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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이것이 조선의 힙이다” 춤으로 세계를 홀린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by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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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송림 깊은 골로 한 짐생이 내려온다~.”


힙한 판소리 가락을 타고 어깨는 들썩들썩, 팔다리는 둠칫둠칫, 발장단도 풀쩍풀쩍. 막춤은 아닌데 그렇다고 정통무용이라고 하기도 좀 그런, 으르렁 뛰어다니는 범 한 마리처럼 보이긴 하는데 무섭다기보다는 왠지 피식피식 웃음이 나는 요상한 춤사위가 시선을 강탈한다. 극강의 중독성으로 진작에 ‘수능금지영상’이라 불렸고, 아이돌 가수에서나 볼 법한 ‘리액션 영상’까지 나왔다. 온라인에서 2억6,000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세계를 홀린 한국관광공사 한국홍보영상의 주인공, 바로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다.


서울 편 등 2억6천만뷰 기록…목포, 강릉, 안동 편도 공개

국악그룹 이날치와 함께한 이 영상이 대박 나면서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는 요즈음 밀려드는 공연 요청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서울, 부산, 전주 편에 이어 13일에는 목포, 강릉, 안동 편도 공개돼 또 다시 온라인이 폭발했다. 최근 서울 방배동 연습실에서 마주한 김보람(37) 예술감독은 “이날치 음악이 좋아서 늘 하던 대로 작업했을 뿐인데 큰 관심을 받아 놀랐다”며 쑥스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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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됐다’는 말이 꼭 들어맞지만, 소위 ‘갑툭튀’는 아니다. 김보람은 현대무용계에선 스타 안무가다. 그가 이끄는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도 팬덤을 몰고 다니는 ‘핫한’ 무용단이다. 이들의 대표 레퍼토리 ‘바디콘서트’는 ‘일반 관객을 위한 현대무용 입문작’으로 유명하고, 해외 유명 무용제에도 자주 불려간다.


“우리 장르는 그냥 춤, 그 자체”

한국홍보영상에서도 보듯 이들 춤의 핵심은 ‘장르 파괴‘다. 바흐의 클래식 선율에 현대무용을, 비욘세의 노래에는 발레를, 사물놀이 장단에 맞춰서는 스트리트댄스를 추는 식이다. 딱 꼬집어 이거다라고 규정할 수 없는 애매모호함. 그래서 이름도 앰비규어스(ambiguousㆍ애매모호한)라 지었다. 김보람은 “장르를 따지기보다는 그냥 춤”이라며 “가끔은 우리 스스로도 현대무용이 맞나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한다”고 웃었다.

관객 반응도 다른 현대무용 작품들과 다르다. 무용인데 공연 도중 박수와 환호성이 터지는 건 예사다. 한국홍보영상만 해도 “B급이다” “병맛이다” “우스꽝스럽다”, 심지어 “도깨비 같다”는 반응까지 쏟아진다.


‘병맛’ 패션까지 화제

이는 춤 못지않은 패션 때문이기도 하다. 패랭이, 색동 한복, 트레이닝복, 물안경, 강렬한 원색 정장에다 조선시대 장군 투구 같은 것들을 천연덕스럽게 한데 걸쳐 놨는데, 묘하게 힙하다. 원래는 작품 ‘피버’에 맞춰 만든 의상인데, 이날치와의 작업에서 활용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피버’의 주제는 전통이었단다. “전통을 잘 모르는 사람이 해석하면 이렇게 나오지 않을까, 그러면 눈높이가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도했어요. 그래서 빨간 트레이닝복에 장군 모자를 쓸 수 있는 거 같아요. ‘나도 저 모자 쓰고 싶다’고 느낀다면 성공입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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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패션 가운데 무용단의 트레이트 마크는 모자와 선글라스다. 작품마다 모양과 종류는 달라져도 늘 눈과 머리 모양은 꽁꽁 숨긴다. 이유가 있다. “춤출 때 날리는 머리카락에 단 0.1초도 방해받고 싶지 않아요. 그렇다고 머리를 잘라버릴 순 없잖아요(웃음). 선글라스도 마찬가지예요. 눈엔 감정이 드러나기 때문에 실수가 있으면 눈빛부터 흔들려요. 처음엔 그 ‘동공 지진’을 감춰 보려 한건데, 지금은 ‘눈의 언어’를 완벽히 차단해서 관객들이 ‘몸의 언어’에만 온전히 집중하게 하고 싶어요.”

가리지 않는 무대…종로에서 홀로 춤추기도

춤도 의상도 그러하니, 무대에도 경계가 없다. 지하철역, 공원, 궁궐, 창고, 심지어 밭두렁까지. 뭐 저런 곳에서 춤추나 싶은 곳 어디서나 다 춘다. 원래도 그랬지만 코로나19로 공연이 취소되자, 아예 거리로 나갔다. 서울 종로 뒷골목 같은 시내 곳곳에서 무용수 각자가 알아서들 춤을 춘 뒤 그걸 찍은 영상까지 만들어 올렸다. 한국홍보영상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공연장이 아니면 어때요. 우리 춤을 한 명에게라도 더 보여주는 게 중요해요. 6개월 연습해서 한두 번 공연하고 끝나는 게 너무 허무해서 그동안 무대를 열심히 찾아다녔어요. 그런 노력이 언젠가는 공연장에서 꽃을 피울 거란 믿음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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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람의 안무는 언뜻 쉬워 보인다. 고난도 동작 같은 건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막상 따라 해 보면 쉽지 않다. 김보람의 안무작에 참여했던 유명 발레리노 김용걸은 “팔이 저리고 토가 나올 정도로 힘들다”고 말했을 정도다. 김보람은 “일부러 몸에 불편하고 어색한 동작을 구상한다”고 했다. “1 다음에 2가 아니라, ㄴ(니은)이 나오는 게 더 재미있기 때문”이어서다.


무용수는 춤추지 말아야 한다?

당연히 엄청난 연습이 뒤따라야 한다. “무용은 멋있는 동작을 하지만, 저희는 그런 거 없어요. 대신 사소하고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최선을 다해 추는 느낌이에요. 무용이 다른 예술 장르보다 즐기기 어렵잖아요. 내 모든 걸 다 쏟아내지 않으면 사람들이 안 봐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안무 작업도 그래서 기계적(?)이다. 멜로디, 박자, 악기 구성 등으로 음악을 분해해 이걸 그림이나 도표로 만든 뒤, 그에 맞춘 동작을 짠다. 마치 무용수가 음표라도 된 양, 음악이 들리는 대로 춤이 보이도록 하는 게 목표다. 그렇기에 김보람이 무용수에게 당부하는 건 “무대에서 제발 춤추지 말라”는 것이다. “정해진 소리를 표현하는 데만 집중하라는 겁니다. 그걸 춤으로 보는 건 관객이지, 무용수가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면 그건 무용 작업이 아니라 그냥 ‘댄스’가 돼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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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작품 세계는 그의 과거 이력과도 관계가 깊다. 김보람은 엄정화, 이정현, 코요테 등의 백업댄서 출신이다. 전남 완도에서 태어나 열 살 무렵 가수 현진영을 보고 춤에 빠졌고, 고2 때 서울에 와 공부와 방송 일을 함께 했다. 스무 살 무렵 미국 진출을 꿈꾸며 학생 비자를 받아 보려는 생각에 뒤늦게 서울예대 무용과에 들어갔다.


‘영원한 춤꾼’이 목표

졸업 이후에도 방송 댄스를 계속했지만, 안성수 전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의 무용단에 들어가면서 무용계에 정착했다. 미국 진출의 꿈은 현대무용 투어 공연을 했으니 어쨌든 이룬 셈이다. 그는 “좋아하는 일을 택한 덕분”이라며 “앞으로도 춤을 좋아하는 마음은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에게 춤은 뭘까. 그는 “새로운 언어”라고 했다. “어려운데 이상하게 끌린다든지, 말로는 표현 못 할 감정이 느껴진다든지, 사람마다 해석이 다양하잖아요. 무용은 취향과 감성을 발견하기에 가장 좋은 예술 장르예요.” 물론 그 매력, 관객과 함께 나누고 싶다. “언제까지 춤 추겠냐고 묻는다면, 제 답은 ‘무한히’예요. 몸이 덜 따라와 주면 그에 맞춰서 안무하면 돼요. 영원한 춤꾼, 그게 목표입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