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적 연애 판타지" 손예진·현빈 커플을 지지하는 이유

[컬처]by 한국일보

손예진·현빈 커플 결혼 이례적 호응으로 본 MZ세대 연애관

평등해 보이는 관계성... 손예진 능동성 주목

"커리어적 단단함으로 현빈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밝히며 선택하는 여성의 모습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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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빈·손예진 커플은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북남남녀로 나와 국경을 뛰어 넘는 사랑을 보여줬고, 둘의 사랑은 현실 부부로 이어지게 됐다. tvN 제공

'꼭 친척이 결혼하는 기분이다'(@juju_u****) '현실에서도 성공적 사랑이다'(@兰花收集***).


일본과 중국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각국의 언어로 올라 온 손예진·현빈(40) 커플의 결혼 소식 관련 게시글 일부다. 애국주의에 기댄 '혐한' 정서로 두 나라의 일부 누리꾼이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을 비롯해 여러 국내·외 현안을 두고 한국에 '악플'을 쏟아내는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호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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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재팬이 최근 공식 트위터에 올린 현빈·손예진 결혼 축하 게시글. SNS 캡처

국내 분위기도 비슷하다. 직장인 박민희(36)씨는 "40대가 돼 동년배의 친구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한다는 게 냄비가 아닌 뚝배기 같은 사랑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며 "이상하게 다른 연예인 커플처럼 색안경을 안 끼고 바라보게 되더라"라고 말했다. 장동건·고소영, 이병헌·이민정, 원빈·이나영 부부부터 이젠 남남이 된 송중기·송혜교까지. 누리꾼들은 여느 톱스타 커플의 결혼 소식이 알려졌을 때보다 더 뜨겁게 손예진·현빈 커플을 응원하고 자신의 주변 일처럼 친근하게 여기고 있다.


이유가 뭘까. 20~40대 독자와 교수, 대중문화평론가 그리고 연예기획사 종사자 등의 의견을 종합해 정리한 가설은 크게 세 가지다. ①드라마를 통한 운명 같은 사랑 같아 보이는데 ②현실에선 평등해 보이는 관계성을 지속하며 ③자연스럽게 사랑의 결실을 본 데 대한 호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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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예진(40)은 드라마 '서른, 아홉'에서 서른 아홉, 배우의 삶과 밀접한 또래의 연기를 한다. JTBC 예고편 캡처

'사랑의 불시착'에서 북한 장교 정혁(현빈)과 남한의 재벌 2세 세리(손예진)는 분단 현실을 뛰어넘어 사랑을 키웠다. 남녀의 사랑은 국경뿐 아니라 이념도 초월할 수 있다는 세기의 로맨스는 두 배우가 현실 부부로 삶을 나누게 되면서 닻을 내린다. 직장인 이은경(45)씨는 "'사랑의 불시착'에서 둘의 애틋한 연기를 보면서 둘이 현실에서 사랑을 할 수밖에 없겠구나란 생각을 했다"며 "그렇게 서로 닮아가며 나이들어 가는 둘의 결합을, 그래서 더 훈훈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스캔들, 혼전임신 그리고 충격 발표. 그들만이 사는 연예계의 특별 이벤트처럼 여겨졌던 결혼 방식과 달리 손예진·현빈은 2018년 영화 '협상' 출연으로 친분을 쌓고 '사랑의 불시착'으로 사랑을 키웠다. 정석희 드라마평론가는 "'사랑의 불시착' 시청자 입장에선 마치 자신이 키운 커플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빈은 '사랑의 불시착' 종방연에서 손예진의 '흑기사'였다고 한다. 당시 종방연에 참석한 드라마 관계자는 본보에 "어느 정도 술잔이 돈 상황에서 손예진의 술잔이 비고 같은 테이블에 앉은 드라마 관계자들이 그 잔에 술을 채우면, 현빈이 조용히 제 잔에 따라 그 술을 마셨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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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예진·현빈(40) 커플. 손예진 사회관계망서비스 캡처

두 배우가 CF속에서만 살지 않은 것도 뜨거운 호응의 땔감이 됐다. 작가이자 드라마평론가인 박생강은 "CF에서만 볼 수 있어 외계의 존재처럼 느껴지는 스타 커플과 달리, 현빈과 손예진은 생활 연기를 꾸준히 해 거부감이 덜한 게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대형 배우 기획사 고위 관계자는 "현빈은 해병대 제대 후 묵직한 이미지를 잘 쌓았고, 손예진은 프로패셔널한 이미지가 강점이라 대중도 좀 더 진지하게 두 배우를 소비하는 것"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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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예진과 현빈이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2019)에서 입을 맞추는 연기를 하고 있다. tvN 제공

손예진과 현빈은 동갑내기다. 직장인 송옥희(33)씨는 "톱스타 남성이 띠동갑 차이나는 어린 여성과 결혼하지 않은 사례라 보기 좋다"고 했다. 중년 남성 성공의 인정처럼 여겨졌던 '트로피 와이프'와 손예진은 거리가 멀다. 손예진은 '작업의 정석'(2005) '아내가 결혼했다'(2008)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 '비밀은 없다' '덕혜옹주'(2016) 등 로맨틱 코미디를 비롯해 스릴러, 액션 활극, 시대극을 아우르며 충무로 간판 배우로 자리 잡았다. 그런 그는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2018)에서 커피회사 대리로 일하며 연하남과 짠내 나는 사랑을 하고, '서른, 아홉'(2022)에서 피부과 원장 역을 맡아 상대 남성에게 "나랑 자고 싶다는 거죠, 지금?"이라며 삶을 즐긴다. 그의 연기 행보는 당찼고, 때론 실험적이었다. 손예진은 '일'로 인정 받은, 보기 드문 40대 여배우다. 대학생 박채빈(24)씨는 "손예진이 전에 이상형을 말할 때 자기 커리어를 존중하는 사람을 들었다"며 "작품 활동하면서 스캔들을 낸 적 없고 그렇게 자기 관리를 하는 사람의 결혼이라 관심이 가더라"라고 말했다. 손예진·현빈 커플을 MZ세대가 지지하는 배경이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손예진은 필모그래피의 커리어적 단단함을 바탕으로 현빈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밝히며 선택하는 여성의 능동적 모습을 보여줬다"며 "온라인에 요즘 두 배우의 외모가 닮았다는 글들이 많은데, 동등하고 평등한 연애와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실현시켜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김헌식 대안사회문화연구소 소장도 "동갑내기 커플은 픽션에서 매우 보기 드물어졌고, 여자배우보다 서른 살 많은 남자배우가 커플로 등장하는 등 연상연하 커플 설정이 쏟아지다 보니 이에 대한 피로감까지 안겨주게 됐다"며 "손예진·현빈 커플이 서로 수평적이고 동반자적 관계를 꿈꾸는 세대에 대리만족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이현지 인턴기자 island9927@naver.com

2022.03.0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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