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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슬기로운 집콕생활]

침실정원, 식물카페…280그루와 함께 삽니다

by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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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콘텐츠 크리에이터 박상혁(29)씨의 '침실정원'에는 280여종의 식물들이 함께 살고 있다. 박상혁씨 제공

유튜브 채널 ‘그랜트의 감성’을 운영하는 박상혁(29)씨의 집에는 ‘침실정원’이 있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그의 작은 방에는 몬스테라, 안스리움, 필로덴드론 등 280종의 식물이 살고 있다. 3년차 ‘프로 식물 집사’인 박씨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식물들의 안부를 묻고 상태를 살핀다. 햇빛이 부족해 보이면 해가 잘 드는 창가로 옮겨주고 바람이 필요하면 선풍기나 서큘레이터를 튼다. 물 주는 날에 따라 식물 구역을 나눠 일주일에 세 번씩, 한 번에 길게는 2시간 이상 물을 준다. 외국의 식물백과사이트를 찾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식물을 키우는 다른 이들과도 활발하게 소통한다. 박씨는 “숲 속에 사는 기분”이라며 “직접 흙을 다듬고, 물을 주고 돌본 식물들이 잘 자라는 걸 보면 일상의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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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정원'의 벽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박상혁씨 제공

대체로 집에 있는 화분들은 애물단지가 되곤 했다. 파릇파릇했던 이파리는 금세 노랗게 변색되고, 활짝 핀 꽃은 어느샌가 고개를 떨구었다. 얼마 안 가 앙상하게 남은 줄기를 마주하노라면 게으른 부주의로 애꿎은 생명을 해한 회한만 가득했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식물 킬러’들이 전향이라도 한 걸까. 한 줄기도 포기할 수 없다는 각오로 식물을 키우려는 ‘식물 집사’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오주원 틸테이블 대표는 “코로나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식물을 기르는 것을 통해 긍정적인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며 “단지 예뻐서 키우기보다 살아있는 식물을 통해 삶의 위안을 받으려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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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된 베란다는 '식물 카페'로 변했다. 주부 전화정씨는 식물 선반과 미니 테이블 등을 활용해 크고 작은 화분들을 균형 있게 배치했다. 전화정씨 제공

식물, 지친 삶을 위로하다

지난해 코로나19 확산으로 외부활동을 하지 못했던 주부 전화정(44)씨는 확장한 베란다 공간에 ‘식물 카페’를 만들었다. 알로카시아, 베고니아, 고사리, 아이비 등 140여 종의 식물을 키운다. 선반과 나무상자, 미니 테이블 등을 활용해 크고 작은 식물을 균형 있게 배치했다. 매듭을 엮어서 만드는 마크라메에 식물을 공중에 걸어뒀다. 물 주기 알람 애플리케이션(앱)을 사용해 하루 3번 꼬박꼬박 식물에 물을 주고, 햇빛이 더 필요한 식물 옆에는 식물 전용 등도 설치했다. 전씨는 “다양한 식물을 키우면서 ‘풀멍’을 하는 기쁨이 크다”며 “보는 것만으로도 생기가 돋고, 식물들이 무언의 위로를 건네는 것 같아 삶의 위안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1인 가구 김보미(33)씨도 최근 반려식물을 집에 들였다. 1m가 훌쩍 넘는 관엽식물 드라세나 덕에 집안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김씨는 “예전에는 튤립이나 국화 등 화려한 꽃이 피는 식물을 키웠는데, 관리를 제대로 안 해줘서 한번 꽃이 지고 나면 다시 피지 않았다”며 “대신 실내에서도 비교적 키우기 쉽고, 변화가 크지 않은 드라세나를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손도 많이 가지 않는다. 빛이 많이 들지 않는 실내에 두고 키워도 좋고, 물도 자주 주지 않아도 된다. 그는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하면서 외롭고 답답할 때면 푸른 나무를 보고 힘을 얻는다”며 “잎이 좀 더 벌어지거나, 새순이 돋아나올 때면 말 못 할 감동이 밀려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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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과 바람이 부족한 실내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관엽식물을 키우는 게 유리하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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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미가 있는 드라세나는 한 그루만으로도 공간의 분위기를 바꾼다. 게티이미지뱅크

식물은 인테리어용품이 아니다

저절로 잘 크는 식물은 없다. 박상혁씨는 “많은 사람들이 실내에서 키우기 좋아하는 장미, 라일락, 수선화, 튤립은 겨울에 추위를 많이 느껴야 피는 꽃들”이라며 “그래서 실내보다는 실외에서 키워야 잘 큰다”고 말했다. 로즈마리, 바질 등 허브도 실내에서 키우기 쉬운 식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좀 다르다. 박씨는 “허브도 8시간 이상 빛을 받아야 잘 자란다”라며 “아무리 빛이 잘 드는 실내여도 햇빛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실내에서 키우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오히려 우거진 아마존 밀림 같은 곳에서도 잘 자라는 열대식물들이 빛이 잘 들지 않는 실내에서는 유리하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공간을 예쁘게 꾸미려고 식물을 키운다면 차라리 조화가 낫다. ‘반려’ 식물을 키우고 싶다면 적절한 환경부터 갖추는 게 우선이다. 박상혁씨는 “식물은 단순히 인테리어 용품이 아니다”라며 “식물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을 먼저 고려하고, 식물이 살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 따져본 뒤에 집에 들여야 성공적으로 식물과 함께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오주원 대표도 “과거에는 실외공간이 갖춰진 집이 많았기 때문에 비교적 식물을 가꾸기가 편했지만 요즘에는 주거공간에 실외공간이 거의 없기 때문에 식물을 키우기가 더 어려워졌다”며 “공간에 어울리는 식물을 고르는 게 아니라 식물에 어울리는 공간을 먼저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