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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뷰엔] 청담동 떠받치는 유령노예 "나는 스타일리스트 어시입니다"

by한국일보

'시급 3,900원' K엔터 최전방 청담동 이면의 '착취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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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은 1년 365일 눈부신 조명이 꺼지지 않는 ‘빛의 섬’이다. 고급백화점, 명품 매장, 초대형 메이크업샵들 사이로 일명 ‘연예인차’라 불리는 커다란 밴들이 밀물과 썰물처럼 들고 난다. 낮과 밤이 따로 없는 이곳은 ‘K팝’, 'K엔터 산업'의 최전방이기도 하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바깥의 어둠은 유독 검다. 그 짙은 그림자 속엔 스스로를 ‘유령 노예’라 부르는 이들이 있다. 하루 13시간씩 일하고, 한달 40만원 남짓의 임금을 받는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들이다. 파리하게 시든 얼굴로 몸통보다 큰 짐가방을 짊어진 채 로데오 거리를 분주히 걷는 이들의 모습은 위태롭다.


한국일보 뷰엔(view&)팀이 이들과 함께 화려한 ‘엔터 산업’의 성지, 청담동 이면의 착취 구조를 들여다 봤다. ‘버티는 놈이 이긴다’는 기약 없는 희망고문으로 20년간 건재했던 이 곳은 청년들의 무급 열정을 연료 삼아 굴러가는 ‘무법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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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다”는 명목으로 ‘무급노동’ 합리화하는 ‘착취 지대’, 청담동

“유명 스타일리스트 OOO실장 팀에서 어시스턴트를 모집합니다. 월급은 40만원, 3개월 넘기시면 그때부터 올려드립니다.”


소위 ‘실장’이라 불리는 연예인의 스타일리스트 밑엔 이들을 보조하는 ‘어시스턴트’들이 있다. 유명 드라마 작가, 웹툰 작가 밑에 문하생이나 견습생이 줄줄이 달린 것과 비슷하다. 흔히 보이는 ‘도제식 구조’지만, 이 곳에 ‘가르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존재할 수 없다. “스타일리스트 지망생이 모이는 포털 카페에 들어가 보면, 어시 뽑는다는 채용 공고가 거의 1년 내내 내려가질 않아요. 길어봤자 두 달? 짧으면 하루 만에도 그만둬 버리니까요.” 4년차 어시 강민정(가명, 이하 ‘강’)씨는 고개를 내저었다. 양쪽 어깨에 피멍이 가시지 않을 정도로 몸이 갈려 나가는 중노동에, 시급이 4,000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월급은 꿈마저 좌절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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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에겐 출퇴근이란 개념이 따로 없다. “보통은 홍보 대행사들이 문을 여는 오전 10시부터 압구정 로데오 거리 일대를 뺑뺑 돌며 협찬 의상을 가져오기 시작해요. 거의 50군데가 넘죠.” 매일같이 신상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이곳에서 남다른 안목을 발휘해 탁월한 의상을 ‘뽑아오는 것’은 오롯이 이들의 몫이다. 수십 벌의 옷을 바리바리 쓸어 담은 캐리어를 끌고, 구두며 백이 담긴 가방을 양쪽 어깨에 둘러 맨 채 사무실에 돌아오면 어느새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늦은 오후. 이때부터 스타의 ‘착장’을 만드는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된다. 실장은 어시들이 만들어 보낸 ‘착장 사진’을 보고 간단한 추가 지시를 내릴 뿐이다. “실은 말이 ‘어시’지, 스타일리스트가 해야 할 일을 거의 다 하고 있다고 보시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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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하고 있는 스타의 방송일정이 잡힌 날엔, 차가운 사무실 바닥에 패딩 점퍼를 깔고 잔다. “월 40만원을 받아도 실은 돈 쓸 시간이 없어 버텨지기도 해요. 깨어있는 시간엔 언제나 일터니까.” 새벽 2~3시에도 긴급 업무 문자가 온다. 1년차 어시 최정연(가명, 이하 ‘최’)씨는 업무용 메신저의 알림만 크게 울리도록 따로 설정해뒀다. 밥을 먹다가도, 볼일을 보다가도, 눈을 붙이다가도 ‘지잉~’하는 진동소리가 올리면 발작적으로 휴대폰을 찾는다. “현장에서 귀걸이 한 짝만 빠뜨려도 꼼짝없이 어시들의 책임이니까… 매순간 신경이 곤두서 있는 거죠.”(강) 그래도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난 이 일 아니면 안 되는 사람이니까’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그렇게 사람 대접조차 받지 못하는 삶이 당연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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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40만원’ 짜리 어시에게 “얼룩 묻었으니 네가 물어내”

하다못해 옷과 구두도 그들의 상전이다. “한번은 명품 드레스를 협찬 받았었는데, 반납할 때보니 전에 없었던 오염이 있었어요. 한 벌에 200만원 나가는 드레스를 꼼짝없이 동료 어시와 제가 반반씩 나눠 물어내야만 했죠.”(강) 당시 민정씨의 월급이 50만원이었으니, 무려 두 달치의 월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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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가수를 담당하던 정연씨는 옷에 깊이 배인 땀, 담배냄새, 화장품 얼룩을 지우기 위해 매일 손빨래를 했다. 스케쥴이 끝난 늦은 밤, 배우가 벗어놓은 옷을 가져와 세탁하고 다리미로 곱게 다려 매장에 나가는 ‘새 상품’처럼 비닐포장까지 끝내고 나면 동이 터 온다. 밤새 아이돌 가수의 콘서트 현장을 챙기고 연달아 새벽 드라마 촬영 현장에 나가야 했을 때, 민정씨는 사무실 한 켠에 쓰러져 딱 10분을 눈을 붙였다.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 촬영에 쓰일 의상과 악세서리를 수십번씩 점검했다. 일을 시작하고 나선 단 하루도 푹 자 본 기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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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평균 12시간~14시간씩 일하고 받는 월급은 적게는 30만원, 경력에 따라 많게는 90만원선. 법정 최저임금의 반의 반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얼마를 받을지는 ‘실장을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달려있다. “그야말로 랜덤게임이죠. 팀 마다 천차만별이라서, ‘이 정도는 맞춰야 한다’는 대중도 없어요. 대뜸 ‘얼마 줄게’하면 그냥 ‘아…네’ 해야 하는 거예요.”(최) 월급뿐이 아니다. 휴일과 근무시간까지 전부 고용주의 ‘아량’에만 기대야 한다. 이 업계에서는 법보다 강한 게 관행인지라, 모두가 그렇게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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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를 쓰는 순간 불법행위가 되니, 모든 채용은 ‘구두’로 이뤄진다. 패션어시 2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청년유니온의 조사에 따르면 94%가 계약서를 쓰지 않고 일하고 있었다. 하다 못해 떼인 월급을 받기 위해 노동청을 방문해도, 계약서가 없으니 ‘고용관계’가 성립되지 않아 진정을 접수할 수 없다. 심지어 현장실습을 나온 특성화 고등학생들의 급여가 성인 어시스턴트들의 월급의 배에 달하기도 한다. “학생들의 일터는 ‘교육부’의 감독을 받으니까요. 아이러니한 일이죠. 졸업하고 돌아오면, 어차피 다 똑같아지지만요.”(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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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스타들과 서로 ‘언니-동생’ 한다는 유명 스타일리스트라고 해서 상황이 다르지는 않다. “오히려 더하면 더했죠. 그 밑에서 배워보겠다고 줄 서는 사람이 많으니, ‘그만둔다’고 해도 아쉬워하지 않아요.”(강) ‘있는 놈이 더하다’는 말이 여기서도 통한다. 밥값이나 택시비조차 지급하지 않는 유명 실장들이 태반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논란의 도마에 올랐던 한 원로배우 매니저가 폭로한 ‘갑질’ 사태를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은 복잡했다. “동료들 대부분이 그 매니저를 은근히 부러워하고 있는 거예요. 와! 그래도 저분은 월 150이상 받으며 일했네요? 퇴근이라는 게 있긴 했네요?”(최) 진짜 ‘폭로’가 필요한 업계는 이쪽이라며, 자조 섞인 푸념으로 서로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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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는 10년까지 '어시' 생활... 그럼에도 업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상식 수준을 벗어나는 박봉과 과로를 견디면서도 이들이 업계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다. “이 일이 너무 좋고 재미있으니까… 언젠가 우리도 멋지게 어시 떼고 어엿한 실장이 되고 싶은 거죠.”(최) 일종의 ‘수련기간’이라지만 기약은 없다. 드물게 2~3년만에 독립하는 경우도 있지만, 길게는 10년이 넘도록 이 팀, 저 팀의 어시 자리만 전전하기도 한다. “사실, 실력이나 감각만 따지면 실장보다 어시가 훨씬 뛰어난 경우도 많아요. 차이는 하나죠. 청담동에 사무실을 빌릴 돈이 있느냐 없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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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염없이 막연한 미래에 ‘꿈’을 저당 잡힌 이들은 오늘도 지옥 같은 일터로 나간다. 사람들은 묻는다. “그런 취급을 당하며 왜 계속 붙어있냐”고. 정연씨는 그런 ‘걱정을 빙자한 핀잔’이 가장 속상하단다. “그럼 이 업계는 누가 지켜내고, 누가 바꾸나요?” 이들은 묻는다. 이 악물고 버텨내 모두가 똑같은 괴물이 되어버리는 지옥의 대물림을 이젠 끊어내야 하지 않겠느냐고.


화려한 K-컬쳐 산업을 떠받치는 착취의 굴레를 청산하기 위해, 이들은 청년유니온과 함께 오는 8월 ‘노동 조합’을 출범한다. 어시스턴트 노조 추진을 담당하고 있는 청년유니온의 문서희 기획팀장은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하기 위해 고용노동청에 집단진정을 접수할 계획”이라며 “같은 업계 내에서 비슷한 고충을 겪고 있는 당사자는 누구든 함께 참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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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시스턴트들에게 마지막으로 원하는 것을 물었다. 민정씨는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대체 휴무랑 최저임금, 그거 하나면 돼요.” 그 뒤로 정연씨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생존권이요. 더 이상 고시텔을 전전하지 않고 싶어요.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지 않고 싶고… 이 도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요.” 슬프게도, 그들이 바라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었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서현희 인턴기자 sapiens0110@gmail.com

전윤재 인턴기자 younj070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