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는 TV 맞은편이 국룰?... "똑같은 아파트 살아도 가구는 다르게"
소파는 TV 앞에? 가구는 벽에? 모두 틀릴 수 있습니다. 국내 1세대 가구 수집가가 말하는 ‘진짜 나만의 공간’ 만드는 법을 소개합니다.
[맛과 멋] 이종명 mk2 대표 인터뷰
![]() 국내 1세대 가구 수집가인 이종명 mk2 대표가 16일 경기 양평군에 위치한 가구 쇼룸에서 의자에 앉아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정다빈 기자 |
국내 1세대 가구 수집가 이종명 mk2 대표의 집을 방문할 땐 어떤 예단도 금물이다. 방과 화장실 개수로 공간을 가늠하는데 익숙한 사람이라면 더욱더. 부부가 사는 112.4㎡(약 34평) 집에는 방이 하나도 없다. 방이 없으니 문도 없다. 가로로 길게 뻗은 공간에 놓인 소파와 테이블, 주방 가구와 식탁, 책상, 침대로 공간의 쓰임새를 유추할 뿐이다.
가구 업계에서 이 대표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다. 한국서 가구란 그저 생활도구일 뿐이던 1990년대. 사진을 배우러 독일에 유학을 갔다가 디자인 가구에 마음을 빼앗겨 빈티지 가구를 한 점씩 한국에 들여오기 시작했다. 취미로 시작한 일은 업이 돼서 경기 양평군에 빈티지 가구 쇼룸인 mk2를 운영 중이다. 조병수 건축가가 지은 건물 1, 2층은 쇼룸, 3층이 이 대표가 사는 집이다.
결혼과 이사가 많은 5월은 가구를 둘러싼 고민이 많아지는 시기다. 정형화된 평면을 가진 공동주택이 대부분인 한국 주거 실정에 가구는 내 취향을 드러낼 수 있는 마지막 무기다. 16일 이 대표가 조언한 '나만의 공간 만드는 법'을 핵심만 뽑아 안내한다.
①공식은 없다... 제로에서 시작해라
![]() 경기 양평군에 위치한 이종명 mk2 대표의 서가. 이 책상은 조각가인 아내가 직접 만들었다. 이종명 제공 |
![]() 이종명 mk2 대표의 집은 방이 하나도 없다. 가구로 공간의 용도를 나눈다. 이종명 제공 |
![]() 이종명 mk2 대표의 집 주방. 주방 가구는 독일 브랜드인 불탑으로 개별 유닛으로 디자인돼 공간에 맞춰 자유롭게 조합이 가능하다. 이종명 제공 |
첫째는 제로 상태에서 공간 구성을 시작한다. 이 대표는 '문이 필요할까'처럼 당연하게 여겨지는 전제부터 따져 보라 조언한다. 'TV를 어디에 놓을까'에서 'TV가 필요할까'로 질문이 바뀌면 고정관념을 깰 수 있다.
TV가 필요하다면 TV 시청 시간, TV 볼 때 자세 등을 하나씩 되묻는다. TV 시청 시간이 짧거나, 누워서 보는 일이 많다면 TV의 자리는 거실이 아닐 수 있다. 식탁 의자만 해도 식탁과 세트이거나 의자들이 모두 똑같은 형태일 필요는 없다.
가족이 여럿이라면 자기가 쓸 의자를 하나씩 고르는 것도 재미있고, 의미있는 인테리어를 완성하는 방법이다.
집에 놓인 가구는 하나의 컬렉션이다. 가구 간의 조화도 염두에 둬야 한다. 처음부터 특정 브랜드를 사겠다고 마음먹거나, 마음에 든다고 무작정 데려오면 집에 어울리지 않을, 실패할 확률이 높다.
그는 "가족들이 가장 잘 쓰거나 중요한 가구를 하나 선택하고, 거기에 어울리는 가구를 하나씩 들여오는 방식으로 하다 보면 자기만의 공간을 완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②가구의 뒷모습도 보세요... "50㎝만 벽에서 띄워도"
![]() 이종명 mk2 대표가 16일 경기 양평군 자택에서 디자인 의자에 앉아 있다. 정다빈 기자 |
![]() 경기 양평군에 위치한 mk2 가구 쇼룸의 모습. 정다빈 기자 |
둘째, 가구의 뒷모습을 활용한다. 소파가 TV 맞은편 벽에 딱 붙어 있지 않은 집이 얼마나 될까. 한국 가정집은 소파를 포함한 대부분의 가구를 벽에 붙여 배치한다. 공간을 효율적으로 쓰겠다는 취지지만 이런 가구 배치는 단조로운 공간을 만들기 쉽다.
특히 이러면 "가구의 뒷모습을 홀대"하게 된다. "제가 생각하는 인테리어 핵심은 가구를 구석에 놓지 않고 물건의 모든 면이 잘 보이게끔 구성을 하는 거예요. 공간을 버린다거나 가구가 동선에 방해된다고 생각하지 말고요. 소파를 50㎝만 벽에서 띄워도 분위기가 달라지거든요. 그게 가구를 훨씬 더 쓸모 있게 만들고 즐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이 대표 집에 붙박이 가구가 하나도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붙박이 가구는 물건을 쌓아 놓거나 저장하는 기능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생각해 선호하지 않는다. 그에게 가구는 단순한 기물이 아니라 기능만큼 형태미도 중요한 하나의 작품이다.
③디자인 가구 시작은 의자부터
![]() 서울 금호미술관에서 2019년 열린 '바우하우스와 현대 생활' 전시에 마르셀 브로이어, 루드비히 미스 반데어로에, 마리안느 브란트 등 주요한 디자이너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금호미술관 제공 |
셋째, 나만의 의자를 갖춰라. 가구 애호가 사이에서 가구의 시작과 끝은 의자로 통한다. 이 대표도 유학하며 접한 독일 바우하우스 양식의 의자에 매료됐다. 독일이 전후 재건에 몰두하며 물자가 부족하던 시대, 적은 재료를 이용해 꼭 필요한 부분으로만 디자인한 1930~1950년대 의자들이다.
이 시대 의자들은 몸과 가장 밀접한 가구로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조형미를 드러내는 점이 매력으로 꼽힌다. 르 코르뷔지에, 마르셀 브로이어,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 등 건축 거장들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의자 디자인을 선보였다.
이 대표도 디자인 가구 입문은 의자부터 시작하라고 추천한다. 그는 "좋은 가구는 형태미와 편안함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각고의 노력으로 탄생된다"며 "직접 앉아서 팔걸이나 의자 다리 같은 부분도 만져 보고, 의자에 앉은 자기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지까지 따져 보면 자기에게 어울리는 의자를 고를 수 있다"고 말했다.
④내 선택일까, 유행일까
![]() 국내서 유행하고 있는 유에스엠(USM)의 할러 모듈 장식장과 루이스폴센 PH5 조명. 각사 홈페이지 |
이 대표는 유행에 휩쓸리지 말고 자신만의 가구를 선택하라고 마지막 조언을 건넸다. 방대한 가구의 세계에 눈을 뜬 사람들은 자기 스타일을 찾기보다 대세에 편입하는 쉬운 길을 택한다. 유에스엠(USM)의 할러 모듈 장식장, 프리츠한센 식탁과 의자, 루이스폴센 조명 등 어느 집이나 비슷한 가구와 조명이 들어서고, 고가인 정품을 대신해 카피 제품도 난립하는 상황이다.
"매장에 오는 손님도 어디서 본 똑같은 가구를 찾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들이 잘 눈여겨보지 않는 걸 찾는 사람이 있거든요. 저로선 아무래도 후자를 응원하게 되죠. 이 가구를 잘 써줄 사람한테 보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유행하는 가구를 사고 싶은 건 사실 자기 선택이 아닐 수도 있어요. 가구를 고를 때 '나도 이거 샀어'가 아니라 '나는 이거 샀어'인 문화가 되면 좋을 것 같아요."
![]() 덴마크 가구업체인 프리츠한센의 식탁과 의자. 프리츠한센 홈페이지 |
오랜 시간이 담긴 빈티지 가구도 나만의 공간을 꾸미는 데 도움이 된다. 빈티지 가구는 100년 내의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중고 제품을 말한다.
이 대표는 "빈티지 가구는 여러 번 페인트를 덧칠한 흔적이 남아 있다든지 색이나 짜임에서 현대 대량 생산 시스템에선 느낄 수 없는 가치와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엔 중고시장을 중심으로 보루네오, 파란들, 썬퍼니처와 같은 1980~1990년대 국내산 빈티지 가구가 활발히 거래되기도 한다.
"가구는 나를 담는 그릇"이라는 게 그의 철학. 그는 "많은 사람이 아파트 평수를 넓히는 데는 집중하면서, 그 안에 정작 무엇을 갖다 놓을지, 가구가 나를 어떻게 감싸고 있는지에 대해선 등한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같은 모양의 아파트에 살더라도 개성이 돋보이는 가구로 채워지길 바란다"며 "자녀에게 가구를 물려주면서 가구에 담긴 추억과 미학을 대물림하는 문화가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