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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세상에 흉터 없는 사람은 없잖아요” K-9 폭발부상자 이찬호 인터뷰

by한국일보

“세상에 흉터 없는 사람은 없잖아요”

지난해 8월 18일 K-9 자주포 폭발로 전신 55%에 3도 화상을 입은 이찬호씨가 치료 과정을 기록한 내용을 바탕으로 포토에세이를 발간했다. 이찬호씨 제공

온몸 절반 이상을 뒤덮은 3도 화상의 흔적은 이번 겨울도 어김없이 존재를 알리고 있다. 땀구멍이나 피지샘마저 녹아 없어진 피부는 날씨가 조금만 건조해도 갈라진다. 매일 아침 새롭게 갈라진 곳에 연고를 바르고 드레싱을 하며 화상 흉터를 마주한다. 지난해 8월 강원 철원군에서 발생한 K-9 자주포 폭발사고 부상자 이찬호(24)씨의 일상이다.


“저는 이날 복귀를 안 했으면 뭐 하고 있었을까요?”


사고가 발생한 지 꼭 1년이 흐른 지난 8월 이씨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사고 발생 3개월 전인 지난해 5월 부대에 복귀하면서 차 안에서 찍은 영상도 올렸다. 만약 이 때 부대 복귀를 하지 않았으면 참혹한 사고를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심경을 담은 것이다.

“세상에 흉터 없는 사람은 없잖아요”

이찬호씨 페이스북 캡처

이씨는 지난해 8월 18일 강원 철원군 지포리 육군 사격장에서 K-9 포사격 도중 폭발사고가 나 전신의 55%에 3도 화상을 입었다. 그와 함께 사고를 당한 전우 중 3명은 숨지고 그를 포함해 4명이 크게 다쳤다. 이씨의 삶은 사고 이후 완전히 변했다.


“괜찮아. 돌아갈 수 없어도.”


이씨가 펴낸 포토에세이의 제목은 그가 스스로 계속 되뇌는 말이다. 사고 이전으로 돌아갈 순 없기에 현재의 삶에 적응하고 그 과정에서 깨달은 내용을 기록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이 씨는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잊히는 게 무서웠다. 몸의 흉터는 죽을 때까지 날 괴롭힐 텐데. 그날의 고통을 기억하는 증거인 흉터처럼 잊히지 않으려고 ‘기록’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사고 직후엔 차라리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치료 과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었다. 안 좋은 생각도 많이 했지만, 가족들이 도와주고 국민 청원을 통해 응원을 받으면서 힘을 냈다. 지금까지 수술만 5번 받았고 지금은 치료와 재활을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병원에 입원 중인 이씨는 손을 마음대로 쓸 수 없는 게 속상하다고 했다. 사고를 당하기 전 배우를 꿈꿨던 이씨는 운동을 하며 몸을 가꾸고 체력을 단련하고 있다..

“세상에 흉터 없는 사람은 없잖아요”

이찬호씨가 K-9 자주포 폭발 사고 전 배우를 꿈꾸며 체력을 단련하던 시절 모습을 공개했다. 이찬호씨 제공

“몸이 좋은 편이었다. 체력이 좋으니 자신감도 넘쳐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은 오른손 손바닥, 왼손 손등이 구부러지지도 펴지지도 않는다. 피부에 땀샘과 피지샘, 털도 없어서 체온 조절도 어렵고, 사소한 신체 기능들이 작동하지 않아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다.”

“세상에 흉터 없는 사람은 없잖아요”

이찬호씨 페이스북 캡처

사고 후유증으로 정신적 고통도 심각했다. 이씨는 최근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승용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바로 앞에서 교통사고를 목격했다. “사고를 보고 다가갈 엄두가 안 났다. 신고하면서 사고 차량에 다가가는 아버지를 보는데, ‘저 차가 폭발해서 나처럼 다치면 어쩌나’, ‘운전자가 다쳐서 나처럼 되면 어떡하나’ 별별 생각으로 괴로웠다. 사고를 목격한 후 한 동안 잠을 못 잘 정도였다.” 사고 차량 운전자는 이씨 아버지에 의해 무사히 구조됐다.


사고 후 고통만 느낀 건 아니다. 이씨를 국가유공자로 지정하고 치료해달라는 국민청원에 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의했다. 화상 환우를 위한 콘퍼런스에서는 이지선 한동대 교수와 만났다. 이 교수는 2000년 음주 운전자가 낸 추돌사고로 얼굴 등 전신 55%에 3도 화상을 입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로 임용됐다. 이씨는 이 교수의 사연과 그가 현재 강단에 선 모습을 보며 희망과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그는 “교수님은 나보다 훨씬 전에 사고를 당했는데, 그때는 의료 환경이나 화상 환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 등 모든 게 지금보다 열악했을 것”이라며 “모든 걸 극복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도 큰 힘을 얻는다고 했다. 그는 “악플도 많지만, 댓글이나 문자 메시지를 통해 응원해주시는 분들께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세상에 흉터 없는 사람은 없잖아요”

전신 55% 화상 흉터를 극복하고 미국 UCLA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대학 강단에 선 이지선(오른쪽) 한동대 교수는 이찬호씨에게 가장 큰 힘이 돼준 인물 중 하나다. 이찬호씨 제공

이씨는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다. 화상을 심하게 입은 저도 세상을 꿋꿋하게 사는데, 제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면 좋겠다. 제 불꽃 에너지를 나눠 따뜻하게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세상에 흉터 없는 사람은 없잖아요”

지난해 8월 18일 K-9 자주포 폭발 사고로 전신 55%에 3도 화상을 입은 이찬호씨가 치료 과정을 기록한 포토에세이를 발간했다. 이찬호씨 제공

그는 “세상에 흉터 없는 사람은 없지 않느냐”며 “특히 마음에 상처와 흉터를 가진 분들이 읽고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씨의 포토에세이 ‘괜찮아, 돌아갈 수 없어도’의 수익금은 한림화상재단을 통해 화상 환자와 소방관의 처우 개선을 위해 쓰인다. 이씨는 “제게 오는 수익금은 매우 적다. 화상 치료비는 상상을 초월한다. 저는 치료할 때 그나마 경제적인 지원을 받지만, 많은 화상 환자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책이 많이 팔려 화상 환자들이 조금이라도 지원을 받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고 이전 배우를 꿈꿨던 이씨는 “아직 치료를 받는 중이고 성치 않은 몸으로 뭘 할 수 있을지 지금은 모르겠다. 꿈을 꾼다는 게 쉽지 않지만 그래도 ‘배우’라는 꿈은 아직 내 마음 한 켠에 남아 있다. 꿈을 이루지 못한다면 한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책을 냈고, 이런 프로젝트를 통해 무언가 계속 이뤄나갈 계획이다. 나보다 힘들게 치료하는 화상 환자들이 많다. 그분들께 도움이 되도록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했다.


이정은 기자 4tmrw@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