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긴장감에 가려졌던… 그 섬들의 비경이 눈에 들어왔다
인천에서 뱃길 4시간…서해 최전방 대청도ㆍ백령도
대청도 농여해변 풀등. 모래 위로 얇은 파도가 번지면 하늘이 그대로 투영된다. 대청도의 우유니 사막, ‘대유니’풍경이다. 대청도=최흥수기자 |
서해5도(대청도, 백령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는 항상 바다의 최전방이었다.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가장 먼저 주목받는 것도 이들 섬이었다. 중국 어선들의 싹쓸이 조업도 따지고 보면 남북 대치라는 근본 문제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군사적 긴장을 한 꺼풀 걷어 내면 섬이 가진 본래의 가치가 하나씩 드러난다. 그동안 ‘안보’에 가려 제대로 보지 못한 대청도와 백령도의 비경을 소개한다.
서해 바람이 빚은 규암 절벽 ‘서풍받이’
백령도에서 남쪽으로 8km 떨어진 대청도는 여태까지 백령도 여행의 ‘끼워팔기’ 관광지였다. 인천에서 백령도를 오가는 여객선이 잠시 들르기 때문에 일정도 배 시간에 맞춰 짤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삼각산 등반 출발점인 매바위전망대의 매 조형물. |
소사나무가 군락을 이룬 초입은 다소 쉬운 편이다. |
대청도는 행정구역상 옹진군 대청면으로 지난해 3월 기준 884세대, 1,583명이 살고 있다. 인천에서 서북쪽으로 202km, 북한 황해도 장산곶에서 불과 19km 떨어져 있다. 해안선은 26km 정도로 걷기에는 크고, 차로 이동하면 작은 섬이다.
대청도 지질 트레킹의 첫 코스는 섬에서 가장 높은 삼각산(343m) 등반이다. 출발지는 서북쪽 매바위전망대, 내려다보는 산세가 매가 날아가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붙은 이름이다. 그 옛날 대청도는 매 사냥으로도 유명했다고 한다. 전망대 바로 아래는 동백나무 자생지다. 육지에서는 충남 서천, 섬에서는 이곳 대청도가 동백나무 자생 한계선이어서 천연기념물 제66호로 지정돼 있다.
산중턱에서 시작하지만 삼각산은 산보하듯 다녀올 만만한 산은 아니다. 소사나무가 빼곡해 제법 숲길이 아늑하다 싶다가도 능선을 걸을 때는 마을과 바다가 까마득하게 펼쳐진다. 특히 방풍림으로 조성한 솔숲이 아담하게 감싸고 있는 서쪽 모래울해변은 이름처럼 아름답다. 일제가 한자로 ‘사탄(沙灘)동’이라 고친 험악한 이름을 최근에 바로잡았다.
삼각산 능성에서 내려다 본 모래울 마을과 서풍받이(왼쪽 바다 끝자락). |
삼각산 정상의 표지판. 서울보다 평양이 가깝고, 인천 옹진보다 황해도 옹진이 가깝다. |
모래울 앞바다는 까나리잡이로 유명한 곳이었다. 요즘은 꽃게잡이가 대세지만 1970~80년대 대청도 해역에는 홍어, 까나리, 멸치, 조기 등 다양한 어종이 잡혔다. 특히 홍어잡이가 성행했는데, 주민들은 미끼 없이 잡는 ‘ㄷ’자 모양의 홍어 바늘을 처음 사용한 곳이 대청도라 주장한다. 홍어잡이 어선은 1970년대 150척까지 늘어났지만, 지금은 15~17척 정도가 조업하고 있다. 450개 정도의 바늘이 달린 150m 길이의 낚싯줄을 바다에 풀어 놓은 후 여름에는 2일 후, 가을에는 3~4일 후 걷어 올리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50장(대청도에서는 홍어를 세는 단위가 ‘장’이다) 정도는 기본이고 많을 때는 100장도 잡힌다. 이곳에서 잡은 홍어는 대부분 흑산도와 목포, 나주 영산포로 보내 가공된다. 일제강점기에는 고래잡이 어장이기도 했다. 일본의 동양포경주식회사가 1915년 대청도에 사업장을 설치해 주로 참고래를 잡았다. 1930년대에는 5~6척의 포경선이 한 해에 30~50마리의 고래를 잡았고, 많을 때는 100마리에 이르렀다. 그 중에는 현존하는 동물 중 가장 큰 대왕고래와 돌고래도 포함돼 있었다.
삼각산 정상에서 본 대청도 북측 모습. 왼편 농여해변과 미아해변 사이 풀등이 형성돼 있다. 뒤편으로 백령도와 북한 땅이 보인다. |
대청도 남쪽 바다에 떠 있는 소청도 풍경. |
1시간30분 정도 걸어 삼각산 정상에 도착하면 어느 방향이든 풍경이 넓고 시원하다. 북측으로는 백령도와 북한 황해도 땅이 병풍처럼 둘러있고, 남쪽에는 소청도가 띠처럼 떠 있어 외롭지 않다. 직선 거리로 인천 옹진군청까지 175km, 황해남도 옹진까지 58.81km라는 안내판을 보면 대한민국 본토와 멀다 뿐이지, 육지와는 지척이다.
삼각산 정상에서 해안도로로 하산할 때는 서해로 툭 튀어나온 ‘서풍받이’를 보면서 걷는다. 사실 대청도 지질 트레일의 핵심은 삼각산이 아니라 서풍받이다. 이름 그대로 서해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는 해안 언덕이다. 도로변 정자각에서 서풍받이까지는 순환 코스로 산책로가 나 있다. 왕복 5km, 2시간 정도 잡는다.
서풍받이 산책로에서 보는 해안 바위 절경. 퇴적층 빗금이 선명하다. |
서풍받이 해안의 귀순 유도 전화. |
서풍받이 산책로의 철조망과 감시카메라. |
해안도로에서 조금 내려가면 왼편으로 ‘기름항아리’ ‘독바위’ 등으로 이름한 하얀 바위 언덕이 숨겨진 보물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사선으로 갈라진 퇴적층이 참빗으로 긁어놓은 것처럼 선명하다. 해안으로 내려서면 작은 나무 상자에 낡은 전화기가 한 대 놓여 있다. “대한민국은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아래에 있는 전화기의 신호 단추를 누르시면 안전지역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북한 병사나 주민의 귀순을 돕는 전화기다. 절경에 넋을 놓고 있다가 접경지역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서풍받이 해안 낭떠러지와 맞닿은 사면은 한없이 부드럽다. |
성벽처럼 층층이 쌓아 올린 듯한 서풍받이 바위 절벽. |
서풍받이 트레킹은 대청도 지질트레일의 핵심이다. |
강한 바람이 부는 바위틈에 해국이 피어 있다. |
작은 산등성이를 넘어 서풍받이 전망대에 이르면 100m에 달하는 순백의 바위 절벽과 감청빛 바다가 빚어내는 색의 조화가 눈부시다. 풀과 나무가 제대로 자라지 못해 새하얀 암석이 그대로 노출돼 있다. ‘모래알갱이가 퇴적해 굳어진 사암과 그 사암이 열과 압력에 의해 변화된 규암’이라는 지질학적 설명이 이 절경에는 부질없어 보인다. 맑고 따스한 날이었는데도 바람은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거셌다. 그럼에도 바위틈 곳곳에 보랏빛 해국이 매달려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강풍을 온몸으로 막고 선 절벽 반대편 산세는 한없이 부드럽다.
’대유니’의 감동 농여ㆍ미아해변 풀등
다음날 아침엔 바닷물이 빠지는 시간에 맞춰 섬 북측 농여해변으로 나갔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걸어서 갈 수 있는 풀등이 있는 곳이다. 풀등의 사전적 의미는 ‘강물 속에 모래가 쌓이고 그 위에 풀이 수북하게 난 곳’이다. 국내에선 낙동강 하구가 대표적이다. 바다에도 풀등이 있다. 썰물 때만 모습을 드러내는 단단한 모래톱이다. 옹진군 대이작도와 장봉도에도 풀등이 있지만, 배를 타야 갈 수 있다.
농여해변에 물이 빠지자 거대한 모래 섬이 드러나고 있다. |
모래는 단단하고 바닷물은 찰랑찰랑, 해 뜨는 반대 방향에 검붉은 여명까지 황홀경이 연출된다. |
물결 따라 형성된 모래 무늬도 환상적이다. |
모세의 기적처럼 바다가 갈라지고 모랫길이 열린다. 멀리 보이는 백령도까지 걸어갈 수 있을 듯하다. |
풀등 위로 파도가 번지면 수평선을 사이에 두고 완벽한 데칼코마니, ‘대유니’ 풍경이 완성된다. |
파도가 만들어 놓은 모래 무늬도 가지가지다. |
화려한 패턴에 눈이 어질어질할 지경이다. |
얕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동그랗게 모습을 드러낸 모래 섬이 점점 커지더니 마침내 해변과 연결된다. 질척거리는 갯벌이 아니라 단단하고 고운 모래다. 찰랑대는 바닷물이 개울물처럼 맑다. 때마침 아침 해가 뜨고 맞은편 하늘까지 분홍빛으로 물들어 황홀경을 빚는다. 시간이 지나자 풀등은 더욱 넓어지고, 두 줄기로 나뉜 물길 사이로 모래 길이 길게 펼쳐진다.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진 길을 따라 백령도까지 그냥 걸어도 될 것 같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가 한 번씩 모래를 적실 때면 수평선을 경계로 흰 구름 떠가는 하늘이 풀등에 고스란히 투영된다. 사진으로만 본 콜롬비아의 우유니 소금 사막 풍경 그대로다. 대청도의 우유니, ‘대유니’라 불러도 전혀 손색없는 신비한 경험이다. 드넓은 모래 바닥에 새겨진 물결 무늬는 어느 예술가도 따라 할 수 없는 다양한 패턴을 그린다. 황홀한 풀등 산책은 물이 빠지는 약 2시간가량 즐길 수 있다.
휘어진 퇴적 단층, 고목을 잘라 놓은 것 같아 ‘나이테 바위’로 부른다. |
섬세한 줄무늬가 볼수록 신기하다. |
아침 햇살에 붉게 물든 농여해변의 바위. |
‘나이테 바위’도 미아해변의 신비로움을 더한다. 다양한 색상으로 퇴적된 얇은 지층이 강한 지질 작용으로 세로로 선 후, 오랜 세월 풍화와 침식으로 깎여 만들어진 바위다. 마치 휘어진 고목 줄기를 세로로 잘라 놓은 듯하다. 서풍받이와 달리 주로 붉은 빛깔을 띠고 있어 아침 햇살에 더욱 선명하다. 반면 인근 옥죽동 모래사막은 ‘한국의 사하라’라는 비유가 무색하게 본래 모습을 잃었다. 끝없이 불어오는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방풍림을 조성한 후 모래 언덕의 규모가 볼품없이 쪼그라들었다. 사막 한가운데에 세운 4마리 낙타 조형물이 안타까울 지경이다.
한 겹 두 겹 긴장 벗은 백령도 두무진 절경
여행자의 입장에서 편한 마음으로 백령도를 돌아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 두 차례 백령도 방문은 남북 간 대치 상황을 전하기 위한 취재였다. 군 병력의 긴박한 이동이나 망원 렌즈로 북측 해안 상황을 살피는 것이 우선이었으니, 풍경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생선을 말리고 있는 두무진 포구. |
두무진 유람선을 타면 약 50분간 해안 절경을 돌아 본다. |
유람선에서 보는 두무진 바위 군상. |
이런 풍경이 약 3km에 걸쳐 있다. 군사적 대치 상황에서는 천연 요새다. |
가마우지가 쉬고 있는 갯바위 뒤편이 북한 장산곶이다. |
두무진 바위 절벽은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웅장하다. 왼편 유람선이 조그맣게 보인다. |
백령도 최고 절경은 서북쪽 끝자락 두무진이다. 북한 장산곶과 불과 15km 떨어져 있어 대한민국 최북단이라는 상징적 장소이기도 하다. 두무진(頭武津)은 그 옛날 ‘두모진’이라 불렀다고 한다. 수많은 바위들이 머리카락처럼 뾰족하게 서 있는 형상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장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는 모습이라 해석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깝고, 분단 이후에는 군사적 긴장이 최고로 유지되는 지역이라는 특성이 반영된 듯하다.
두무진은 유람선을 타거나 산책로로 돌아볼 수 있다. 각각 50분과 1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에, 안팎에서 해안 절경을 두루 감상하는 것도 괜찮다. 유람선은 두무진 포구를 빠져나가 섬 서쪽 해안을 약 4km 돌아온다. 배에서 본 해안 절벽과 해상 바위 군(群)은 포구에서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웅장하다. 잘 생긴 바위 한두 개가 아니라 해안선 전체가 깎아지른 절벽이고 천연 요새다. 배가 이동할 때마다 한 겹 두 겹 비경이 벗어지는가 싶으면, 또 다른 풍경이 겹겹이 다가온다. 섬세하면서도 켜켜이 쌓인 바위 퇴적층이 이 정도 규모로 선명하게 드러난 풍경은 어디서도 보지 못한 것 같다. 광해군이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 칭찬했다는 선대암, 코끼리바위, 형제바위 등 기암괴석마다 줄줄이 이름을 붙였지만, 역시 인간의 상상력이 초라할 뿐이다. 이따금씩 점박이물범이 숨을 쉬기 위해 수면 위로 머리를 내미는 모습도 보이고, 가마우지가 앉아 쉬는 갯바위 너머로는 장산곶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포구에서 두무진 끄트머리로 산책로가 나 있다. |
두무진 바닷가로 내려가는 산책로. 여행객과 비교하면 바위 퇴적층의 크기가 짐작된다. |
두무진 해안 작은 동굴에서 보는 풍경. |
두무진 끝자락 통일기원비 옆에 태극기가 날리고 있다. 바다 건너가 북한 장산곶이다. |
두무진 산책 코스는 포구에서 백령도 북단 끝머리로 이어진다. 유람선에서 첫 번째 바위 군상과 만나는 곳이다. 좁고 가파른 바위 틈으로 해안까지 내려갈 수 있도록 길을 냈다. 한 굽이 돌 때마다 10억년이 퇴적된 시간에 감탄 연발이다. 바다에서는 비교할 대상이 없어 크기를 가늠하기 힘들었는데, 산책로를 오가는 여행객이 개미만하게 보인다. 돌아 나오는 길 언덕 꼭대기에는 ‘통일기원비’가 서 있다. 태극기 휘날리는 뒤편으로 북한 땅이 선명하다. 장산곶은 또 어떤 비경을 품고 있을지 기대가 커진다.
자연이 들려주는 ASMR, 사곶해변과 콩돌해변
백령도 여객선 터미널인 용기포항 아래쪽으로는 사곶해변과 콩돌해변이 이어진다. 사곶해변은 한때 군부대가 비행장으로 사용했던 곳으로 주민들은 지금도 사곶천연비행장으로 부른다. 일직선에 가까운 3km 해변이 물이 빠지면 폭이 300m까지 넓어진다.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데 문제가 없을 정도로 모래알갱이가 단단하고 곱다. 여행객도 관광버스나 차로 드넓은 해안을 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해변 중간쯤 여행객을 떨궈놓은 차량은 약 1km를 되돌아가 기다린다. 바퀴자국 선명한 해변을 걷는 느낌이 색다르다.
사곶해변은 모래가 단단해 관광버스가 해변 중간에 여행객을 내려 준다. |
바퀴자국 선명한 사곶해변. |
사곶해변과 콩돌해변 사이 모래톱. |
콩만한 자갈로 뒤덮인 콩돌해변. |
여행객들이 햇볕에 달궈진 콩돌에서 쉬고 있다. |
콩돌해안은 모래와 바위가 자원인 백령도에서 이색적인 매력을 지닌 곳이다. 이름처럼 콩알만 한 돌들이 1km 해변을 가득 덮고 있다. 색깔도 흰색, 갈색, 회색, 적갈색, 청회색 등 다양하다. 볕에 마른 콩돌을 한 꺼풀 벗겨 내면 촉촉하게 물기가 코팅된 콩돌이 햇빛에 반짝인다.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퍼지는 돌 구르는 소리는 어떻게 형언할 수가 없다. 전자기기에서 듣는 백색소음(자율감각쾌락반응ㆍASMR)이 아무리 좋다 한들 자연의 소리에 비유할 수 있을까. 또 하나, 바닷물이 다소 차더라도 콩돌해변에선 꼭 양말을 벗고 걸어봐야 한다. 지압 효과보다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매끈한 감촉이 낯설고 기분 좋다.
백령도ㆍ대청도 여행 정보
- 인천연안여객터미널~백령도 구간에는 하모니플라워호, 코리아킹호, 옹진훼미리호가 매일 1차례 왕복한다. 편도 4시간 정도 소요된다. 이중 하모니플라워호와 코리아킹호가 오갈 때 대청도에 정박한다.
- 백령도와 대청도 여행은 아직까지 여객선과 숙박을 포함한 패키지여행이 대부분이다. 두 섬을 모두 보는 2박 3일 패키지 가격은 28만원 내외다. 개별 여행객은 섬 안에서 개인택시와 렌터카를 이용할 수 있다. 렌터카 비용은 하루 8만원 선이다.
사곶냉면의 ‘반냉면’ 메뉴. 비빔냉면에 육수를 절반만 부어 내온다. 이름에 참 충실하다.
백령도의 모든 음식에는 까나리액젓이 기본. 냉면집에도 까나리액젓이 올라와 있다.
- 대청도의 주민 추천 음식은 홍합탕과 성게비빔밥이다. 모두 싱싱한 자연산으로, 섬 안의 대부분 식당에서 판매한다. 백령도에서는 ‘사곶냉면’이 유명하다. 메밀과 육수 원산지를 ‘백령도산’으로 표기해 놓았는데, 맛의 비결은 까나리액젓이다. 백령도에서는 밥 지을 때 빼고 모든 음식에 까나리액젓이 들어간다고 할 정도다. 사곶냉면 식탁에도 겨자와 식초 외에 까나리액젓 통이 함께 차려져 있다. 감칠맛 나는 간장과 비슷해 수육이나 부침개를 찍어 먹어도 좋다. 물냉면과 비빔냉면 외에 ‘반냉면’이 있는데, 비빔냉면으로 먹다가 육수를 붓는 방식이 아니라 아예 육수를 절반 부어서 내온다.
대청도ㆍ백령도=글ㆍ사진 최흥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