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라이프 ]

"대기업 임원서 택배 분류 알바로… 눈높이 낮추니 새 길 보였다"

by한국일보

한국일보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 16층에서 지난 8일 은퇴 7년차 부부 박경옥(오른쪽), 강찬영씨가 마주보며 웃고 있다. 왕나경 인턴기자

박경옥(58)씨는 27년간 전업 주부로 살았다. 남편은 대기업 임원이었고 회사에서 잘 나갔다. 네덜란드, 스페인 주재원으로 10년 가까이 일했고 기사 딸린 차도 나왔다. 덕분에 '사모님' 소리도 들었다.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남편이 은퇴를 '당'했을 때 느꼈던 당혹감은 배가 됐다. 다음달 월급이 끊겼는데도 은퇴를 인정조차 하기 힘들었다. '예전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만 자꾸 들러붙었다.


남편 강찬영(61)씨는 해운회사에서 27년간 근무했다. 수출하는 업체들을 찾아다니며 우리 배를 써 달라 영업을 했다. 평일에는 2차, 3차, 노래방까지 술 자리가 이어졌다. 주말에도 접대 골프를 치느라 쉬지 못했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임원을 달았다. 실적이 좋았으니 내심 전임자들보다는 오래 일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재계약에 실패해 회사를 떠나면서도 생각했다. '관련 업계에 곧 재취업할 수 있겠지.'


은퇴 7년차 부부가 회상하는, 은퇴 당시의 속마음이었다. 이들 부부가 은퇴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건 그로부터 2년이 지나서였다. 퇴직금이라는 마지막 희망조차 마르자 우울감도 사치가 됐다. 지난 8일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부부는 "침몰하는 배에 탄 기분이었다"고 했다. 그제서야 '많이 벌어 많이 쓰는' 생활을 청산했다. 생활 규모를 줄이는 것부터 시작했다. 눈높이를 낮춰 일을 찾았다. 그 때서야 새로운 길이 보였다.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삶

먼저 집을 줄였다. 37평 아파트는 전세를 주고 16평의 빌라로 옮겨 갔다. 줄여 산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만 감행했다. 이제 일자리를 찾을 차례. 몇 년째 소득 '0원'. 고정적인 수입원이 필요했다.


강씨가 찾은 새 일자리는 택배 분류작업 '알바'다. 30년 가까이 일했던 분야와 전혀 다를 뿐더러, 힘 좋은 젊은 사람들도 고되어서 나가떨어진다는 육체 노동이다. 통상 오후 3시쯤 출근해 6시간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밤 11시가 넘는다. 월 120만~130만원을 번다. 이 일이 벌써 4년째. 강씨 본인도 택배 일을 이리 오래 할 줄 몰랐다고 했다.



한국일보

강찬영씨가 4년째 근무 중인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택배 물류센터. 강찬영씨 제공

강씨도 처음엔 다른 대기업 임원 출신들처럼 '관련 업계 재취업'을 노렸다. 공기업, 중견기업의 책임자 자리에만 원서를 넣었다. 한 중소기업에 실제 취업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1년 반 만에 나와야 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알았다. '50대 관리직'으로 재취업하는 것은 로또 1등보다 어렵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내 노하우는 가치있다고 최면을 걸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젊은 친구들의 습득력이 빠르고 조직에서의 노하우는 쉽게 대체돼요." 남편의 재취업을 적극 돕던 박씨도 "새 사람이 오면 자기 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는데, 누가 반기겠냐"며 현실을 인정했다.


그 때 지인의 우연한 권유로 시작한 것이 택배 알바였다. 처음엔 주변에서 의아하게 보는 시선이 신경 쓰였다. 그런데 육체 노동이 주는 기쁨과 보람이 있었다. 그가 은퇴자들에게 "꼭 일을 해라, 농사처럼 가급적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해라"고 조언하는 이유다. 그는 "일을 시작하고 잡념이 싹 사라졌다"며 "집에 돌아올 때 '오늘 하루 잘 보냈다'는 뿌듯한 마음이 든다. 육십이 다 돼서야 노동의 신성함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어깨에 힘 빼세요, 눈높이를 낮추세요

이들 부부가 은퇴자들에게 강조하는 건 '어깨에 힘 빼라'다. 본인들도 다른 생활 방식에 적응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특히 현역일 때 잘나갔던 사람일수록 은퇴 이후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황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런 심리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넘쳐난다. 강씨는 "은퇴한 장성, 교장, 대기업 임원들에게 접근해 '협회장·단체장 주겠다' '특별분양을 한다' '품위 있는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한 달에 몇 천만원씩 수익을 주겠다' 이런 사기가 정말 많다"고 말했다.


은퇴자들끼리 사업체 만드는 것도 금기 중 하나다. "은퇴한 임원들이 한 2억원씩 모아서 회사를 창업하거든요. 우리 가치를 못 알아보니, 우리끼리 하자면서. 보는 눈이 있으니 그럴 듯한데 사무실을 차리고 직원도 하나 뽑아요. 그런데 4명이 다 사장인 거죠. 일은 누가 하나요."


한국일보

박경옥씨가 남편 은퇴 후 '생존법'을 담아 펴낸 '오늘, 남편이 퇴직했습니다'의 표지. 박경옥씨 제공

하지만 그도 어깨에 힘을 쫙 빼기까지 수차례 시행착오를 겪었다. 박씨가 본인의 책, '오늘, 남편이 퇴직했습니다'에서 전하는 일화는 은퇴자들이 눈높이를 낮추기가 얼마나 힘든지 엿볼 수 있다. "어느 날 구청 일자리지원센터 앞을 지나는데 외국을 다니는 무당이 국제적인 굿을 할 때 동행하는 통역 겸 비서를 뽑는 공고가 난 거예요. 제가 내켜하지 않는 남편을 설득했어요. '당신, 영어 잘하죠, 동양학 공부하고 있죠. 적임자예요' 이러면서. 나중에야 들었죠. 이력서에 대기업 다닐 때 연봉을 적었다는 걸요. 아니, 통역에게 그만한 월급을 주려면 한 달에 굿을 얼마를 해야 해요?"

"은퇴 이후에도 인생은 계속 됩니다"

남편이 은퇴하자 박씨도 나이 오십 넘어 처음으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평소 동의보감, 한의학을 공부해왔던 그는 서울시 50+(플러스)센터, 구청 등의 강연자로 변신했다. 성격에 잘 맞았고 강연비를 살림에 보태는 재미도 쏠쏠했다. 자신의 경험을 살려 은퇴자, 은퇴 부부를 상담하는 일도 시작했다. 책을 내면서 '작가'라는 새 정체성도 생겼다. 지금은 동년배의 '디지털 문해력'을 높이는 강연을 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한국일보

박경옥씨가 지난달 서울시 서대문구 '서대문50+(플러스)센터'에서 시연 강의를 준비하고 있다. 박경옥씨 제공

물론 프리랜서는 고되다. 자기계발에는 끝이 없고, 홍보를 위해 유튜브, 블로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여럿을 운영해야 한다. 지난해에는 코로나 탓에 강연자로 설 자리도 줄었다. 박씨는 그래도 "50대, 60대에도 계속 성장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며 "남편의 월급으로부터 독립해 주체적으로 살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은퇴 후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부부지만, 그렇다고 노후에 돈을 너무 많이 주는 일자리는 추천하지 않는다. 그만큼 일의 강도가 높아 스트레스가 많기 때문이다. 강씨도 오전 시간에는 사이버대에서 동양학을 공부하며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다. 강씨는 "150만원 이상 받는 일자리는 공부를 할 수가 없겠더라"며 "은퇴 이후에는 돈을 많이 버는 일보다는 취미나 휴식과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