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슈미트의 죽음의 기록

[이슈]by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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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슈미트는 미국의 저명 파충류 학자지만, 그는 독사에 물린 뒤 독이 퍼지는 양상을 숨이 멎을 때까지 기록한 일로 더 유명하다.needpix.com

칼 패터슨 슈미트(Karl Patterson Schmidt, 1890.6.19~ 1957.9.26)는 독일계 이민 2세로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태어나 뉴욕과 시카고 자연사 박물관에서 경력을 쌓은 미국의 저명 파충류 학자다. 산호뱀 전문가였던 그는 직접 발견한 신종 파충류를 포함해 200종이 넘는 파충류에 이름을 붙였고, 1만5,000여점의 방대한 자료를 수집했다. 그의 마지막 직장인 시카고 필드자연사박물관은 칼 패터슨 슈미트 기념도서관을 설립해 그의 자료를 소장했다.


코넬대에서 생물학과 지질학을 전공한 그는 1916년 당시 유망 직장이던 루이지애나의 한 석유회사에 취직, 4개월 견습사원으로 산토 도밍고 지질 탐사에 참여했다가 생물학, 특히 파충류의 세계로 진로를 전환했다고 한다. 그는 뉴욕 미국자연사박물관 파충류 분과 과학 보조원으로 취업해 중남미 여러 나라를 탐사했고, 22년 필드자연사박물관의 파충류ㆍ양서류 보조 큐레이터로 직장을 옮겼다. 1937~49년 미국 파충류ㆍ어류학회 저널(Copeia) 편집장을 지냈고, 1942~46년 학회장을 역임했다. 그 무렵 그는 파충류, 특히 뱀에 관한 한 미국 최고의 권위자 중 한 명이었다.


1957년 9월, 시카고 링컨파크 동물원 측이 독사로 추정되는 새끼 뱀 한 마리를 입수, 그에게 정확한 이름과 습성을 문의했다. 슈미트는 자신의 박물관 연구실에서 맨손으로 그 뱀을 건드렸다가 물렸다. 독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아주 작은 놈이어서 치명적이리라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독이 자기 몸에 미치는 영향- 구역질과 현기증 등-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를 문 뱀은 붐슬랑(Boomslang)이란 이름의 아프리카 독사였다. 그 뱀이 지닌 독은 혈액 응고독, 즉 혈액을 응고시켜 혈관을 막음으로써 산소 결핍과 내출혈로 피를 쏟으며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이었다.


그의 증상이 심상치 않다는 걸 감지한 직원들이 응급치료를 권했으나 그는 미진한 기록을 보완하기 위해 직원들의 조언을 뿌리쳤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소량의 장 출혈이 감지된다”는 등의 기록을 남겼다. 숨지기 직전에야 그의 아내가 주치의를 불렀는데, 그 무렵 그는 의식이 없었고,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숨을 거뒀다. 


최윤필 선임기자

2020.06.1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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