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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김봉석 윤이나의 정기구독

'정세랑 세계'의 변형, '이경미 세계'의 완성

by한국일보

<8> 넷플릭스 '보건교사 안은영'

한국일보

보건교사 안은영은 장난감 칼로 젤리라 명명되는 “죽고 산 것들이 뿜어내는 미세하고 아직 입증되지 않은 입자들의 응집체”을 무찌르는 인물이다. 넷플릭스 제공

장난감 칼을 샀다. 한 자루에 1,910원인데 배송비는 3,000원이라 배보다 배꼽이 큰 격이었지만, 어쩐지 ‘지른다’라는 마음으로 결제했다. 모든 일이 지루하게 느껴지던 새벽이었고 뭐라도 사고 싶었다. 비싸지 않고 쓸모는 없되, 재미있거나 아름다운 것. 마침 넷플릭스에서 ‘보건교사 안은영’의 몇몇 장면을 다시 보던 중이었고, 주인공 안은영(정유미)이 젤리를 잡을 때 사용하는 야광 칼을 사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새벽에 뚝딱 결제해 버리고는, 해가 밝아올 때까지 일하느라 샀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며칠 뒤 배송 지연 메시지가 도착한 뒤에야 장난감 칼을 충동구매했다는 것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지연의 이유는 바로 빨강, 노랑, 초록 삼색 중 노란색 손잡이의 칼만 주문이 폭증했기 때문이었다. 안은영이 드라마 속에서 노란색 손잡이의 칼을 휘두른다. 판매 창의 상품명에도 ‘젤리 잡는 칼’이 덧붙여져 있었다.


장난감 칼로 젤리를 잡는 안은영. 2015년 민음사에서 출간된 정세랑의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의 주인공으로, 소설 속에서 젤리로 명명되는 “죽고 산 것들이 뿜어내는 미세하고 아직 입증되지 않은 입자들의 응집체”를 보는 인물이다. 이런 것들을 보니 당연히 귀신도 본다. 그리고 그걸 무찌른다. 은영에게만 보이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퇴마사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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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을 내뱉는 안은영은 넷플릭스라는 매체의 자유도를 비롯해 이 영화의 많은 것을 말해준다. 넷플릭스 제공

싸움의 무기는 “비비탄 총과 무지개 색 늘어나는 깔때기 형 장난감 칼”이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대본에 정세랑 작가가 참여하기도 한 동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 역시 안은영이 내레이션으로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내가 보는 세상은 비밀이다. 그리고 나는 아무도 모르게 남을 돕는 운명을 타고났다.” 그리고 내뱉는 욕설. 거기까지가 안은영이다.


소설에는 딱 한 번 쌍시옷 발음이 강조되어 들어간 욕설을, 드라마의 안은영은 꽤 자주 툭툭 내뱉는다. 이 욕설을 하는 안은영을 보고, 또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많은 것을 말해준다. 왜냐하면, 넷플릭스 정식 공개 전 티저 예고편에서 이 욕설이 등장했을 때가 정유미와 남주혁의 캐스팅 소식 이후 ’보건교사 안은영’이 언론의 주목을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전파나 케이블을 타고 오는 방송과 넷플릭스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이 자유도에서 온다. ‘킹덤’이 이야기의 규모와 이미지 표현의 수위에서 자유를 얻었고 ‘인간중독’이 소재의 범위에서 자유를 얻었다면, ‘보건교사 안은영’에서는 이경미 감독이 자유를 얻었다. 단순하게 욕설에 묵음처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넘어, 개봉관 수나 개봉 첫 주 관객 수와 상관없이 자신의 세계를 펼쳐 보일 수 있는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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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작가가 창조한 ‘명랑하고 이상한’ 세계는 이경미 감독의 손을 거친 뒤 ‘이상하게도 명랑한’ 인물들이 살고 있는 ‘어쩐지 조금 슬프지만 역시 이상한’ 세계로 변모한다. 넷플릭스 제공

그래서 드라마로서의 ‘보건교사 안은영’은 정세랑이라는 세계의 변형이고, 이경미라는 세계의 완성이다. 정세랑 작가가 창조한 ‘명랑하고 이상한’ 세계는 이경미 감독의 손을 거친 뒤 ‘이상하게도 명랑한’ 인물들이 살고 있는 ‘어쩐지 조금 슬프지만 역시 이상한’ 세계로 변모한다. 작품의 배경인 목련 고등학교 학생들이 한 손을 높이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반대편 겨드랑이를 치며 독특한 리듬과 가락을 실어 “내 몸이 좋아진다”라고 외치는 바로 그 순간부터, 거기는 이경미 감독의 세계다.


원작을 읽으며 더 명랑하고 속도감 있는 이야기와 안은영과 홍인표(남주혁)와의 관계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독자라면, 시청자로서는 기대를 배반당했다고 느낄 법도 하다. 하지만 기대를 배반하기는 원래 이경미 감독의 특기다. 독특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여성 인물들은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질주하고, 이경미는 그들을 멈추게 할 생각이 없다. 이런 방식으로, 안은영도 달려 나간다. 누군가의 기대를 배반하면서, 혹은 구해주길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는 방향을 향해서.


‘보건교사 안은영’에는 한껏 이상한 이경미 감독의 개성이 장면마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작품의 형식이다. 다음 화로 넘어가는 동력을 회차별 결말에 심어두는 것이 공식화되어있는 전통적인 한국 드라마의 문법과 보통 두 시간 안에 작품을 마무리 짓는 영화의 방식이 6부작 총 300분 분량에 뒤섞여 있다. 16부작 TV 드라마를 볼 때 다음주를 기다리게 만드는 방식의 엔딩도 아니고, 확실한 이야기의 맺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처음부터 에피소드 단위로 작은 소재들이 끊어져있는 시트콤이나 해외 드라마와도 또 다르다. 영화도 아니고 드라마도 아닌, 혹은 둘 다인 넷플릭스 시리즈물이라고 정의하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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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안은영’은 많은 사랑을 받는 뛰어나고 개성있는 창작자들의 협업 결과물인 동시에, 현재의 넷플릭스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넷플릭스 제공

그래서 ‘보건교사 안은영’은 많은 사랑을 받는 뛰어나고 개성있는 창작자들의 협업 결과물인 동시에, 현재의 넷플릭스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맥락이나 상황 설명의 과감한 생략은 보통의 드라마라면 약점이 되겠지만, 넷플릭스에 공개된 이상 작품의 팬들에게는 반복 시청을 유도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몰아보기와 무한에 가까운 다시 보기가 특징인 서비스를 이용하는 시청자 중 이 작품에 기꺼이 나의 시간을 쓰기로 한 이들은 흩뿌려진 힌트와 단서를 찾아 나선다.


소위 ‘영업’으로 불리는 팬들의 리뷰와 다채롭고 신선한 반응은, 이를 본 누군가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거의 받지 않는 시청을 시작하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 더 많은 수의 대중이 편하게 여기는 소재보다 오히려 개성이 있는 작품이 주목받을 수 있는 플랫폼에서 ‘보건교사 안은영'과 같은 작품은 소수의 팬이나 관객이 인정하는 저주받은 명작이 아닌, 취향이 일치하는 관객이 기꺼이 편애하는 작품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을 이야기할 때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건 바로 안은영을 연기한 정유미라는 배우다. 정유미는 원작자와 연출 각각의 강한 개성의 중간이 아닌 그 밖에서 삼각형을 만들며 균형을 잡는다. 정유미는 히어로의 운명에서 ‘남을 돕는’이 아니라 ‘아무도 모르게’에 방점을 찍고, 안은영의 오랜 외로움을 보여준다. 영상화의 과정에서 새롭게 창조된 인물과 더해진 이야기를 이경미 감독이 솜씨 있는 매듭처럼 묶어내는 후반부에서, 인물의 선택과 변화에 설득력을 더하는 것은 정유미의 연기다. 욕을 달며 살아도 결국 사람을 도울 운명, 나빠질 것을 알면서도 할 수 있는 것은 해보는 이 여성이 구할 것이다. 세계는 구하지 못하더라도,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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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미는 히어로의 운명에서 ‘남을 돕는’이 아니라 ‘아무도 모르게’에 방점을 찍고, 안은영의 오랜 외로움을 보여준다. 넷플릭스 제공

그렇게 ‘언젠가는 어차피 지게 되어있는 세계’에서도 포기하지 않기로 한 안은영을, 그것도 정유미의 얼굴을 한 안은영을 응원하지 않을 도리는 없다. 또다시 기대를 배반당할 것은 알면서도 이 작품의 다음 시즌을 기다리는 첫 번째 이유는 다음 배반은 당황보다 즐거움이 훨씬 클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이자 마지막 이유는 바로 정유미의 안은영을, 퇴사의 꿈을 접은 이 피곤한 직장인이 그래도 계속해나가기로 한 싸움을 마저 보고 싶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다 졸업해버려도, 선생님은 학교에 있으니까. 누군가는 계속 자라나 꼭 스무 살이 되어야 하는 아이들을 지켜야 하니까. 그걸 위해서는 다음 시즌에도 정세랑, 이경미, 정유미 삼각편대가 이 팀의 맨 앞에서 뛰어야 함은 물론이다.


노란 손잡이의 젤리 잡는 칼은 주문 후 열흘이 훨씬 넘게 지난 뒤에야 도착했다. 원통형의 짧은 칼을 손목 스냅으로 가볍게 휘두르면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원뿔 모양으로 길어진다. 휘두르는 동시에 작은 스위치를 올리면 칼은 야광으로 빛난다. 나 말고 깨어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건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고요한 새벽이나, 어쩐지 가위에 눌릴 것 같은 밤, 젤리만큼이나 물컹하고 끈적한 감정과 싸워야 하는 순간에 무엇도 벨 수 없는 칼을 허공에 몇 번 휘젓는 것으로도 기분이 나아진다는 걸 덕분에 알게 됐다. 내 눈에는 젤리도 귀신도 안 보이고 그건 참 다행이지만, 틈만 나면 피곤한 30대 여성이 맞서 싸워야 할 건 젤리 만은 아니니까.


윤이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