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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집 공간 사람] 

40년 된 할머니 시골집이 나만의 휴양지로 변했어요

by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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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리에 잠을 깨 마당에 나가 날씨를 살피는 아침은 더는 촌로의 것이 아니다. 경기 안성시에 사는 30대 1인 가구 신지호(33)씨는 요즘 이런 아침을 맞이한다. 그는 지난해 직장이 안성시로 이전하면서 할머니가 살던 시골집으로 이사했다. 16년 전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세입자들이 살던 집을 손수 고쳐 산다. 그는 “도시의 원룸이나 오피스텔은 경제적인 부담감도 크고, 제집처럼 편안하게 꾸미는 데도 공간적 제약이 컸다”라며 “할머니가 살던 집은 낡았지만 어릴 적 자주 왔던 곳이어서 친근했고, 의미도 남달라서 제가 고쳐 살기로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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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시골집을 고치다

논밭 한가운데에 있는 붉은 벽돌을 두른 할머니의 집(건축면적 89㎡)은 1980년대에 지어졌다. 당시에 유행했던 붉은 벽돌과 슬레이트 지붕에 처마와 낮은 난간이 둘러진 전형적인 농가 주택이다. 마당에는 수돗가와 농기구 등을 보관한 창고 등이 달려 있다. 여느 시골 할머니의 집처럼 정겹고 소박하다.


집을 고치면서 가옥의 형태는 고스란히 남겼다. 그는 “고치기로 마음먹으면서 옛 것과 현재가 어떻게 조화롭게 만날 수 있을까를 많이 고민했다”라며 “크게 구조나 형태는 바꾸지 않고, 제 취향과 감성에 맞게 바꾸는 방식을 택했다”고 말했다. 40년 된 집의 외관은 특별히 달라진 게 없다. 떨어진 벽돌을 새로 붙이고, 틈을 메우고, 벗겨진 페인트 칠을 다시 했다. 현관 앞 지붕을 받치고 있는 검은 모자이크 타일 기둥도 그대로 뒀다. 신씨는 “할머니가 계셨을 때 찾아왔던 집의 기억을 간직하고 싶어서 좀 추워도 단열재 등을 보강하지 않고 망가진 부분만 수리했다”고 말했다.


옛집은 재료와 용도에 따라 최신의 집이 됐다. 집 현관 앞 난간은 터서 나무를 깔고 평상으로 만들었다. 시골집 마당에 평상을 펼쳐두고 낮에는 수박 먹고, 밤에는 별을 봤던 추억이 함께 살아나는 공간이다. 그는 캠핑을 할 계획이다. 할머니가 가마솥을 걸어두고 물을 퍼서 요리를 했던 수돗가도 그대로 남기되 핑크색 타일과 캐노피를 사용해 신씨만의 휴양지로 바꿨다. 그는 “예전에는 김장이나 요리를 하기 위해 수돗가의 크기가 넉넉했던 것 같다”며 “여름에 물에 발을 담그거나 앉아서 더위를 식히려고 캐노피를 설치하고, 벤치를 뒀다”고 말했다. 할머니의 텃밭은 손자의 정원으로 바뀌었다. 마당은 관리하기 편하도록 돌을 깔았고, 좋아하는 나무를 심었다.


신씨는 “집의 이곳저곳을 고치면서 아버지와 가족들과 ‘이 부분은 예전에 뭘 했던 곳이었어’ ‘여기는 내가 고쳤었는데’라는 얘기를 많이 주고받았다”라며 “오래된 가족의 추억 위에 제 추억을 덧입히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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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에서 누리는 여유

집의 내부도 구조는 바꾸지 않고, 재료와 용도를 달리했다. 신씨는 “1980년대에 지어진 집인데도 중문과 붙박이장이 있었고, 창이 크고, 거실과 분리된 주방이 있는 등 구조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며 “다만 내부에 나무 마감을 많이 쓴 탓에 낡고 어두워서 밝고 깔끔하게 바꾸고 싶었다”고 말했다.


온통 체리색 일색이었던 거실은 방문과 붙박이장, 문틀과 우물천장 일부만 남겨둔 채 흰옷으로 갈아입었다. 방문과 붙박이장에는 오일을 여러 번 덧발라 촌스러움은 덜고, 감성은 더했다. 신씨는 “예전 집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나무로 돼 있어서 방문이나 붙박이장이 오히려 묻혀 버렸는데, 방문과 붙박이장만 남기고 하얗게 도배를 하니 존재감이 확실히 드러났다”라며 “짙은 체리색의 방문과 붙박이장이 이 집의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포인트”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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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 TV를 두는 대신 커다란 창 앞에 3인용 소파를 배치했다. TV를 둘 여분의 벽도 없지만 마당과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서다. 신씨는 “할머니도 TV를 거실에 두지 않으셔서 가족들이 거실에 그냥 옹기종기 둘러앉아서 편하게 놀던 기억이 난다”며 “지금은 그냥 소파에 편안하게 누워 바깥 풍경을 감상하는 여유를 즐긴다”고 말했다.


하얗게 도배된 각 방에는 어렸을 적 기억과 기억만큼 오래된 소품들로 채워졌다. 할머니가 쓰던 방은 미니멀한 침실로 바뀌었다. 침실에는 할머니 방에 있을 법한 고풍스러운 수납장을 뒀다. 그는 “집을 고치면서 창고에서 발견한 소중한 소품이다”라며 “의외로 호텔방처럼 깔끔하게 꾸민 이 방과 잘 어울려 뒀는데, 볼 때마다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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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 외에도 방이 두 개나 더 있다. 동네 구멍가게처럼 할머니가 방 한 칸에 물건을 넣고 실제로 동네 사람들에게 판매했던 ‘슈퍼방’은 지금도 식료품을 보관하는 팬트리(식료품이나 식기를 두는 곳)로 활용하고 있다. “할머니가 방에 자물쇠를 따로 걸어두셨다가 손주들이 오면 자물쇠를 열어줬어요. 그러면 다들 '와~' 하고 들어가서 좋아하는 과자를 집어 오는 ‘슈퍼 방’이었어요.” 명절 때 모인 친척들이 다 함께 잠을 청했던 방은 드레스룸이 됐다. “어렸을 때 숨바꼭질하던 붙박이장이 아직까지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붙박이장을 최대한 살려서 활용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살짝 광택만 살렸어요.”


아치형 벽으로 거실과 분리된 주방은 그가 가장 신경을 많이 쓴 공간이다. “시골에 살려면 요리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요리를 하고 싶은 공간으로 꾸몄어요.” 자작나무 합판을 사용해 싱크대를 만들고 아일랜드 테이블을 중앙에 설치해 조리공간을 넓혔다. 원래 있던 아치형 문의 형태를 본떠 거실로 나가는 벽도 아치 형태로 통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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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을 고쳐 살며 그 역시 달라졌다. “시골집에 사니깐 직접 손으로 해결해야 할 게 많더라고요. 요리도 직접 하고, 식물들도 많이 돌보고, 작은 가구들도 만들고요. 예전 같으면 ‘시간이 없어서’ 못 했을 것 같은데, 여기서는 그런 시간들이 아깝지 않고, 오히려 즐거워요.”


오전에 주문하면 오후에 도착하는 택배, 전화 한 통이면 30분 내에 오는 배달음식, 24시간 성업 중인 편의시설 등 도시의 편리가 그립진 않을까. “마트에 가려면 차를 타고 한참 나가야 하고, 친구들을 만나려면 주말에 서울로 가야 하고, 좋아하는 운동을 할 곳도 없어서 불편할 때가 있어요. 편리함을 포기하는 대신 편안함을 얻었어요. 시골집은 나만의 시간을 누리는 여유와 편안함이 있어요. 유명한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보다 집에서 직접 내려 평상에 걸터앉아 마시는 커피가 훨씬 더 맛있더라고요.”


안성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