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궤열차부터 산악열차까지... 추억으로 가는 기차여행
서울 노원구 화랑대철도공원과 노원기차마을
화랑대철도공원에 전시된 체코 프라하의 노면전차. 현재 트램도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하듯 철도도 달라졌다. 비둘기호나 통일호로 한참을 달려 몹시 지쳤을 쯤 목적지에 닿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기차여행 하면 고속철도가 먼저 떠오른다. 서울역에서 3시간도 안 걸려 부산역에 도착하니 세상 편리해졌다.
고속철 노선이 증설되는 만큼 폐쇄되는 철길도 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일부 기차역과 철길은 관광지로 변신 중이다. 서울 노원구의 화랑대철도공원과 노원기차마을도 폐 철도부지를 활용한 지역의 명소다. 대중교통으로 쉽게 갈 수 있다. 지하철 6호선 화랑대역 4번 출구로 나와 걷거나, 73·202·1155·1156·82A·82B 버스를 타고 경춘선숲길·화랑대역공원에 내리면 된다.
간이역에서 철도테마파크로, 화랑대철도공원
화랑대역은 문을 닫기 전까지 청량리역에서 남춘천역을 오가는 경춘선 무궁화호 열차가 하루 7회(남춘천행 3회, 청량리행 4회) 정차하던 곳이다. 1939년 7월 ‘태릉역’으로 시작해 1958년 1월 육군사관학교의 별칭인 ‘화랑대역’으로 변경됐다.
야간 경관조명으로 장식된 화랑대역. ⓒ박준규 |
화랑대역 내부에 전시된 옛 스탬프. ⓒ박준규 |
화랑대역 내부에 전시된 옛날 기차의 먹거리 카트. ⓒ박준규 |
화랑대역사관에 전시된 옛날 기차표. 경춘선과 화랑대역 70여 년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박준규 |
역사(驛舍)는 일자형 평면 위 십자 구조의 지붕과 비대칭적 공간 구성으로 건축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6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지만, 경춘선 복선전철화 사업으로 2010년 12월 21일 문을 닫았다. 이후 쓰레기와 불법주차로 몸살을 앓던 화랑대역 부지는 2017년 경춘선숲길을 조성하며 화랑대철도공원으로 재탄생했다.
옛 화랑대역을 개조한 ‘화랑대역사관’에서 자세한 내역을 살필 수 있다. 역사관에는 대합실 시간표와 요금표를 비롯해 통일호·무궁화호 행선지 안내판, 화랑대역 스탬프, 승차권, 열차좌석, 먹거리 판매 카트 등 각종 철도용품이 전시돼 있다. 미니 철도박물관이자 옛 경춘선의 추억을 되살리는 공간이다.
화랑대철도공원에 고종이 이용했던 황실전차가 전시돼 있다. ⓒ박준규 |
혀기1형 협궤 증기기관차와 연결된 협궤열차. 수인선과 수려선에서 운행하던 열차다. ⓒ박준규 |
수인선과 수려선에 운행했던 협궤열차 내부. ⓒ박준규 |
일본에서 기증받은 히로시마 전철. ⓒ박준규 |
야외에도 볼거리가 풍성하다. 고종이 이용했던 황실전차와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옮겨온 ‘미카5형 56호 증기기관차’ ‘혀기1형 협궤 증기기관차’가 눈길을 잡는다. 1951년부터 1973년까지 수인선(수원~인천)과 수려선(수원~여주)에서 운행했던 협궤열차는 내부도 관람할 수 있다. 체코 프라하에서 들여온 노면전차는 트램도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일본에서 기증받은 ‘히로시마전철 900’형은 운행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승강장에 설치한 무궁화호 열차는 ‘타임뮤지엄’으로 개조했다. 시간의 탄생, 시간과 과학에 얽힌 이야기가 흥미롭다. 시간 오차를 극복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과 아름다움을 예술로 표현한 작품과 중세 시계 등을 볼 수 있다. 3만 년에 1초의 오차가 발생하는 초정밀 ‘세슘원자시계’, 자전거 바퀴가 현재 시각을 나타내는 ‘서스펜디드 타임’, 속도와 무게의 상관관계를 활용해 정교하게 제작한 목공예 작품 시계 ‘메가 볼 클락’이 눈길을 끈다. 타임뮤지엄 관람료는 어른 6,000원이다.
무궁화호 열차를 활용한 타임뮤지엄. ⓒ박준규 |
래리 프랜슨의 ‘서스팬디드 타임’. 54개의 자전거 기어(톱니)와 27개 체인이 정교하게 작동하는 대형 시계다. ⓒ박준규 |
제프 펑크하우저의 ‘메가 볼 클락’. 특별 주문 제작한 시계로, 공의 속도와 무게로 정교하게 시간을 표현한 목공예품이다. ⓒ박준규 |
휴식이 필요할 쯤 ‘cafe 기차가 있는 풍경’에 들른다. 2층과 3층에서 화랑대철도공원을 조망할 수 있는 열차 카페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배달 시스템이다. 음식을 주문하면 직원이 아니라 배달기차가 커피를 싣고 달려와 정확한 자리에 정차한다. 디오라마에서는 기차가 달리다 멈추고 카운트다운 후 우주왕복선이 발사된다. 굉음을 내며 하늘로 오르는 동안 연기를 내뿜는 모습도 신기하다.
'cafe 기차가 있는 풍경'에서는 배달기차가 커피를 싣고 달려와 자리에 멈춘다. ⓒ박준규 |
노원에서 스위스 산악열차 맛보기
지난해 11월 개장한 스위스관은 노원기차마을의 새로운 명물이다. 기존 디오라마 전시관이 정적인 미니어처 위주인 데 비해 이곳 전시물은 동적인 요소가 돋보인다.
취리히, 루체른, 베른, 로잔, 제네바, 융프라우, 마테호른, 몽블랑 등 알프스 주변 스위스 도시와 자연 풍광을 정밀하게 축소 재현해 놓았다. 모형 기차가 410m의 레일, 17개 노선을 운행한다. 자동차, 자전거, 보트 등 34가지 움직이는 미니어처까지 실제로 스위스 기차여행을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정교하다. 설명문에 따라 버튼을 누르면 미니어처 기차가 산악을 달리고, 자동차가 강변도로를 주행하고, 강에 떠 있는 모터보트가 움직인다. 어른들도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화랑대철도공원의 노원기차마을. ⓒ박준규 |
모형 기차를 비롯해 34가지 움직이는 미니어처가 전시된 노원기차마을 스위스관. 마치 스위스 기차여행을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정교하다. ⓒ박준규 |
노원기차마을 스위스관의 미니어처. ⓒ박준규 |
전체를 파악하고 부분을 살피면 더욱 재미있다. 하이디마을 버튼을 누르면 ‘알프스 소녀 하이디’ 음악에 맞춰 그네가 동작한다. 클라이네 샤이덱역에서 출발한 융프라우열차(JB열차)가 유럽에서 가장 높은 해발 3,454m 융프라우요흐역으로 오르는 모습도 볼만하다. 험준한 산악교량을 지나는 열차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베르니나 특급열차도 보인다. 모형 인터라켄역에서 스위스 ‘골든패스라인’과 ‘벵게른알프철도’로 열차를 출발시킬 수도 있다. 마테호른 중턱의 대피소에는 굴뚝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열차가 눈을 헤치며 달린다.
이 밖에 베른 시내의 자동차와 자전거, 산사태 상황에서 헬기가 인명을 구조하는 모습, 시속 40㎞로 세계에서 가장 느리게 달리는 글레이셔 익스프레스(빙하특급) 등도 흥미를 끈다.
실제 현지에 온 것처럼 정교하게 재현한 노원기차마을의 스위스관. ⓒ박준규 |
노원기차마을 스위스관을 만든 조성원 한국부라스 대표가 KTX 열차 모형을 들어보이고 있다. 한국부라스는 48년간 동안 철도모형을 제조해온 업체로, 세계 시장 점유율이 80%에 이른다. ⓒ박준규 |
경관 조명이 수놓는 노원불빛정원. 일몰 30분 전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된다. ⓒ박준규 |
밤이 되면 화랑대철도공원은 노원불빛정원으로 변신한다. ⓒ박준규 |
밤이 되면 화랑대철도공원은 노원불빛정원으로 변신한다. 미디어파사드와 경관 조명이 빛의 향연을 펼친다. 화랑대철도공원과 노원철도마을은 현재진행형이다. 스위스관의 인기에 힘입어 이탈리아관도 개설할 예정이다. 스위스관 관람료는 성인 2,000원이다.
박준규 대중교통여행 전문가 blog.naver.com/saka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