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한복판에 뜬 모래 사막... 요즘 인천항이 북적이는 이유
하루 두 번, 단 3시간만 모습을 드러내는 바다 위 모래사막. 수도권에서 갈 수 있는 비밀의 섬이 여름 인기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요즘 여행]
인천 대이작도
![]() 인천 옹진군 대이작도 풀등이 썰물이 시작되자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
![]() 인천 옹진군 대이작도 풀등이 만조 때에 수면 아래로 흐릿하게 보인다. |
인천 앞바다에는 하루에 두 번, 3시간씩 모습을 드러내는 모래 사막이 있다. 썰물 때가 되면 푸른 바다 한가운데 155만 여㎡(약 47만 평)의 황금 사막이 신기루처럼 나타난다. 하천에서 흘러나온 퇴적물이 하구에 쌓인 뒤 해수면 상승과 왕복성 조류의 영향으로 생긴 모래 사막, '풀등'이다.
인천 대이작도 풀등은 국내 풀등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대이작도 풀등에는 꽃게와 넙치 등 수백 종의 해양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수도권 유일의 해양생태계보호구역이다. 여름철 본격 성수기를 앞두고 기자가 먼저 가 봤다.
배편, 물때, 인연... 삼박자 갖춰야 본다
![]() 국내 최대 규모인 인천 대이작도 풀등은 하루 두 번 썰물 때에 맞춰 모습을 드러낸다. 국내 최대 규모인 인천 대이작도 풀등은 하루 두 번 썰물 때에 맞춰 모습을 드러낸다. |
![]() 국내 최대 규모인 인천 대이작도 풀등이 수평선을 향해 끝없이 펼쳐져 있다. |
신기루 같은 풀등은 쉽게 보기 어렵다. 기상 조건은 물론이고 물때도 잘 맞춰야 한다. 인연도 작용한다. 여러 차례 무산될 고비를 간신히 넘겨 10일 풀등에 도착한 자칭 '섬 전문가' 최수예(76)씨는 "풀등의 경관이 훌륭하다는 얘기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기회가 되지 않아 이제야 찾게 됐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는 국내 수백 개의 섬을 섭렵했다고 한다.
풀등에 가려면 일단 대이작도에 먼저 도착해야 한다.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서 평일 오전 7시50분과 오후 1시 10분에 출항하는 차도선과 오전 8시 30분에 출항하는 쾌속선이 있다. 주말에는 쾌속선 1편(토요일 낮 12시, 일요일 오후 2시)이 추가 운행한다.
쾌속선으로 대이작도까지 1시간 30분, 차도선으로 2시간 10분이 걸린다. 인천과 대이작도 항로는 성수기인 6~10월 짙은 해무로 지연·결항이 잦다. 기자가 출발한 당일에도 짙은 해무로 출항 시간 10분 전에서야 가까스로 운항 허가가 내려졌다.
배가 뜨더라도 출항이 늦어지면 풀등은 모습을 감춘다. 풀등탐방선 ‘풀등호’의 김유호(59) 선장은 “출항이 30분 이상 지연됐다면 섬(대이작도)에 도착했을 즈음 물이 다시 차오르기 시작해 풀등으로는 못 갔을 것”이라고 했다. 풀등을 보려면 배편 시간과 물때, 출항 시간이 정확히 맞아야 한다는 얘기다.
대이작도에서 풀등으로 가려면 인연도 있어야 한다. 풀등호는 마을에서 운영하는 12톤급 작은 유선이라 상시 운항하지 않는다. 풀등 탐방 인원이 최소 8명 이상이어야 출항이 결정된다. 정원은 12명, 하루 최대 세 번 운항한다.
기자가 탐방을 신청한 날에는 8명이 겨우 채워졌지만 2명이 인천항에서 배를 타지 못해 결국 6명만 남았다. 최소 인원 미달에도 취재 지원을 위해 선장이 운항을 결단해 풀등으로 향했다.
바다 한가운데 뜬 모래 사막 '풀등'
![]() 인천 대이작도 풀등의 상대적으로 낮은 지형에 바닷물이 고여 있다. |
힘겨운 여정 끝에 마주한 풀등은 신비로운 장관을 선사한다. 고운 모래에 발을 딛기 전까지는 그 규모를 실감하기 어렵다. 나무 한 그루, 바위 하나 없는 모래 사막이 끝없이 펼쳐진다. 광대한 자연 앞에 인간은 한없이 작은 점처럼 느껴진다. 김 선장은 "물이 많이 빠지는 사리(보름과 그믐 이후 조수간만의 차가 가장 클 때) 때에는 풀등이 최대 100만 평까지 떠오른다”고 말했다.
바다 위에 떠오른 모래 사막은 인간의 시야를 넘어선다. 사막 주변으로 드리운 해무가 풀등의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발 아래도 바다와 땅의 경계를 넘나든다. 물결에 따라 모래 바닥은 잔잔한 무늬가 새겨지기도 하고, 작은 둔덕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바닷물이 빠져나가지 못한 작은 웅덩이가 옴폭 파였다. 바람과 물결에 따라 다양한 그림이 그려진 모래 스케치북이 연상된다.
풀등에서는 맨발로 걸어야 한다. 발을 디딜 때마다 촉감이 달라진다. 단단한 곳이 있는가 하면 사르르 바스라질 정도로 폭신한 곳이 있다. 밟으면 살짝 들어갔다 탄성 있게 다시 튀어오르기도 한다.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탐방객 안전과 환경 보호를 위해 탐방 시간은 1회 30분 남짓으로 제한된다. 기자와 함께 풀등에 도착한 최씨는 "TV에서 본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아름다웠다"며 "어렵게 풀등을 찾은 보람이 충분했다"고 감탄했다.
대이작도 숙소에 문의하면 풀등 탐방 신청을 대행해준다. 대부분 풀등 탐방과 낚시, 갯벌체험 등이 포함된 숙박패키지 상품을 제공하기도 한다. 야영을 하거나 숙박을 하지 않을 계획이라면 마을 어촌계(puldeung.com)를 통해 직접 전화 예약할 수 있다.
백사장과 한반도 최고령 암석
![]() 작은풀안 해수욕장 앞 바다가 수면 아래 암초와 모래가 선명히 보일 만큼 투명하다. |
![]() 큰풀안 해수욕장(왼쪽)과 목장풀 해수욕장. |
대이작도는 해수욕장도 자랑거리다. 모래가 곱고 파도가 잔잔하다. 면적 2.57㎢, 해안선 둘레 11.8㎞의 작은 섬에 모래사장만 네 곳이다. 섬의 서남쪽에 작은풀안 해수욕장, 큰풀안 해수욕장, 띄넘어(계남) 해수욕장이 있고 동북쪽에 목장불 해수욕장이 있다.
이 중 풀등을 바라보는 작은풀안·큰풀안 해수욕장이 모래가 특히 부드럽고 경사가 완만해 해수욕하기 좋다. 섬 중앙의 장골마을이 인접해 접근성도 좋다.
선착장에서 가장 먼 계남마을 인근의 띄넘어 해수욕장은 물결이 가장 잔잔하고 고요하다. 목장불 해수욕장에서는 제트스키, 바나나보트 등 수상 레저를 즐길 수 있다. 어느 해변이든 서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물이 투명하고 깨끗하다. 멀리서도 수면 아래의 암초가 훤히 보이고 물속에서도 시야가 훤하다.
대이작도 해수욕장의 성수기는 따로 있다. 섬 주민들에 따르면 장맛비가 그치는 7월 말이면 수온이 오르기 시작한다. 이때도 좋지만 북적이는 피서 인파를 피해 9월쯤에 방문하는 이들도 많다. 여름 평년 기온과 다르게 대이작도 인근 수온은 추석 즈음이 가장 따뜻하다. 가을 비가 내리기 전인 초가을 방문한다면 섬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 인천 대이작도에 있는 한반도 최고령 바위. |
대이작도 풍경은 반전 매력을 자랑한다. 고운 백사장과 거친 암석 지대가 공존한다. 특히 작은풀안해수욕장에서 서쪽으로 530m 떨어진 얼룩무늬 암석이 유명하다. 무려 25억1,000만 년 전인 신생대에 형성된 혼성편마암으로 한반도 및 부속도서 전체에서 가장 오래된 암석이다. 통상 한반도 기반 암석의 연령이 19억 년(고원생대) 정도로 추정되는 점을 고려하면 이 일대가 얼마나 오래된 땅인지 체감된다.
섬 곳곳에서 이와 비슷한 얼룩무늬 암석, 기암괴석, 해안 절벽을 볼 수 있다. 대이작도는 걷는 여행객들도 즐겨 찾는다. 섬 주요 지점에는 총길이 13.3km의 트레킹 코스가 조성돼 있어 풍경을 감상하며 걷기에 용이하다.
![]() 인천 대이작도 부아산 정상에 수직으로 솟아오른 암석. |
![]() 인천 대이작도 부아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대이작도와 소이작도가 만든 '하트해변' |
산악인들에게 사랑받는 섬이기도 하다. 섬의 중심인 장골마을을 사이에 두고 부아산(해발 159m)과 송이산(188m)이 나란히 솟아 있다. 부아산은 잘 정비된 산행로와 전망대가 있어 인근 섬과 바다를 내려다보기 좋다. 맑은 날에는 북쪽으로는 북한 황해남도, 동쪽으로는 경기 화성시까지 보인다.
낭만적인 풍경도 있다. 부아산 전망대에서 선착장을 조망하면 대이작도와 소이작도의 선착장이 ‘하트’ 모양을 이룬다. 주민들은 일대를 ‘하트 해변’이라 부른다. 정상에 올라 전망대로 가는 길에는 하늘을 향해 암석이 솟아오른 퇴적암 지대를 지나게 된다. 산 정상에 작은 산이 얹어진 듯하다.
송이산은 부아산보다 해발 고도가 높고 산세가 험한 편이라 일반 여행객보다는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더 찾는다. 가파른 산길과 거대한 돌무더기가 도전 정신을 자극한다. 소나무와 팽나무 군락지가 빽빽하게 자라 산을 지키고 있다.
![]() 대이작도에서 가장 높은 송이산이 고고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
인천시가 올해부터 섬 지역 접근성과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시작한 아이(i)바다패스 사업 효과로 섬 방문객도 늘어나고 있다. 인천 시민은 숙박 여부와 무관하게 지역 내 여객선을 단돈 1,500원으로 이용할 수 있다. 1박 이상 여행객도 배삯의 70%를 지원해준다.
김 선장은 “원래 비수기 평일에는 하루 10명 정도 찾았는데, 올해부터는 평일에도 100명 넘게 방문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당일치기 (인천 시민) 입도객이 너무 많아 정작 숙박 손님이 표를 못 구하는 경우도 생겼다”며 “배편을 예매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 인천 대이작도 부아산 너머 해가 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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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