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를 찾을 수 없습니다”… QR코드가 외면받는 이유

[테크]by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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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서울 중구 덕수궁 석조전 안내판에 부착된 QR코드를 스캔하자 휴대폰에 오류 페이지가 나타났다. 문화재청은 한국일보의 취재가 시작되자 오류가 발생한 일부 QR코드를 문화재청의 ‘문화유산나들이’ 모바일 페이지로 임시 연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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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마다 관람권에 안내 페이지로 연결된 QR코드가 인쇄돼 있지만 덕수궁 관람권의 경우 오류로 인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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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창덕궁 희정당을 설명하는 안내판과 QR코드(노란색 원)이 울타리에서 안쪽으로 2m가량 떨어진 곳에 설치돼 있어 울타리를 넘지 않고서는 스캔이 불가능하다.

4일 서울 중구 덕수궁 석조전 앞. 간략한 설명이 적힌 안내판 상단의 큐알(QR)코드가 눈에 띄었다. 추가 정보를 볼 수 있을까 싶어 휴대폰 카메라를 갖다 대보니 “서비스 이용에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라는 오류 메시지가 떴다. 관람권에 인쇄된 QR코드는 아예 스캔 자체가 쉽지 않았다. 한참 만에 스캔에 성공했지만 동일한 오류가 발생했다. 종로구 창덕궁 초입에 설치된 두 개의 관람 안내판 역시 QR코드는 먹통이었다.


문화재청의 설명은 이렇다. 해당 QR코드는 원래 고궁을 입체적으로 관람할 수 있는 모바일 앱 ‘내 손안의 궁’ 설치 안내용인데 지난해 1월 앱 운영을 중단하면서 철거했으나 일부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덕수궁 관람권 QR코드의 장애에 대해서는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다. “휴대폰에 쌓인 캐시 및 쿠키 데이터를 삭제하면 안내 페이지로 연결될 것”이라는 문화재청 관계자의 말대로 해 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문화재청은 ‘내 손안의 궁’ 앱과는 별개로 이미지와 영상 등 문화재에 대한 추가 정보와 장애인, 외국인을 위한 수화, 자막, 음성을 제공하는 ‘문화유산 QR코드 서비스’를 2012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경복궁과 창덕궁 등에 설치된 QR코드 대부분이 이 같은 추가 정보 페이지에 제대로 연결이 됐다. 그러나 울타리 안쪽 먼 곳에 위치해 아예 접근이 불가능하거나 QR코드 자체가 마모돼 스캔이 안 되는 등 설치 및 관리상의 문제점도 발견됐다. 문화재청은 4일 “문제가 된 모바일 앱 QR코드는 즉시 철거하고 다른 문제점들은 추후 보완하겠다”고 밝히는 한편 오류가 발생한 QR코드를 문화재청의 ‘문화유산나들이’ 모바일 페이지로 임시 연결했다.

외면받는 QR코드

‘반응이 빠르다(Quick Response)’는 의미의 QR코드는 특정 링크를 검색하고 찾아가는 과정을 단 한 번의 스캔으로 축소한, 일종의 디지털 지름길이다. 이 같은 편리함에도 불구하고 문화재를 비롯해 공공장소에 부착된 QR코드는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일보 ‘뷰엔(View&)’팀이 경복궁과 덕수궁, 창덕궁에서 지켜보니 안내판에 부착된 QR코드를 스캔하는 관람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종로소방서가 지하철 화재 대피요령 영상을 볼 수 있도록 시청역 구내에 부착한 QR코드 역시 지난 7년간 영상 조회수가 총 142회에 불과할 정도로 활용도가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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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역에 지하철 화재 시 대피요령 영상을 볼 수 있는 QR코드가 부착돼 있다(왼쪽). 그러나 이용자가 드물어 지난 7년간 조회수는 140여회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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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서울 종로구 ‘사도시 터’ 표석의 QR코드를 스캔하자 오류 페이지가 떴다. 서울시는 “QR코드관련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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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거리에 설치된 가판대마다 서울풍물시장 홍보물과 함께 정체모를 QR코드가 부착돼 있지만 스캔해 보면 오류 메시지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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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소방서가 게시한 주택용 소방시설 설치 홍보 물에 관련 영상을 볼 수 있는 QR코드가 부착돼 있지만 연결이 되지 않는다.

이처럼 이용자가 거의 없다 보니 링크가 유실되는 등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부실 관리와 무관심 속에 방치되기 일쑤고, QR코드를 통해 시민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취지 또한 무색해지고 있다. 서울시내 역사적 장소에 설치된 ‘표석’의 경우도 QR코드는 무용지물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2015년 자세한 정보 제공을 위해 9개 표석에 시범 설치했는데 코드 서비스 업체에 문제가 있어 작동이 안 된다“면서 “현재 QR코드에 담을 추가 정보와 위치 등을 보완하는 작업 중”이라고 밝혔다. 그 밖에 가판대마다 부착된 서울풍물시장 QR코드나 서울교통공사의 신촌역 안내, 마포소방서의 주택용 소방시설 설치 홍보 QR코드 등도 ‘서비스 불가’ 상태다.

’귀찮아서’ 안 쓰고 ‘몰라서’ 못 쓰는 QR코드

QR코드는 스캔을 하면 빠르지만 휴대폰을 꺼내 앱을 실행하는 스캔 과정이 번거롭다는 게 단점이다. “스캔 기능이 기본 탑재된 휴대폰이 별로 없어 포털 앱 같은 거 깔아야 돼서 귀찮다”는 임모(17)양의 말대로 대다수 휴대폰에 자동 스캔 기능이 없어 QR코드를 스캔하려면 앱을 깔거나 설정을 바꾸는 등의 준비 과정도 필요하다.


스마트폰 사용법이나 디지털 정보에 취약한 노년층에겐 이런 불편조차 다른 세상 이야기다. 지난달 31일 탑골공원을 찾은 유종복(69)씨는 “요즘 이런 네모난 거(QR코드) 많이 보이는데 뭔지 모르니까 안 쓴다”고 말했다.

QR코드의 운명은?

로또 당첨 여부를 확인하거나 공유 전동킥보드를 대여하는 등 이용자와 플랫폼이 연계된 쌍방향성 QR코드의 경우 효용성이 높지만 일방적인 정보 제공만을 목적으로 하는 공공기관 QR코드는 해당 내용에 관심이 없는 한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한규훈 숙명여대 홍보광고학과 교수는 “QR코드 제작이나 부착에 큰 비용이 들지 않으니 공급자 입장에선 이를 형식적으로 활용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음성 인식처럼 더 편하고 쉬운 방식이 등장하는 상황에서 QR코드의 매력은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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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종로구 탑골공원 내 ‘대원각사비’ 안내판의 QR코드가 오랜 풍화작용으로 인해 심하게 마모돼 있다. 이 경우 스캔 자체가 불가능하다.

박서강 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정예진 인턴기자

2019.06.2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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