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G 없애도 011ㆍ017 번호 유지를” 포기 모르는 20년 추억의 힘

[테크]by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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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동통신 디지털 011 CF에 등장하는 채시라와 권용운. 비밀스런 거래 현장을 덮치려는 순간 핸드폰이 울린다. 디지털 011은 어떤 장소, 어느 상황에서도 통화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코믹하게 그려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년 넘게 써온 번호에 단골 손님부터 돌아가시거나 잃어버린 가족까지 갖가지 사연이 얽혀 있습니다. 2G 망을 없애더라도 번호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2G서비스 종료가 임박하면서 011·017 등 01X 번호를 유지하고 있는 이동통신 가입자들의 속앓이도 깊어지고 있다.


16일 이동통신업계에 따르면 내달 27일 전국 모든 지역에서 SK텔레콤의 2G 서비스가 완전히 종료될 예정이다. 2004년부터 시행된 ‘010 통합’이란 정부 정책에 맞춰진 예정됐던 수순이다. 당시 정부에선 ‘스피드 011’과 같은 통신사의 식별번호 브랜드화와 이에 따른 독과점 현상이 심해지자 신규 가입자에게 일괄적으로 010 번호를 부여했다. 여기엔 국가의 자원인 전화번호의 효율적인 관리 목적도 포함됐다.


하지만 01X 가입자들은 여전히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다양한 이유로 애착을 가져왔던 번호를 유지할 수 있게 해달라는 입장에서다. 이들은 2G 서비스가 종료되더라도 사용하던 01X 번호를 그대로 3G와 LTE, 5G 서비스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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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통신사마다 할당번호가 달랐던 시절 이동통신 대리점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사연도 다양하다. ‘010통합반대운동본부’의 한 01X 사용자는 “2000년대 초반 돌아가신 아버지가 사용하시던 번호를 그대로 물려받아 사용하고 있다”며 “2G 휴대폰은 배터리가 빨리 닳고 이제 전화도 잘 터지지 않지만, 수십년에 걸친 추억이 깃든 번호라 쉽게 포기할 수가 없다”고 아쉬움을 털어놨다. “과거 헤어진 가족을 찾을 수 있다는 유일한 희망”이라는 절절한 사정에서부터 “20년 가까이 한 번호로만 장사를 해왔는데, 번호가 바뀌면 고객이 대거 이탈할 것”이라는 걱정도 많았다. 이어 “22년지기 친구를 잃는 것 같다”는 소회까지 갖가지 사연이 01X 번호를 붙잡고 있는 상황이다.


23세 때부터 부여 받은 017 번호를 지금까지 사용 중이란 신대용(46)씨는 “저희는 2G 서비스를 계속 해달라는 게 아니라, 번호를 계속 유지하게 해달라는 것”이라며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2G 서비스를 종료하면서 개개인이 사용하던 번호를 강제로 바꾸라고 명령하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 신씨는 이어 “자동차 번호판은 판형이 바뀌어도 옛날 것을 계속 쓰게 해주면서, 왜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휴대폰 번호만 억지로 바꾸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물론 2G 서비스가 종료되더라도 01X 번호로 3G나 4G인 롱텀에볼루션(LTE), 5G 서비스 이용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건 아니다. 하지만 이통사 입장에선 이미 16년전부터 시행해 온 정부 방침을 역행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엄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정책기획과장은 “정책 시행 이후 이미 6,400만개의 번호가 010으로 이동했다”며 “15년 이상 지속해왔고, 국민 98%가 따른 정책을 하루 아침에 뒤집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법원에서도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법은 010통합반대운동본부가 SK텔레콤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이동전화번호는 유한한 국가자원”이라며 01X 번호 지속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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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이 브랜드로 내걸었던 '스피드 011'. SK텔레콤 제공

일각에선 2G 이용자들이 큰 보상을 바라고 ‘알박기’를 하는 게 아니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2012년 KT의 2G 서비스 중단 사례를 고려하면 SK텔레콤이나 LG유플러스의 2G 서비스 시기가 종료되더라도 별다른 추가 보상이나 혜택은 주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SK텔레콤의 2G 서비스가 종료된다면 01X 번호를 사용할 수 있는 통신사는 내년 6월 주파수 사용 기간이 만료될 예정인 LG유플러스만 남게 된다. LG유플러스의 2G 서비스 실 이용자 수는 약 20만명으로 추정된다. 010통합반대운동본부 측은 “아직 사용자들이 남아있는데 일방적으로 번호를 없애버리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공산주의”라며 “민사소송과 헌법소원을 넣어서라도 01X 번호를 끝까지 지켜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2020.06.1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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