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부가 부자인 건 장가 잘 간 덕이었다?

[컬처]by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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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널리 알려진 흥부전에서 흥부는 선인으로, 놀부는 악인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2017년 새롭게 공개된 최초의 흥부전 '흥보만보록'에서 놀부는 친부모 봉양에 힘쓰지 않았다는 점 외에 별다른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다. 사진은 마당극 '싸가지 흥부전'의 모습. 공간아울 제공

“우리가 생계를 유지하며 아침저녁 밥이 끊어지지 않는 것은 부모님이 준 것도 동생 네가 주어서 생긴 것도 아니다. 처부모님 덕분에 두터운 은혜를 입어 재산과 논밭을 풍족하게 두고 먹는데, 부모님은 무슨 낯으로 내 것을 달라 하며 너는 무슨 염치로 나를 보채느냐?”


착하지만 가난한 동생 흥부가 욕심 많은 형 놀부에게 핍박받다 제비의 도움으로 부자가 된다는 내용의 흥부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들어본, 못된 형과 착한 아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대표적인 권선징악 이야기다.


지금까지 널리 알려진 흥부전에서는 놀부가 부모님이 돌아가시며 남긴 유산을 독차지하면서 문제가 시작된다. 그러나 2017년 공개된, 현재까지 가장 오래된 판본의 흥부전인 ‘흥보만보록’은 이 형제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흥부와 놀부 모두 부잣집에 데릴사위로 장가를 든 덕분에 잘 먹고 잘 살게 됐으나, 흥부가 가난한 부모를 부양하면서 덩달아 궁핍해지기 시작했다는 것.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흥부전인 ‘흥보만보록’이 19세기 한글 소설을 전공한 김동욱 계명대 조교수의 손을 빌려 현대 한국어로 세상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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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3년 필사본인 최초의 흥부전을 책으로 엮은 '흥보만보록'. 19세기 한글 소설 전공인 김동욱 계명대 조교수가 현대어로 풀이하고 해석을 덧붙여 일반인들도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흥보만보록'은 우암 송시열 후손인 송준호 전 연세대 교수가 소장하고 있던 것을 정병설 서울대 국문과 교수가 조사하면서 2017년 세상에 공개됐다. 이 책은 1833년 필사본으로, 이전까지 가장 오래된 흥부전 필사본으로 알려졌던 1853년 필사본(하버드 옌칭 도서관 소장)보다도 20년이나 앞선 것이다.


그 덕에 이 책에는 기존에 알려진 흥부전과 다른, 수많은 요소들이 있다.


흥부가 가난해지는 건 아이를 많이 낳아서가 아니라 매일 밥을 29공기나 먹는 부모를 봉양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흥부는 처가의 재산까지 탕진한다. 흥부가 형에게까지 손을 뻗치자 놀부는 데릴사위로서 처가의 재산을 가져가 쓸 순 없다고 거절한다. 선악 이분법으로 딱 나눠 가를 수 없는 형제의 색다른 면모가 엿보인다.


다른 흥부전들이 경상ㆍ전라ㆍ충청 삼남 지방을 배경으로 하거나 그도 여의치 않으면 모호한 곳을 배경으로 삼았다면, '흥보만보록'은 딱 잘라 '평양 서촌', 지금의 평안도 평원군 순안면 일대를 배경으로 지목하고 있다. 여기에다 흥부네의 성씨가 ‘장씨’이며 흥부 부친의 이름을 ‘장천’으로 밝혀뒀다.


여기다 나중에 흥부가 무과에 급제해 덕수 장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곁들여져 있다. 형제간 우애, 권선징악을 넘어 양반으로 신분 상승을 꿈꾸던 하층민의 열망도 엿볼 수 있다. 수십종의 해산물이 공물로 등장, 조선 사람들의 해산물을 즐겼다는 사실까지 짐작할 수 있다. 쌀농사 중심 사회였을 것이라는 조선에 대한 일반적 상상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김동욱 교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친부모를 모시려 노력하고 다친 제비를 살려주는 등 착하게 살던 흥부가 대박을 터뜨려 부자도 되고 덕수 장씨 양반 족보도 획득했다는 이야기”라며 “'흥보만보록'으로 볼 때 흥부전의 초기 모습은 신분질서 붕괴, 빈부격차 문제보다는 흥부 개인의 성공 스토리에 더 가까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2020.09.02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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