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박자박 소읍탐방] 꽃보다 바다... 녹색 머금은 파랑, 코발트블루 삼척의 봄

[여행]by 한국일보

한국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코로나19와 함께하는 두 번째 봄이다. 매년 이맘때면 삼척 맹방해변 안쪽 들판엔 노란 유채꽃 물결이 일렁인다. 벚나무 가로수도 화사하게 꽃방울을 터트려 일대가 노곤한 봄 기운에 휩싸인다. 올해 그 바닷가에는 유채가 없다. 낯선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하던 지난해 4월 2일 삼척시와 주민들은 애써 가꾼 유채밭을 트랙터로 갈아 엎었다. 연중 가장 큰 행사인 축제를 못 한다는 아쉬움보다, 몰려드는 외지인이 바이러스를 퍼트릴까 두려움이 컸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올해 심을 꽃씨도 확보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대규모 유행이 이어지고 있어, 올해는 일찌감치 유채밭 조성을 포기했다. 그러나 애초 삼척을 찾는 여행객의 목적이 바다에 있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그리 섭섭할 것도 없다. 눈을 홀리는 꽃 물결이 없으니 에메랄드처럼 곱고 짙은 바다가 다시 보인다.


맹방해변엔 해발 54m 작은 섬, 덕봉산이 있다

맹방은 삼척을 대표하는 해변이다. 흔히 명사십리라 말하지만 실제 길이는 그 이상이다. 남북으로 4㎞가 넘고, 바로 이어진 덕산해변까지 더하면 6㎞ 이상 모래사장이 이어진다. 일직선에 가까운 해변에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가끔씩 바다를 찾는 외지인에게야 묵은 체증까지 뻥 뚫리는 시원한 풍광이지만, 주민들에겐 그 바다가 마냥 좋을 수만은 없다. 더러 갯내가 지겨울 때도 있으니 색다른 향기가 그리울 법도 하다. 맹방이라는 지명의 연원은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오른다. 충선왕 원년(1309) 미륵보살의 하강을 기원하는 법회(용화회)에서 향나무 250주를 묻었다는 기록이 전해 온다. 세월이 흘러 향나무를 파묻은 곳, 즉 매향방(埋香芳)이 맹방이 됐다는 얘기다.

한국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맹방해변 남쪽 끝자락의 덕봉산은 그윽한 향기 머금은 향나무 같은 산이다. 맹방해변이 끝나고 덕산해변이 이어지는 바닷가에 봉긋하게 솟아 있으니 쉼표 같은 섬이다. 두 해변을 가르는 기준은 백두대간 높은 봉우리에서 흘러내린 마읍천이다. 하천 물길은 덕봉산 왼쪽으로 돌아 바다로 흘러들고, 씻겨온 모래는 오른편에 쌓이고 쌓여 고운 모래사장을 이루고 끝내 덕산해변과 연결된다.


덕봉산은 해변과 잇닿아 있으니 섬이면서 섬이 아니다. 둘레가 600m 남짓하고 높이는 53.9m에 불과하니 산이면서 산이 아니다. 소수점 이하까지 기록할 정도로 한치가 아쉬운 높이다. 한눈에 띌 정도로 크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없는 듯 무시하기에는 그 자태가 예사롭지 않다. 덕봉산을 두고 전해지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먼 옛날 양양에 있던 삼형제 봉우리가 파도에 이리저리 떠다니다가 첫 번째로 닿은 곳이 이곳 덕봉산이다. 두 번째는 삼척 원덕읍의 해망산이고, 세 번째는 울진 비래봉(혹은 영덕 죽도산)이라 한다. 산의 모양이 물더멍(‘물독’의 방언) 같다고 하여 더멍산이라고도 불렀다. 산 꼭대기에 산삼 물이 담긴 쇠 독이 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해변에서 바라만 보던 덕봉산에 최근 산책로가 생겼다. 맹방해변과 섬 사이를 나무다리로 연결했고, 덕산해변 모래사장에는 영주의 무섬마을처럼 외나무다리를 놓았다. 산책로는 섬을 한 바퀴 두르고 남북 양쪽에서 정상까지 연결된다.

한국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섬 바깥쪽으로 돌면 울퉁불퉁 험한 갯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소리가 시원하고,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는 키 작은 대나무가 빼곡하다. 화살대로 쓰기에 딱 알맞은 크기다. 조선 선조 때 홍견이라는 인물이 밤이슬을 밟으며 덕봉산에 올라 한 뿌리에 다섯 개가 솟은 대나무로 화살을 만들어 무과에 합격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정상에는 최근까지 군사용 초소였던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목재로 전망대를 설치해 놓았다. 바다 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끝없이 이어진 하얀 모래사장과 푸른 파도가 넘실대고, 맞은편으로는 마을 뒤로 백두대간 능선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정상을 오르내리는 산책로에는 ‘천국의 계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내려오는 길에 보면 대숲 오솔길 사이로 쪽빛 바다가 눈부시다.

한국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삼척을 대표하는 이 해변에 어두운 그림자도 어른거린다. 맹방해변 북쪽 끝자락에는 대형 철골 구조물이 괴물처럼 서 있고 주변 모래사장에는 들어가지 못하도록 공사용 가림막이 둘러져 있다. 삼척화력발전소 공사 현장이다. 해변 침식 문제가 제기돼 현재는 일시적으로 공사가 중단된 상태지만 곧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명사십리라도 화력발전소가 들어선 그 바다를 차마 아름답다 하기는 힘들 것 같다.



촛대바위도 용굴도 들러리… 결국은 코발트블루 바다색

덕산항에서 끊어졌던 해변은 10㎞ 남쪽, 궁촌항에서 시작해 초곡항까지 다시 이어진다. 약 2.5㎞ 바다는 궁촌, 원평, 초곡, 문암 등 자그마한 해변으로 연결된다. 대부분 널리 알려지지 않은 한적한 해변이다. 삼척해양레일바이크(궁촌~용화)가 지나는 원평해변은 울창한 솔숲이 특히 운치 있다.

한국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궁촌은 임금이 거처하는 집, 즉 궁궐에서 비롯한 지명이다. 항구 뒤편 언덕에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의 무덤이 있다. 모두 4기의 봉분이 있는데, 가장 남쪽에 있는 것이 공양왕릉, 2기는 두 왕자, 나머지는 시녀 또는 말의 무덤이라 전한다. 공양왕은 조선이 건국한 해에 원주로 추방되었다가 태조 3년(1394) 삼척부에서 두 아들과 살해당했다. 공양왕릉은 경기 고양에도 있는데, 기록이 부족해 어느 쪽이 진짜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삼척의 왕릉에 대한 기록은 조선 현종 3년(1662)에 지은 ‘척주지’와 철종 6년(1855)에 지은 ‘척주선생안’에 남아 있다. 척주는 삼척의 옛 지명이다.


초곡항은 최근 해안 절벽에 산책로가 나면서 조금씩 이름이 알려지고 있다. 해안 절경을 즐기며 시원하게 바닷바람을 쐴 수 있는 길이다. 산책로의 정식 명칭은 ‘초곡용굴촛대바위길’이다. 목재 덱으로 이루어진 약 660m 산책로 끝에 용굴이 있다. 절벽 아래에 뚫린 굴로 검푸른 바닷물이 일렁거린다. 작은 고깃배가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해안 동굴로 용으로 승천한 장소라는 전설을 품고 있다. 산책로 중간쯤에는 바람이 세게 불면 곧 부러질 듯 곧추선 촛대바위가 있다. 코앞에서 볼 수 있어 동해 추암해변의 촛대바위보다 훨씬 아찔하다.

한국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짧은 구간에 출렁다리도 놓았고, 바닷물을 이용한 인공폭포도 설치했다. 용굴과 촛대바위 외에 거북, 사자, 피라미드 등의 이름을 붙인 기암괴석이 즐비하다. 초곡항 옆 문암해변에도 기묘한 바위 군상이 눈길을 잡는다. 까마득한 옛날 지질활동으로 생성된 작품에 누군가가 미륵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상상력이 부족한 탓인지 선뜻 수긍이 가지는 않는다. 온갖 이름을 끌어대고 의미를 더해도 군더더기일 뿐, 이 길의 주인공은 역시 바다다. 발 아래서 수평선까지 이어지는 바다색이 예술이다. 해안 산책로의 입장료는 없다. 끝 부분에 계단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 대체로 넓고 평탄해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다.

한국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초곡항 뒤편 언덕에는 황영조 기념공원이 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딴 황영조 고향이 이곳이다. 언덕에서 보면 그의 고향집이 내려다보이고, 아담한 항구 뒤편으로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일견 바르셀로나 몬주익 언덕의 풍광과 닮았다. 공원에서 다시 해안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말굽재’라는 안내판이 세워진 언덕에 잠시 쉬어갈 공간이 있다. 성황당이 있어 주민들이 신성시하던 곳으로 지체 높은 양반도 말에서 내려 걸어가야 했다는 곳이다. 쉼터에서 정면으로 용화해변과 장호해변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장호항은 어촌체험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다. 포구에서 투명 카누를 즐길 수 있고, 해안으로 나가면 기암괴석에 둘러싸인 곱고 투명한 바다가 보인다. 해변 위로 케이블카도 설치돼 종합 해양관광지로 꼽히지만, 그 때문에 호젓한 포구의 풍경은 다소 훼손됐다.

한국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장호항이 번잡하게 느껴진다면 작은 언덕 넘어 갈남해변이 제격이다. 내세울 만한 관광 시설이 전혀 없는 조그만 어촌마을이다. 포구 앞 조그마한 해변과 갯바위 사이로 드나드는 바다색이 한없이 곱다. 코발트블루라 해도 좋고 코발트그린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녹색을 풀어 놓은 파란색, 푸른 빛깔이 번지는 녹색 바다다.


삼척 바다를 여행할 때는 내비게이션에서 시간이 더 걸리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4차선 7번 국도에선 이따금씩 바다가 스치듯 보일 뿐이다.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옛 도로를 따라가면 넘칠 정도로 실컷 바다 구경을 할 수 있다.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2021.04.05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이런 분야는 어때요?

ESTaid footer image

Copyright © ESTaid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