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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거창에서도 거창한 곳…
은둔 선비들은 어떻게 알았을까

by한국일보

남덕유산 자락에 숨겨진, 거창 위천면


서울에서 거창의 대표 관광지 수승대까지는 약 260km, 내비게이션은 광주대구고속도로 거창IC가 아니라 대전통영고속도로 무주IC를 경유하는 길을 안내한다. 무주 구천동을 지나 전북과 경남의 경계인 빼재터널을 넘으면 거창 땅이다. 구불구불한 길로 한참 내려가서 들이 넓어지는 곳에 위천면이 자리 잡고 있다. 위천은 중국 황하의 지류인 위수(渭水)에서 따온 지명이다. 남덕유산 동쪽 사면을 흘러 황강을 거쳐 낙동강과 합류한다. 수승대는 위천에서도 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서쪽에서 발원해 동쪽으로 흐른다 하여 ‘서출동류’라고 부르는 이 물길 따라 수승대를 비롯해 거창에 은둔한 선비들이 사랑한 풍경이 흩어져 있다. 경관이 빼어날 뿐만 아니라 이야기까지 풍성하다. 거창에서도 거창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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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위천면의 황산전통한옥마을. 거창 신씨 집성촌으로 낮은 담장이 골목을 이루며 70여채의 기와집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 마을 앞 수승대에는 이 가문의 선비 신권이 후학을 길렀던 구연서원이 있다.

수승대, 이별의 아픔을 풍류의 서정으로

대(臺)라 하니 풍경 좋은 곳에 멋들어지게 세운 건물을 상상했는데 틀렸다. 수승대는 하천 가운데 거북 등 모양으로 볼록하게 솟은 작은 바위섬이다. 둥그런 암반 위에 소나무 여러 그루가 뿌리내리고 있어 운치를 더한다. 범위를 넓히면 주변 일대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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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승대는 위천 한가운데의 거북 모양 바위섬이다. 하천 건너편 요수정에서 보면 거북의 형상이 한층 또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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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연서원 정문인 관수루. 아래층 기둥은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사용해 멋을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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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연서원의 신권 기림비. 거대한 거북 받침돌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구연서원을 비롯해 수승대 일대 경치에 거북을 비유한 이름이 수두룩하다.

수승대 입구에 들어서면 ‘요수신선생장수지지(樂水愼先生藏修之地)’라는 팻말이 관람객을 맞는다. 요수 신권 선생이 은거한 곳이라는 뜻이다. 신권(1501∼1573)은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수승대 바로 옆에 향교를 세우고 제자들을 길렀던 선비다. 학문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선비로서 하늘이 내려 준 벼슬(선생)이면 충분하다는 철학 때문이다. 향교는 후학들이 구연서원으로 명칭을 바꿔 그의 뜻을 잇고 있다. 정문 격인 관수루는 웬만한 고을의 관아 건물 못지않게 고풍스럽고 운치 있다.


서원 앞 하천 가운데에는 수승대와 함께 울창한 소나무 숲이 조성된 작은 섬이 있다. 개울 맞은편 산자락엔 봄마다 진달래와 수달래가 지천으로 피어난다. 솔숲은 글공부하는 유생들이 봄 기운에 마음 뺏기기 않도록 한 일종의 방어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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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승대 앞 하천 솔숲. 구연서원 유생들이 맞은편 산자락의 진달래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조성한 일종의 방어막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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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승대 하류에 놓인 다리를 건너 요수정으로 가는 길의 솔숲도 운치 있다.

서원에서 하류에 놓인 다리를 건너면 신권의 호를 딴 요수정까지 산책로가 이어진다. 이 길에서 보면 수승대를 왜 거북바위라 하는지 명확해진다. 수승대와 함께 일대는 ‘거북 세상’이라 해도 될 정도다. 구연서원을 비롯해 복구암, 구연소, 구연폭 등 주변 풍광의 상당수는 거북과 관련된 이름이다. 맑은 물이 흘렀다가 고이는 암반에도 멋스러운 이름을 붙였다. 작은 물웅덩이는 붓을 씻는 세필진, 큰 웅덩이는 술 한 말은 저장할 수 있다는 장주갑이다. 시험을 잘 본 학생에게 막걸리 한잔을 상으로 내리던 장소였다고 한다. 닳고닳아 반질반질해진 넓은 암반에 수정같이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일대는 요즘도 물놀이장으로 이용되는 지역의 대표 피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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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승대 바위에 퇴계 이황이 신권에게 '수송대'를 '수승대'로 바꾸라고 권유한 시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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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승대 바위 벽에 당대의 유명 인사와 거창 신씨, 은진 임씨 성의 이름이 빈틈없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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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승대 일대는 여름철 거창의 대표 물놀이장이다. 지난달 24일 장맛비로 계곡 물이 불어 아쉽게도 발 한번 담가 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수승대의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위천면 일대는 신라와 백제의 접경지대였다. 이때 명칭은 수송대(愁送臺)였다. 신라로 가는 백제의 사신(혹은 그 반대)을 근심으로 배웅하던 곳이라는 뜻이다. 좋게 해석하면 동료는 물론 적의 안위까지 걱정해 주는 우정이 서린 곳이고, 친한 벗을 떠나 보내는 슬픔을 표현한 서정적인 작명이다.


그러나 수송대는 퇴계 이황의 권유로 발음이 비슷한 수승대(搜勝臺)로 바뀐다. ‘근심 수(愁)’ 자가 못내 거슬렸던 모양이다. 의역하면 ‘경치가 빼어난 곳’ ‘곧고 올바름을 탐구하는 곳’ 등으로 해석된다. 장인의 회갑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안의현 삼동(현 거창 마리면)을 방문했던 퇴계가 신권에게 시를 한 편 보냈다. 아름답지 못하다며 이름을 바꿀 것을 권유한 내용인데, 수승대 측면 바위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수승대에는 퇴계의 시 외에도 수많은 이름이 빼곡하다. 경상감사 김양순을 비롯해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남긴 방명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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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승대 일대는 여름철 거창의 대표 물놀이장이다. 지난달 24일 장맛비로 계곡물이 불어 아쉽게도 발 한번 담가 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경치 좋은 곳에서 술 한잔 걸치고 시를 짓던 풍류의 흔적은 아니다. 수승대에 새겨진 이름 중에는 유난히 임씨와 신씨 성이 많다. 일제강점기 수승대의 소유권을 두고 법적 다툼을 벌이던 두 문중에서 소송비를 충당하기 위해 돈을 받고 경쟁적으로 새긴 탓이다. 씁쓸한 뒷맛을 남긴 두 가문의 다툼은 후일 수승대 소유권이 국가로 넘어가며 일단락됐다.

'서출동류' 물길 따라 은둔자의 고향

수승대 뒤편엔 제법 넓은 들판에 70여호의 기와집이 호음산(930m)을 배경으로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다. 황산전통한옥마을이다. 호음산은 호랑이 울음소리를 비유한 이름이다. 그만큼 깊은 골짜기라는 의미다. 누런 들판에 안개가 하얗게 피어올라 황토백산, 줄여서 황산이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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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전통한옥마을은 거창 신씨 집성촌이다. 시조인 신수가 고려 때 사신으로 와 개경에 정착했다가 이후 영암을 거쳐 거창에 뿌리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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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전통한옥마을 담장에 곱게 핀 능소화가 늘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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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전통한옥마을의 70여 가구는 정겨운 토담으로 골목을 이루고 있다. 느긋하게 걸으면 조선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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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전통한옥마을 어느 집 처마로 빗물이 떨어지고 있다. 낙수 소리는 전통 가옥에서만 즐길 수 있는 여름의 운치다.

황산마을은 중국의 황산에서 따온 이름이기도 하다. 마을은 거창 신씨 집성촌이다. 고려 문종 때 송나라 사신으로 왔다가 정착한 신수(愼修)의 후손으로, 구연서원의 주인공 신권은 거창 신씨의 대표적 인물이다.


황산마을 한옥은 1800년대부터 1900년대 초에 지었지만, 대부분 주민들이 실제 거주하기 때문에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집집마다 넓은 마당과 정원을 갖췄고, 대문만 열면 초록 들판이 펼쳐지는 부잣집인데도 담장은 높지 않은 편이다. 요즘엔 곱게 핀 능소화가 토담에 늘어져 한여름의 정취를 더한다. 소담스러운 골목을 걸으면 조선시대 어느 양반 고을을 걷는 것처럼 마음이 느긋하고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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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북상면의 갈계숲. 거창 임씨 갈천 임훈 형제가 정자를 짓고 시를 읊던 곳이다. 수승대에서 약 3km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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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북상면 갈계숲. 느티나무, 굴참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숲속에 은진 임씨의 정자각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서 3km 떨어진 북상면의 갈계숲은 신씨 집안과 수승대 소유권을 두고 다투었던 은진 임씨 집안의 유산이다. 물길이 갈라졌다가 합쳐지며 생긴 자연 섬에 200~300년 된 느티나무, 소나무, 굴참나무 등이 어우러져 산림유전보존자원으로 지정돼 있다. 아름다운 풍치를 자랑하는 이 숲은 ‘은둔자의 정원’으로도 불린다. 광주 목사를 역임한 갈천 임훈(1500~1584) 삼형제와 문인들이 시를 지으며 유유자적하던 곳으로 가선정 도계정 병암정 등의 정자각이 숲에 포근히 안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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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문인이었던 정온의 동계종택. 남부지역에서는 드물게 겹집 지붕으로 지었다. 담장 하나로 이웃한 반구헌 마당에 원추리꽃이 활짝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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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으로 운영되는 동계종택 사랑채 내부. 은둔 선비의 기품이 배어 있다.

지역에서 은둔자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동계 정온(1569~1641)이다. 병자호란 때 척화를 주장했지만 이듬해 화의가 성립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은거했다. 위천면 동계종택에는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고 있다. 솟을대문에 들어서면 남부지방에선 흔치 않은 겹집 형식의 사랑채가 당당한 풍모를 자랑한다. 집을 통째로 한옥민박으로 운영하는데 정갈한 바닥과 창호, 오래된 가구와 탁자가 놓인 방마다 은둔 선비의 기품이 느껴진다.


예전에야 수승대만 해도 더없이 좋은 피서지였지만, 요즘에는 더 깊은 골짜기까지 찻길이 나 있어 선택의 폭이 한층 넓어졌다. 수승대 상류 북성면의 월성계곡은 ‘달빛고을 별빛고을’이라는 이름처럼 거창에서도 오지에 속한다. 노론의 거두 송준길(1606~1672)이 은거했다는 사선대, 물보라가 눈가루처럼 흩날린다는 분설대 등 물굽이마다 절경이 펼쳐진다. 월성마을에서 산수교까지 약 2.9km 구간에는 계곡따라 걷기길이 조성돼 있다. 서쪽에서 발원해 동쪽으로 흐른다는 의미로 ‘서출동류길’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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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북상면 월성계곡 사선대. 월성계곡은 거창과 함양 경계 지점에서 동으로 흐르는 물길로 곳곳에 비경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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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계곡 '꽃마시다' 카페에서 꽃을 말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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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계곡 일부 구간에 계곡과 나란이 이어진 산책로를 조성해 '서출동류길'이라 이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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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원산자연휴양림의 숲속 산책로. 울창한 원시림의 기운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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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원산자연휴양림엔 유난히 폭포가 많다. 계곡 주변에 단풍나무가 많아 늦가을 정취를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다.

위천면의 금원산자연휴양림은 자운폭포, 유안청폭포 등 수많은 폭포를 품고 있어 여름에 더욱 좋다. 특히 해발 800m 부근의 생태수목원까지 도로가 나 있어 접근성도 뛰어나다. 계곡과 울창한 숲을 오가며 탐방로가 조성돼 있어 한적하게 녹색 산책을 즐기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다.


거창=글 ㆍ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