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와도 좋고 바람 불면 더 좋은…멜버른 외곽 ‘그레이트 오션 로드’

[여행]by 한국일보

부모님과 호주 자유여행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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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버른 근교 그레이트 오션 로드에서 본 바다는 궂은 날씨일수록 더욱 자기다운 모습을 드러낸다. 레이저백(Razerback) 풍경.

개인적으로 멜버른은 마음에 둔 도시였다. ‘여행하기 쉽다’는 명제가 기저에 깔린 까닭이다. 트램은 시내 구석구석 여행자를 나르고, 빅토리아 시대 건축과 현대 마천루의 조화는 눈요기의 맛을 잔뜩 충전해준다. 주말이면 도시는 춤을 춘다. 거리마다 버스킹에 들뜨고, 와인 잔을 부딪치는 골목의 묘미가 살아 있다. 남반구의 파리라 했던가. 자유에 근접한 도시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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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버른의 인상을 요약하는 한 컷. 신구(新舊)의 공존, 그 틈을 젊음의 색으로 물들인다.

부모님과 여행에서 멜버른의 숙소는 시내 중심부에서 약 3km 떨어진 퀄러티호텔 칼튼(옛 바이브호텔)으로 정했다. 대체로 깨끗하다는 평가가 많았고, 시내까지 교통비를 고려해도 트리플 룸의 가격이 미안할 정도로 괜찮았다. 숙소와 시내 사이의 연결편은 역시 콜택시. 주로 멜버른에 특화된 디디(DiDi) 택시를 애용했다. 우버가 호주 어디에서나 이용할 수 있는 대기업이라면, 디디는 중소기업 격이다. 기사나 손님이나 낮은 수수료 덕에 득을 본다. 서비스(차종 및 친절도)는 우버와 비슷하지만 가격은 더 저렴하다. 무료 트램존까지 택시로 진입한 뒤 트램을 우리의 기사 딸린 자가용으로 삼았다.

멜버른 첫 날 “비 좀 맞으며 걸을까”

  1. 스펜서 아울렛 센터(Spencer Outlet Centre) - 유레카 스카이덱(Eureka Skydeck) – 에반브리지(Evan Walker Bridge) - ‘잇올(Eat All)’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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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피하는 최고의 여행지는 쇼핑몰. 스펜서 아울렛 센터에서 이것저것 주워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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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층 빌딩에서 멜버른을 내려다본다. 잘 정돈된 강박적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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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버른의 밤 풍경 명당은 야라 강에 놓인 여러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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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린더스 스트리트 역 방면으로 에반 워커 브리지를 건너면 불야성의 중심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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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린더스 스트리트역은 호주 최초이자 가장 긴 플랫폼을 지닌 철도역이다. 낮과 밤이 전혀 다른 느낌이 전혀 다르다.

시드니에서도 멜버른행 꼭두새벽 비행기를 탔다. 불평 한마디 없는 부모님이 되레 야속하다. 미안해하지 말라는 배려일 것이다. 이른 체크인 후 단잠을 잤다. 창밖으로 잔뜩 찌푸렸던 하늘에서 기어이 굵은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멜버른은 지난 여행과 마찬가지로 이상한 날씨로군. 바삐 탑승한 우버 택시 기사도 거들었다.


“이틀은 춥다가 하루는 괜찮아요. 9~10월은 매번 이런 식이죠. 건강하긴 글렀다니까.”


멜버른은 빅토리아주의 수도다. 도시의 운명도 참 알 길 없다. 이곳은 1850년까지만 해도 야라 강을 기반으로 터를 닦은 깡촌이었다. 금이 기적이었다. 멜버른의 해 뜰 날이 시작됐다. 1851년 발라랏(Ballarat)와 벤디고(Bendigo) 등 북측 지역에서 금이 쏟아진다고 소문나자, 이듬해 세계 각국의 광부들이 포트필립(Port Phillip)을 통해 멜버른으로 개미떼처럼 모이기 시작했다. 인구는 순식간에 4배 가까이 늘었다. 이후 지속적인 이민 정책으로 이탈리아와 그리스를 비롯해 중국과 베트남 사람들이 끝없이 몰려들었다. 다양한 국적의 문화가 섞이면서 오늘의 멜버른은 가닥이 잡혔다.


섞이니 독특하고 뜨거운 용광로다. 그런데 날씨가 웃기다. 하루에도 사계절을 만나기 쉽다. 춥다가 덥고 비 오다가 개고, 몸에 무례한 요구를 한다. 호주에서 맑은 날씨의 행운을 누리던 부모님도 첫 비를 맞았다. 비 맞는 걸 극구 싫어하는 엄마가 우산 쓸 생각을 하지 않는 새로운 발견을 했지만.


“여긴 산성비가 아니라며? 이 정도면 그냥 맞고 다니지 뭐.”


감기를 피하고자 들어선 건 유레카 스카이덱(Eureka Skydeck)이다. 멜버른을 360도 조망하는 88층 전망대다.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처럼 화려하거나 태국의 마하나콘 타워처럼 간담이 서늘해지진 않는다. 대신 멜버른의 강박적인 도시 계획을 읽는다. 야라 강을 따라 점점이 늘어선 불빛이 8개의 고속도로를 따라 거미줄처럼 쭉쭉 뻗어 나간다. 우리 셋은 점점 닮아가나 보다. 한 방향을 응시해 다음 행선지를 예고했다. 플린더스 스트리트역(Flinders Street Station) 방면이다. 유선형의 에반 워커 브리지(Evan Walker Bridge)를 지나 역 지하를 관통해 그 불야성의 도심 한가운데에 섰다. 19세기와 20세기 건축의 공존이 멜버른만의 시간을 만들고 있었다. 인파 틈으로 나란히 더 걸었다.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워밍업은 여기까지, 우리의 멜버른을 시작한다.

알아 두면 요긴한 정보①

  1. 멜버른의 스펜서 아울렛센터는 파격 할인가로 손님을 맞이한다. 아울렛 매장이 골고루 모인 백화점이다. 특히 어린이 취향을 저격하는 스미글 매장이 있다. 의류는 한국 물가와 비교해도 현저히 가격이 낮아 뜻밖의 소비가 늘 확률이 높다. 물론 귀국하는 짐도 늘어나게 되는 요주의 장소. 식사 해결도 가능하다.
  2. 유레카 스카이덱을 계획한다면 티켓을 예매하는 게 유리하다. 매표소보다 10~20% 저렴하다. 해 질 녘에 올라 야경까지 감상하는 게 이곳의 정석.
  3. ‘잇올’ 식당은 핵심 먹거리를 모아놓은 아담한 한국식 뷔페 식당이다. 여행에 지친 몸을 포식으로 보상하기 좋다. 지글지글 구워 먹을 고기류를 기본으로, 밥과 국 및 간식 거리가 알차다.

둘째 날 “시드니보다 도시가 재밌는 것 같아”

  1. 퀸 빅토리아마켓(Queen Victoria Market) – 플래그스태프 가든스(Flagstaff Gardens) - 35번 트램 순환 – 플린더스 스트리트역 - 페더레이션 스퀘어(Federation Square) – 호시어 레인(Hosier Lane) – 에이스마트(Ace M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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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은 마천루가 보이는 퀸 빅토리아 마켓. 살아 있는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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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명물인 아메리칸 도넛 키친 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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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의 돈을 받고 도넛과 잔돈을 건네는 시각은 약 1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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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어디 갔어요?”


“나도 잘 모르겠는데...”


엄마가 사라졌다. 퀸 빅토리아 마켓을 함께 둘러본 후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였다. 벤치에 앉아 있던 아빠는 토요일 오전의 시장 풍경을 즐기고 있었다. 연주자의 감미로운 선율에 꼬맹이가 박치 댄스를 선보인다. 인종도 나이도 불문이다. 웃고 떠드는 가운데 강한 에너지가 숨 쉰다. 기다리는 대신 시장 한 바퀴를 더 돌았다. 1897년 문을 연 퀸 빅토리아 마켓은 대규모 야외 가판대와 벽돌로 지은 실내 숍으로 구색을 갖췄다. 야채나 과일 등 식료품 코너를 지나면 일반 기념품 좌판이 나오고 수공예품 가게가 여러 취향을 반긴다. 두세 바퀴 더 돌고 왔더니 그제야 엄마가 돌아 오셨다. 어디 갔었어?


“아까 도넛 버스 있잖아. 버스에 종업원이 다섯이나 돼. 줄이 끊길 틈도 없어.”


바삭바삭한 겉감을 한 입 깨물면, 뜨거운 딸기잼이 혀를 달구는 도넛. 셋이서 이미 맛보았다. 1950년대 이후 같은 레시피를 고집하는 장인 정신의 도넛 되겠다. 친구 둘이 밴에 도넛을 싣고 멜버른 곳곳에 달콤함을 알리다가, 1997년 이후 퀸 빅토리아 마켓에서만 맛볼 수 있는 명물이 되었다.


“사업 구상이라도 하시게?”


농을 주고받는 사이 플래그스태프 가든스 앞 35번 트램 정류장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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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버른 도심에서 길을 잃어버릴 염려가 없는 35번 순환 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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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판에 ‘프리 트램존’을 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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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람처럼 흔들리는 35번 트램을 타고 멜버른을 훑는 낭만 부부. 행복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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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버른의 허파와 같은 페더레이션 스퀘어 부근에선 반드시 재미있는 일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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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미래 지향적인 야라빌딩 안에 원주민의 갤러리(Koorie Heritage Trust)가 있다는 것, 여긴 멜버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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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버른의 패셔니스타는 호시어 레인에 모인다는 후문. 그래피티 벽보다 사람 구경에 정신 없다.

35번 트램은 관광객에게 특화된, 멜버른 시내를 에두르는 교통편이다. 덕분에 웬만한 대도시에 다 있는 시티투어 버스도 멜버른에선 힘을 잃는다. 덜커덩, 덜커덩 둔탁한 마찰음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트램은 플린더스 스트리트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 도클랜드 지구에 이르기까지 도심의 명소 근처에 정차한다. 앉아서 관광이다. 신구(新舊)가 공존하는 멜버른을 끌어안으며 달렸다.


“멜버른은 재밌는 도시 같아. 건축도 풍경도 같은 게 하나 없는데 또 조화롭네.”


가장 재미있는 일은 역시 페더레이션 스퀘어를 낀 교차점에서 벌어졌다. 르네상스 양식의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과 고딕 양식의 성 바오로 성당이 자리 잡은 곳에 밀레니엄 빌딩이 몸을 세우고, 멋 부린 마차와 광고판으로 덮인 트램이 상호 교차한다. 미래에서 온 듯한 야라빌딩 1층에선 애보리진 원주민이 직조 작품을 선보인다. 과거와 미래,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 그 어디 쯤, 기준 없는 혼동이 되레 흥미롭다. 광장에 앉아 꽤 긴 시간을 보냈다. 아이스크림을 날름거리며, 그날의 햇살처럼 달콤하게.

알아 두면 요긴한 정보②

  1. 퀸 빅토리아 마켓은 가능하다면 주말 오전 방문을 추천한다. 시장이야말로 북적거리고 사람 사는 냄새가 풀풀 나야 제맛이니까. 싸고 독특한 기념품 확보에 성공하길. 아메리칸 도넛 밴은 월ㆍ수요일 휴무다. 재료가 소진될 때까지만 파는 곳이니 서두를 것.
  2. 35번 트램은 배차 간격이 30분이라 소개하나 그 이상이 될 수 있다. 앉아서 관광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지가 따로 있다면 다른 트램 탑승을 추천한다.
  3. 에이스마트는 멜버른 속 작은 한국이다. 제품 가짓수에 놀라고, 낮은 가격에 고맙다. 외식에 질렸다면 여기에서 간단히 한국식으로 끼니를 해결할 방법을 찾길.

셋째 날 “더 늦기 전에 봐서 다행이야.”

  1. 세인트 폴 카테드랄(St.Paul’s Cathedral) - 콜린스 스트리트(Collins Street) – 그레이트 오션 투어(Great Ocean 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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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오션 로드에서 12사도 데크 길을 쭉 걸으면, 초록 융단 위로 솟은 귀여운 돌기둥을 만난다.

퍼스와 시드니를 거쳐 멜버른까지 우리의 여행도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처음 여행 계획을 짤 당시, 가장 신경을 쓴 건 그레이트 오션 투어였다. 소문이 기대를 키웠고, 누군가의 사진에 욕심이 생겼다. 뚜벅이 신세라 여러 여행사를 두고 저울질했는데, 대략 헛수고였다. 다 좋단다. 가이드 칭찬은 별개로 하더라도 소감이 대만족이었다. 나이도 취향도 다른데 어찌 골고루 만족할 수 있지? 의심이 병이었다. 낙조를 보너스로 제공하는 투어를 예약했다. 너는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그레이트 오션 로드는 단순히 말하면 해안을 끼고 달리는 드라이브 코스다. 토케이(Torquay)와 알란스포드(Allansford) 사이 243km에 달하는 도로다. ‘그레이트’가 붙은 건 오만해도 될 만한 풍광 덕이다. 해안을 옆구리에 낀 채 작은 마을을 도는 이 같은 도로는 호주 다른 지역에도 널렸다. 이곳의 히든카드는 암벽의 예술이다. 파도가 부서지는 바다 사이에 상상을 초월하는 돌기둥이 솟아 있다. 거친 바람이 이 예술의 지휘자다. 바스러지기 쉬운 석회암이 바람과 그 바람이 몰고 온 파도에 깎이고 베여 바다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이 돌기둥의 수명은 약 600년. 달리 말하면, 매초 조금씩 무너지는 풍광이란 이야기다. 지난 2005년 12사도의 8개 돌기둥 중 하나가 바다로 꺼졌다. 고로 이 길에 붙은 ‘죽기 전에 봐야 할’이란 수식어는 ‘늦기 전에 봐야 할’이라고 수정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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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도와주지 않아도 12사도는 괴력의 아우라를 풍긴다. 보는 얼굴은 언제나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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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 포트 캠벨(Port Campbell) 국립공원의 석회암은 지반이 약한 대신 상부가 단단하다. 새로운 돌기둥이 생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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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으로 접근이 가능한 로크아드고지(Loch Ard Gorge).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도 꿀꺽 삼키는 마성의 파도를 조심할 것.

정오 무렵, 멜버른 시내에서 투어 버스가 출발했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까지는 약 2시간, 코스의 지리를 파악한 뒤 1일 투어가 얼마나 중노동일지 짐작했다. 버스는 12사도(12 Apostles), 로크아드고지(Loch Ard Gorge), 런던아치(London Arch)에서 한 번씩 정차한다. 그나마 길지 않은 동선으로 고객 만족(?)을 주는 세 곳이다. 엉덩이가 근질거릴 즈음, 바다다. 아니, 바람이다. 그것도 빛의 속도였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업어치기 당하는 느낌이다. 뭇 여인의 롱스커트가 얼굴까지 덮을 기세다. 클라이맥스라 불리는 12사도가 첫 번째 볼거리다. 주차장에서 전망 포인트를 향해 걷다 보니, 바다가 터져 나왔다.


“캬~ 기가 막힌…”


바다는 사나운데 가슴이 펑 터진다. 바람을 뚫은 시선이 12사도 돌기둥에 정확히 꽂혔다. 이름과 달리 12사도에는 현재 7개 기둥만 남았다. 새하얗게 밀려드는 파도는 남은 돌기둥마저 섬세하게 조각 내는 중이다. 젖은 머스터드 컬러의 절벽마다 커다란 틈이 생겼다. 백만 년 쌓아온 공력이 눈앞에서 조금씩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는 중이다.


이날 12사도에 비견할만한 곳은 뜻밖에 레이저백이었다. 난파선의 싱거운 남녀 스토리가 담긴 로크아드고지도, 다리가 침식해 이름이 변모한 런던아치(옛 런던브리지)도 마음을 훔치진 못했다. 레이저백은 궂은 날씨일수록 진가를 드러내는 곳이었다. 날카로운 면도칼 형태의 돌기둥 아래 깊은 바다가 푸른빛을 뿜으며 소용돌이친다. 마음에도 침식 작용이 일어나는 걸까. 날씨에 대한 원망이 깎이고 또 깎였다. 연신 입이 벌어진다. 웃거나 감탄사를 연발하거나. 자연이 준 여행의 마지막 대선물이었다.


이 투어를 마지막으로 이별할 시간이다. 부모님은 집으로, 나는 여전히 집 밖으로. 부모님은 브루나이의 반다르스리베가완에서 환승해 인천행 비행기를 탄다. 떨린다는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게 충격적인 말을 남겼다.


“안아줘.”


나는 마음의 반응이 좀 느린 편이다. 공항으로 들어가는 두 분의 뒷모습을 보며, 프로젝트를 마친 듯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 감정은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두 분이 무사히 한국 땅을 밟은 사실을 확인하고 나자 미안한 마음이 그레이트 오션의 파도처럼 밀려왔다. 아리다. 답은 하나뿐이다. 더 자주 갑시다, 같이. 더 늦기 전에.

알아 두면 요긴한 정보③

  1. 그레이트 오션투어 : 멜버른 외곽 여행으로는 단연 ‘엄지 척’이다. 여러 국내 여행사에서 1일 투어 서비스를 한다. 신중히 고르려고 애쓰겠지만, 한정된 시간이면 경로가 비슷하다. 단, 가격 차이가 크지 않다면 ‘선셋’ 옵션을 넣을 것. 날씨 운은 포기하는 게 옳다. 비를 뿌려대도 멋있으니 손해 볼 일은 없다. 강풍에 대비한 복장만은 단단히 챙기자.

강미승 여행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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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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