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솟음치는 오싹한 물살… 공중에서 본 장군의 바다

<195> 해남 화원반도 명량해상케이블카와 목포구등대

한국일보

해남과 진도 사이 울돌목 상공을 가로지르는 명량해상케이블카. 발아래로 물살이 뒤집어지고 회오리쳐 오싹함이 그대로 전달된다.

남해안의 칠천량, 견내량, 노량, 명량은 육지와 바다 사이, 혹은 섬과 섬 사이 좁은 해협이다. 파도가 잠잠한 날에도 바다는 쉼 없이 흐른다. 조류가 빠를 때는 굽이치는 강물보다 물살이 거세다. 그래도 바깥 바다를 우회하는 것보다 훨씬 빠른 지름길이다. 임진왜란 때 왜군과 조선군 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두 나라 수군이 명운을 건 싸움을 벌인 현장은 아이러니하게 풍광도 빼어나다. 해남과 진도 사이 명량해협 주변에도 몇 년 사이 새로운 관광시설이 속속 들어섰다.

공중에서 즐기는 울돌목 거센 물살

목포에서 영산강하굿둑을 지나면 영암군 삼호읍, 이곳에서 다시 영암방조제를 건너면 해남 화원반도다. 전라남도 남해에서 서해로 돌출한 지형으로 행정구역상 해남군 마산·황산·산이·문내 그리고 화원면으로 구성된다. 해남읍에서 반도 서북단 끝까지 거리가 50㎞가 넘는 넓은 땅이다.


화원반도 남단 우수영과 진도 군내면 사이 바다가 명량해협이다. 폭이 가장 좁은 부분은 293m, 사리 때 유속이 시속 11.5노트(약 21.3㎞)에 달한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은 이 거센 물살을 이용해 절대적 수적 열세에도 왜군에 대승을 거뒀다. 바로 명량대첩이다.


조선 수군은 선조 30년(1597) 9월 16일 12척의 병선과 일반 백성들이 조달한 한 척을 더해 13척의 배로 왜선 133척을 격파했다. 병선 숫자가 10분의 1에 불과했지만 필사의 전투로 31척의 왜선을 불사르고 적의 함대를 물리쳤다. 사리 때여서 물살이 빠른 데다, 북서로 흐르던 바닷물이 점차 남동으로 바뀌는 상황을 십분 활용한 이순신의 지략이 빛난 전투였다. 전략적으로는 서해를 거쳐 한강 유역으로 침입하려는 왜군의 길목을 차단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한국일보

해남 우수영관광지 탐방로 바로 앞바다에 '고뇌하는 이순신' 동상이 세워져 있다.

한국일보

'고뇌하는 이순신' 동상 위로 명량해상케이블카가 지나고 있다.

한국일보

진도 쪽 울돌목에는 대형 이순신 동상이 세워져 있다.

현재 바닷가 제방을 따라 산책로가 개설돼 있다. 낮은 성벽으로 두른 탐방로를 따라 ‘영(令)’ 자 깃발이 나부끼고, 바로 앞바다에 실제 크기와 비슷한 이순신 동상이 세워져 있다. 끊임없이 흐르는 바다에 발목을 잠그고 물살의 세기와 흐름을 가늠하는 듯하다. 이름하여 ‘고뇌하는 이순신’ 상이다. 한국 역사상 최고의 영웅이지만, 신격화하기보다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했다. 이 싸움을 꼭 승리로 이끌어야 하는 현장 지휘관의 부담과 절박함이 읽힌다. 바다 건너 진도에는 큰 칼 옆에 차고 성난 물살을 가리키는 대형 동상이 세워져 있다.


탐방로 중간에 거센 물살을 바로 위에서 체감할 수 있도록 스카이워크를 설치해 놓았다. 8자 모양으로 휘어져 돌아오게 설계됐는데, 정월 대보름날이나 팔월 한가위에 행하는 민속놀이, 강강술래를 형상화했다는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명량(鳴梁)은 ‘울돌목’의 한자식 표기다. 뒤집어지고 소용돌이치는 물소리가 요란해 마치 바닷목이 우는 것 같다는 의미다. 음력 보름과 그믐 무렵, 사리 때 이곳을 방문하면 결코 비유나 과장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다.

한국일보

강강술래를 형상화한 울돌목 스카이워크.

한국일보

나라의 명운을 건 싸움이 벌어진 역사의 현장을 이제는 케이블카를 타고 편안하게 내려다본다.

한국일보

명량대첩 역사의 현장을 케이블카와 스카이워크를 이용해 입체적으로 즐길 수 있게 해 놓았다.

한국일보

명량해상케이블카를 타면 울돌목 뒤로 화원반도의 잔잔한 풍광까지 시원하게 조망된다.

스카이워크 옆에는 해상케이블카가 놓였다. 해남 우수영관광지와 진도타워 간 약 1㎞ 바다 위를 가로지른다. 역사의 현장인 울돌목 바다를 편안하게 공중에서 내려다본다. 바다가 거대한 강처럼 흐른다. 때로는 회오리를 만들고, 때로는 용솟음치는 모습에 오싹함이 전달된다. 대신 웅장한 물소리는 소거되고 ‘쉬익~’ 바람 소리가 캐빈 사이로 스친다.


진도타워 쪽에서 보면 뒤편으로 낮게 펼쳐진 화원반도의 지형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광이 펼쳐진다. 케이블카 정류장에 붙은 ‘명량’을 ‘명랑’으로 착각할 정도다. 처절한 역사의 현장임을 상기하면 마냥 멋지다고 표현할 수만은 없다. 그날, 그들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볼 수 없는 풍광이니, 감탄사에 앞서 숙연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명량해상케이블카는 평일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행한다(주말은 앞뒤 30분 연장). 탑승권(성인 왕복 1만3,000원)을 소지하면 우수영관광지, 땅끝전망대, 고산윤선도유적지, 두륜미로파크 등 해남의 관광지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해남 쪽 케이블카 정류장이 위치한 곳을 우수영관광지로 부르는데, 실제 우수영은 이곳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었다. 북쪽을 위로 보는 지도에 익숙한 오늘날에는 해남이 전라도 좌측이지만, 임금이 거주하는 곳을 기준으로 삼던 조선시대에는 우측에 해당한다. 전라우수영, 즉 전라우도 수군절도사 군영은 처음에 함평에 세워졌다가, 무안을 거쳐 세종 22년(1440) 해남 망해산 자락으로 옮겼다. 바로 앞바다의 작은 섬(양도)에 가려 외부에선 지형을 파악하기 쉽지 않지만, 산꼭대기 망루에 오르면 멀리 울돌목까지 훤히 보이는 곳이다. 망해산에서 바라보는 서해 일몰, 망해낙조(望海落照)는 지역에 전해오는 ‘수영팔경’의 제4경에 해당한다.

한국일보

전라우수영이 있었던 문내면 소재지. 현재는 산꼭대기에 망해루 누각 하나만 세워져 있다.

전라우수영 현장 안내판에는 수군진성 중 가장 큰 규모인 약 1.8㎞ 길이의 성곽에 성문터, 객사, 동헌, 군기고, 남장대, 북장대 등이 있었다고 쓰여 있다. 실제 보이는 건 산꼭대기에 세워 놓은 ‘망해루’ 누각 하나뿐이다. 문해면 소재지 뒤편 도로에서 약 280m 완만한 산길을 오르면 된다. 관광시설 확충도 좋지만 전라우수영 복원에 먼저 신경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해남의 또 다른 땅끝에 목포구등대

우수영에서 북서쪽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해남의 또 다른 땅끝에 닿는다. 명칭은 ‘해안도로’지만 길은 해안과 산중 마을을 번갈아 가며 연결된다. 온전히 해안도로라고 할 구간은 화원반도의 서북쪽 끝자락 매개마을과 월내마을 사이 약 8㎞ 구간이다. 언덕을 따라 연결된 도로로 차를 몰면 짙푸른 바다 너머로 신안의 크고 작은 섬들이 올망졸망 따라온다. 매화와 달이 들어간 지명처럼 상큼하고 아늑한 길이다.


도로가 끝나는 섬 모퉁이에 하얀 등대가 바다로 돌출돼 있다. 목포의 입구라는 뜻의 목포구(木浦口)등대다. 구례로 들어가는 길목, 구례구역이 순천 황전면에 위치한 것과 같은 경우다. 등대는 높이 36.5m의 새하얀 원통형 기둥에 날개옷을 두른 듯한 곡선 장식이 특이한데, 실제는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해 질 무렵 붉은 노을과 어울리는 모습이 특히 아름답다고 한다. 등대 입구에는 남도를 대표하는 민요이자 춤인 강강술래와 목포 앞바다 삼학도의 전설을 형상화한 세 마리 학 조형물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행정구역은 다르지만 정서적으로 끈끈히 연결된 목포의 위상을 보는 듯하다.

한국일보

화원반도 서북단 끝에 세워진 목포구등대. 대형 유람선이 화원반도와 달리도 사이 좁은 수로를 통과해 목포항으로 들어가고 있다.

호텔스 컴바인 배너 이미지1
한국일보

목포구등대 등대는 해넘이 자랑하는 일몰 명소이기도 한데, 날씨가 흐려 제대로 보지 못했다.

한국일보

목포구등대 입구에 목포 삼학도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2003년에 세운 이 등대 바로 뒤에 또 하나의 작은 등대가 보인다. 새 등대와 구분하기 위해 ‘구 목포구등대’라 부른다. 1897년 개항한 목포항을 드나드는 선박의 안전을 위해 1908년에 세운 등대다. 100년 가까이 해남 화원반도와 목포 달리도 사이 좁은 수로(폭 600m)를 지키던 등대는 이제 뒷전으로 물러나 등록문화재가 됐다.


목포구등대 가는 길에 들를 만한 곳으로 서동사라는 작은 사찰이 있다. 신라시대에 창건한 고찰이라는 설명은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지만, 전각 뒤편 동백나무와 비자나무가 섞인 숲은 자랑할 만하다. 경관의 생태적 가치를 인정받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숲이다. 크고 작은 동백나무 140여 그루에 최고 높이 18m에 달하는 커다란 비자나무가 검푸른 숲을 형성하고 있다. 어두컴컴한 숲속으로 들어서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노거수가 만드는 짙푸른 그늘이 아늑하다.

한국일보

목포구등대 가는 길의 서동사는 동백나무와 비자나무숲이 아름다운 사찰이다.

한국일보

서동사 동백나무 비자나무숲은 아늑한 녹색 쉼터다.

아이들과 함께 해남에 간다면 황산면에 위치한 우항리 공룡박물관에 들르길 추천한다. 전국에 공룡을 테마로 한 공원이 여러 곳인데, 이곳만큼 짜임새 있는 곳도 드물다. 일대를 아우르는 공식 명칭은 ‘천연기념물 제394호 해남 우항리 공룡·익룡·새발자국 화석산지’다. 원래 물에 잠기는 해안이었으나 화원반도와 목포를 연결하기 위한 제방을 쌓으면서 해수면이 낮아졌고, 그 과정에서 대규모 공룡 화석지가 드러났다. 중생대 백악기(약 8,500만 년 전)에 형성된 퇴적층에 공룡 발자국과 뼈 화석, 익룡과 새 발자국 화석 등 다양한 화석이 다량 발견된 것이 특징이다. 익룡과 새가 서식지를 공유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세계 최초의 사례로도 평가받는다.

한국일보

우항리 공룡박물관의 야외 조형물 위로 새들이 날고 있다. 주변에 인공구조물이 없어 공룡시대로 되돌아간 느낌을 받는다.

한국일보

벽을 부수고 나오는 듯한 우항리 공룡박물관 외벽의 공룡 조형물.

한국일보

우항리 공룡박물관의 대형 공룡 발자국 화석.

한국일보

우항리 공룡박물관의 야외 놀이터.

한국일보

우항리 공룡박물관 탐방로에 설치한 익룡 조형물.

한국일보

해남 화원반도 일대 여행 지도. 그래픽=김문중 선임기자

일대는 박물관을 중심으로 공원으로 조성돼 있다. 해안가에 위치한 실제 발자국 화석은 3곳에 보호각을 씌워 관람객을 맞고 있다. 왕복 2㎞가량의 탐방로 주변에 설치한 공룡 조형물이 살아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박물관을 제외하면 주변에 눈에 띄는 인공구조물이 없기 때문에 공룡시대를 거니는 듯하다.


공룡을 해체해 재조립한 형상의 놀이터도 흥미롭다. 호젓하게 산책을 즐기려는 어른이나 공룡에 열광하는 아이들 모두 만족할 만한 곳이다. 공룡박물관 입장료는 성인 5,000원, 그중 2,000원은 해남의 거의 모든 업소에서 사용할 수 있는 지역상품권으로 되돌려준다.


글·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호텔스 컴바인 배너 이미지2
2023.03.09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이런 분야는 어때요?
ESTaid footer image

© ESTaid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