크기의 마지노선이다.

한국일보

버터도 용도에 따라 보관 온도가 다르다. 게티이미지뱅크

±30


냉장고에 둔 버터는 딱딱하다. 따라서 빵에 발라 먹든, 제과제빵에 쓰든 30분쯤 상온에 두는 게 좋다. 그래서 +30이다. 한편 스콘이나 비스킷, 파이 반죽 등을 만들 때에는 버터가 차갑고 딱딱해야 밀가루와 치댈 때 쉽게 녹지 않으므로 잘게 깍둑 썰어 냉동고에 30분 둔다. 따라서 -30이다. 같은 원리로 직접 고기를 갈아 햄버거나 동그랑땡 등을 만들 때에도 깍둑 썬 고기를 냉동고에 30분 두어 겉만 살짝 얼리면 그라인더나 다지는 기계에 늘어지지 않고 깔끔하게 갈린다.


49/52/54


스테이크(쇠고기)의 내부 온도. 각각 레어/미디엄레어/미디엄의 목표 온도다. 팬에서 꺼낸 뒤에도 남은 열로 고기가 계속 익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54/60


양고기의 내부 온도. 각각 미디엄레어/미디엄의 목표 온도이다. 지방은 적당히 녹아 나오되 속까지 익지는 않아야 양고기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자잘하게 깍둑 썰어 굽는 양꼬치라면 찰나에 뻣뻣하게 과조리 될 수 있으니 주의를 기울이자.


50:50


잼에서 과일과 설탕의 기본 비율. 냉장 기술의 발달로 요즘 잼은 이 비율을 딱히 지키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적어도 맛만큼은 아직도 이 비율에 의존하고 있다. 과일의 비율이 높으면 더 맛있을 것 같지만 의외로 신맛이 두드러지는 등 균형이 안 맞기도 한다.

한국일보

양파의 단 맛을 최대한 끌어올리려면 60분쯤 볶는 게 좋다. 게티이미지뱅크

60


1) 양파를 캐러멜화하는데 걸리는 시간. 최대한 고르게 썰어 스테인리스스틸 재질의 팬에 수북이 담아 약한 불에서 천천히 익힌다. 일단 수분이 빠지고 부피가 줄어 든 뒤 양파의 온도가 110℃를 넘기면본격적인 캐러멜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양파가 조금씩 스테인리스 팬의 바닥에 붙기 시작할 테니 나무 주걱으로 긁어 낸다. 프랑스어로 ’퐁(fond)’이라고 일컫는 맛의 핵심이자 바탕이다. 종종 코냑이나 럼을 조금씩 부으면 훨씬 더 쉽게 긁어낼 수 있는 것은 물론 알코올이 날아가면서 리큐어 특유의 향도 배어든다. 넉넉히 잡아 60분쯤 볶으면 단맛과 향이 응축된다. 원래 프렌치 어니언 수프의 바탕이지만 김치찜에 밥을 비벼 조금씩 얹어 먹으면 맛있다.


2) 집에서 햄버거 패티를 만들 때 1장당 필요한 간 쇠고기의 양(g). 수제 햄버거의 유행으로 두꺼운 패티가 유행이지만 패스트푸드점의 표준에 맞춰 얇고 가볍게 빚어 놓으면 냉동실에서 꺼내 바로 조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찌개나 국 등 다른 음식의 바탕으로도 쓸 수 있다.


60/66/71


돼지고기 구이의 내부 온도. 각각 미디엄레어/미디엄/웰던의 목표 온도다. 갈고리촌충 같은 기생충 감염의 위험으로 돼지고기는 늘 바싹 익혀 먹어야 한다는 믿음이 지배했지만 옛날 이야기이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 의하면 1989년 이후로 유구낭미충에 감염된 돼지가 발견된 적이 없으며, 대한기생충학회의 논문에 의하면 2004년 이후 사람에게서도 사라졌다고 한다. 따라서 좀 더 섬세하게 익혀 먹어도 안전하다.


70


닭가슴살의 내부 온도. 삶든 굽든 찌든 70℃에서 반드시 조리를 멈추자. 안 그러면 닭가슴살을 먹는다는 사실 만으로 가뜩이나 불행하게 느껴지는 삶이 진짜로 불행해질 수 있다. 닭가슴살은 어떻게 조리를 해도 닭가슴살이 아닌 것이 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만큼만 익히면 자신을 학대한다는 느낌은 받지 않으며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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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향과 맛을 제대로 내려면 90~96℃의 물로 내리는 게 좋다. 게티이미지뱅크

90~96


커피 내리는 물의 온도. 커피의 세계도 워낙 방대해서 비슷한 온도대에서도 몇 도 차이로 의견이 갈리곤 한다. 구운 원두에서 끄집어 낸 기름을 향 및 맛과 함께 뜨거운 물로 우려내는 과정이 커피의 추출이므로 물의 온도에 영향을 안 받을 수 없다. 요즘은 콩이 자연스러운 갈색을 띠고 표면에 기름이 돌지 않도록 굽는 중배전이 대세인데, 경우에 따라 90~96℃는 조금 높을 수도 있다. 따라서 일단 이 범위를 기준으로 삼아 내려 맛을 보고 지나치게 강하다 싶으면 전체 범위대를 5도 낮춰 86~91℃대에서도 추출해보자.


80:20


햄버거 패티의 살코기 대 지방의 비율이다. 이보다 살코기가 늘어나면 패티가 뻣뻣해지고 지방이 늘어나면 패티의 크기가 작아지는 한편 느끼해진다. 물론 한 덩이의 고기에서 살코기와 지방을 1g의 오차도 없이 나눠 비율을 확인하는 절차는 가능하지도 않고 하더라도 효율이 떨어질 것이다. 따라서 수치는 마음에만 새기고 부위를 적절히 고르자. 목심 혹은 윗등심이 언제나 햄버거 패티용으로 가장 적절하다.


100


물이 끓는 온도. 너무 뻔한 정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의외로 쓸모가 있다. 조리용 온도계를 새로 샀다면 한 번쯤 재미 삼아 온도를 제대로 측정하고 있는지 끓는 물에 담가 확인할 수 있다. 라면 끓일 물도, 커피 내릴 물도 좋다. 100℃를 찍지 않는다면 과감히 퇴출시키고 판매처나 제조업체에 항의하자.

한국일보

눅눅하지 않게, 타지 않게 재료를 튀기려면 기름의 온도는 180℃가 적합하다. 게티이미지뱅크

180


튀김 기름 혹은 제과제빵의 오븐 기본 온도다. 튀김은 기름의 온도가 이보다 낮으면 기름을 많이 빨아들여 느끼하고 눅눅해지고, 높으면 옷은 짙은 갈색으로 익지만 속재료는 덜 익을 수 있다. 자주 튀김을 한다면 온도계로 측정하는 게 좋겠지만 없다면 두 가지 요령을 활용한다. 엄지 손톱만 하게 뜯은 빵조각을 넣어 30초 만에 노릇해지거나 나무 숟가락이나 주걱을 넣었을 때 주변에 거품이 일면 온도가 얼추 맞은 것이다. 재료를 여러 번에 나눠 튀길 경우 한 차례를 마치고 다시 온도가 올라갈 때까지 기다린다. 한편 제과제빵의 경우 컨벡션 오븐을 쓰면 온도를 10~15도 낮추고, 가끔 오븐 온도계로 오차 없이 예열이 되고 있는지 확인한다. 온도 차이가 10도 이상 난다면 수리가 필요하다.


250


액체 한 컵의 양(mL). 두 컵 들이(500mL) 계량컵 하나쯤 마련해 놓으면 라면물을 비롯한 모든 액체의 계량에 큰 막힘 없이 두루 쓸 수 있다.


이용재 음식평론가

2020.03.1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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