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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자박자박 소읍탐방]

세종시에 아파트 숲만?... ‘때묻은 풍경’이 원래 주인이다

by한국일보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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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조치원 읍내 중심가에 자리한 ‘조치원 권투체육관’. 1952년 미군이 군수물자 창고로 지은 건물을 지금까지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세종=최흥수 기자

행정중심복합도시로 급속하게 성장한 세종시는 부동산 기사에 단골로 등장한다. 고층 아파트로 채워진 신도시 풍경을 떠올리는 게 자연스럽다. 세종시로 간판을 바꿔 단 옛 연기군의 다른 지역은 이 ‘특별자치시’에서 변두리로 잊히고 있다. 그러나 세종시 이전에도 도시는 있었고 그 중심이 조치원이다.

헝그리 복서의 꿈…조치원 권투체육관

“조치원에 특별히 볼 게 없는데…”. 옛 연기군이 고향인 지인의 평가는 냉정했다. 단번에 감탄사를 자아낼 정도로 자연 풍광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전 국민이 알 만한 유명 관광지도 없다. 조치원역 광장에서 처음 마주하는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별한’ 도시라고 하지만 신도시같이 깔끔하지는 않고 그렇다고 아주 ‘시골’스럽지도 않은 다소 어정쩡한 풍경이다. 그 속에 옛 연기군청 소재지 조치원의 곰삭은 모습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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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치원 읍내 풍경. 외곽에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시장을 중심으로 한 읍내 중심가는 옛 연기군 시절의 모습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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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치원역 앞 일방통행 도로. 한때 1번 국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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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선과 충북선이 교차하는 조치원역은 지역의 물류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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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경부선 철도역으로 지은 옛 조치원역. 현재는 깔끔한 현대식 건물로 바뀌었다.

조치원역은 현재 깔끔한 통유리창 외관이다. 길쭉한 벽돌 건물의 역사(驛舍)는 한때 조치원의 자랑이었다. 서울역과 평양역을 설계한 건축가의 작품이었지만 이제 빛 바랜 사진으로만 볼 수 있다. 조치원역은 지역 물류의 중심이었다. 1905년 경부선이 개통됐고, 1921년에는 제천 봉양역까지 이어지는 충북선의 시발점이 됐다. 덕분에 광산이 있는 것도 아닌데 1960년대에는 강원연탄 풍화연탄 삼보연탄 3개 공장서 한 해 4,000만장의 연탄을 생산하는 저탄 도시로 이름을 날렸다.


역 광장에서 좌우로 연결되는 도로는 한때 국도 1호선이었다. 지금은 일방통행으로 운영되는 좁은 골목 신세다. 이 도로 주변으로 저탄장과 복숭아를 주로 판매하는 청과시장이 있었다. 역 주변에는 아직도 호텔이나 모텔이 아닌 ‘여관’이라는 간판이 더러 남아 있다. ‘청소년통행금지구역’으로 완곡하게 표현되던 사창가는 완전히 사라지고 공원으로 바뀌었다. 읍내가 확장되면서 조치원 구간 1번 국도는 네 차례나 위치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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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치원 권투체육관 입구. 허름한 양철지붕 외관은 1952년 지은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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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치원 권투체육관 내부는 자연 조명이 비쳐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금도 체육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조치원 권투체육관’이 있다. 체육관이 무슨 구경거리인가 싶지만, 읍내 곳곳에 이정표가 있으니 조치원에선 꽤 명물이다. 길쭉한 원통을 반으로 잘라 엎어 놓은 형태의 외관이 특이하다. 1952년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군수물자 창고로 지은 건물이다. 파란색 페인트로 외벽을 단장했지만 허름한 몸체를 다 감추지는 못한다. 읍내 한가운데에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으니 자체가 보물이다.


내부는 낡아서 더 매력적이다. 정면에 대형 태극기가 펼쳐져 있고 양철지붕의 채광창을 통해 천장에서 빛이 쏟아진다. 반질반질한 마룻바닥에 반사된 햇빛은 다시 체육관 전체에 은은하게 번진다. 낮에는 조명을 켜지 않아 처음 들어가면 극장에 들어선 것처럼 적응하는 데 한참이 걸린다. 1970~80년대 세계 챔피언을 꿈꾸던 ‘헝그리 복서’의 애환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듯하다. 이런 독특한 분위기 덕에 영상미를 중요시하는 200여편의 영화, 드라마, 뮤직비디오, 화보, 광고가 이 체육관을 배경으로 촬영됐다. 체육관 입구 벽면에 촬영 목록과 함께 주요 장면을 찍은 사진이 붙어 있다. ‘기생충’의 주연 배우 송강호의 모습도 보인다. 2000년에 개봉한 레슬링 영화 ‘반칙왕’의 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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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치원 권투체육관 벽면에 이곳에서 촬영한 영화 드라마 광고 사진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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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영화 ‘반칙왕’을 찍은 송강호의 사진도 걸려 있다.

이 건물에 권투 체육관이 둥지를 튼 건 1975년이었고, 강용덕 관장이 부친에게 물려받아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60여명이 관원으로 등록돼 있고 개중에는 여전히 챔피언의 꿈을 키워 가는 선수도 있다. 그렇다 보니 세종시가 관광지로 홍보하고 있지만 여행객은 선뜻 발을 들이기가 주저된다. 내부에서 추억의 ‘인증샷’ 한 컷 남기는 게 주목적인 여행객으로서는 체육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다. 강 관장은 “사람들이 문 앞에서 기웃거리면 신경이 쓰이고 기분이 나쁜 게 사실”이라며, 시에서 마땅한 대책 없이 관광지로 홍보하는데 대해 불편한 속내를 내비쳤다. 그러면서도 체육관이 조치원을 대표하는 관광자원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자신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조치원은 시장이다…자장면 2500원, 탕수육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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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역이 바뀌면서 조치원시장도 세종전통시장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조치원에서 시장을 빼놓을 수 없다. 조치원 시장은 시골 오일장이라 하기엔 규모도 크고 활력이 넘친다. 행정구역이 바뀌면서 현재는 ‘세종전통시장’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문헌상 ‘조치원(鳥致院)’이라는 지명이 처음 등장한 것도 시장과 함께였다. 1770년(영조 46)에 발간한 동국문헌비고 향시편에 ‘청주목 내 조치원장은 4일과 9일 열린다’고 소개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역사만 250년이다. 관영 숙박시설인 원(院)이 설치된 곳이었으니 실제는 그보다 오래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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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전통시장의 찐빵 만두 가게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고 있다.

조치원역 광장에서 도로 하나를 건너면 바로 시장이다. 단순히 골목 하나가 아니라 네댓 블록 전체가 아케이드로 연결된 대형 시장이다. 도심 전체가 시장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여행객에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값싼 먹거리 가득한 식당들이다. 입구 찐빵 가게의 대형 찜통에선 하얀 김이 폴폴 풍긴다. 술빵은 3,000원, 찐빵과 만두는 5개에 각각 4,000원이다. 다양한 주전부리를 먹음직스럽게 진열해 놓은 이동 판매대와 반찬가게를 지나면 골목마다 작은 식당이 어깨를 맞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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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전통시장 안에 있는 광진식당의 2,500원짜리 자장면. 양과 맛은 결코 저렴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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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진식당의 7,000원짜리 탕수육.

시장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음식점은 박리다매로 승부하는 ‘광진식당’이다. 메뉴는 단 세 가지. 자장면 2,500원, 짬뽕 3,500원, 탕수육 7,000원이다. 값이 싸다고 해서 양이 적거나 맛이 허술한 건 아니다. 평일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줄을 서야 할 정도다. 굳이 트집을 잡자면 테이블이 부족해 모르는 사람과 동석해야 할 수도 있고 카드 결제가 안 된다는 게 흠이다. 바로 옆 1,000원짜리 호떡 가게도 성황이다.


조치원 전체가 시장이었다는 흔적은 주변에도 남아 있다. 읍내를 둥그스름하게 감싸고 도는 조천 제방 인근에 ‘청주여관’이라는 건물이 남아 있다. 장꾼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일종의 주막이었다. 일대는 현재 한적한 주택가로 변했지만 우시장과 나무시장이 섰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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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치원읍과 청주 오송면을 연결하는 조천교. 야간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조치원의 술꾼들이 야밤에 통행금지가 없는 충북 땅으로 건넜던 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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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치원 조천 제방 부근의 옛 정수장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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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 제방과 맞닿은 평리마을 담장이 화사한 타일 벽화로 장식돼 있다.

제방 인근의 정수장 터는 문화정원이라는 소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일제강점기에 지은 붉은 벽돌 건물과 원통형 저수조가 남아 있다. 공원 안내판에 세종 9년 연기현감으로 부임한 허만석의 공적을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자세히 적어 놓았다. 가뭄과 홍수에 시달리는 백성을 구휼하기 위해 조천에 보를 설치하고 제방을 쌓았다는 내용이다.


무시로 범람하던 조천에는 예부터 갈대가 무성해 새들이 많았다. 조치원이라는 지명도 새들의 보금자리, 조천(鳥川)에서 유래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도로명주소에 반영된 ‘새내길’ ‘새내로’ 역시 조천에서 온 이름이다. 조천 건너편은 청주 오송읍이다. 충청북도는 제주도와 함께 미군정시대부터 시행된 야간통행금지 예외 지역이었다. 1982년 1월 5일 제도가 폐지되기 전까지 조치원의 술꾼들은 자정이 가까워지면 조천교를 건넜고, 청원 서평리에서 술자리를 이어 갔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 온다.


조천 제방에는 현재 벚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봄을 기다리고 있다. 제방 주변 평리마을 골목도 최근 타일 벽화로 장식해 화사함을 더한다. 세종시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조치원의 옛 자취를 따라가는 3개 탐방 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5~20명이 단체로 신청할 수 있다. 서울(혹은 용산)역에서 조치원역까지는 무궁화호와 새마을호 열차가 수시로 운행한다. 1시간30분가량 걸린다.


세종=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