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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집 공간 사람

푹 눌러쓴 지붕, 쏙 들어간 창… 작지만 시원한 집

by한국일보

※ 집은 ‘사고 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수요일 격주로 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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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완공된 충북 괴산의 윤여정ㆍ오치윤 부부 집. 낮고 단정한 것이 회색 모자를 눌러쓴 것 같다. 나무와 시멘트사이딩 등 흔한 재료를 사용해 가볍고 밝은 느낌을 냈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귀촌은 도시에서의 삶을 뒤로 한 도피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귀촌은 새로운 기회를 마련하기 위한 꿈이다. 두 아이가 있는 윤여정(45)ㆍ오치윤(38) 부부는 ‘한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자’는 모토 하에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충북 괴산으로 내려왔다. 부부는 이미 5년 전 제주에서 2년간 살아봤다. 그러다 생계가 막막해 서울로 돌아왔다.


틈틈이 기회를 엿보던 부부는 마침 한 생활협동조합에서 괴산군에 마을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땅을 분양한다는 소식에 무릎을 쳤다. 연고는 없지만 서울과 가깝고, 땅값은 저렴하고, 부부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도 무리가 없었다. 3년 전 평당 18만원에 610㎡(약 184평)의 땅을 샀다. 부부는 “제주에 살아보니 생계가 안정되지 않으면 생활이 조급지더라”며 “괴산에서는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부부는 올해부터 벼농사를 지어 술을 빚을 계획이다. 부부는 틈틈이 서울을 오가며 생계를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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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내부는 중정을 통해 쏟아지는 빛으로 환하다. 중정은 순환 동선이 만들고, 각 공간을 분리했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작지만 작지 않은 집

땅은 넓었지만 예산은 부족했다. 부부의 예상 건축비는 1억5,000만원. 빠듯한 예산이지만 대충 짓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비용이 부족하니 되려 설계역량이 뛰어난 건축가가 필요하다 생각했다. 부부는 한양규 건축가(푸하하하프렌즈 건축사사무소 공동 소장)를 찾았다. 뻔하지 않은 건축을 할 거 같아서 의뢰하면서도 너무 튀는 집은 싫다 했다. 작아도 괜찮다면서 답답하지 않게 해달라고, 상반된 요청을 했다.


그렇게 지난해 11월 완공된 부부의 단층집은 회색 모자를 푹 눌러쓴 것처럼 나지막하고 단정하다. 대지면적(약 184평) 중 집이 차지하는 면적(건축면적)은 66.43㎡(약 20평)에 불과하다. 육중한 철근콘크리트 대신 가벼운 나무로 뼈대를 세우고 미리 조립한 부재를 사용했다. 비용을 맞추려 건축면적을, 공사기간을 줄였다. 자로 잰 듯 똑 떨어지는 지붕선과 정사각형의 반듯한 형태는 같은 재료로 지은 마을의 여느 집과 확연하게 구분되면서도 튀지 않는다. 외장재의 두꺼운 몰딩(이음매를 보이지 않기 위해 사용하는 띠 모양의 부재), 투박한 지붕, 홈통처럼 외관을 해치는 요소들을 세심하게 다 덜어낸 덕분이다. 건축가는 “비용의 한계도 있었지만, 흔한 재료를 가지고 완전히 다른 모습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라며 “목구조의 특징을 살려 가볍고 간결한 형태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지붕을 높이 2m까지 끌어 내린 것은 마치 모자를 쓰면 외부의 시선이 가려져 편안한 것처럼 집에 사는 이들이 안락하고 편안하게 느끼게 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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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공간이 서로 마주해 있어 ‘마주한 집들’이라 불린다. 두 방과 가족실은 단차를 두어 공간의 위계를 만들었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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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의 창을 열면 주방 공간이 확장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중정에도 처마를 만들어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했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폐쇄적인 외관과 달리 내부는 중정을 갖춘, 활짝 열린 집이다. 현관을 들어서면 마치 밖에 나온 것처럼 환하다. 작지만 답답하지 않게 해달라는 건축주의 요구에 대한 응답이다. 또 중정은 한 채의 집을 방2개, 주방, 거실 등 4개로 나눠 벌릴 수 있는 단서가 됐다. 66.43㎡짜리 집의 한 가운데에 6.6㎡짜리 중정을 가져다 놓으니 나머지 방, 거실 등은 중정의 각 모서리 부분에 위치했다. 건축가는 “중정 자리에 다른 방을 둘 수도 있겠지만, 지나가는 동선에는 무언가를 두고 특정 용도로 사용하기 힘들다”라며 “작은 집일수록 빈 공간이 많아야 넓어 보이고 숨 쉴 틈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중정으로 공간을 분리하고 순환 동선을 만들어 지루함을 덜어냈다.


그 덕에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중정이다. 둘은 주방에 앉아 중정으로 나 있는 폴딩도어를 활짝 열고 여유를 즐긴다. 시시각각 너울대는 빛 그림자를 쫓고, 상쾌한 바람을 들이마신다. “아무리 시골에 살아도 나가지 않으면 자연을 느끼기 어려운데, 집 안에서 자연을 충분히 느낄 수 있어요. 외부 시선에서도 자유롭지만, 내부에서도 중정 덕분에 각각의 공간에 경계가 생겨 다른 방에 있는 가족들이 서로 뭘 하는지 잘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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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각형에 가까운 집은 3면에 움푹 패이듯 들어간 좁은 공간이 있다. 밖에서는 내부가 쉽게 들여다보기 어렵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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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에 움푹 들어간 공간에 있는 창으로 밖을 내다보면 주변 풍경을 깊이 볼 수 있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움푹 들어간 창, 동굴 같은 방

서울에 부부가 살았던 집은 198㎡(약 60평)의 대형 아파트였다. 3대가 함께 살았다. 가족구성원이 줄었지만 예전에 비하면 집은 3분의 1이상 쪼그라들었다. 침실, 드레스 룸, 욕조 딸린 널찍한 욕실은 이제 없다. 소파와 가전제품 등 집안 살림도 70%가량 처분했다. 부부는 오히려 홀가분하다고 했다. “청소가 간단해지고 따로 짐 정리를 안 해도 돼요. 큰 집에 살아도 대부분의 짐은 쌓아두는 거지 쓰는 게 아니잖아요. 거기다 아파트는 바깥이 내 공간이 아닌데, 여긴 집 앞, 마당, 저 멀리 보이는 산까지도 내 공간 같으니 전혀 좁다고 느껴지지 않아요.”


속리산 자락의 산등성이마저 집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건 슬기롭게 뚫은 창 덕분이다. 집의 북쪽 면을 제외한 3개 면은 홈을 파듯 움푹 들어간 공간이 있다. 쏙 들어간 공간에 맞게 낸 창은 외부에서 들여다보는 시선은 차단하면서 내부에서 밖을 감상하기엔 좋다. 창을 세로로 길쭉하게 내 산과 하늘을 넉넉하게 담는다. 건축가는 “사생활을 보호하면서 심리적 안정을 느낄 수 있도록 창의 크기를 허리선에 맞춰 세로로 길게 만들었다”라며 “깊이를 통해 밖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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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방은 작지만 창을 내고 사선으로 천장고를 높여 밝고 개방적이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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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은 아늑한 동굴처럼 포근하고 안락하다. ©신경섭 건축사진작가

방은 2개다. 두 아이의 방은 중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대각선으로 마주한다. 부부는 거실에서 머문다. 거실과 두 아이의 방은 30㎝ 단차(段差)를 뒀다. 타일바닥에서 마룻바닥으로 오르면 공간의 위계가 느껴진다. 현관에서부터 방까지 평평하게 이어진, 아파트의 흔한 공간 구조에서 탈피하고자 한 시도다.


아파트는 벽으로 경계가 나누어져 문을 꼭 닫아야만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데 비해, 이 집은 단차를 통해 방의 독립성을 확보한다. 네 모서리에 ‘ㄱ’ ‘ㄴ’형태로 배치한 방은 문을 열었을 때 방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건축가는 “식구가 다 함께 사는 집은 집주인이 불명확하다”라며 “자기 방만이라도 확실하게 나의 공간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아이들 방은 지붕 사선을 그대로 노출해 아늑한 동굴을 연상시키도록 했다. 작은 집이지만 아이들이 온전히 자기만의 공간을 가지길 원했던 부부의 요구가 반영됐다.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세상에 부대끼고 힘들 때 떠올릴 수 있는, 숨 쉴 수 있는 자기만의 안식처가 됐으면 해요. 세상이 어떠하더라도 이 안에 있으면 안전하고 편안한, 집의 원형 같은 곳이었으면 합니다.”


괴산=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