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울산엔 작약 보러 간다... '죽음의 강'은 어떻게 '국가정원'이 됐나
공단 폐수로 오염됐던 울산 태화강이 국가정원으로 거듭났습니다. 봄이면 작약, 여름엔 무궁화가 피는 태화강 국가정원은 지금 작약이 한창입니다. 장미축제까지 이어지는 울산의 정원 여행을 소개합니다.
울산 태화강 국가정원
편집자주
일상이 된 여행. 이한호 한국일보 여행 담당 기자가 일상에 영감을 주는 요즘 여행을 소개합니다.
![]() 울산 중구 태화강 국가정원 작약원의 꽃이 만개했다. |
![]() 태화강 국가정원 삼호지구에 들국화가 가득 피어 있다. |
항만을 따라 대형 조선소가 밀집한 국내 최대 공업도시 울산은 선호하는 여행 지역이 아니다. 하지만 2018년 공장 폐수로 오염됐던 태화강 일대에 83만5,452㎡ 규모의 국가정원(이하 태화강 정원)이 조성되면서 여행객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태화강 정원은 봄이면 작약, 여름이면 무궁화, 가을이면 국화가 화사하게 피어난다. 작약이 만개하는 매년 5월 봄꽃축제를 연다. 올해 예정된 태화강 봄꽃축제는 16~18일. 축제에 앞서 태화강 일대를 찾았다.
봄 작약 만개하는 태화지구
![]() 태화강 국가정원 작약원을 찾은 시민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 아직 개화 시기가 아닌 태화강 국가정원 무궁화정원엔 푸른 잎사귀만 가득하다. |
태화강 정원은 크게 '태화지구(48만4,998㎡)'와 '삼호지구(35만454㎡)'로 나뉜다. 태화지구는 태화강 동북부와 중구 지역이다. 태화지구의 서쪽에는 작약원(2만4,386m²), 동쪽에는 무궁화정원(2만3,195m²)이 있다.
무궁화정원에서 작약원을 향해 강변을 걸어 올라오는 코스를 추천한다. 작약원은 국내 최대 작약 공원이다. 5월 개화 시기를 맞아 핀 솜사탕처럼 큼지막한 작약 꽃송이들이 눈길을 끈다. ‘부끄러움, 수줍음’이라는 꽃말이 무색하게 존재감이 도드라지고 풍성하다.
작약원에는 거풍, 의성, 태백, 사라 베르나르 등 13종의 작약이 식재돼 있다. 같은 작약이라도 코닝인 빌헬미나, 캔자스 같은 종은 겹꽃이고 니폰 뷰티, 크링클드 화이트와 같은 종은 홑꽃이다.
작약은 본래 홑꽃이지만 품종 개량으로 겹꽃 종이 만들어졌다 한다. 작약이 가득한 정원 뒤로 대나무 숲이 펼쳐진 풍경이 압권이다. 작약이 지는 7월 이후엔 무궁화가 꽃봉오리를 틔운다.
![]() 초청작가 이시하라 카즈유키의 미나모토정원. |
작약원을 지나면 시민·작가정원, U(울산)5가든, 모네정원 등 테마 정원이 모여 있다. 2018년 태화강 정원박람회 당시 공모를 통해 조성한 정원들이다. 국내외 유명 조경가 4인의 초청작가정원과 20곳의 공모작가정원에도 꽃이 아름답게 피었다.
울산 시민과 학생들이 만든 수십 개의 작은 정원들도 볼거리다. 작약원과 무궁화정원이 넘실대는 꽃밭에 퐁당 빠진 느낌이라면 이곳은 저마다 개성이 다른 사람의 집에 초대받은 듯 둘러볼 수 있다. 돗자리를 펼치고 정원을 조망하고 피크닉을 즐길 수 있는 소풍마당도 있다.
![]() 태화강 국가정원 초화원에 붉은 양귀비가 잔뜩 피었다. |
![]() 시민들이 태화강 국가정원 초화원에서 촬영한 기념사진을 보고 있다. |
태화지구의 하이라이트는 초화원이다. 사시사철 다른 꽃이 피는데, 지금은 양귀비꽃, 안개꽃, 수레국화, 금영화가 주인공이다. 붉은색, 분홍색, 흰색, 푸른색, 초록색이 한데 어우러져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싱그러워지는 봄의 향연이다. 봄꽃축제의 중심이 되는 정원으로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몰려드는 곳이다. 여름에는 백일홍과 해바라기, 가을에는 코스모스가 초화원을 장식한다.
초화원 옆에 대나무 생태원이 자리하고, 남쪽에는 실개천이 흐른다. 실개천을 따라 야외 공연장과 향기정원, 나비정원, 국화정원 등이 이어진다.
![]() 태화강 국가정원 만회정이 십리대숲에 둘러싸여 있다. |
눈이 부시도록 꽃을 구경했다면 초록의 숲이 기다리고 있다. 태화지구의 가장 남쪽에는 십리대숲(10만9,886m²)이 자리하고 있다. 일부 사료에 따르면 삼국시대부터 존재했다는 대나무 숲으로, 태화강 정원의 등뼈라고 할 수 있다. 태화강 정원이 조성되기 전부터 지역 주민들이 즐겨 산책하던 곳으로 고즈넉한 느낌이 든다. 숲 내부에는 산책로가 잘 마련돼 있다.
백로 노니는 삼호지구
![]() 삼호지구 숲속정원이 인파 없이 한적하다. |
![]() 삼호지구 생태조류원의 대나무 사이로 숲속정원이 보인다. |
태화강 정원 서남쪽은 삼호지구다. 태화지구에서 은하수다리로 넘어갈 수 있다. 태화지구가 다채로운 정원을 보여줬다면 삼호지구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에 가까운 자연친화적 정원이다. 삼호지구는 크게 조류생태원, 숲속정원, 보라정원이 중심이다.
은하수다리를 건너면 숲속정원을 마주할 수 있다. 정원에 들어서자마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고요하고 평온하고 차분하다. 울창하게 자란 느티나무 사이를 거닐다 보면 편안함이 밀려온다.
느티나무 너머 초록의 죽림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여행객으로 붐비는 태화지구에 비해 삼호지구는 비교적 현지 주민들의 비중이 높고 한적하다.
![]() 삼호지구 생태조류원의 죽림은 사람이 통행할 수 없이 빽빽하다. |
![]() 삼호지구 생태조류원 나무 사이로 백로가 날고 있다. |
숲속정원 바로 옆은 삼호지구의 핵심인 조류생태원. 15만4,998㎡로 태화강 정원들 중 가장 넓다. 거대한 숲이지만 정작 한 발짝도 들일 수 없다. 조류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원이다.
십리대숲과 숲속정원은 산책을 할 수 있지만, 자연을 보존하기 위해 조성된 조류생태원은 멀리서만 감상할 수 있다. 백로와 떼까마귀가 주로 서식한다. 수십 종에 달하는 조류의 보금자리기도 하다.
일몰이 다가오면 주중 먹이사냥을 마치고 몰려드는 백로 무리에 금새 소란스러워진다. 숲 밖에서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이따금 수풀 사이로 흰 깃털이 스치고, ‘파드득’하는 날갯짓 소리만 간간이 들린다.
하지만 백로 군락이 있는 삼호지구 서북부 모퉁이는 백로의 울음소리로 귀가 멀 지경이다. 조류생태원 남쪽에는 맥문동이 피는 보라정원이 있다.
2028년 국제정원박람회 개최
![]() 태화강 국가정원 은하수다리에서 내려다본 태화강의 모습. 태화강 국가정원 은하수다리에서 내려다본 태화강의 모습. |
울산을 가로지르는 태화강은 1960~1990년대만 해도 '죽음의 강'이라 불렸다. 1962년 울산에 제1호 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공단 폐수와 인근 주거지 오수로 강은 빠르게 오염됐다. 1996년 기준 수질은 '6급수(BOD 11.3ppm)'에 해당했다.
수질 오염 문제가 심각해지자 울산시는 2000년대 들어 우수와 오폐수를 분리해 처리하는 분류식 하수관거를 도입했다. 강둑을 정비하고 하천 바닥의 폐기물과 오염 물질을 건져 올렸다. 2007년 태화강 수질은 1급수로 개선됐다.
수질 개선과 함께 태화강 일대 환경 정비 작업도 이뤄졌다. 2004년 태화강 생태공원이 개장했고, 2010년 태화지구를 중심으로 범위를 넓혀 태화강 대공원으로 재개장했다. 3년 후 삼호지구 일대를 철새공원으로 조성해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됐다.
2018년 전남 순천만 국가정원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국가정원으로 지정됐다. 2028년에는 울산국제정원박람회를 연다. 국제원예생산자협회(AIPH) 인증 국제정원박람회 개최 역시 순천에 이어 국내 두 번째다.
300만 송이 장미 피는 울산대공원 장미원
![]() 울산 남구 울산대공원 장미원의 장미가 개화하기 시작했다. |
![]() 울산대공원 장미원 비너스 정원의 비너스상. |
5~6월 울산을 여행한다면 태화강에서 남쪽으로 2km 남짓 떨어진 울산대공원도 들를 만하다. 태화강 정원 못지않은 정원들을 볼 수 있다. 특히 울산대공원 장미원(5만6,174㎡)은 265종 5만7,000여 본, 300만 여 송이 장미가 식재된 대형 장미원이다. 중앙 원형분수를 중심으로 장미언덕, 장미광장, 장미계곡, 온실정원 등으로 구성됐다.
그리스로마신화의 큐피드, 비너스, 미네르바를 주제로 조성한 테마 정원은 각각 사랑, 아름다움, 지혜를 표현했다. 세계장미협회 명예 장미 12종 등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희소 품종도 구경할 수 있다.
매해 5월 말 개최하는 축제 기간에는 신품종 등을 추가로 선보이기도 한다. 올해에는 21~25일까지 열린다. 태화강 봄꽃축제가 끝나고 사흘 후 시작해 봄 축제의 바통을 넘겨받는다. 대공원 내 메타세쿼이아길, 느티나무길, 자연식물원, 연꽃연못, 초화원 등도 장미원을 본 후 천천히 둘러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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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글·사진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