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차, 두고 보자” 블랙박스 공익신고 급증

[이슈]by 한국일보

갑작스러운 과태료 납부서 황당… 알고 보니 차선 살짝 밟은 영상


명절 체증에 보복·화풀이성 많아… 올 8월까지 과태료 부과 43만건


이의신청 등 없어 불만 폭증에도… 경찰 “위반 명백해 처분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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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용 블랙박스가 대중화되면서 블랙박스를 이용한 공익신고도 크게 늘고 있다. 운전자들 불만은 높아지고 있지만 경찰은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다. 게티이미지뱅크

직장인 황모(35)씨는 최근 경찰서로부터 7만원짜리 과태료 납부서를 받고 당황했다. ‘신호 또는 지시위반’ 때문이라는데, 당시 상황을 아무리 더듬어 봐도 특별히 교통법규를 어긴 기억이 떠오르지 않아서다. 경찰서에 찾아간 황씨는 그제서야 누군가 블랙박스 영상을 녹화에 경찰에 신고했다는 걸 알게 됐다. 황씨는 신고 내용을 보고 더 불쾌해졌다. 자기가 기억 못하는 뭔가가 있을 줄 알았는데, 고작 직진 차로로 진입하는 도중 바로 옆 차선으로 조금 넘어간 것 뿐이어서다. 경찰도 일단 신고가 들어온 이상 봐줄 도리가 없다 했다. 황씨는 “그 때 도로도 한산했는데, 날 골탕 먹이려고 신고한 거 같아 불쾌했다”고 말했다.


2일 경찰청에 따르면, 차량 블랙박스나 스마트폰으로 교통법규 위반 장면을 찍어 신고하는 이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일종의 ‘공익신고’다. 하지만 황씨처럼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들도 늘고 있어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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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블랙박스를 이용한 신고. 그래픽=박구원 기자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이렇게 접수된 교통법규 위반 공익신고 건수는 85만7,393에 달한다. 한 달에 10만건 정도인데, 이런 추세라면 올해만 120만건 이상이 되면서 2016년 100만건을 넘기기 시작한 뒤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리라는 예상이다. 공익신고는 말 그대로 공익신고라 파파라치와 달리 신고에 대한 대가로 포상금을 지급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블랙박스, 스마트폰 등이 보편화되면서 공익신고는 비약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공익신고가 늘어나면서 보복성, 화풀이성 신고도 덩달아 늘어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 추석 연휴 직후 서울의 한 경찰서 교통민원실에는 과태료 통지가 부당하다며 수십 명의 민원인들이 한번에 들이닥치는 일도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도로 위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은 명절 때는 운전자들이 예민해져서인지 블랙박스 공익신고가 쏟아진다”며 “지난 추석 때 접수된 신고는 200여건이었는데 화풀이성 신고도 상당히 많았다”고 말했다.


‘꾼’도 등장한다. 지난해 “공익신고 하겠다”며 운전자들을 협박한 3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는데, 이 사람의 신고내역을 확인해봤더니 3년간 무려 3만건을 신고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일선 경찰관은 경찰관대로 ‘피로감’을 호소한다. 한 경찰관은 “일단 신고가 들어오면 영상을 분석해야 하는데 적잖게 시간이 들어간다”도 말했다.


운전자들도 불만이다. 과태료는 이의신청 절차가 있지만, 영상 자료가 명백한 공익신고는 무조건 내야 한다. 상황 설명이 먹혀 들지 않는다. 이렇게 과태료 통지를 받은 이들이 올해 8월 기준 이미 43만명이다. 운전자들 사이에선 “정부가 세금을 더 걷으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운전이 서툰 여성이 뜻하지 않는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경찰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우리로서도 때론 안타까운 상황이 있지만 위반 사실이 명백히 촬영된 경우는 법대로 처리해야 한다”며 “운전자들 심정은 이해하지만 현실적으로 정상적이 신고와 보복성 신고를 구분하는 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2019.10.0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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