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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인도 천민 운전사는 어떻게 신흥 부호가 됐나

by한국일보

넷플릭스 영화 ‘화이트 타이거’(2021)

한국일보

발람은 가난한 천민이다. 시골 고향을 떠나 돈을 벌려고 한다. 과연 그의 계획은 뜻대로 이뤄질까. 넷플릭스 제공

머리가 좋다. 공부를 잘한다. 장학금 제공 제안까지 받았다. 델리에 있는 학교로 진학할 수 있다. 누군가는 한 세대에 한 마리 정도 태어나는 ‘백호(White Tiger)’와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하지만 가난과 가족이 문제다. 가족은 돈이 없는데 무슨 공부냐며 진학을 막는다. 아버지는 동네 지주에게 이자조차 못 낸다. 할머니는 자신의 찻집에서 장작이나 패며 돈벌이를 하라고 한다. 청년 발람은 미래가 어둡다. 시골에서 무지렁이처럼 살다 아버지처럼 의료 혜택조차 못 받고 죽어야만 할까.


야심가 발람은 머리를 쓴다. 지주 아들 아쇼크가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개인운전사가 필요한 사실을 간파한다. 부자까지는 아니어도 지긋지긋한 시골 고향을 벗어나 풍족한 삶을 도모할 수 있다. 그의 술수는 과연 통하고 계획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

①인도 영화는 춤과 노래만 있다고?

‘화이트 타이거’는 인도 영화다. 인도를 배경으로 인도인이 출연해 인도의 현실을 전하는 영화지만 여느 인도 영화와는 다르다. 감독은 인도계 미국인 라민 바흐러니. 할리우드에서 스타 배우 앤드류 가필드와 마이클 섀넌 등과 함께 '라스트 홈'(2014)을 만들었다. 감독의 이력 만으로도 ‘화이트 타이거’의 결을 감지할 수 있다. 떠들썩한 노래가 나오고 흥겨운 군무가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인도 영화와는 판연히 다르다.


영화는 코미디와 드라마, 스릴러가 섞여 있다. 출세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발람의 행태는 종종 웃음을 던진다. 곤경을 이겨내고 계획을 하나씩 실행해 나가는 발람의 모습이 사뭇 감동을 안겨주기도 한다. 가난하고 카스트제도의 바닥에 위치한 발람이 인간 대우를 받지 못하면서 벌어지는 일은 서스펜스를 빚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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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람은 지주 아들의 개인운전사가 되고, 부를 움켜쥘 기회를 마련한다. 넷플릭스 제공

②부자와 빈자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발람은 술수를 발휘해 아쇼크의 운전사가 된다. 오래 일해온 경험 많은 운전사마저 몰아낸다. 아쇼크는 미국식 사고방식을 가졌다. 발람을 하인처럼 막 대하는 아버지와 달리 친구처럼 다가간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아쇼크의 아내 핑키 역시 발람에 우호적이다.


발람은 집안 사업을 이어받은 아쇼크를 따라 꿈의 도시 델리에서 살게 된다. 발람의 고용주 아쇼크는 지적이고 선하며 후하다. 발람에게 장난을 걸 정도로 친밀하다. 돈을 버는 것만이 목표였던 발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날들이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발람은 어떤 사건을 통해 사회 상류층의 본심을 알게 된다. 자신은 쓸모에 따라 언제든지 용도 폐기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다. 아쇼크 역시 그의 아버지와 큰 차이가 없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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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인생을 건 선택을 한다. 부를 일굴 수 있는 기회가 그에게 온다. 넷플릭스 제공

③복종할 것인가, 뒤집을 것인가

고용주와의 신뢰가 깨졌다. 배신감만 밀려온다. 발람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아쇼크의 돈이라도 훔쳐서 복수를 해야 할까. 인도에선 고용주의 돈을 훔쳤다가는 가족이 몰살 당할 수 있다. 발람의 발목을 잡은 이들이지만 가족은 가족. 그렇다고 무일푼으로 쫓겨날 수는 없다. 고용주를 수행하며 지켜본 인도 정치는 환멸 그 자체다. 하층민을 지지기반으로 한 진보 정당조차도 부패할 대로 부패했다. 시간이 갈수록 부자들은 더욱 부자가 되고, 빈자는 더욱 가난해지는 부조리한 인도에서 발람이 할 수 있는 선택은 결국 무엇일까. 복종할 것인가, 뒤집을 것인가. 그는 인생의 선택을 거쳐 부호로 거듭난다.

권장지수: ★★★☆(★ 5개 만점, ☆은 반개)


신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발람의 분투가 흥미롭다. 악명 높은 카스트제도 못지않게 인도 사회에 높다란 벽을 만들어낸 빈부격차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다. 약삭빠른 야심가인 발람의 성공기가 서늘하면서도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평론가 92%, 관객 80%)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