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그래미 슈트’ 누가 만들었나 했더니…

제이백 쿠튀르 백지훈 디자이너

한국일보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이 2월 10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열린 '제61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백지훈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슈트를 입고 사진을 찍고 있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올해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미국 3대 음악 시상식인 ‘그래미 어워즈’. 방탄소년단이 한국 가수 최초로 시상자로 초청받아 무대에 올랐다. ‘걸어 다니는 패션 광고판’인 방탄소년단의 패션에 세계의 시선이 꽂혔다. 멤버 일곱 명은 간결하게 떨어지는 슈트(Suit∙정장) 차림이었다. 당연히, 해외 명품 브랜드의 슈트일 거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멤버 6명은 백지훈(36) 디자이너가 만든 슈트를 입었다. 대중적으로는 아직은 ‘유명’보단 ‘무명’에 조금 더 가까운 순수 국내파 디자이너.


백 디자이너는 스타들 사이에선 전혀 다른 대접을 받는다. 2012년 그가 만든 맞춤 의상브랜드 ‘제이백 쿠튀르’는 배우 현빈, 이정재, 조인성 등이 찾는 곳이다. 지난 연말 MBC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방송인 이영자가 입은 하얀색 바지 정장도 백 디자이너의 작품이었다. 3일 서울 한남동 ‘제이백 쿠튀르’에서 백 디자이너를 만났다.


백 디자이너는 부산 출신으로, 예고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국내 대학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패션브랜드 비주얼 머천다이저(VMD)로 몇 년 간 일한 게 현장 패션 경력의 거의 전부다. 당대의 패셔니스타들이 그런 그를 찾는 이유는 뭘까.


“제 몸에 맞춘 듯한 옷이 필요할 때 저를 찾더군요. 방탄소년단도 자신들의 개성과 딱 맞는 의상이 필요하다며 찾아 왔고요. 방탄소년단과 그들의 음악을 제대로 설명하는 데 꼭 명품 브랜드가 필요할까요? 글쎄요…”. 방탄소년단의 그래미 슈트는 언뜻 보면 다 같은 검은 정장 같지만, 재킷의 길이와 칼라 모양, 단추 위치 등이 모두 달랐다. 백 디자이너의 치밀한 고민과 영리한 계산이 담긴 작품이었다.

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 3일 서울 한남동 제이백 쿠튀르에서 방탄소년단의 ‘그래미 슈트’를 디자인한 백지훈 디자이너는 “슈트는 각자가 가진 아름다움을 멋있게 부각할 수 있는 하나의 표현 수단”이라고 말했다. 홍윤기 인턴기자

백 디자이너는 주로 슈트를 만든다. “정말 멋있는 게 뭔지를 늘 고민했어요. 남녀를 떠나 성숙하고 지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들이 멋있더라고요. 그들의 공통점은 슈트를 자주 입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슈트를 디자인하게 됐죠.” 그런데, 슈트는 결국 거기서 거기 아닐까. ‘디자인’까지 필요할까. “똑같은 레시피를 사용해도 요리사에 따라 만드는 음식 맛이 다르잖아요. 입는 사람의 특징에 맞춰 만들면 세상에 같은 슈트란 없어요.”


백 디자이너에게 의뢰해 슈트 한 벌을 받아 보려면 3주를 꼬박 기다려야 한다. 그는 고객의 신체 치수만으로는 슈트를 만들 수 없다고 했다. 고객을 여러 차례 만나 슈트의 용도, 평소 즐겨 입는 옷과 편안하게 느끼는 옷의 스타일 등을 묻고 자세도 살핀다. 그의 작업은 슈트를 고객에게 넘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슈트에 어울리는 소품, 메이크업, 헤어스타일, 자세는 물론이고 네일 컬러까지 조언한다.

한국일보

지난해 12월 29일 방송된 MBC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방송인 이영자가 입은 제이백 쿠튀르의 하얀색 바지정장은 그를 더욱 돋보이게 해줬다. MBC 제공

슈트가 ‘남성의 패션’이라고 생각하는 건 오산. 백 디자이너 고객의 70%는 여성이다. ‘슈트는 롱다리만 소화할 수 있는 패션’이라는 편견에도 백 디자이너는 반대했다. 그는 지난 연말 TV 속 이영자를 보고 흡족했다고 했다. “체형에 상관없이 잘 맞는 옷을 입으면 자신감이 뿜어져 나오기 마련이에요. 그런 자신감 때문인지 이영자씨의 옷이 어떤 드레스보다 빛나 보였어요.”


가수 설현, 배우 공효진, 이하늬, 김혜수, 이나영 등도 백 디자이너의 슈트를 입었다. “과거의 여성 슈트는 허리와 가슴을 부각시키는 등 여성스러운 면을 강조했어요. 정작 여성들은 남성복을 입고 싶어서 슈트를 입더라고요. 그래서 남성복 디자인을 쓰되, 여성의 몸에 맞춘 슈트를 선보이게 됐지요. 남녀의 구분 중요한 게 아니라, 몸에 잘 맞는 옷을 입으면 누구나 아름다워질 수 있어요.”


백 디자이너는 동서양의 경계도 허물었다. 누빔, 저고리 선 등을 코트에 접목해 ‘퀼팅 코트’를 만들었다. “제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은 누가 뭐래도 한국적인 것이죠. 서양 복식을 표현하는 한국 디자이너로서 한복에서 쓰는 디테일을 활용하려고 합니다.”

한국일보

슈트는 남성복의 대표적인 패션이지만 제이백 쿠튀르의 슈트 디자인은 남녀 구분이 모호하다. 제이백 쿠튀르 제공

누구나 입을 수 있지만, 멋지게 소화하는 건 극히 어려운 옷이 슈트다. 백 디자이너는 “슈트를 슈트답지 않게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청바지가 늘 사랑 받는 것처럼 슈트도 기본 중의 기본이에요. 청바지에 입어도 좋고, 운동복에 재킷을 걸치는 시도를 해 봐도 괜찮아요. 가장 흐트러진 옷, 가장 여성스러운 옷 위에 힘 있게 각진 재킷 하나만 걸쳐도 패셔니스타가 될 수 있어요.”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2019.05.31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이런 분야는 어때요?
ESTaid footer image

© ESTaid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