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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한 여름에 유통기한 지난 우유를” 경비노동자가 제시한 갑질 방지책

by한국일보

노인노동 르포르타주 ‘임계장 이야기’ 저자 경비노동자 조정진씨


임계장은 수많은 사람의 슬픈 이름

구직자 많아 쉽고 만만하게 봐

아파트ㆍ시설 경비원 법 적용 달리하고

갑질 피해엔 주민이 비용 분담해야

한국일보

‘임계장 이야기' 저자인 경비청소 노동자 조정진씨는 "임계장이 더 이상 보통명사가 돼서는 안된다. 사회 전체가 노인 일자리의 질 개선 문제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준희 인턴기자

공기업에서 38년간 근무하다 정년 퇴직한 뒤 늦둥이 아들의 학비를 벌기 위해 아파트 경비원과 버스회사 배차계장, 고층 빌딩 주차요원과 터미널 보안요원 같은 시급노동의 세계에 뛰어든 조정진(63)씨. “어떤 일이든 자신있다”고 마음 먹었지만 조씨가 경험한 시급노동의 세계는 상상 이상으로 비참했다. 버스회사에서는 버스 화물칸에 부딪혀 다치자 바로 다음날 해고됐고, 고층 빌딩에서는 높은 분의 부인이 탄 차에 호루라기를 불었다고 ‘잘렸다’. 아파트에선 화단에 물을 주는 방식이 마음에 안 든다고 자치회장이 해고시켰다. 2016~2019년 노인들이 주로 일하는 시급노동 일자리의 체험을 증언한 노동일기 ‘임계장 이야기’(임계장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줄임말이다)를 펴낸 조씨를 25일 만나 주민 갑질에 무방비로 노출된 경비노동, 대다수 노인과 청년이 겪는 비정규 노동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특히 주민 갑질에 시달리다 최근 극단적 선택을 한 아파트 경비원 고 최희석씨의 비극은 한 비윤리적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노인 일자리의 불안정한 고용을 묵인한 사회가 연대책임을 질 문제라며 이를 ‘사회적 타살’이라고 불렀다.


정년퇴직 후 직장에서 네 번 해고 된 걸로 안다. 지금은 어떤 일을 하나.


“상가와 오피스텔로 사용되는 주상복합건물을 순찰하고 쓰레기를 치운다. 퇴직 후 다섯번째 일자리다. 하지만 재계약에 성공한 것은 처음이다. 작년 4월 시작했는데 지난달 계약을 1년 연장했다. 오피스텔은 100개실, 상점은 500개쯤 되는데 오전 7시에 출근한다.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날에는 밤 10시에 퇴근하기도 한다. 월급은 140만원쯤 받는데 토요일, 일요일은 강제로 쉰다. 용역회사가 월급을 더 올려줄 수 없어서다. 단순노무직이지만 이 일자리를 얻기는 쉽지 않다. 성실하고 일자리가 간절하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지원할 때 손글씨로 자기소개서를 썼다. 이 정도 안 하면 취업을 할 수 없다. 내 건강 상태로는 천국 같은 일자리다.”


왜 메모를 시작했나.


“은퇴 후 첫 직장은 버스회사 배차계장이었다. 회사에서 배차를 주먹구구로 해서 사고가 나는데, 나보고 뒷처리를 하라고 했다. 이런 불법ㆍ부당한 일터의 현실을 사회가 용인하는 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근로감독관에게 진정을 하니 감독관이 조사 착수가 어렵다며 ‘당신 일자리가 날아갈꺼다’고 답하더라. 근로감독관은 노동문제에 대한 수사권을 가진 막강한 존재인데 저렇게 나오니 ‘사용자 편을 든다’는 생각이 들더라. 마지막으로 내 억울한 심정을 하소연할 수 있는 게 메모였다. 메모를 들춰보면 당시 느꼈던 감정들이 원색적으로 되살아난다.”


책으로 엮게 된 동기는?


“네번째 직장인 버스터미널 보안요원 일을 하다가 쓰러졌다. 척추염이라 수술을 해야 했다. 열악한 시급 일터에서 먼지, 배출가스를 들이마셨고, 나쁜 균이 몸에 들어온 뒤 척추까지 감염된 거다. 3개월 동안 입원했는데 담당 의사가 ‘최선을 다하겠다’고만 말했지 ‘언제 나을 수 있겠다’는 얘기를 않더라. 내 옆에 있던 환자가 중환자실에 가기도 하고 거기서 못 나오기도 하더라. 그 때 죽음을 가깝게 느꼈다.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책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병상에서 메모를 타이핑했다. 9권, 2,500매, 38만자 정도 됐다.”


‘임계장 이야기’라는 제목은 누가 정했나.


“내가 정했다. 출판사에서는 처음에 반대했다. ‘임계장’이라고 하면 무슨 관공서 직원 얘기 같다고 해서 처음에 ‘아파트 경비원의 애환’같은 제목으로 내자고 했다. 하지만 내게는 ‘임계장’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너무 강하고 특별했다. 3월에 나와 지금까지 1만부 정도 팔렸다. 적지 않은 부수라고 생각한다.”


그게 어떤 느낌인가.


“처음으로 잘린 버스회사에서는 누구든 다 계장이라고 불러준다. 그런데 누군가 야유조로 나 같은 임시계약직 노인을 임계장이라고 부르더라. 나는 노인이 아니라고 생각할 때라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진짜로 큰 충격을 받은 건 터미널에서 24시간 경비 근무를 할 때다. 새벽 2시가 되면 할머니들이 영화관 청소를 위해 출근했다. 그 때 남자, 여자를 떠나 ‘임계장’은 수많은 사람들의 슬픈 이름이고 내가 살아갈 이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단어 속에는 슬픈 감정도, 인정하기 싫다는 마음도 그런 복잡한 감정이 포함돼 있어 애착이 갔다. 제목에 ‘임계장’이 안들어 가면 책 못낸다고 버텼다.”

한국일보

'임계장 이야기'의 바탕이 된 조정진씨의 메모장.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헛된 잠으로 소중한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된다’는 다짐이 적혀 있다. 정준희 인턴기자.

아파트 경비원들에게는 왜 이렇게 비인간적 대우가 많을까.


“불안정 고용 때문이다. 아파트 경비는 구직자가 굉장히 많다. 특별한 기술 없어도 성실하기만 하면 된다. 일자리 구하기는 힘든데 경비일을 못하게 되면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그러니까 쉽고 만만하게 보는 것이다. 사실 돌아가신 최희석씨가 일했던 아파트는 경비원들이 보기에는 ‘꿈의 아파트’였다. 어떤 추모글을 보니 ‘임신했을 때 같이 좋아해주셨다’는 글도 있다. 주민들이 경비원을 내 가족처럼 생각하는 따뜻한 분들이었다. 그리고 노인이기 때문에 갑질을 당한다. 소가 하는 건 노동이 아니지만 노인이 하는 건 노동이다. 그런데 경비원들은 ‘늙은 소’ 취급을 당한다.”


아파트 갑질은 사용자 권리를 행사하려는 사람(주민)은 다수인데 사용자 의무를 해야 할 사람이 모호한 특성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예전에는 각 라인마다 초소가 있고 초소마다 한 명씩 있었지만 최저임금이 오르니 인력을 줄이고 줄여 지금은 필수인원만 남아있다. 그런데 일은 그대로다. 몸은 하나인데 찾는 사람은 여럿이다. 한 사람이 이백 몇십 세대의 요구를 다 충족시킬 수는 없다. 몸은 하나인데 세 명이 찾으면 두 명은 불만을 갖게 돼 있다. 아파트 대표자선거 출마하는 사람들 공약이 관리비를 줄이는 거다. 경비 서비스의 적정성에 대해서는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


기억나는 갑질 횡포 얘기를 해달라.


“두 가지가 생각난다. 한 여름에 우유를 주시는 분이 있었다. 유효기간이 지난 거였다. 마실 수 없는데 그걸 또 쓰레기통에 버리면 아주 싫어한다. 자신들이 먹을 수 없는 건 경비원들도 먹지 못한다. 경비원이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 극소수 있다. 똑같은 사람으로 대하지 않으면 존중이나 배려심이 생기지 않는다. 또 한 가지, 주차공간이 모자라 장애인주차구역에 주차했다가 과태료를 물은 주민이 있었다. 그 주민이 나중에 ‘차 대는 거 왜 안막았냐, 당신 때문에 과태료 물었다’고 두고두고 괴롭혔다. 모자가 삐뚤어졌다, 복장이 불량하다, 운동화에 흙이 묻었다 등등 잘릴 때까지 트집 잡았다.”


갑질 문제를 해결하려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현행 경비업법에는 경비업무를 벗어난 일을 시키면 3년 이하 징역 등 처벌 조항이 있고, 공동주택관리법에서는 경비원 등 근로자의 처우개선과 인권존중을 위해 노력하라는 조항이 있다. 경찰이 처벌 조항을 제대로 이행하면 해결 안될까. (현재 경찰은 처벌 조항 이행을 연말까지 유예하고 건설교통부와 대안을 논의 중이다.)


“2008년 11월 법원이 아파트경비원을 경비업법상 ‘시설경비원’으로 판단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실제로 보안ㆍ경비가 주된 업무인 시설경비원과 달리 아파트경비원은 각종 서비스가 주 업무다. 경찰은 판결을 따르지 않으면 직무유기이고 판결 취지에 맞게 아파트 경비원의 잔무를 금지해 벌금을 물리자니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다. 전국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 연합회, 대한주택관리사협회 이런 공동주택 관리자ㆍ사용자 조직의 힘이 세다. 그 단체들은 오히려 경찰 보고 ‘마음대로 단속해 보라’고 비웃고 있을지 모른다.”


현실적 대안은 뭘까.


“아파트경비원을 경비업법에서 규율할게 아니라, 공동주택관리에 관한 법률인 ‘공동주택관리법’에서만 규율하게 해야 한다. 이 법을 손 보면서 경비ㆍ보안 업무 외에 잔무를 할 수 있는 ‘아파트관리원’이라는 직종을 새로 만들고, 이들에 대한 처우 개선과 인권 존중에 대한 처벌 조항을 만들어야 한다. 처벌 조항을 만들 때 갑질 피해가 발생하면 아파트 구성원들이 이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 또 이 아파트 관리원에게는 근로기준법의 감시단속노동자 조항(근로시간, 휴게시간, 휴일 예외적용)을 적용시키면 안된다. 경비원들의 대량 해고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기우다. 아마 새 직종이 만들어지면 지금의 아파트 경비원들이 수평이동하게 될 것이다. 이게 가장 현실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아파트는 ‘자율과 자치의 공동체’라는 점이 전제돼야 한다. 공동주택관리법도 그런 취지다. 갑질이 생기면 주민들이 연대책임을 지도록 하면 된다. 법안에 갑질 피해가 발생하면 아파트 주민들이 공동책임을 지고 주민들이 피해 보상을 하도록 한다는 규정을 만들면 해결된다. 고 최희석씨 사건을 보면 유족만 피해자가 아니라 아파트 전체가 피해자다. 그 아파트 사는 아이들이 제일 걱정된다. 경비원에게는 아이들이 인사를 제일 잘한다. 그런데 한 명의 폭력배 때문에 아이들에게 트라우마가 남게된 거다. ‘우리 아파트 경비할아버지가 아파트 주민에게 맞아 돌아가셨다더라’ 같은 트라우마가 아이들에게 끔찍한 기억으로 남을거다. 아파트에는 무관심 문화가 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피해가 간다고 생각하면 주민들이 갑질을 막기 위해 나설 것이다. 돈을 부담하게 되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고 관리사무소부터 나설 것이다. 지금까지는 갑질하는 사람에게 보복당할 수도 있어 주민들이 모른 채 했는데 공동체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면 완전히 잡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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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계장 이야기' 저자인 경비원 조정진(오른쪽)씨가 지난 25일 자신이 일하는 주상복합 건물 지하 배출물 집하장에서 비정규직 노인 노동자의 열악한 근무 환경을 고발하고, 청년 노동자와의 연대 필요성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준희 인턴기자.

임계장으로 일하면서 청년들과 얘기를 많이 했다고 들었다. 청년은 청년대로 일자리가 없고, 현 세대 노인은 공적 복지시스템이 빈약해 일을 안할 수 없는 상황이다.


“청년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건 고층빌딩과 터미널에서 일할 때다. 그곳에서 일하는 80%가 청년 알바생들이었다. 터미널 안에는 레스토랑, 커피점, 패스트푸드점, 예식장, 서점 등 150개가 넘는 영업시설이 있었는데 모두 알바생들이 일했다. 나는 그나마 4대 보험이 됐지만 그 친구들은 4시간 시급만 받고 고용보험도 못 들었다. 노인보다 알바생들이 더 헐값에 팔리고 있었다. 그 친구들은 그렇게 고생해서 돈을 버는데 하루 종일 안 보이던 업주들은 10분 동안 나타나 그날치 수입을 다 수금해 간다. 청년들이 그걸 보고 돈의 위력에 놀라더라. 하지만 부모 원망은 안하고 그냥 시대를 잘못 타고 났다는 생각을 하더라. 이 친구들은 일과 공부를 병행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렇게 되면 비정규직 기간이 길어지고 결국 ‘루저’가 된다. 이루고 싶은 소망조차 없어 체념부터 배운다. 아이들에게 ‘주머니에 돈이 없어도 부끄러운 게 아니다’라고 얘기해 줬다. 살아갈 날이 얼마나 많이 남았는데 체념부터 배워서는 안된다. 노인 노동이 비참한 건 몰라도 청년 노동이 비참해서는 안된다. 알바라는 건 그냥 돈 벌어 배낭여행이나 가는 정도지 이렇게 해서 공부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이어서는 안된다.”


책을 펴내면서 본의와 상관없이 공적인 인물이 됐다. 책을 또 쓰거나 아니면 유튜브 같은 매체를 통해 사회적 발언을 할 생각은 없나.


“임계장 얘기는 이 책으로 마지막이다. 책에서 사용한 임계장이나 ‘고다자’(‘고르기 쉽고 다루기 쉽고 자르기 쉽다’는 뜻으로 비정규직을 의미)가 보통명사로 굳어져서는 안된다. 이 책을 쓴 건 ‘아프면 잘리는’ 노인 비정규 노동의 실태를 알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다. 비정규직을 지원하는 시민단체에서 자신들이 몇 년 동안 이슈화하려고 했던 문제를 한 개인이 일거에 이슈화하고 성과를 거뒀다고 좋아하더라. 힘센 분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아파트의 경비ㆍ청소원들이 이 책이 나온 후 사용자들이 자신들을 대하는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하더라. ”


청년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터미널에서 비정규직 청년들을 만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비정규직도 클래스가 있다.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교 청년들 기업체ㆍ지자체ㆍ공공기관 인턴한다. 이런 건 좋은 비정규직이다. 하지만 지방 터미널 패스트푸드점의 알바 청년들, 이미 경쟁에서 뒤처진 청년이다. 돈을 벌어야 공부할 수 있는, 장애물이 많은 친구들이다. 이미 패자의 길을 걷고 있을 수도 있다. 그 아이들과 이야기하면 눈물이 난다. 내 아들도 법학전문대학원 가려고 하는데, 알바 하면서 할 수 있는 공부가 아니어서 내가 돈을 버는 것이다. 한 유튜브에서 ‘임계장’ 이야기를 하면서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을 좀 언급했는데 댓글 반응이 굉장히 진지하더라. 청년들이 정말로 자기들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라는구나 생각했다. 때가 안 묻은 사람들, 청년들이 필요로 하면 강연이건 유튜브건 하고 싶다. 너희들끼리 소통하고 연대하도록 해라. 누군가 지도자가 나타나면 현실이 변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임계장 일자리가 개선돼야 한다는 건 알지만 한번에 바뀔 수는 없을 것이다.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정부에서 자꾸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자는데, 무의미해 보인다. 비정규직 자체의 질을 개선할 수 없는가 하는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비인간적이긴 하지만 지금 비정규직을 없애버리면 경제가 안 굴러간다. 없애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서 벗어나 개선을 첫번째에 둬야 한다. 노인 노동 문제 해결하려면 노인 노동이 생계형 노동이 되면 안된다. 사회봉사형 노동이 되도록 해야 한다. 내가 터미널에서 일할 때는 인접 도로까지 다 청소했다. 구청 청소원들은 하루 한 번 밖에 안했지만 나는 ‘도시의 관문’이라 생각하고 시키지 않아도 매일 청소했다. 노인들도 그런 태도로 일해야 하고 시민들도 그러면 노인 노동을 충분히 존중해 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노동이라고 생각하고 즐거움을 갖고 한다면 인식도 바뀔 것이다.”


인터뷰=이왕구 논설위원 fab4@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