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밖엔 석빙고, 성안엔 감성 카페...감 와인 한 잔이면 여기가 '화양연화'

옛 정취와 현대적 감각 어우러진 청도 화양읍


코로나19가 국내에 확산되던 초기, 경북 청도는 어느 지역보다 호되게 앓았다. 집단 감염으로 전국에 이름을 날린(?) 병원은 청도의 상징적 건물이 되고 말았다. 군에 하나 밖에 없는 종합병원이자 아파트를 빼면 가장 큰 건물이어서 단박에 눈에 띈다. 읍내를 지나는 외지인마다 ‘아 저기구나’라며 한마디씩 거들 정도다. 그 전의 청도는 새마을운동 발상지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청도읍 신도리 주민들의 자발적인 마을 가꾸기 사업이 모태였기 때문이다. 읍내에서 가장 높은 아파트 건물 외벽을 새마을운동 상징물로 장식할 정도로 자부심이 크다. 요즘 청도에서 뜨는 여행지는 단연 청도읍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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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읍성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주민들이 거주하는 생활 공간이다. 화양읍 중심부를 두르는 1,880m 장방형 성벽 중 현재 절반가량을 복원했다. 성벽과 마을을 오가며 호젓하게 산책하기 좋다.

성안에 마을이 그대로…본래 모습 찾아가는 청도읍성

청도읍성이 위치한 곳은 청도읍이 아니라 화양읍이다.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기 전까지 오랫동안 청도의 중심이었다. 읍성뿐만 아니라 청도초등학교와 선거관리위원회 등 일부 관공서는 여전히 화양읍에 있다. 청도읍에서 화양읍으로 들어서면 도로 양편으로 낮은 석성이 이어진다. 청도읍성 동문이 있던 자리다. 읍내 중심부를 통과해 반대편으로 가면 서문이 복원돼 있다. 주차장도 이곳에 있어 읍성 산책도 여기서 시작된다.


청도읍성은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돌과 흙으로 쌓은 것이었는데 조선 선조 25년(1592)에 석성으로 완성했다고 한다. ‘읍지’의 기록에 따르면 둘레는 1,570보(1,880m)이고, 높이는 5자 5촌(1.7m)이었다. 그러나 읍성은 제 역할을 할 기회도 없이 임진왜란 때 동ㆍ서ㆍ북문이 소실되고 성벽이 파괴되고 말았다. 일제강점기에는 나머지 성벽도 대부분 헐렸는데, 바닥에 남아 있던 초석을 기반으로 2009년 절반가량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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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읍성 산책은 서문에서 출발해 북측 성벽을 따라 걷는다. 2009년 복원한 성벽 같지 않게 석축에 자연스럽게 세월의 때가 묻어 있다.

화양읍에 도착하면 잠시 동서남북 방향 감각이 혼란스럽다. 예부터 풍수지리상 배산임수 지형은 사람 살기 좋은 터라고 여겨 왔다. 청도읍성도 높은 산자락에서 흘러내린 평지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산을 등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고, 바라보고 있다 하기에도 애매하다. 앞산 격인 남산(870m)을 뒤에 두고 읍내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북문 앞으로 너른 들판이 펼쳐지고 시야가 툭 트였으니 헷갈리기 쉽다.


청도읍성은 관광지로 정비된 순천 낙안읍성이나 서산 해미읍성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성 안에 여전히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고 그곳이 읍내의 중심이다. 서문 입구에 ‘청도읍성 민속촌’ 간판이 보인다. 옛날 가옥과 거리를 그대로 복원했는가 싶었는데 성문으로 들어서면 잠시 당황스럽다. 시멘트 벽면에 슬래브와 슬레이트 지붕 건물과 마주하기 때문이다. 여느 농촌마을과 다르지 않다. 과거와 현재, 관광지와 일상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읍내 풍경은 시대에 따라 변해 왔지만 여전히 지역 주민들의 삶터라는 점에서 ‘생활밀착형’ 읍성이다. 민속촌은 성벽 복원과 함께 지은 딱 두 채의 한옥이 전부다. 그중 한 건물에서 국밥과 국수를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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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자락 아래 자리 잡은 청도읍성. 성안에 고층 건물이 없어 농촌마을의 한적한 정취를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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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읍성은 담장이 낮아 위압감이 없다. 근래에 복원한 성이지만 석재에 고풍스러움이 묻어 난다.

이곳에서 성벽을 따라 걸으면 바깥으로는 형옥 뒤로 너른 들판이 펼쳐지고, 안쪽으로는 소담스러운 읍내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정원처럼 꾸민 성내지(城內池)에는 연꽃 향이 은은하고 주변의 주택 담장은 소박하고 토속적인 벽화로 장식돼 있다. 옛 지명을 딴 청도객사 ‘도주관’은 제법 웅장한 풍채로 읍내 중심을 지키고 있다. 일렬로 늘어선 붉은 기둥이 작은 궁궐을 연상시킨다. 성벽 남쪽 귀퉁이의 향교는 기와를 얹은 토담과 아름드리 느티나무의 조화가 운치 있다. 이에 비해 화양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동헌은 자리를 옮겨 지으면서 옛 관아의 멋스러움이 사라졌다. 읍성과 함께 복원한 고마청(雇馬廳)과 세곡창 역시 세월의 때가 끼지 않아 고풍스러움과는 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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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관아의 객사인 '도주관'. 청도의 옛 중심임을 증명하듯 위풍당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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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읍성 남쪽 귀퉁이에 위치한 청도향교. 황토색 담장과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조화롭다.

동쪽 성벽 바깥의 청도석빙고는 읍성에서 옛 모습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유적이다. 조선 숙종 39년(1713)에 완공한 이 석빙고는 국내 여섯 곳에 남아 있는 석빙고 중 가장 오래됐고 규모도 제일 크다. 내부로 들어가서 구조를 살필 수 있는 것도 청도석빙고가 유일하다. 천장에 4개의 아치형 석재가 남아 있어 돌을 짜맞춘 모양이 그대로 드러난다. 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면 경사진 바닥과 석벽으로 둘러싸인 내부 공간이 바깥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웅장하다. 무수한 수수께끼를 품은 고대 유적 안에 들어간 것처럼 과거의 어느 시간에 갇힌 착각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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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석빙고는 전국 6개 석빙고 중 가장 오래된 유적이다. 내부에서 보면 아주 먼 과거로 여행을 떠난 듯한 착각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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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형으로 짜맞춘 청도석빙고의 천장 석재가 고대 유적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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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읍성은 지금도 복원 중이다. 일부 구간에 옛 석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현재 절반가량 복원한 청도읍성은 지금도 꾸준히 옛 모습을 찾아가는 중이다. 서문에서 출발해 동쪽 성벽을 거쳐 석빙고, 향교, 도주관, 성내지 등을 돌아오는 데 1시간 정도 걸린다. 성안에 옛 가옥을 개조한 ‘해거름’ ‘읍성’, 한옥으로 지은 ‘화양연화’ 등 특색 있는 카페도 많아 옛 정취와 현대적 감각을 함께 즐기는 나들이 코스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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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읍성 안에는 여행객을 위한 특색 있는 카페가 여럿 있다. 한옥으로 지은 화양연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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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건물을 개조한 해거름 카페. 유리창으로 읍성 성내지가 보인다.

감 와인터널 위에 소박한 절간 하나

동굴이나 터널은 무더위를 식히기에 최적의 장소다. 청도와인터널은 내부 온도가 항상 13~15도를 유지하고 있어 여름에 특히 좋은 피서지다. 이 터널은 1905년 청도와 경산 사이 남성현 고갯길을 관통하는 경부선 철도의 터널로 개통해 1937년까지 이용됐다. 내부에 공사용 자재를 운반하기 위해 임시로 부설한 선로와 급경사를 극복하기 위한 스위치백(Switch-back) 선로가 남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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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현 고갯길을 관통하는 청도와인터널 내부. 항상 13~15도를 유지해 최고의 피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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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터널 안 카페에서 청도 감와인을 맛볼 수 있다. 한 잔 3,000~5,000원이다.

특별한 용도 없이 버려졌던 이곳을 2006년 청도감와인 주식회사에서 와인 저장 창고 겸 복합 문화 공간으로 정비해 지역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전체 1,015m 중 현재 200m를 개방하고 있다. 터널 안으로 들어서면 직육면체 화강암과 붉은벽돌이 아치형으로 잘 보존돼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를 배경으로 곳곳에 조명과 장식을 설치해 포토존으로 이용하고 있다.


동창회나 결혼, 생일 등 몇 년 후 기념일에 쓰기 위해 개인이나 단체가 주문한 와인 저장창고도 눈에 띈다. 무엇보다 터널 안 카페에서 시원하게 마시는 감 와인 한 잔(3,000~5,000원)이 일품이다. 탄닌 성분이 풍부해 포도 와인의 보디감에 청량함이 더해진 맛이다. 터널 주변은 온통 감나무 밭이다. 납작한 청도반시가 아직은 초록이지만 단풍으로 물들 가을 풍경을 떠올리는 게 어렵지 않다. 터널 밖에서는 주민들이 감 말랭이와 수년간 숙성시킨 감 식초를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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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와인터널 바로 위의 대적사. 소박해서 정감이 가는 사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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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사 극락전 돌계단에 새겨진 거북. 투박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친다.

와인터널에서 시원하게 땀을 식히기 전 들러야 할 곳이 있다. 터널 바로 위에 대적사라는 작은 사찰이 있다. 신라시대에 창건한 고찰이라는 자랑에 비해 아주 소박한 절집이다. 계곡의 느티나무 숲길을 통과하면 언덕배기에 극락전ㆍ명부전ㆍ산신각 3채의 전각이 보인다. 주택으로 치면 모두 단칸방 수준이어서 애초부터 종교시설 특유의 권위와는 거리가 멀다. 특히 극락전에 오르는 돌계단 조각이 일품이다. 섬세하고 멋들어져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기어오르는 거북 모양이 다소 투박하지만 생동감과 해학이 넘친다. 해탈에 이르고자 하는 석공의 정성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청도=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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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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