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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신박한 정리’ 이지영 “잘 비워내니 15년을 꿈꾸던 내 자리가...”

by한국일보

[김지은의 ‘삶도’ 인터뷰] <57>우리집공간컨설팅 대표 이지영


15년 보육전문가 접고 30대 후반에 인생전환

“필요, 욕구, 버림 박스는 인생정리에도 필요해”

한국일보

이지영 우리집공간컨설팅 대표를 9일 서울 서대문구에 자리한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짐에 파묻힌 집을 변신시키는 공간크리에이터로 tvN ‘신박한 정리’에 출연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나이 서른일곱에 처음 인생의 낭떠러지에 맞닥뜨렸다. 열정을 바쳤다고 해서 결과까지 공정하리란 법은 없다는 사회의 쓴 맛이 좌절을 안겼다. 가세가 기울어 부모와 떨어져 지내야 했던 고교 시절도 유쾌하게 이겨냈던 그인데. 보육교사로 쌓은 13년 경력을 발판으로 재취업한 공공기관이 마지막 일터가 되리라 믿었다. ‘당장은 비정규직이지만, 능력을 인정받으면 정규직으로 전환될 거야.’


“정말 미친 듯이 일했다”는 그에게 돌아온 건 계약 만료에 따른 퇴사. 정규직 전환의 기회는 아무에게도 돌아가지 않았다. 어떤 이유도 듣지 못했다. 그러니 납득이 될 리 있나. 예상치 않게 찾아온 인생의 허무한 공백이었다. 이 사회에서 내 공간이 없어졌다는 허탈함은 마음에 큰 우울을 안겼다. “이 기회에 여행 다니며 쉬어 봐.” 남편의 고마운 제안에 국내로, 홍콩으로, 일본으로 바람도 많이 쐬었다. 그래도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여행지에선 달콤했지만, 돌아오면 일상은 그대로였으니까.


그렇게 6개월, ‘이 시간이 길어지면 안 되겠구나’ 정신이 들었다. 과거는 지우고 백지에서 생각했다. 종이를 펴고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적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내가 그동안 집을 계속 못살게 굴었더라고요. 끊임없이 치우고 정리하고 가구를 들이고 배치를 바꾸면서. 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뛰쳐나가듯 나는 흐트러진 마음을 집안 정리하는 걸로 풀었던 거예요.”


‘이거다’ 싶었다. 업으로 삼을 수 있을지 시험해보기로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활용해 지원자 다섯 명을 받아 재능기부를 했다. 일을 마치고 나니 의뢰인이 손을 덥석 잡았다. “고기 사드리고 싶어요! 저녁 식사 하시고 가세요.” 다른 의뢰인들은 극구 돈을 쥐어줬다. ‘사업이 되겠다’ 판단이 섰다.


이지영(41) 우리집공간컨설팅 대표는 그렇게 자신의 두 손, 두 발로 인생 2막을 열어젖혔다. 이 일을 시작한지 3년 밖에 안된 그가 붐을 일으키고 있는 건 정리컨설팅의 판도를 바꿔놔서다. 그는 수납을 잘하는 법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공간을 새롭게 만들어낸다. 그 힘은 버리는 데서 나온다. 비워진 공간에 들어서는 건 삶이다. ‘침대는 침실에’ 같은 고정관념이 아니라 의뢰인에 맞춰 공간을 재설계한다. 이 대표가 이 업에 ‘공간크리에이터’라는 정체성을 부여한 이유다. “물건을 비우면 공간이 보이고, 공간이 보이면 사람이 보이거든요. 미니멀 라이프가 열풍인데 핵심은 ‘미니멀’이 아니라 ‘라이프’예요.”


집만 그런 게 아니다. 돌아보니, 이 대표는 생의 위기에 맞닥뜨렸을 때도 비웠고, 정리했고, 창출했다. 그러니 이 인터뷰는 인생에서 진짜 내 공간을 만드는 일에 관한 이야기다.

처음 택한 직업, 보육교사

한국일보

그는 어릴 때 화가를 꿈꿨다고 한다. 지금은 집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전혀 다른 일을 하는 게 아니다. 고영권 기자

-어릴 때부터 정리하는 걸 좋아했나요?


“원래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고등학교 때 형편이 어려워져서 미술 공부를 하지는 못했지만, 지나고 보니까 나는 지금 캔버스가 아니라 집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거구나 싶어요.”


-최근 낸 책 ‘당신의 인생을 정리해드립니다’를 보면 어릴 때 경제적인 이유로 식구들이 집 없이 모두 따로 살던 시절 얘기가 나오는데요.


“네, 아버지 사업이 갑자기 어려워진 데다 그 즈음 IMF 구제금융 위기까지 닥쳐서 회복이 쉽지 않았죠. 제가 고등학교 때였는데 동생은 할머니 댁에, 저는 학교 앞에 독서실에서 지내야 했어요.”


-고교 시절인데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때도 저는 밝았어요. 하하. 어릴 때부터 왈가닥에, 수다쟁이였죠.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동네 아주머니들 사이에 껴서 얘기도 하고, 남의 집 가서 밥도 잘 얻어먹었죠. 그런 성격이 이 일을 할 때도 도움이 돼요. 잘 살진 못해도 늘 화목했던 집안 분위기가 한몫 한 것 같아요. 가족과 떨어져 지낼 때도 친구들은 ‘공부하느라 독서실에서 지내나 보다’ 했죠.”


-가족이 얼마 만에 한 집에 살게 됐나요?


“제가 대학 들어가고 나서니까 한 3년 만인 것 같아요. 부엌 딸린 사글세 방이었어요. 한 방에서 다 자는데도 그렇게 좋더라고요. 지금 떠올리니 엄마 밥이 딱 생각나네요. 우리 엄마가 요리를 그렇게 잘하는 것도 아닌데 엄마가 해주는 밥을 아침에도 먹고, 저녁에도 먹으니까 그렇게 맛있었어요.”


대구 사투리가 배인 말투로 내내 유쾌하게 말하던 그가 “엄마 밥”이라는 대목에서 목메었다.


-원래 보육교사였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유아교육과를 나와서 쉼 없이 일했죠. 꼭 경제적인 이유에서라기 보다 일을 하는 게 좋았고 당연했어요.”


-지금 일을 하게 된 계기는요?


“계속 유치원과 어린이집 교사로 일을 하다가 보건복지부가 만든 육아지원기관에 취업할 기회가 생겼어요. 계약직이지만, 성과가 좋으면 2년 뒤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으니까 지원을 했어요. 그러면 정년이 보장되는 거잖아요. 제게는 꿈의 직장 같았어요. 아직도 면접 볼 때 제가 했던 말이 기억나요.”


-뭐라고 했나요?


“10년 넘게 보육교사로 일하면서 내 공간이 단 한번도 없었다, 여기 사무실을 보면서 설렜다, 1평 남짓이지만 자기만의 공간이 있더라, 저 공간에서 일할 기회가 생기면 그간 현장에서 쌓은 노하우를 다 풀겠다.”


-공간 얘기를 했네요.


“네, 지금 생각하니 그래요. 왜냐하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는 교사의 공간이 없거든요. 늘 아이들과 함께 있어야 하니까요. 심지어 의자도 눈높이를 맞춰야 해서 어린이용에 앉죠. 그런데 면접을 보러 사무실이 들어서니 칸막이 있는 직원의 공간이 딱 눈에 들어온 거예요.”


-얼마나 좋아 보였으면, 면접에서도 말을 했을까요.


“그게 바로 공간이 주는 힘이죠.”


묻자마자, 그가 말했다. 명료한 그 대답에 한동안 생각이 머물렀다.


-합격을 했지요?


“네, 서른을 훌쩍 넘긴 서른다섯에 재취업을 했으니 그야말로 경사였어요. 하하. 진짜 미친 듯이 일했어요. 2년제를 나왔기 때문에 학사를 따려고 방통대도 다녔죠. 그런데 알고 보니 정규직 전환 계획은 애초에 없었더라고요. 2년 남짓 일하고 계약 만료로 그만둬야 했어요.”


그래도 인생에 공짜는 없다. 그때 악착같이 일과 공부를 병행한 덕에 이후 경영대학원에도 진학할 수 있었다.


-충격이었겠어요.


“맞아요. 사춘기 때도,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을 때도 좌절하지 않았는데 그때 처음 우울증이 왔어요. 희망이 한순간에 무너지니까 너무 허탈하더라고요. 뭘 해야 할지 몰랐죠.”

인생의 첫 좌절, 비우니 나온 답

한국일보

‘보육’을 평생 직업으로 삼을 줄 알았던 그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예고 없이 찾아왔다. 고영권 기자

-어떻게 견뎠나요.


“여행을 다녀도, 술을 마셔도 그때뿐이었어요. 어느 순간 재미도 없어지더라고요. 그래서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할 정도로 책을 많이 읽었어요. 그때 본 책 중 하나가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의 ‘멀리 보려면 높이 날아라’였어요. 문득 나 자신을 한번 파봐야겠다 싶었죠. 그래서 종이에 적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즐기는 것들을요.”


-그때 정리라는 일이 나온 건가요?


“생각해보니까 일을 쉴 때도 놓지 않고 한 게 집 청소, 정리, 꾸미기였어요. 마음이 불안하고 허전하니까 집을 그렇게 못살게 굴었던 거죠. 늘 다른 사람들이 우리집에 오면 깜짝 놀랐거든요. 예고 없이 와도 정돈이 잘 돼있으니까요. 사람들이 ‘애들 키우는 집이 어떻게 이렇게 정리가 잘 돼있냐, 사람이라도 쓰느냐’고 물었죠. 마음이 혼란하니까 집이 흐트러지는 게 용서가 안 됐나 봐요.”


-이게 과연 업이 될까 싶기도 했을 텐데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알아봤죠. 정리컨설팅을 알려주는 인강(인터넷강의)도 듣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의 블로그도 보고요. 저는 비포(정리 전)와 애프터(정리 후) 사진만 봐도 어떻게 했는지 알겠더라고요! 셰프들이 음식을 먹어보면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했사온데’ 하면서 뭐가 들어갔는지 알듯이.”


-그래서 뭐부터 했나요?


“아는 사람들 집에 가서 실제 해봤어요. 그때 정리컨설팅은 대부분 물건의 수납 방법을 강조했거든요. 옷 개는 방법, 집기 분류 방법 같은 것들이죠. 그런데 실제 집에 가서 보니까 정리가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어 어린 아이가 있는 집인데 아이가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공간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공간에 변화를 주니까 효과도, 반응도 좋더라고요. 내 차별성은 이거다 싶었어요.”


-사람들이 돈을 주고 맡기겠다는 확신도 들던가요?


“반응이 좋았거든요. 자기 주위 사람까지 소개시키면서 ‘야, 너 이걸로 돈 벌어도 되겠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친분 있는 사람들의 반응이니 전적으로 의존할 순 없었어요. 내가 그 사람을 아니까 더 그에 잘 맞게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지인이니 내 실력보다 더 좋게 말해줄 수도 있고요.”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지역 ‘맘카페’에 익명으로 글을 올렸어요. ‘이런 일을 하려고 하는데, 사연을 올려주면 그 중에서 다섯 명을 선정해서 무료로 집 정리를 돕겠다. 일종의 재능기부다. 대신 저한테 밥 한끼만 사주시면 된다’고요. 신청 글이 막 올라오더라고요.”


-첫 집은 어땠나요?


“아이와 둘이 사는 미혼모의 집이었어요. 얘기를 들어보니까 원래 다른 지역에서 살았던 사람인데 지원 시설에서 대구로 거주지를 마련해줘서 이주해온 경우였어요. 방 하나에 거실과 주방이 있는 빌라였어요. 의뢰인에게는 처음 살아보는 집이더라고요. 자기도 어릴 때부터 (사회복지)시설에서 자랐는데 어쩌다 보니 아이 아빠 없이 혼자서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된 거예요. 제게 ‘이런 공간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집이라는 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안타까웠어요.”


-집다운 집에 처음 살아보는 사람이었네요. 어떤 부분에 주력했어요?


“제가 유아교육을 전공했잖아요? 그 노하우를 100% 발휘했죠. (미소) 어린 아이가 있으면 가구를 낮게 하는 게 좋아요. 그래서 높은 가구를 옆으로 눕히는 방식을 활용했죠. 아이가 놀고 책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어요. 주방도 동선을 고려해서 밥솥 옆에 쌀통을 두는 식으로 배치를 바꿨고요.”


-얼마나 걸리던가요?


“하루 만에 다 했어요. 짐이 많지 않기도 했고요. 또 저는 수납 법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그 집에 사는 사람에 맞게 공간을 재배치하고 물건의 자리를 정하는 데 집중했거든요.”

‘이거 사업이 되겠다’ 판단한 이유

한국일보

인생의 첫 좌절에서 그가 한 일은 자신을 비우고 제대로 들여다보는 거였다. 고영권 기자

-모르는 사람의 집을 컨설팅해보니 어떻던가요?


“그 사람에 맞는 공간 정리를 할 수 있겠더라고요. 자신이 붙었죠.”


-반응도 좋았나요?


“네! 첫 집부터 그랬죠. 그날 의뢰인이 점심에 저한테 짜장면을 사줬거든요. 저는 일하면서 밥 한끼만 먹으면 된다고 했으니까 그거면 충분했어요. 그런데 일을 다 마치고 나니까 고기를 대접하고 싶다면서 꼭 먹고 가라고 하는 거예요. 그건 그만큼 제게 뭐라도 해주고 싶다는 뜻이잖아요. 이후에 무료로 진행한 의뢰인 네 명은 제게 심지어 돈을 쥐어줬어요. 괜찮다는데도 안 받으면 안 된다면서. 그게 얼마가 됐든 그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꺼낸 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잖아요. 저한테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하고요. 그때 ‘아, 이걸로 돈을 벌어도 되는갑다’ 했죠.”


그렇게 2017년 정식으로 사업자 등록을 했다. 우리집공간컨설팅의 시작이다.


-사업자 등록을 하고 나서는 어떻게 했나요?


“가장 먼저 한 일이 로고 만드는 거였어요. 하하.”


-회사 로고요?


“네, 제가 50만원 들고 창업했거든요. 그 50만원이 대부분 로고 만드는 데 든 돈이에요. 제가 대충 디자인을 해서 제작업체에 갔더니 사장님이 저를 보곤 ‘될 사람이네요’ 하는 거예요. 제가 ‘왜요?’ 했더니 이런 일 하면서 로고부터 만드는 사람은 못 봤다는 거죠. 하하.”


-의뢰인은 어떻게 모았나요?


“전단지를 뿌리고 다녔어요. 입주를 막 시작한 아파트에 붙이고 다니다 항의도 많이 받았죠. 초반엔 제가 재능기부했던 사람들이 주위에 입소문을 내고 소개를 해줘서 좀 의뢰인이 있었는데 그렇게 해서는 확장이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시작한 게 블로그였다. 친구가 아이디어를 냈다. 글과 사진으로 작업 결과물을 공유할 수 있으니 훌륭한 홍보 수단이었다.


-그때부터 블로그를 시작한 건가요?


“제가 추진력이 좋거든요. 바로 만들어서 쓰기 시작했죠. 처음에 일이 없을 때는 괜히 우리집을 어질러놓고 비포 사진을 찍은 뒤에 바꿔놓고 애프터 사진도 찍고요. 친정 집에 가서 하기도 했죠. 하하. 그런데 다른 블로그나 카페를 보니까 이벤트 같은 걸 하더라고요. 나도 해보자 싶었죠. 그래서 체험 후기 이벤트를 했어요. ‘사연을 올리면 몇 명을 추려서 무료로 공간 컨설팅 서비스를 해주겠다. 경험 한 뒤에 후기를 올려주면 된다’고.”


-그 이벤트가 잘 됐나요?


“그때 이벤트 참여자로 뽑은 블로거 중 하나가 대구에서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던 거예요. 저는 전혀 몰랐죠. 블로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도 알지 못했고요. 그 블로거가 친정 집을 의뢰해서 컨설팅을 했는데 후기를 정말 잘 쓴 거예요. 그 글이 나가고부터 의뢰 전화가 밀려들었죠.”


사업 시작 두 달 만이었다.


“마케팅의 힘을 그때 깨달았어요. 그 후기 하나로 두 달치 일이 순식간에 잡히더라고요. 저는 정말 사람 덕분에 살고, 사람 덕분에 여기까지 온 거예요!”


운은 역시 노력하는 사람에게 따르는 법이다.

집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한국일보

실제 공간 컨설팅에 뛰어들면서 그는 집이 아니라 그 안에 사는 사람에 집중했다. 고영권 기자

-블로그를 더 열심히 했겠네요.


“그럼요. 1년 365일 중에 350일 블로그를 썼어요. 사진도 한 포스팅에 수십 장씩 넣고요. 하하. 제가 보통 (공간 컨설팅) 현장 일을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거든요. 마치면 다른 집 견적 보러 가고, 퇴근해선 아이들 뒷정리 해준 뒤에 새벽 4시까지 블로그 작업을 했죠.”


-그러면 잠은 언제 자나요?


“그러니까 하루 두세 시간 자면서 일했죠. 지금도 그래요.”


고작 두세 시간 밖에 못 잔다는 사람 얼굴에서 생기가 돌았다.


-블로그가 인기를 좀 끌었나요?


“일종의 포트폴리오가 된 거죠. 대개 집 정리 포스팅은 비포와 애프터 사진을 주로 올리거든요. 그런데 저는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어떤 이야기요?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죠. 사진만 올리니까 어느 때부터인가 비난 댓글이 달리더라고요. ‘아니, 집을 어떻게 저렇게 해놓고 살아’ 하는 식이죠. 그게 그렇게 속상하더라고요. 집집마다 다 사연이 있고, 이유가 있는데 말이에요.”


-기억에 남는 사연이 있나요?


“결혼한 딸이 친정 아버지와 남동생이 사는 집을 의뢰한 적이 있어요. 가서 보니까 평수에 비해서 크고 비싼 가구가 많더라고요. 얘기를 들어보니 1년 전에 친정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사를 해서 아버지와 남동생만 사는 집이었어요. 경황이 없는 데다 큰 집에서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니 가구 합도 안 맞고, 정리도 잘 안 돼있었죠. 그 집의 컨설팅을 마치고 나서 의뢰한 딸이 이런 말을 하면서 울더라고요. ‘꼭 우리 엄마가 살아 돌아오신 것 같아요. 엄마가 계실 때 집이 이랬어요.’ 그 말을 듣고 저도 눈물이 났죠. 제가 마치 친정 엄마가 된 기분이었어요.”


-여러 생각이 들었겠어요.


“물론 살다 보면 집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이 순간에 누군가는 내 손길이 닿은 집을 보면서 엄마가 다시 살아온 기분을 느낀 거잖아요. 아버지와 남동생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의 인생을 정리해 줄 수 있는 일이구나 생각했어요.”


집뿐 아니라 의뢰인의 마음까지 어루만진 것이다. 그런 스토리를 담아 블로그를 하니, 마치 정기 구독하듯 찾는 방문자가 늘었다. 사업도 날개를 달았다. 여기다 2019년 시작한 유튜브 방송(‘정리왕 썬더이대표’)은 사업 확장의 또 다른 발판이 됐다. tvN ‘신박한 정리’ 출연 계기도 유튜브에서 비롯됐다. 구독자였던 배우 신애라씨가 그를 제작진에 강력 추천했다고 한다.


-유튜브를 시작한 계기가 있나요?


“2019년에 법인 등록을 하면서 직원 수도 늘었어요. 전환점이 필요하다 싶었죠. 블로그의 한계도 느꼈고요. 그래서 제가 배워서 직접 찍고 편집했어요. 지금도 편집만 다른 사람이 하고 촬영이나 구성은 다 제가 하죠.”


-회사도 제법 성장했죠.


“2017년 대구에서 저 혼자 시작했는데, 올해 2월 서울로 확장했죠. 처음엔 제가 접수, 견적, 현장 업무, 경리까지 다 혼자 했어요. 지금은 직원이 대구에 17명, 서울은 20명이 넘어요. 저도 요즘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죠.”


그를 만난 곳은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근처의 한 사무실이었다. 그는 이곳에 아카데미를 열어 12월부터 운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무슨 아카데미인가요?


“공간 컨설팅 교육을 하려고 해요. 더불어 스피치나 마케팅까지 해서 궁극적으로는 창업을 돕는 일을 하고 싶어요.”

공간 컨설팅은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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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예능 ‘신박한 정리’에서 그는 물건을 비워 생긴 공간에 의뢰인의 삶을 녹인다. 사진은 8월에 방영된 방송인 오정연씨 편. tvN 제공

-공간 컨설팅을 할 때 어떤 마음으로 하나요?


“회사 경영철학이 있어요. 바로 ‘친정 언니’예요. 지금 함께 하고 있는 우리 회사 실장님의 제안인데 생각할수록 괜찮더라고요. 친정 언니 같은 마음으로 일한다고 하면 정말 믿고 맡길 수 있지 않겠어요?”


그는 올해 6월부터 연예인들의 집을 바꿔주는 ‘신박한 정리’에 출연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화려해 보이는 방송인과 배우, 개그우먼인데, 집에선 해묵은 짐들에 파묻혀 사는 모습이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인기의 비결은 과정에 있다. 그들이 ‘필요’, ‘욕구’, ‘버림’이라고 적힌 대형 박스 세 개를 앞에 두고 물건을 정리해나가는 모습에서 시청자들은 자신을 본다. 애착 때문에 버릴지 말지를 고민하고, 물건에 어린 추억으로 회상에 잠기며, “아니, 이게 여기 있었어?” 놀라는 그들과 함께 웃고 운다. 그렇게 과감히 비워낸 공간을 이 대표는 ‘그’ 사람이 사는 집으로 재탄생시킨다. 연기 경력 30년의 배우인데 집에서는 대본을 볼 변변한 곳이 없던 정은표씨에겐 책상을, 대학시절 리포트에 수험표, 방송 대본까지 간직하는 아나운서 오정연씨에겐 자신만의 ‘역사박물관’을 선사했다.


-출연자들이 유난히 많이 울더라고요.


“아마도 그 분들이 원했던 부분을 건드려서 그런 것 아닌가 싶어요. 예를 들어, 정은표씨 편에서 방송엔 나오지 않았지만 부인을 위한 공간도 만들었거든요. 바로 기도할 수 있는 곳이죠. 가서 보니 책장이나 짐들에 가려서 보이진 않았지만, 곳곳에 십자가가 있더라고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거예요. 그런데 조용히 앉아 기도하거나 성경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없었죠. 그런 곳을 딱 만들어주니까 보곤 눈물이 나는 것 아닐까요.”


-실제 공간 컨설팅은 어떤 과정으로 이뤄지나요?


“먼저 의뢰인과 오래 얘기를 나눠요. 가족관계, 나이, 좋아하는 것, 생활패턴, 출퇴근 시간, 밥은 어디서 어떻게 언제 먹는지 같은 세세한 것들을 묻죠. 그래야 그 사람에게 맞는 공간을 설계할 수 있으니까요. 이를테면 식사를 거실에서 한다면, 굳이 식탁을 부엌에 둘 필요가 없는 거죠.”.


-비우는 과정은요?


“먼저 물건을 다 꺼내놔요. 그러면 버릴 것, 쓸 것의 분별이 쉬워지거든요. 비운 다음 공간 재배치도 의뢰인과 소통하면서 해요. 방송에선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의뢰인이 잠시 떨어져있지만, 원래는 모든 과정을 함께 하죠.”


-방송을 보면 가구를 리폼하거나 새로 들이기도 하던데 실제도 그런가요.


“필요한 경우엔 많이 하죠. 중간에 가구를 사오기도 하고요. 심지어 이불도 구매하죠. 물건을 고르고 사는 것도 일이니까요.”

아이 콧물 묻은 휴지까지 못 버렸던 의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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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정리의 시작은 물건을 모두 꺼내놓고 필요, 욕구, 버림 박스에 분류하는 일이다. 반드시 필요한 것, 욕구 때문에 버리지 못하는 것, 버려도 되는 것을 분별하는 작업이다. tvN 제공

-비움의 중요성을 알게 된 계기는 뭔가요?


“많이 비울수록 고객 만족도가 높아지더라고요. 버릴 물건을 버리지 않으면, 공간을 아무리 이리저리 바꿔도 변화가 크지 않아요. 그래서 버리는 과정에서 제대로 판단하도록 옆에서 조언하고 설득하는 일도 굉장히 중요해요.”


-그게 다른 정리컨설턴트와 차이점이죠.


“맞아요. 저는 잘 넣는 방법은 연구하지 않아요. 잘 버리는 방법을 연구하죠.”


-잘 버리지 못하는 의뢰인도 있었을 텐데요.


“음, 아이들 물건을 거의 다 간직하고 있는 의뢰인이 있었어요. 아이가 처음 자기 힘으로 코를 푼 휴지까지 갖고 있었죠. 그러니 집안 전체가 아이들의 추억이 담긴 물건으로 가득 차있었어요. 어떤 허전함이 있으니 아이들의 사소한 흔적에도 집착했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과감히 치워야 했어요. 층층이 물건이 쌓여 있어서 아이들에게 굉장히 위험했고, 아이들이 놀 공간조차 없었거든요. 또 더럽기도 했고요. 마주 보고 앉아서 의뢰인을 설득했죠. 나중에 아이가 커서 내가 코 푼 휴지까지 간직해줘서 고마워할지, 이런 환경에서 자라게 해서 원망할지 생각해 보라고요. 호되게 지적해야 할 땐 그렇게 해야 해요.”


-그 의뢰인은 어떻게 됐나요?


“결국 다 버렸죠. 울면서요.”


-컨설팅이 끝난 뒤 반응은요.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아이들이 좋아했거든요. 미끄럼틀 놓을 자리가 없어서 세워두기만 했는데 그걸 타고 놀 수 있게 됐으니까요.”


-집을 정리하는 거지만, 결국은 마음을 쓰다듬는 일이네요.


“그래서 저도 심리상담 교육을 받기도 했어요. 사람이 무기력해지거나 우울하면 가장 먼저 손 놓기 쉬운 게 집이잖아요. 그러니까 집을 보면 마음이 어느 정도 짐작이 돼요. 거꾸로 흐트러진 집을 정리하면 마음도 어느 정도 치유가 되는 거죠.”


그의 치유는 이런 데서 약효가 나온다. ‘신박한 정리’에서 배우 윤은혜씨의 침실 한편에 놓아준 이젤과 캔버스 같은 것 말이다. 그건 가수와 배우로 사느라 눌러둔 갈망을 풀어낼 공간이었다.


-정말 세심한 작업이에요.


“맞아요. 단순히 물건을 정리하고 정돈하는 일이 아니지요.”


-미니멀리즘이 붐이잖아요.


“그래서 미니멀 라이프에 관심도 높아졌죠. 저는 핵심은 ‘미니멀’이 아니라 ‘라이프’에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제게 미니멀 라이프를 하려고 하는데 컵은 몇 개씩 남기는 게 좋으냐고 묻는 경우가 있어요. 중요한 건 내가 뭘 좋아하고 자주 쓰느냐죠. 머그컵보다 유리컵을 좋아하면, 유리컵이 더 많이 있어야 하죠. 기준은 개수가 아니라 나 자신이에요.”


-얘기를 듣다 보니 실제 집이 궁금해져요.


“하하. 많이들 궁금해 해요. 잡지나 방송에서 섭외 요청도 엄청 들어오죠. 아주 나중에 공개하려고요!”

집을 둘러보면 나를 알 수 있다

한국일보

그는 “잠시 멈춰 내가 있는 공간을 둘러보라”고 권한다. 그건 나를 돌아보는 일이다. 고영권 기자

-집이란 뭘까요?


나를 나타내는, 나를 알 수 있는 공간이에요. 현관 입구에 택배 박스가 많다면? 욕구가 많은 거죠. 한번쯤 집을 돌아보면서 지금의 내가 어떤지 확인해보고 살펴보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살면서 지키려고 해온 삶의 도가 있나요?


“음, 음. 내가 마음 편하고 좋아야 해요. 내가 행복해야 내 주변도 행복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일을 내가 행복하게 하니까, 결과에도 행복이 묻어나고, 그래서 의뢰인들도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그가 예의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행복하신가요?


“네, 저는 정말 행복해요. 어릴 때부터 서울에 사는 게 꿈이었는데 결국 마흔 넘어 오게 됐잖아요. 하하.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인정도 받고 있고요. 그러니까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 있지 않겠어요?”


그는 아마도 자신이 “공간크리에이터 1호일 것”이라고 했다. 자신이 만든 말이어서 그렇다. 특허도 출원해놓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공간크리에이터’라는 단어엔 자부심이 담겨있다. 단순한 수납이나 정리를 대행하는 일이 아닌, 공간을 재설계해 다른 곳으로 탈바꿈하는 작업이란 의미다. 하지만, 이 일을 처음 하려고 했을 때 주위에선 이런 시선도 있었다고 한다. “그거, 남의 집 일 해주는 거 아니야?”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기준이 자신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30대 후반에 다른 인생을 시작하게 만든 원동력이다. 나의 욕구와 필요를 따져, 버릴 것과 간직할 것을 나누고, 그렇게 생긴 공간을 재창출하는 것. 이건 삶에도 적용되는 공식이었다. “가끔은 멈춰서 나를 돌아보고, 비워보는 건 어때요?” 정리에는 인생을 새로 시작할 힘이 있다고, 그가 말한다.


김지은 논설위원 luna@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