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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단양~영주 산비탈마다 사과가 주렁주렁...죽령 옛길 드라이브

by한국일보

새 길이 뚫리면 옛길은 추억이 된다. 속도를 줄이면 지나쳤던 시공간이 새록새록 다시 보인다. 충북 단양에서 경북 영주로 이어지는 죽령 옛길을 따라 천천히 차를 몰았다.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면 터널을 통과하는 데 5분남짓, 구불구불 옛길로는 20분 이상 걸린다. 닮은 듯 조금은 다른 단양과 영주의 이야기가 대비되고 중첩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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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령으로 이어지는 단양 대강면 용부원리 산마를 풍경. 옛 도로는 일직선으로 뻗은 고속도로(오른쪽)와 중앙선 철도를 넘나들며 구불구불 이어진다.

죽령은 옛날 어느 도승이 고개를 넘다가 너무 힘들어서 짚고 가던 대지팡이를 꽂은 것이 살아났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 그러나 대숲은 고사하고 죽령 어디에서도 대나무를 구경하긴 힘들다. 삼국사기와 동국여지승람에는 신라 아달라 이사금 5년(158)에 길을 열었다고 기록돼 있다. 2,000년 가까이 된 길이다. 역사적으로는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으로 양국간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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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령 고갯마루에서 보는 풍경. 좌우로 소백산의 울창한 산림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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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령 휴게소에서 내려다보이는 단양 용부원리마을. 생태공원까지 산책로로 연결돼 있다.

고갯마루(689m)에 오르면 단양 대강면 용부원리 산마을 풍경이 손에 잡힐 듯 정겹다. 원(院)은 조선시대에 공무를 보던 관원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곳이다. ‘용부원’이라는 명칭은 죽령을 넘는 관원이 묵어가던 마을이라는 증거다. 듬성듬성 자리 잡은 민가 뒤로 소백산 자락의 울창한 숲이 짙푸르다. 휴게소에서 마을까지 탐방로가 연결돼 있다. 이왕 천천히 가는 길, 잠시 시간을 내 동네 한 바퀴를 돌아도 괜찮다. 작은 생태공원에 원두막이 있어서 소풍을 즐겨도 좋다. 소백산 능선을 따라가는 등산로도 여기서 출발한다.


숲길이나 다름없는 마을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길가에 두상이 없는 불상이 하나 서 있다. 보국사라는 사찰이 있던 자리에 치명적 부상을 입은 석조여래입상만 남았다. 기록이 없어 자세히 알 수 없으나 통일신라 불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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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령 중턱의 보국사지 석조여래입상. 두상이 잘린 불상 하나만 남았지만 치성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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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대강면 용부원리마을의 산신당. 죽령의 산적을 퇴치한 '다자구할머니'를 모신 사당이다.

인근에 충청북도 민속자료 제3호인 죽령산신당이 있다. 용부원리 마을의 수호신인 죽령산신은 속칭 ‘다자구할매’라고도 부른다. 옛날 죽령에는 산적이 많았다. 산이 험해 나라에서도 손을 쓰지 못했다. 이때 한 할머니가 관군과 짜고 큰아들 ‘다자구’와 작은아들 ‘들자구’를 찾는다는 핑계로 산적의 소굴에 들어갔다. 두목의 생일날 밤 모두 술에 취해 잠들자 할머니는 다 잔다는 뜻으로 ‘다자구야’라고 소리친다. 이를 신호로 대기하고 있던 관군이 급습해 산적을 모두 소탕했고, 할머니는 죽어서 죽령산신이 되었다는 얘기가 전해 온다. 죽령이 인적ㆍ물적 교류가 잦았던 교통로였다는 뜻이기도 하고, 달리 해석하면 먹고 살기 힘들어 도적질에 나선 백성이 많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자구할매’ 전설은 고개 넘어 영주시 풍기읍에도 똑같이 전해진다. 현재는 마을에서 당제를 지내는 수준이지만, 과거엔 단양군수와 풍기군수가 함께 이곳에서 산신제를 올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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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대강면 죽령역. 현재는 열차가 서지 않는 폐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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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령 북측 단양이나 남측 영주나 산비탈마다 탐스럽게 익어가는 사과가 주렁주렁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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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풍기읍 희방사역. 출퇴근 시간에 맞춰 하루 4회 열차가 정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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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풍기읍 희방사역 마당에 '무쇠달 마을' 방문을 환영하는 장승이 세워져 있다.

용부원4리에는 중앙선 철도 죽령역이 있다. 1941년 죽령 밑으로 4,500m의 터널이 뚫렸고, 단양에는 죽령역, 풍기에는 희방사역이 들어섰다. 희방사역에는 상하행 하루 4회 열차가 서지만 죽령역은 완전히 폐역이 되고 말았다. 분홍 페인트로 단장한 아담한 역사(驛舍)가 쓸쓸하게 산마을을 지키고 있다. 주변은 온통 사과 밭이다. 수확을 앞둔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고개 넘어 영주도 마찬가지다. 이곳에도 단양과 경쟁이라도 하듯 탐스럽게 익어가는 사과가 산비탈을 발갛게 물들이고 있다.


단양의 죽령 옛길에선 평지에서 고갯마루까지 마을이 이어지지만, 영주에선 산중턱의 수철리가 첫 마을이다. 수철리는 ‘무쇠달’이라고도 부른다. 여기도 다자구할매 못지 않은 전설이 내려온다. 신라시대 두운스님이 동굴에서 참선할 때 목구멍에 비녀가 걸린 호랑이를 구해준다.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호랑이는 큰 멧돼지를 잡아왔지만, 육식을 금하는 스님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또 어느 날은 아름다운 여인을 물고 왔다. 깜짝 놀란 스님이 연고를 물어 경주의 집까지 데려다 준다. 여인의 부친인 호장은 고마운 마음에 스님이 거처할 암자를 짓고, 편히 다닐 수 있도록 계곡에 무쇠다리를 놓아 준다. 수철리 마을의 유래다. 또 그때 지은 암자가 바로 기쁨을 주는 산방, 희방사(喜方寺)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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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방사 계곡 입구. 계곡을 따라 걸으면 주차장에서 사찰까지 약 20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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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방사 계곡 탐방로는 짙은 그늘과 시원한 물소리가 함께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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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7m 높이에서 시원하게 떨어지는 희방폭포 물줄기. 주차장과 희방사 딱 중간지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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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방사 탐방로는 희방폭로에서 가파른 계단으로 이어진다. 위에서 보는 폭포는 또 색다른 모습이다.

마을에서 희방사까지 탐방로가 연결돼 있지만 가파른 계곡길이 쉽지 않다. 보통은 희방사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걷는다. 사찰까지 약 600m, 넉넉잡아 20분가량 걸린다. 탐방로 중간지점에 희방폭포가 있다. 27m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 소리가 웅장하고 주변으로 찬바람을 번진다.


희방사는 지금도 아담한 사찰이다. 한국전쟁 때 소실됐다가 1953년 중건했다. 경내에 희방사 동종(경북유형문화재 제226호)과 월인석보 책판을 보존하고 있다. 탐방로 입구에서 문화재 관람료 명목으로 2,000원의 입장료를 받는다.


단양ㆍ영주=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