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라이프 ] 이런 2막

전세계가 도랑 치고 가재 잡는 날까지…

by한국일보

환경PD에서 ‘환경 외교관’ 된 김창환씨

지역 시민단체의 ‘도랑 살리기’ 운동 베트남에 전파


“은퇴는 재미있는 분야 찾아 신나게 노는 것”


‘도랑치고 가재 잡는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여기서 ‘친다’는 말은 ‘청소하다’라는 의미다. 시골 마을 주변 실개천을 청소하다 보면 깨끗한 물에서만 사는 가재를 잡는 쏠쏠한 이익도 챙길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젠 옛날 얘기다. 산업화로 생태계 보호는 뒷전으로 밀리면서 맑았던 하천은 오폐수로 넘쳤고, 수변 동식물은 멸종 위기에 내몰렸다. 뒤늦게나마 ‘도랑 살리기’ 운동이 펼쳐졌다. 경남 창원시 소재 시민단체 한국생태환경연구소가 주도해 2008년 경남 산청군 수철마을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작년까지 전국 150여 마을의 도랑을 살려냈다. 그리고 이제 그 결실을 바탕으로 도랑 살리기 운동은 베트남에 ‘수출’을 앞두고 있다. 연구소 300여 회원과 연구원, 이사진 모두가 주역이지만, 이사 겸 국제교류위원장인 김창환(63)씨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13일 창원에서 그를 만났다.

한국일보

지난 13일 경남 창원시 창원천에서 김창환 한국생태환경연구소 이사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며 "도랑을 깨끗하게 하면 개천가 하천, 강이 맑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창원=이대혁 기자

산을 좋아한 방송PD, 은퇴 후 환경운동가로

1983년 창원MBC에 입사한 김 이사는 여느 프로듀서(PD)와 마찬가지로 주어진 대로 방송을 제작했다. 오락과 교양 등 장르를 두루 섭렵했다. 그러다 1996년 호주 브리즈번에서 개최된 람사총회를 담당하게 되면서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당시 국내에선 습지보호 움직임이 막 움텄고, 골프장 건설과 환경보호의 갈등이 표면화하기 시작됐을 때였다. 김 이사는 “시민단체와 5박6일 동안 유스호스텔에 머물면서 밥도 같이 해먹고 환경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재미있게 보냈다”며 “원래 산을 좋아했는데 람사총회에 참석하며 우리나라의 습지와 환경, 해외의 환경보호 추이와 실태 등을 이해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돌아온 뒤부터 그는 습지, 해안, 환경문제와 관련된 방송을 기획했다. ‘실낙원의 철새’, ‘조화와 생명의 땅 습지’, ‘붉은점 모시나비’, ‘해안 2부작’, ‘빗물 버릴 水 없다’ 등 환경ㆍ생태분야 특집 다큐멘터리를 줄줄이 기획ㆍ제작했다. 어느덧 선후배들은 그를 ‘환경PD’로 불렀다. 두 차례에 걸친 한국방송대상은 훈장처럼 회자된다. 2015년 6월, 32년6개월을 일한 뒤 정년을 맞이한 그는 연구소의 도랑 살리기를 베트남에 전파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한국일보

경남 창원시 의창구 북면 신음마을에서 펼쳐진 도랑 살리기 운동 전후의 모습. 한국생태환경연구소 제공

“깨끗한 환경 싫어하는 사람 없죠”

수출까지 하는 환경운동이라 거창할 것 같지만 어려운 게 아니라고 김 이사는 강조했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물 줄기 옆에 마을이 자리 잡고 있어, 시골 마을마다 도랑을 끼고 있다. 하지만 ‘보기 좋다’고 할 만한 곳은 손에 꼽힌다. 김 이사는 “곳곳의 개천에 가보면 지금도 잡풀이 우거져 있거나 쓰레기로 넘치는 곳이 많다”며 “요즘은 나아졌다지만 농촌은 아직도 분리수거 설비가 제대로 구비되지 않아 생활 쓰레기, 비닐, 플라스틱, 농약병 등을 개천에 버려 물이 맑은 곳은 10%도 안 된다”고 밝혔다.


도랑 살리기는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도랑 주변 주민들에게 깨끗한 환경이 생태계와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하고, 지자체에는 쓰레기 처리 설비를 갖추도록 유도해 누가 와서 봐도 깨끗하고 산뜻한 주거환경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김 이사는 “쓰레기 처리 시설을 설치하고 깨끗하게 재탄생한 마을을 견학하는 등 주민 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주력했다”며 “깨끗한 곳을 보여주면 ‘우리동네도 옛날엔 이랬는데…’라며 누구나 좋아하더라”라고 말했다.


이렇게 전국 150개 마을의 도랑이 되살아났다. 성공 사례들이 하나 둘 나오면서 지자체들이 성과를 알리자 전국적으로 참여한 덕분이다. 도랑 살리기는 이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돼 환경부가 참여하는 ‘도랑 품은 청정마을’ 운동으로 확대됐다. 김 이사는 “마을 가꾸기 사업과 자원 재활용 사업 등으로 확대하고 궁극적으론 에너지 자립 마을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일보

작년 2월 베트남 럼동성 달랏시청에서 베트남 도랑 살리기 시범사업 관련 회의를 마치고 김창환(왼쪽 세번째) 한국생태환경연구소 이사와 베트남 관계자들이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김창환씨 제공.

베트남에 수출되는 도랑 살리기

2017년 연구소는 회원들과 만남의 날을 열었다. 김 이사는 이날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면서 회원들에게 “도랑 살리기가 국내에서는 확산되고 있는데 우리 노하우를 국제적인 비전으로 발전시켜보자”고 제안했다. 이어 친척이 근무중인 베트남에 가족모임차 참석했다가 유태현 전 주베트남 대사와 선이 닿았고, 그의 도움을 받아 럼동성 달랏시와 연을 맺었다. 작년 2월에는 이상용 연구소장과 달랏시 주요 도랑 실태를 파악하려 베트남을 다녀왔고, 5월 럼동성 부성장과 달랏시 부시장 등을 한국에 초청해 살아난 도랑들을 보여줬다. 김 이사는 “베트남은 저렴한 인건비, 낮은 환경규제 등으로 한국 기업만 8,000여개가 진출하는 등 각국의 기업들이 몰려들고 있다”며 “이런 과정에서 망가진 환경을 되살리는 데 막대한 시간과 자금이 필요했던 우리의 사례를 겪지 않도록 노하우를 전수하겠다고 하니 달랏시가 호탄트 지역을 도랑 살리기 운동 시범사업 지역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다만 지난 4월 예정됐던 시범사업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잠시 미뤄진 상태다.

은퇴 6년차 “재미있게 놀고 있어요”

방송PD에서 환경운동가, 환경외교관으로 변신한 지 6년차.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어 재미있는 은퇴생활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대단한 히트 상품은 아니지만 지역에 뿌리를 둔 작은 순수 민간단체가 도랑 살리기라는 운동을 펼쳐 국내에서 소기의 성과를 얻었고, 이를 발판으로 해외에 전달하게 됐다는 데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창원에서 시작한 작은 운동이 한국을 벗어나 다른 나라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론 지구 환경을 깨끗하게 하는데 일조한다는 그림을 그려보면 이보다 재미 있는 것은 없다”고 웃으며 말했다. 향후 달랏시에서 시작하는 이 운동이 럼동성과 베트남 전역에 퍼지고 다른 동남아 국가로도 전파하는 것이 목표다. 이 꿈을 그는 다른 사람들과 나눴으면 하는 바람도 내비쳤다.


“미국이나 유럽의 시민단체는 은퇴자들이 힘을 보태 동력을 유지하고 키웁니다. 시간이 남게 된 은퇴자들이 관심 있던 분야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죠. 우리나라도 이런 은퇴 문화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자기 관심 분야를 공부하고 연구하고 바꾸려고 하는 것만큼 즐거운 놀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창원=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