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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천창, 루버창, 마당…
틈 많은 60대 부부의 ‘홈 오피스’

by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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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파주 헤이리마을의 출판사 ‘느림보’ 사옥 겸 홍문기ㆍ윤재인 부부의 집. 회색 콘크리트 벽체로 구성된 1층은 업무 공간, 흰색의 덩어리가 얹어진 2층은 주거 공간이다. ©윤준환 건축사진작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먼 미래라 생각했던 재택근무를 코 앞의 현실로 바꿔놨다. 먹고 자는 데 충실했던 집은 일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외부로부터 안전하게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다양한 기능을 요구받게 됐다. 1년여 전 경기 파주 예술인마을 헤이리에 자리잡은 홍문기(66)ㆍ윤재인(62) 부부의 사옥 겸 집은 코로나19가 몰고 올 사회적 변화에 따른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부부는 책을 직접 쓰고, 아동 전문 출판사인 ‘느림보’를 운영한다.

집과 일터, 문화공간의 완벽한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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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내려다본 부부의 집. 옥상과 마당에 잔디를 심어 활용도를 높였다. 집의 마당은 2층 안쪽에 숨겨져 있다. ©윤준환 건축사진작가

서울에서 파주출판단지로 출퇴근하던 부부가 집을 짓기로 한 건 버려진 개를 키울 곳이 없어서였다. 회사 직원이 두고 간 개를 회사에 둘 수도, 아파트로 데려갈 수도 없었다. 개가 발단이 됐지만 집은 오롯이 부부에 초점이 맞춰졌다. “나이가 드니 1시간 이상씩 걸리는 출퇴근도 힘들고, 잦은 외식에 건강도 염려스러웠어요. 그렇다고 나이 때문에 책 만드는 걸 그만두고 싶진 않았어요.”


부부는 건축잡지에서 눈여겨봤던 윤재민 건축가(JMY아키텍처 대표)에 주거와 업무, 문화공간이 한데 어우러진 집을 지어줄 것을 의뢰했다. 집 지을 땅(대지면적 651.2㎡ㆍ196.98평)도 건축가와 함께 골랐다. 업무, 상업 공간으로 쓰기에는 주택 단지보다는 유동 인구가 많고 복합문화시설이 모여 있는 헤이리가 알맞았다. 건축가는 “땅을 선정할 때는 일과 주거 중에 일에 더 방점을 뒀다”라며 “건축물이 들어설 위치가 일하기에 적합하다면, 주거는 주어진 제약 안에서 건축가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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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업무 공간의 대부분은 향후 북카페, 공연장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4m가 넘는 높은 층고를 활용해 중층 구조를 만들었다. ©윤준환 건축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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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업무공간 내 사무실은 층고를 낮추고 작은 창을 내 업무 집중도를 높이도록 했다. ©윤준환 건축사진작가

부부의 집은 다양한 용도를 수행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시작됐다. 가장 먼저 업무 공간과 부부가 살 주거 공간을 완벽하게 분리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1층은 업무 공간으로, 2층은 주거 공간으로 분리해 각자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는다. 회색 콘크리트 벽돌로 쌓은 벽체 사이로 시원하게 창을 낸 1층이 개방적이라면 네모 반듯한 두부를 닮은 흰색 덩어리를 얹은 2층은 폐쇄적이다. 1층이 외부와 소통하는 공적 공간이라면 2층은 외부와 분리되는 사적 공간이다.


다만 1층 사무실은 창을 작게 내 업무를 방해하지 않도록 했다. 북카페나 공연장 등으로 활용할 문화공간은 창을 크게 내고 층고를 높여 열린 느낌을 강조했다. 중층 구조(메자닌)를 만들어 공간 활용도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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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에서 외부 계단을 통해서 2층 마당으로 연결된다. 부부는 대청마루처럼 만든 데크 위에 앉아 마당을 조망하거나, 마당에서 지인이나 가족들과 바비큐 파티를 연다. ©윤준환 건축사진작가

1층은 내부가 아닌 외부 계단을 통해서만 2층 마당으로 연결된다. 부부가 사용하는 사적 엘리베이터는 향후 거동이 불편해질 때를 대비한 것이다. 보통 1층 집 앞에 마당을 두는 데 비해 부부의 집은 2층 집의 안쪽에 마당이 있다. 집의 정면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2층 내부에서는 산을 조망하는 사적인 마당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건축가는 “주거 공간인 2층이 붕 떠 있는 게 아니라 마당을 통해 땅을 밟고 있는 듯 안정적인 느낌을 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마당은 부부가 가장 즐기는 공간이다. 부부는 “차 한 잔 들고 나가면 바로 마당과 연결돼 아침저녁으로 마당에서 산과 하늘, 바깥 풍경을 감상한다”라며 “차를 타고 밖으로 나가거나 여행을 가지 않아도 리조트에 온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고 말했다.

틈과 창…사이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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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다양한 틈새 공간이 있다. 거실 뒤편 테라스 너머 폭이 25㎝에 불과한 틈새로 외부의 시선은 차단하고 내부의 시선은 밖으로 끌어낸다. ©윤준환 건축사진작가

밖에서 보면 2층은 꽉 막힌 듯 보이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면 사방으로 통한다. 확 트인 공간인 아닌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연결된 공간들이 시선을 멀리까지 보낸다. 뒷산과 마당에서부터 대각선으로 거실을 가로질러, 거실 뒤편 작은 테라스를 지나 두부 같은 외벽에 난 25㎝ 폭의 틈새까지 하나로 시선이 빠져나간다.


천창과 단차(段差ㆍ단의 차이) 등 수직적인 틈새도 개방감을 준다. 드레스룸의 천창에서 들어온 빛은 부부의 침실을 지나 다시 마당으로 새어나간다. 집의 모든 공간이 틈과 창을 통해 유연한 흐름을 갖는다. 집의 정면에 있는 루버창(기류와 빛을 투과시키기 위해 얇은 판을 수평으로 배열한 창)도 석양빛을 집으로 끌어온다. 건축가는 “외부에서 보면 2층은 폐쇄적이지만 내부적으로는 틈과 사이 공간, 천창 등 모든 공간이 소통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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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이 바로 외부와 맞닿지 않고 테라스, 루버창 등 다양한 층위의 공간이 있다. ©윤준환 건축사진작가

실제 집의 창호는 표면적의 20%도 채 안 된다. 그런데도 내부에서는 창이 많다고 느껴진다. 채광과 환기도 충분하다. 건축가는 “두 벽이 맞닿는 게 아니라 엇갈리게 만나면서 틈새를 만드는 트인 방식의 공간 연결 구조가 집에 개방성을 부여해준다”고 말했다. 천장에도 여러 겹의 층위가 있고, 창호도 바로 벽에 붙어 있지 않고 한 발짝 떨어져 있다. 벽으로 가둬진 공간 없이 다양한 층을 만들어 유연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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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요리를 즐겨 하는 부부의 집 중심에는 주방이 있다. 주방 주변에는 수납장을 맞춰 수납도 한번에 해결한다. ©윤준환 건축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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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내부에서도 긴 통로를 통해 거실, 주방 등 공적 영역과 부부의 침실, 화장실, 드레스룸 등이 있는 사적 영역이 나뉘어진다. ©윤준환 건축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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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로의 일부에 있는 드레스룸 위로 천창이 뚫려 있어 밝고 환하다. 드레스룸은 화장실과 부부의 침실 등과도 유연하게 연결된다. ©윤준환 건축사진작가

집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기본 요소인 ‘의식주’(衣食住) 기능도 되살린다. 건축가는 “과거에는 주(住) 속에다 식(食)과 의(衣)를 방치해뒀다면 지금은 의식(衣食)이 점점 더 생활의 중심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부부의 집 가운데는 큰 아일랜드 식탁이 놓여 있다. 부부는 “누가 음식을 하든 소외되지 않고 서로 시선을 맞추고 소통하면서 요리할 수 있어 좋다”라며 “집밥을 챙겨먹는 요즈음 주방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천창 아래 드레스룸 위치도 남다르다. 거실, 주방을 지나 부부의 침실로 연결되는 통로에 위치한 드레스룸은 각 방과 화장실이 연결되는 한가운데에 있다. 옷을 보관하는 장소에 그치지 않고 옷을 맞춰보고, 갈아입고, 둘러보기 쉽게 실용적인 공간으로 거듭난다.


부부의 노후도 달라졌다. 주중이면 일하느라 바쁘고, 주말이면 여행가기 바빴던 부부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 마당에서 차 한잔을 나누고, 소소한 날씨 얘기로 아침을 연다. 함께 사무실로 내려가 각자의 일을 하고, 단출하지만 건강한 식사를 한다. 때로 작가나 가족을 불러 마당에서 바비큐 파티를 연다. 별을 보며 최근 태어난 손주 얘기를 나누고, 손주를 위해 책을 쓴다.


“나이가 들면서 일을 하고 싶어도 출퇴근하기 힘들어서, 운전하기 힘들어서, 외식하기 힘들어서 일을 그만둘까 고민을 하게 되는데, 집을 짓는 것만으로도 삶이 확연하게 달라졌어요. 집을 지으니 나이에 맞춰 일과 삶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됐네요.”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