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호장룡' 속 아름다운 추락…장쯔이는 선녀였을까
역사문화명산 창암산
허베이성 창암산 절벽의 남양공주 설법위대. |
창암산(苍岩山)은 허베이성 징싱(井陉)현에 위치한다. 고속철을 타면 베이징에서 스자좡역까지 1시간 반이면 도착한다. 현지에서 차량을 빌리면 2시간 만에 갈 수 있다. 이름도 낯선 창암산을 찾아간 이유는 리안 감독의 영화 ‘와호장룡’ 때문이다. 영화에서 ‘무당산으로 가거라’라는 대사 후 장쯔이가 투신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무당산 어디에서도 영화 속 풍경을 찾을 수 없다. 실제 촬영 장소는 창암산이었다.
창암산 대략 위치. 구글맵 캡처. |
창암산 입구 복경사 간판 |
산문으로 들어가면 복경사(福庆寺) 간판이 나타난다. 1,400년 전 서진시대 처음 건축됐으며 수나라 때에는 규모가 꽤 웅장한 사원이었다. 도유불(道儒佛)이 한 공간에 있는 경우가 흔해서인지 서원과 만선당도 있다. 겨울이라 인적이 드물어 문도 닫았다. 한산하고 썰렁해서 ‘국가급풍경구’라 믿기지 않는다. 그래도 400km에 이르는 태항산맥 가운데 ‘오악의 수려를 만끽할 산’이라는 자랑을 믿어 본다. 30분도 걸리지 않는 길을 오르니 서서히 협곡다운 모습이 등장한다.
창암산 지도(현지 안내도 사진에 한글 별도 삽입). |
창암산 교루전 오르는 길. |
다리 위에서 본 교루전. |
‘와호장룡’ 마지막 장면 촬영지 교루전 앞 돌다리
협곡을 연결한 다리 위에 전각을 세운 풍광인 교전비홍(桥殿飞虹)이 나타난다. ‘와호장룡’에서 본 장면이다. 장쯔이처럼 70m 공중에 붕 뜬 교루전(桥楼殿)으로 걸어오른다. 구름 위를 걷는 다리를 타고 오른다는 현등제운(悬蹬梯云)이다. 뒤로 돌아 올라가면 교루전 뒷모습이 나타난다. 옆 계단을 따라 앞쪽으로 가면 수나라 때 건설했다는 석공교가 협곡을 연결하고 있다. 길이 15m, 높이 9m의 다리 한가운데 서면 교루전이 정면으로 보인다. 다리 위에 장쯔이(샤오룽)와 장첸(샤오후)이 섰다.
샤오룽: 나한테 들려준 전설 기억해요? (还记得你说的那个故事吗?)
샤오후: “간절히 바라면 소원이 이뤄진다” (心诚则灵)
샤오룽(잠시 후): 소원을 빌어요 (许个愿吧, 小虎)
샤오후(잠시 후): 나랑 티베트로 돌아가자 (一起回新疆!)
와호장룡에 등장하는 교루전 앞 다리. |
다리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
고사성어 ‘심성즉령(心诚则灵)’를 언급한다. ‘간절히 바라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번역했지만, ‘좋은 징조로 제비가 뽑히길 바라며 예불을 드리는 심정’을 뜻한다. 장쯔이는 장첸에게 소원을 빌라고 했지만, 원문 대사 쉬위엔(许愿)은 그냥 걸그룹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가 아니라 지극히 종교적인 어법이다. 신에게 빌라는 말이니 어쩌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는 말을 던지고 싶었던 듯하다. ‘티베트’라고 번역한 영화의 마지막 대사, 신장(新疆)은 위구르자치구이며 티베트는 시짱(西藏)이라 부른다. 번역이 너무 뜬금없어 원본을 대조하니 그나마 이해가 된다. ‘고향’으로 돌아가자는데 갑자기 장쯔이는 몸을 던져 추락한다. 아름다운 하강 후 구름 속으로 사라진다. 슬픔을 억누르지 못하는 장첸처럼 서서 아래를 바라보니 그저 삭막한 맨땅일 뿐이다.
교루전의 석가모니 부처상. |
절벽에 세워 ‘공중부양’한 사원을 현공사(悬空寺)라 부른다. 절경이 많은 중국은 오악, 4대 성지, 8대 고성, 양대 상방, 4대 미인 등으로 서열을 매겨 자랑하거나, 대표를 뽑길 좋아한다. 교루전은 다퉁(大同) 현공사, 시닝(西宁) 북선사(北禅寺)와 함께 3대 현공사로 불린다. 지붕은 황색과 녹색 유리기와를 깔았다. 좁은 공간에 자리 잡았고 허공에 떠 있는 모습이지만 반짝거리는 색감이라 아담하면서도 안정적이다. 문이 잠겨 틈으로 본 모습과 잠시 열렸을 때 정면에서 바라본 석가모니 부처는 완전히 달라 보인다.
수양제 맏딸 남양공주의 설법 장소
교루전을 중심으로 산을 한 바퀴 돈다. 오른쪽으로 올라 불교사찰을 거쳐 도교사관을 보고 내려오면 된다. 길을 오르자마자 설법위대(说法危台)가 보이는데 수나라 양제의 맏딸 남양공주가 불법을 강의하던 장소다. 총명한 공주는 아버지를 수행해 전국을 순행했다. 아버지를 살해한 우문화급의 동생 우문사급의 부인이기도 하다. 아버지뿐 아니라 아들까지 살해되자 복수심을 누르고 창암산을 찾아 불교에 귀의했다. 승승장구하던 우문사급이 화해를 위해 상봉하길 원했으나 단호히 거절했다. 용모가 단정하고 언행이 반듯했던 공주는 10m 높이의 바위에서 산 아래 모인 백성에게 설법을 했다. 평탄한 바위에 서면 창암산의 위용이 드러난 교루전이 더 멋지다.
설법위대에서 본 교루전과 창암산 전경. |
공주사 앞 조벽과 자우보살 남양공주 |
원적(승려의 죽음) 후 천수천안관음보살 화신이 된 여승 삼황고(三皇姑) 신화가 있다. 백성에게 사랑을 베푼 공주를 신으로 대접한다. 공주사(公主祠)는 삼황고대전이라 부르는데 도교 안에 공주를 품은 중국인의 사랑이다. 백성의 뜻을 안 청나라 광서제는 칙령을 내려 공주를 자우보살(慈佑菩萨)로 대우한다. 바깥 기운을 막는 조벽을 좁은 길에 세웠다. 감실 안 공주는 칼을 들고 합장을 하고 있다. 지금도 창암산은 묘회를 열어 공주가 출생한 3월에는 홑옷을, 열반한 10월에는 솜옷을 제물로 바친다. 1,400년이 지나서까지 후대의 마음에 남으려면 얼마나 선행을 베풀었을까 생각해본다.
남양공주 사당 자우전의 보살과 ‘가친’ |
자우전을 지키는 동물 석상. |
신화 속 동물 ‘도철’을 새긴 자우전 탐벽. |
열반 후 묻힌 남양공주묘에 이른다. 자우전(慈佑殿)에는 천수천안관음의 형상으로 자우보살인 남양공주를 봉공하고 있다. 부모를 말하는 가친(家亲) 감실에는 양제와 소황후가 앉았다. 심성이 바르면 효성도 깊은 법이니 생전에 공주의 성품이 잘 드러난다. 마당에는 코끼리, 황소, 염소, 학, 사자, 말 등 10여 마리의 동물 석상이 수행하고 있다. 사당 조벽에는 고대 신화 속 동물인 도철(饕餮)이 있다. 금은보화를 마구 집어삼키는 괴수다. 욕심을 채우려고 태양까지 삼키려 했다. 탐욕이 끝이 없어 예부터 관리가 스스로를 경계하려고 벽에 많이 새겼다. 이를 탐벽(贪壁)이라 부르는데, 취푸의 공자 가문 저택인 공부(孔府)처럼 총천연색은 아니어도 그 뜻만큼은 더 깊다.
용 문양이 새겨진 창암산 표지석. |
옥황정 마당의 ‘요구대로 다 응답하는’ 요전수 |
관음보살을 모신 보살정을 지나 한적한 산길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걷는다. 교루전 뒤쪽 윗길이다. 용 문양을 새긴 창암산 비석 앞에 서면 건너편과 아래쪽 전경이 다 보인다. 협곡을 타고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땀이 조금 나는가 싶더니 옥황정에 도착한다. 중국을 다니며 정말 도관이란 도관은 엄청나게 많이 봤다. 농담으로 ‘내 종교는 도교’라며 ‘도를 아십니까?’ 하는 그 도는 아니다라고 하면 사람들이 웃는다. 역사의 수많은 인물이 도교로 들어왔고 신도 엄청나게 많아 공부할 숙제가 풍부해서다.
안으로 들어서면 요전수(摇钱树)라 부르는 나무가 참 요물이다. 꽃 모양은 신선의 얼굴, 과일은 재물신이 들고 있는 원보(말굽 모양으로 생긴 화폐)처럼 생겨 돈을 벌게 해주는 나무라고 한다. 붉은 천을 요란하게 걸어둔 이유다. 재물이 넝쿨째 들어오고 만사형통을 바라는 갈구다. 전설에 따르면 한 사람이 소원을 빌었다. 자기는 돈이 필요 없으며 대신에 마누라를 원한다고 했다. 귀가 후 과연 부부의 인연이 생겼다. 소문은 천리마보다 빠른 법이니 재물, 혼인, 건강, 승진 등을 다 들어주는 ‘만능 신수’가 됐다. 요구대로 다 응답하는 ‘유구필응(有求必應)’ 아래 ‘어떤 가족 일동’이라 써 있다. ‘필응’의 경사가 있었으리라.
역사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 도교
옥황정 삼청전의 옥청, 상청, 태청 |
도교의 최고 신은 삼청이다. 옥청(玉清), 상청(上清), 태청(太清)을 각각 원시천존(元始天尊), 영보천존(灵宝天尊), 도덕천존(道德天尊)으로 부른다. 하나는 둘을 생성하고 둘은 셋을 생성하고 셋은 만물을 생성한다는 원리를 담고 있다. 더 깊이 들어가면 머리만 아프다. ‘도화(道化)가 이뤄지면 삼청이 되고, 삼청의 합체가 곧 도다’라는 종교적 원리는 도사라도 이해하기 어려워 보인다. 삼청전은 마치 대웅보전의 삼존불처럼 옥청을 중심으로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태청은 태상노군(太上老君)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사상가 노자의 ‘도화’다. 중국 방방곡곡 삼청전은 다 똑같다.
노자 제자인 문자, 열자, 장자, 항창자는 모두 진인(真人) 벼슬로 승화됐다. 문창전의 주인은 문창제군(文昌帝君)인데 학문, 문장, 과거의 수호신으로 유교 냄새가 풍긴다. 왼쪽에 주자, 오른쪽에 공자가 협시한다. ‘유불선’의 통합은 도교의 엄청난 ‘포용’ 또는 ‘납치’로 생겼다. 도관에서 자주 보는 석가모니와 관음보살도 피해 당사자다. 백성이 좋아하면 누구라도 신격화한다. 서열은 옥황상제보다 한참 아래다.
문창전의 문창제군(가운데). 왼쪽이 주자, 오른쪽이 공자다. |
삼관전의 지관, 천관, 수관 |
약왕전 가운데 자리의 손사막. 왼쪽이 이시진, 오른쪽이 화타다 |
삼관대제(三官大帝)는 천ㆍ지ㆍ수를 관장하는 신으로 인간의 고통을 치유하고 기도하는 대상으로 삼는다. 정사 삼국지에도 나오는 삼관수서(三官手书)로 병자의 이름을 종이에 써서 하늘을 향해 땅에 묻고 물에 잠기게 한다. 초기 도교 신도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지금도 도관에 가면 꼭 삼관에게 허원(许愿)을 한다.
인기 좋은 전각은 또 있는데 약왕전(药王殿)이다. 역사에 이름이 알려진 명의는 다 출동한다. 동네마다 조금 다른데 약왕 손사막(孙思邈)의 중간 위치는 변하지 않는다. 창암산은 왼쪽에 이시진(李时珍)과 오른쪽에 화타(华佗)를 둔다. 화타는 소설 ‘삼국지’에 조조ㆍ관우와 더불어 등장하며, 명나라 시대 이시진은 ‘본초강목’을 지었으니 난생 처음 듣는 인물은 아니다. 아주 낯선 손사막이 약왕에 등극한 이유는 도사이기도 하지만, 민간요법을 중시해 30권에 이르는 약학 총서인 ‘천금요방(千金要方)’을 남긴 명의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목숨을 천금보다 귀중하게 여긴 손사막의 지대한 공로를 인정한 셈이다. 게다가 당나라 건국 후 조정의 초청을 받아 의술과 저작 활동도 했다.
다시 교루전에 서니 선녀가 보인다
교루전 부근 방화용으로 세운 나무막대 걸레 |
옥황정을 나와 아래로 내려가면 다시 교루전과 만난다. 뒷산을 유람하고 들어가는데 붉은 칠을 한 긴 나무막대 걸레가 눈에 띈다. 사용할 사람도 많지 않은데 청소 도구가 스무 개가 넘는다. 알고 보니 방화 도구다. 사원이 목조건물이니 벽에 세워두고 예방한다. 물을 뿌려도 되겠지만 불을 때리는 방식이 일리가 있어 보인다.
다시 교류전 다리에 서서 장쯔이의 아름다운 추락을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살은 이해가 쉽지 않다. 영화를 다시 봐야 할 듯싶다. 왕조가 멸망하고 남편에게 버림받고 부모와 형제, 아들까지 잃은 남양공주는 마음을 다스리며 비구니로 여생을 보냈다. 장쯔이처럼 몸을 던지지 않았기에 보살의 경지에 이르렀다. 고개를 들어 공주의 설법 장소를 바라본다. 비단결 같은 선녀의 옷자락이 하늘로 비상하는 착시조차 여행의 선물이다. 와호장룡을 다시 보고 창암산을 찾아오길 바란다.
옥황정에서 하산하며 본 교루전 |
최종명 중국문화여행 작가pine@youy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